ⓒ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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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한관우 인턴기자】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문제는 언제나 큰 관심을 받아왔지만 지금처럼 지대한 국민적 관심사였던 적은 없었다. 

최근 몇년 새 연이어 발생한 ‘버닝썬’, ‘웰컴투비디오’, ‘n번방’ 등 성범죄 사건은 그간 부실한 처벌이 또 다른 성범죄자를 양산했다는 의혹을 낳았다.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으로 성범죄에 유난히도 관대한 사법부가 지적되고 있다. 

현재 여론은 성범죄자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법부의 ‘성인지 감수성’을 바로잡는 것이 최우선인 한편 일반 시민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는 게 관련 단체들의 시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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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하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와치맨 

‘n번방’, ‘박사방’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한 텔레그램 ‘고담방’을 개설해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와치맨’ 전모씨는 과거에도 디지털 성범죄로 수사를 받은 전적이 있다.

전씨는 ‘에이브이스눕’(AVSNOOP)이라는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에서 회원으로 활동했었다. 이때 당시 전씨는 사이트에 성착취물을 170개 가량 업로드 했었는데, 이 영상들은 타인의 IP카메라를 해킹해 불법촬영한 일명 ‘몰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이 AV스눕의 운영진들을 검거할 때 함께 검거됐지만 불법촬영물의 노출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2018년 6월, 징역 1년·집행유예 3년을 받고 곧바로 풀려났다.

그렇게 풀려난 전씨는 자신이 활동하던 사이트의 이름을 본따 ‘AV스눕’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해 자신이 만든 텔레그램 고담방을 홍보하고 사람들을 모아 ‘와치맨’으로 활동했다.

고담방은 직접적으로 영상을 올릴 수는 없었으며, 성착취물의 링크를 공유하고 자신의 채팅방을 홍보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성착취물 공유방의 통로 역할로 이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갓갓’ 문영욱이 고담방에 자신의 ‘n번방’ 링크를 무료로 공유했고, 갓갓이 잠적할 때쯤 ‘박사’ 조주빈이 ‘박사방’을 고담방을 통해 홍보했다. 

전씨는 지난해 9월 불법 성착취물을 유포한 혐의로 체포돼 현재 재판 중에 있다. 검찰은 지난 3월 전씨에게 징역 3년6월을 구형했다. 하지만 n번방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형량을 구형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돌연 선고 기일을 미룬 채 변론재개를 신청해 진행 중인 상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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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협조하면 형량 줄어도 괜찮아?

갓갓으로부터 n번방을 물려받아 운영했던 ‘켈리’ 신모씨는 지난해 11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에 있다.

신씨는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자신의 자택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9만1800여개 저장했으며 이중 2590여개를 판매한 혐의를 받는다. n번방을 활용해 성착취물을 판매한 사실도 확인됐다.

당초 검찰은 신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법원은 신씨에게 구형량에 반밖에 안 되는 징역 1년을 선고했지만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다. n번방과의 관련성을 입증할 만한 자료 없었고, 신씨가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신씨는 이 형량마저 무겁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검찰이 n번방과의 관련 여부를 보완수사하겠다며 재판을 재개해달라고 요청하자 돌연 항소를 취하했다. 결국 신씨는 징역 1년을 확정받고 올해 9월 출소할 예정이다.

폐쇄된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뉴시스
폐쇄된 웰컴 투 비디오 사이트ⓒ뉴시스

 아동 성착취물 운영자 손정우 징역 1년6월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를 운영한 손정우는 해당 사이트를 단 한 번 이용한 공유자들보다도 낮은 처벌을 받았다. 

미국은 웰컴 투 비디오를 통해 아동 성착취물을 다운 받은 니콜라스 스텐걸에 대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단 1회 접속해 1회 다운로드한 리처드 그래코프스키에 대해서는 징역 5년10월 선고와 보호관찰 10년을 처분하는 등 아동 성착취물 공유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했다.

이와 달리 손씨가 받은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했다. 

1심 재판부는 손씨가 제출한 500장가량의 반성문을 참작해 징역 2년6월·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심에선 징역 1년6월이 선고됐으며 손씨가 어린 나이에 결혼한 가장이라는 점,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점 등이 감형 요소로 작용됐다.

