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 저자 조주희
국내 유일 ‘무라카미 하루키 1호 박사’로 인정
작품 성격, 개인에서 사회·역사로 진화하고 있어
전세계적인 인기 작가 유독 한국 사랑 많이 받아
하루키 노벨상 타는 날까지 계속 연구하고 싶어

책을 읽는다는 건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데카르트)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도 같다”(키케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안중근)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신용호)

책을 통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위인들의 명언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단돈 만원으로도 인생을 바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2019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성인 1년 독서량은 6권 정도밖에 안 된다. 두 달에 겨우 1권 읽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는 책을 펼치기도 전에 독서라는 행위는 고루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책 내용이 궁금하다면 몇 백 장의 책을 읽는 수고스러움 대신 요약된 내용만 찾아서 보고, 듣고 읽으면 되는 세상이다. 남이 정리해 둔 몇 줄의 서평과 몇 개의 영상이면 마치 책 한 권을 다 읽은 듯한 기분까지 든다. 이렇듯 읽는 행위가 생략된 독서, 저자와의 대화를 막아버리는 독서만을 이어간다면 책이 주는 즐거움을 영영 모르게 될지도 모른다.

한쪽에서는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독서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걱정들 하지만 전자책의 인기가 올라가는 걸 보면 이 시대에 애독가들은 다른 형태, 진화한 독서를 즐기고 있음에 분명하다.

좋은 책을 읽다보면 밑줄을 수도 없이 긋고, 멋진 글귀가 있는 페이지 모퉁이는 살짝 접어두기도 한다. 책을 덮은 후에는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는 이러한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해서 신간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저자와의 인터뷰를 찾아보며 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투데이신문>이 새롭게 선보이는 [Today_Pub](투데이펍) 연재는 대중(Public)을 위한, 출판(Publish)된 책에 대한, 펍(Pub)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콘셉트로 책과 사람을 잇는 콘텐츠다. 책을 만든 저자, 편집자, 기획자 등과의 대화부터 책 한 권이 나오고 읽히기까지의 과정과 남긴 것들에 대한 기록을 시작한다.

국내 무라카미 하루키 1호 박사 조주희 교수 ⓒ투데이신문
국내 무라카미 하루키 1호 박사 조주희 교수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이세미 기자】 소설은 창작의 산물이지만 그와 동시에 작가의 삶이 투영된 것이기에 그를 알고 나면 작품을 이해하기가 좀 더 수월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의 작품 너머에 숨겨진 녹녹지 않았던 인생 여정이 작품으로 승화되기까지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와 완고하리만치 투철한 작가로서의 사명감이 느껴질 것이다. -<문학인생 반세기, 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 책머리 中

지난 7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평전이 국내의 한 대학교수에 의해 쓰여 화제가 됐다. 하루키가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워낙 인지도가 높은 작가이긴 하지만 국내 문학계에서는 생존 작가에 대한 연구를 금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대학에서 겸임교수로 재직중인 조주희 교수는 이 책의 저자이자 국내 무라카미 하루키 1호 박사로 불린다. 인터뷰 내내 조 교수는 마치 하루키라는 거대한 숲을 탐험하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작가와 관련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조 교수는 대학원 시절부터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구한 후 현재는 대학에서 하루키 작품과 작가론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을 위한 북 콘서트, 음악 콘서트 등을 통해 하루키를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조주희 교수는 “하루키의 생애를 더 많이 알리고 싶다”라며 “그의 인생을 이해하면 작품도 새롭게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Q. 어쩌다 ‘하루키’에 빠지게 됐나.

원래 석사 때는 일본 고전을 전공했다. 그러다가 고전문학이라는 건 이미 오래된 문학이기 때문에 내가 새롭게 연구할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에 휴식을 가졌고, 그 틈에 하루키 작품을 처음 읽었다. 재밌어서 거의 다 완독했다. 그러면서 ‘이 작가는 왜 인기가 많은 거지’, ‘왜 나오는 책마다 다 번역이 되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하게되니까 자연스럽게 연구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가 고전문학에서 현대문학으로 넘어가도록 한 일종의 계기가 됐다. 하지만 하루키가 생존 작가이다 보니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걸림돌이 많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과거에도 생존 작가 연구는 금지됐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그 인물의 인생관, 작품세계 등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래도 하루키 연구를 놓치기가 아까워서 대학원 교수님께 연구계획서를 제출하고 계속 설득했다. ‘장수 시대에 하루키처럼 인기 있는 작가가 사망할 때까지 기다리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 연구해야 될 때’라면서 말이다. 

