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한관우 인턴기자(가톨릭대학교 철학과·4)
▲투데이신문 한관우 인턴기자(가톨릭대학교 철학과·4)

【투데이신문 한관우 인턴기자】 최근 ‘버닝썬 사건’의 주범 정준영이 “진지하게 반성했다”는 이유로 2심에서 감형됐다.

법원에서 가해자가 ‘진지하게 반성했다’고 판단하는 근거 중 하나가 그가 쓴 반성문인데, 최근에는 법원에 제출할 ‘잘 쓴 반성문’이 인터넷을 통해 거래되기도 하며, 반성문 대필 서비스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반성문이 가해자의 진지한 반성을 이끌어내고 피해자의 상처를 위로하는데 실효가 있는지, 이 같은 ‘진지한 반성’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피해자와의 합의도 감형을 위한 주요 요소 중 하나다. 피해자와 합의는 집행유예를 받아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 때문에 가해자들은 합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거액의 합의금으로 피해자의 입막음을 시도하거나, 끝까지 합의를 거부하면 피해자의 주거지까지 찾아가 합의를 강요하거나 몰래 돈을 입금하고 합의했다고 거짓말하는 일까지 자행되고 있다.

돈만 있으면 감형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그야말로 ‘유전무죄’의 상황이 됐다.

이 밖에도 ‘심신미약 상태라서’, ‘초범이라서’, ‘가해자의 앞날이 창창해서’, ‘서로 사랑해서’ 등 각양각색의 이유로 가해자들의 형량을 감경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도 날로 커져가고 있다.

또한 가해자 처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피해자 보호이지만, 이 점에서도 사법부는 소홀해 왔다.

故 구하라 씨의 전 애인 최종범씨의 폭행 및 불법 촬영 혐의 재판을 맡은 오덕식 판사는 “내용이 중요해 보인다”며 불법 촬영 영상물을 굳이 확인해 피해자는 또다시 성적 수치감을 느껴야만 했다.

영상까지 확인해 가며 숙고한 끝에 내려진 판결은 불법촬영 혐의 ‘무죄’다. 구하라씨가 먼저 사귀자고 했다는 게 이유인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판결이다.

법원의 판결은 해당 사건을 초월해 사회 전체에 ‘이런 범죄는 이 정도 처벌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준다. 그간 가해자 중심적 판결을 일삼아온 사법부는 ‘성범죄를 저질러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 아니었을까.

이렇듯 피해자들은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받았음에도 가해자들의 교화 가능성만을 고려한 판결을 내려온 우리 법원의 판결을 먹고 가해자들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번 n번방 사건은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주범들의 신상이 공개되고 있고, 새로운 법안과 양형 기준이 검토되고 있으며, 경찰은 ‘잘라내기 수사’로 성착취물 원본 삭제에 주력하고 있다. 사건이 전례 없는 공분과 여론의 관심을 받고 있기에 다른 결과가 있으리라 기대 돼지만, 진작 이런 대처를 취했어야 했다는 점에서 씁쓸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제 사법부가 보여줄 차례다. 여론에 등 떠밀려 처벌하기보단 판사들 스스로가 이 사건이 왜 이렇게 큰 공분을 자아냈는지 이해하고 판결을 내릴 수 있길 기대해본다. n번방 가해자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것은 디지털 성범죄를 비롯한 모든 성범죄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경고를 사회에 전달할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올해가 ‘n번방 사건’이 터지고 조두순이 출소하는 해로 기억될 것인지, 더 이상의 성범죄는 안 된다는 단호한 기준을 세운 해로 기억될 것인지는 사법부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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