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미국국적 김범석 의장 대신 쿠팡(주) 동일인 지정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AP/뉴시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AP/뉴시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쿠팡이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미국국적의 외국인이기 때문에 국내법 적용이 어렵다는 이유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9일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71개 기업집단(소속회사 2612개)을 다음달 1일자로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쿠팡과 한국항공우주산업, 현대해상화재보험, 중앙, 반도홀딩스, 대방건설, 엠디엠, 아이에스지주 등 8개 집단을 신규 지정되고 KG가 제외했다.

공정위는 신규 집단의 동일인을 확인 지정하는 동시에 현대차와 효성 2곳의 동일인을 변경했다. 현대차는 정몽구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효성은 조석래 명예회장에서 조현준 회장으로 교체됐다.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은 공정거래법에 따른 공시·신고 의무를 비롯해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등이 적용된다. 해당집단의 동일인은 공정거래법 제출 지정자료의 책임을 지는 동시에 사익편취 규제 등 대기업 경제력 집중 방지 제재의 최종 책임자다. 이에 규제 위반 시 형사 등 법률적 제재 대상이 된다.

쿠팡은 작년 한해동안 3조1000억원에서 5조8000억원으로 자산총액이 크게 증가하면서 올해 공시집단으로 새롭게 지정됐다.

하지만 쿠팡의 동일인은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아닌 쿠팡(주)로 지정됐다. 쿠팡은 미국국적인 김 의장이 미국법인 ‘쿠팡 Inc.’를 통해 한국법인 쿠팡(주)와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다.

김 의장이 사실상 쿠팡을 지배하고 있는 구조이지만 외국인이 국내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지정된 선례가 없어 공정위의 결정이 주목받아왔다.

공정위는 그간의 사례, 현행 제도의 미비점, 계열회사 범위 등을 고려해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현행 규제가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는 만큼 당장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판단해 규제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업집단이 규제를 위반했을 경우 외국인에 대해 형사제재를 내리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뜻이다.

새 동일인으로 지정된 정의선 회장과 조현준 회장은 앞으로 현대차와 효성이 사익 편취행위를 하거나 잘못된 지정 자료를 제출할 경우 법적책임을 지게 되지만 김 의장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김 의장이 외국인 국적을 이유로 동일인 규제에서 벗어나면서 형평성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공시집단으로 지정된 네이버 등 IT기업의 사례와 비교되며 형평성 문제가 지적된바 있다.

네이버의 경우 지난 2017년 창업자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지분 4%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총수 없는 기업집단’ 지정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카카오 또한 창업주인 김범수 의장이 2016년 동일인으로 지정됐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이 규제 회피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성명을 통해 “공정위의 판단으로 인해 향후 사익편취 규제와 형사처벌 등 법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외국 국적을 취득하는 총수들이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며 “국내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는 빌미로 동일인 지정 자체를 흔들어 재벌 규제의 근간을 없애려는 시도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공정위는 이번 결정이 특혜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날 “국내법에 의해 설립된 쿠팡은 동일하게 공정거래법에서 적용되는 모든 의무사항이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동일인에 대해 공시 의무, 본인 회사나 친족 회사가 있으면 사익편취 규제대상에 적용된다는 점이 유일한 차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김범석 개인이 가지고 있는 국내 회사나 친족이 가진 국내회사는 전혀 없어 (동일인으로) 쿠팡을 지정하든 개인 김범석을 지정하든 계열 집단의 범위에 전혀 변화가 없다”며 “사익편취 규제 행위도 지금 시점에서는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공정위가 제도상 미비점을 인정하고 개선방안을 찾기로 하면서 향후 외국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남았다.

공정위는 현재 공정거래법으로는 동일인에 대한 정의나 요건, 관련 범위 등에 명확한 규정이 없어 제도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 동일인 지정제도 전반에 걸친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공정위는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40개 집단(소속회사1742개)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키로 했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수는 지난해(34개)보다 6개 증가했고 소속회사 수는 지난해 1473보다 269개 증가했다. 새롭게 지정된 곳은 셀트리온과 네이버, 넥슨, 넷마블, 호반건설, SM, DB다. 대우건설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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