다행히 교수님께서 하루키가 해외 작가라는 점과 여러 가지 긍정적인 부분들이 보시고 허락해 주셨고,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 국내 1호 박사가 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생존 작가를 연구한다고 하면 의아해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지금 인기 있는 작가를 두고 동시대 사람들의 평가를 직접 듣거나 연구를 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시기를 놓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분들이 하루키를 포함해 인기있는 생존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분석하고 평가를 하지만 이는 연구와는 차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하루키라는 작가가 왜 이런 작품을 썼는지, 그 배경이 무엇인지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전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 

Q. 요즘 학생들도 하루키에 대해 관심이 많나.

하루키는 요즘 학생들보다 2005년 전후의 학생들에게 꽤 인기 있는 작가였다. 지금은 하루키의 작품 세계가 어려워지기도 했고 요즘 학생들도 작품을 읽기보다 보는 세대들이다 보니 빨리 볼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 대부분 무게감 있는 주제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학생들이 내가 하루키를 연구하는 것을 알고 관련 질문을 하긴 한다. 다만 작품에 대한 얘기보다 외부적으로 보이는 것들에 관심이 더 많다. 하루키 작품 속 주인공이 입은 의상이나 작품 속에 나오는 음악 등 말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뉴시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뉴시스

Q.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많이 집중했던 부분은 어떤 점이었나.

사실 이번 하루키 평전을 2019년에 출판하려고 했다. 하루키가 데뷔한지 40주년이 되던 해였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하루키라는 작가가 처음부터 성공 대로를 밟은 작가라고 많이 알려졌지만, 얼마나 힘들게 그 자리에 올랐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자신과 치열하게 싸웠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보통 희로애락을 즐기고 싶어 하지 않나. 그러나 하루키는 작가가 된 이후 자기관리를 지금까지 꾸준히 해 온 사람이다. 글을 쓰려면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하루키가 작가가 되기 전 카페를 운영할 때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우던 사람이었단 사실을 알고 있나. 그러나 작가가 된 후 바로 금연에 성공했다. 또 저녁 9시에 잠들어서 새벽 4시에 기상을 하고, 꾸준히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며 건강관리를 철저히 했다. 이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하루키라는 사람은 의지가 굉장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하루키가 작품성이 대단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 작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기 시야에 넣어버리고 작품에 녹인다. 하루키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작품이 작가의 개인적인 욕망으로부터 나온 게 아니라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세계를 보여주려고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내용들을 중점으로 책 속에 담으려 했다.

Q. 가장 고민됐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하루키에 대해 어디까지 밝힐까’라는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 나중에라도 이 책을 하루키가 보거나 하루키의 소속사에서 볼 경우를 생각했을 때 내가 어디까지 공개하고,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했다.

그래도 내가 수집한 자료들과 정보들은 거의 다 넣었다. 순전히 하루키의 삶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다. 대신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한 사람의 인생과 작품에 관해 연구하고, 그것을 밝히는 과정은 말 그대로 한 줄 한 줄 고통을 수반하는 작업이었다. 논문 쓸 때 보다 더 힘들었으니 말이다(웃음)

반면 이 작업을 통해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게 됐다. 그전에도 이미 많이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정리가 돼 전문가적 입지가 탄탄해졌다고 느낀다. 하루키에 대한 자료와 연구를 이 정도로 한 사람은 많지가 않으니까 하루키가 노벨상을 타는 날까지 욕심내서 연구하고 싶다.

조주희 교수는 <문학인생 반세기, 하루키의 삶과 작품세계>를 펴내기 위해 지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 동안 하루키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무라카미 하루키 데뷔 40주년인 2019년에 책이 출간됐어야 하지만 한·일 감정 악화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2021년이 돼서야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Q. 가장 좋아하는 하루키 작품은.

하루키 작품 중 제일 처음으로 읽었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좋아한다. 하루키의 초기 작품으로, 작품 자체의 주제가 굉장히 가볍고 가독성도 좋아서 한 두 시간이면 읽는다.

국내의 1970년대~80년대 대표적인 작가들은 황석영, 이문열, 박완서 등의 작가들이 있다. 이 작가들의 작품 자체는 전체적으로 무겁고 철학적인 주제들이었다. 반면 하루키 작품은 ‘넌 이렇게 해야 돼’, ‘이 작품의 교훈은 이거야’라는 등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던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과거 나의 학창 시절 우리나라 교육 목표는 ‘원대한 꿈을 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키 작품 속 인물들이 신선하고 새로웠다. 혹자는 하루키 작품을 보면 주인공이 비전도, 계획도 없이 살아간다며 비판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원대한 비전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퇴근 후 집에서 생맥주 한 잔을 마시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때론 친구를 만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나. 하루키 작품엔 이런 주인공들이 나온다.

그렇다고 하루키 소설이 생각을 안 하게 하는 작품도 아니다. 대표적으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경우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 ‘네 무의식의 소리를 들어라’, ‘네 내면의 소리를 들어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Q. 하루키 작품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하루키의 장점을 알려줄 때 ‘CSS(Cool·Simple·Sensitive)’ 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쿨하고, 심플하며, 센서티브(감각적인) 하다. 초기 작품들은 이 CSS가 통했던 것이라고 본다.