예정대로라면 징역 1년6월이 확정된 손씨는 지난달 27일 출소됐어야 하지만 미국 법무부가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며 재차 구속됐다. 현재는 현재 범죄인 인도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나 손씨의 미국 송환이 결정된다 하더라도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의해 미국에서 아동 성범죄를 명목으로 처벌받을 수는 없다. 

결국 손씨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운영 혐의에 따라 받게 된 처벌은 1년6월이 전부인 상황이다.

지난 4월 20일,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이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그간 성범죄자들에 부실한 판결을 내려온 사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4월 20일,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이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그간 성범죄자들에 부실한 판결을 내려온 사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사법부의 성인지 감수성이 필요하다

올해 3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 청소년 음란물 제작 등에 대한 처벌은 집행 유예 비율이 53.9%로 가장 높았다.

또한 1심에서 유기징역을 선고받은 경우 1년 이상~3년 미만이 48.3%로 가장 높았고, 10년 이상에 해당하는 형을 집행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이어 감경 사유에선 범행 전력이 없었다는 점이 17.7%, 그다음으론 피고인의 반성 여부(15.85%)가 높았다. 둘 모두 손정우가 감형 받은 사유이기도 하다.

어째서 성범죄자들에 관대한 판결이 내려지고 있는 것일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김정혜 부연구위원과 시민단체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은 성범죄 재판에 관대한 사법부 관행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법률에 정해진 법정형은 최근 몇 년 사이 개정을 거치며 늘어났지만, 실제로 선고되는 형량은 법정형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관대하게 판단하는 관행들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은 “디지털 성폭력이 성범죄로 다뤄진 일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에는 디지털 성착취물이 하나의 야동처럼 유통되던 시절이 있었고, 그런 문화적 배경 속에서 판사들이 디지털 성폭력이 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판결을 내려온 것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되는 등 n번방 사건 이후로 디지털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막상 n번방 사건이 일어난 텔레그램 등에서 일어난 범죄는 잡을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며 무용론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 부연구위원은 보다 종합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n번방 방지법 등 디지털 성범죄 처벌은 주로 영상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실제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다양한 범죄가 있으며 그것들이 서로 얽히면서 범죄성이 더욱 강화되고, 때론 오프라인에서의 범죄와 연결되는 등 범죄끼리 일종의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범죄를 악화시킨다”라며 디지털 성범죄의 복잡성을 설명했다.

이어 “지금의 디지털 성폭력 대응은 특정한 행위 하나에 대한 처벌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보완되고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접근이 부족하고, 앞으론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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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사법부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김 부연구위원은 “그동안 성폭력 전반에 대해서 성인지적 관점을 이야기해왔다. 디지털 성폭력의 경우 그 문제가 더 심각한데, 디지털 성폭력이 어느 정도로 처벌되야 할 행위인지에 대한 사법부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도 “같은 사건에 노출되더라도 남성과 여성의 경험은 다르다. 사회적으로 남성 신체와 여성 신체에 대한 인식이 다른데 약자의 위치에 놓인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판결을 내려온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연 재판부가 피해를 제대로 이해하고 판결을 내린 것인지 의심스러운 사례들이 존재한다. 피해자들이 직장을 잃거나, 심한 경우 ‘사회적 타살’까지 경험하게 될 수 있는 문제인데도 너무나 가벼운 문제처럼 다뤄왔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시점에서 판결을 내리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은 일반 시민들의 인식 개선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은 “n번방 같은 경우 피해자도 가해자도 10대가 많은 범죄다. 사실상 공교육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공교육에서 성평등이나 성인지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지금이라도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서 성범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전방위적 교육을 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피해자들을 탓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렇듯 이미 ‘몰카’, ‘리벤지 포르노’ 등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던 가운데 발생한 n번방 사건은 그간 성범죄에 관대했던 우리 사회가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성착취물 등이 ‘국산 야동·음란물’ 등으로 불리며 버젓이 유통되는 지금, 성착취물이 엄연한 범죄의 산물임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디지털 성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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