우선 하루키 작품 속 주인공들의 삶의 태도는 쿨하다. 누가 사망해도 거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보통 생로병사를 말할 때 생(生)은 축복이고 기쁨인데 사(死)가 되면 슬프고 애도하게 되지 않나. 그러나 하루키 작품에는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나오지만 슬픔에 젖어 괴로워하는 사람은 없다.

학생들은 이런 태도에 기겁을 하거나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주인공이 애인과 헤어져도 이별에 연연해하지 않고, 애인이 죽어도 좀처럼 슬픈 기색이 없으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슬픔을 저마다 달리 표현하지 않나.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 젖어 괴로워하는 이도 있는가 하면, 그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하루키는 작품 속 주인공 애인의 죽음을 단순히 한 줄로 끝냈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이 슬퍼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그 행간에 쓰여있지 않은 감정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대로 자세하게 쓰여 있지 않아도 그 언저리 어딘가에는 생로병사에 대한 감정이 있다. 하루키 소설은 그것을 주제로 삼고 진행이 된다.

또 단순한, 심플한 라이프를 보여준다. 하루키 작품 속에서 표현되는 ‘성(性)’은 심플하다. 연인들이 성에 매여 있지 않고 편하게 표현이 된다. 외설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반면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라는 의견도 나온다. 마지막으로 센서티브, 즉 감각적이다. 지난 1970~80년대 소설을 보면 주인공의 의상과 음식, 음악에 대한 조예가 상당히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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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에도 하루키 작품은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어떤 이유 때문인가.

하루키 소설 같은 경우는 매년 노벨상 후보까지 올라갈 정도로 유명하지만 내용이 너무 통속적이고 외설적이라는 게 문제다. 

또 ‘당위성’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는다. 소설 줄거리 속 우연이 너무 많고, 등장인물이 갑자기 증발되는가 하면 주인공이 부인의 목소리도 못 알아듣는 등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다.

마치 작가로서 책을 포기한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등장인물은 곧 자기 자식과도 다름없지 않나.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등장인물이 사라졌다면 왜 사라졌는지를 설명해 줘야 하는데 그런 점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키가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고 말하고, 하루키 본인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사실 나는 하루키를 비판하는 논문도 많이 썼다. 그러다가 타이완에서 하루키 학회에 참여한 후 생각이 좀 트였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키에 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 자리에서 내가 하루키 소설에 관해 비판을 하기도 했다.

하루키 작품이 아주 외설적이고, 연애에 대한 내용도 남녀간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시각은 나와 많이 달랐다. 세상에는 하루키 소설 속의 등장인물과도 같은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하더라. 나는 동등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관계지만, 그것을 동등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라니….여러모로 시각이 넓어졌다. 하루키에 대한 평가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역시 독자의 몫이겠지만.

Q. 몇 년에 걸쳐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거론되고 있다. 가능성이 있어 보이나.

일단 노벨문학상을 받을 시기는 놓쳤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몇 번의 기회는 있었는데 안타깝다. 지난 2016년이 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는데 아쉽다. 아무래도 소설의 내용이 통속적이라는 게 걸림돌 같다. 당시 노벨상 후보작으로 거론된 <해변의 카프카>는 여러 가지 주제가 담겨 있어서 나쁘지 않았지만 진보적인 사상과 무게 있는 주제를 좋아하는 노벨문학상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또 주인공이 사회성이 결여된 것도 문제다. 작가는 결국 사회를 연구하는데 하루키 소설에는 자폐적인 인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전 세계적인 문학을 아우르기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성적인 표현들도 너무 많고.

<1Q84>도 역사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뜬금없이 성적인 표현들이 나온다.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은 있지만 개연성 역시 부족하다. 하루키는 분명 노련한 작가는 아니다. 다만 사상적으로 깊이는 없어도 전 세계를 울릴 수 있다는 측면에선 높은 점수를 받지 않을까 싶다.

노벨문학상을 타게 된다면 <태엽 감는 새 연대기>가 제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노벨상 위원회가 ‘하루키 작품은 통속적이다’라는 평가를 넘어서 세계적인 역사 문제를 건드리고, 잊힌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작가로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

하루키를 굉장히 좋아하면서도 서슴없는 비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조주희 교수는 ‘인간 하루키’에 대해 굉장히 매력적인 작가라고 평가했다. 또 작가의 자기관리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 교수는 하루키를 실물로 처음 봤던 북 콘서트 때를 회상하며 “하루키를 작품으로만 만났을 때는 이 사람이 내성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핑크색 바지를 입고 굉장히 유머러스하게 말하더라”라며 “특히 70대 노인답지 않은 젊은 목소리가 참 인상 깊었다”라고 말했다.

조주희 교수 ⓒ투데이신문
조주희 교수 ⓒ투데이신문

Q. 하루키와의 만남이 아직 성사되지 않은 점이 굉장히 아쉽다. 언제쯤 가능하겠나.

하루키가 양심이 있으면 만나주면 좋겠는데(웃음)

과거에도 여러 차례 하루키 내한을 추진한 적이 있지만 끝까지 안 왔다. 한국에서는 너무 유명해져서 못 오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볼 뿐이다. 우리나라에 하루키가 왔다면 공항까지 마중 나갈 사람들이 많을 텐데 아마 그런 게 싫은 걸까 생각해 본다.

또 역사문제도 얽혀있어서 꺼리는 듯하다. 하루키는 일본이 한국과 중국에 계속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목소리를 높여서 얘기하고 있지만 굳이 우리나라까지 와서 ‘맞아요 일본이 잘못했어요’라고 말하기에도 어려울 것이다.

Q. 하루키를 만나게 된다면 가장 하고 싶은 첫 번째 질문이 무엇인가.

일단 작품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다. 작품을 쓰게 된 계기,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 위주로 물어보고 싶다. 예를 들어 어떻게 <기사단장 죽이기>와 같은 작품을 쓰게 됐는지 같은 질문 말이다.

주인공을 설정할 때 어떤 식으로 설정했는지 작품 속 주인공들이 항상 30대인데 어떻게 수 십년 동안 젊은 감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자식은 왜 낳지 않았는지, 앞으로의 창작활동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 건지 등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Q. 언젠가 하루키가 교수님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그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싶나.

‘허를 찔렸다’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작가 연구를 하게 되면 보통 그 작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그 작가와 작품을 옹호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된다. 나도 하루키라는 작가를 좋아하지만, 주제에 대해서는 가감 없이 비판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루키에 대한 내 연구논문은 거의 비판적이다. 하루키의 사상이 묻어난 작품을 볼 때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다. 작품 개연성이나 당위성 등 여러모로 납득되지 않는 점 등도 마찬가지다.

하루키가 만약 내 논문을 본다면 ‘황당하다’라는 평가를 할지도 모른다. 일본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비판을 안 하기 때문에 더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자신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준 것 아닌가. 내가 하루키라면 해외에서 내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준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좋아서 만나보고 싶을 것 같다. 도대체 누구길래 나한테 이렇게 꽂혀서 연구를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

Q. 국내에서의 하루키 인기, 언제까지일 것 같나.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하루키 소설을 다 번역한 나라가 없다. 우리나라는 하루키의 유명하지 않은 에세이까지 다 번역된다.

또 출판사의 영향도 크다고 본다. 어쨌든 하루키 작품이 출간되면 어느 서점에 가든지 메인에 있지 않나. 이제는 마치 하루키 소설을 안 읽으면 지적 소설을 놓치는 것처럼 분위기가 형성돼 있기도 하다. 한때 <태엽 감는 새 연대기>는 서울대 도서관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루키의 정서 자체는 일본 사람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과도 코드가 맞는 부분이 있고, 역사 문제도 다루기 때문에 인식있는 작가로 받아들여졌다. 하루키 인기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의 작품을 찾는 독자들은 꾸준히 있을 것이라고 본다.

조 교수가 꼽은 하루키 작품 한 줄

완벽한 문장이란 없다. 완벽한 절망이 없는 것처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中

죽음이란 생애 대극에 있는게 아니라 일부로서 존재한다 <노르웨이의 숲> 中

Q. 교수님에게 하루키는 어떤 존재인가. 

처음에는 재밌고 좋아서 읽었고 그다음에는 내가 살아온 시대에 대한 것들, 고민들과 가깝게 닿아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하루키 작품을 읽다 보면 작가가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삶과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라고 친근하고 쉽게 말해주는 작가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 70대 작가이지만 지금의 20대들이 그의 작품을 안 보는 건 아니다. 신작이 나오면 꾸준히 읽지 않나. 우리나라에 영향력 있는 작가인 건 분명하다. 하루키가 작품을 쓰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연구할 게 없다. 그래서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써주길 바랄 뿐이다.

코로나19만 아니면 와세다 대학에 지어진 하루키 도서관 개장식에 가는 게 개인적인 소망이다. 더 나아가 한국으로도 초대하고 싶다. 하루키의 목소리로 그의 작품을 낭독해 주거나 음악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등 국내 독자들을 위한 팬 서비스를 해줬으면 좋겠다. 하루키가 내한을 한다면 나는 통역이든 진행이든 대담이든 그와 나란히 앉아서 어떤 것이라도 해보고 싶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 책은 하루키라는 사람의 70세까지의 인생 여정을 담아냈다.

하루키는 자신의 작품을 많이 쓰기도 했지만 동시에 번역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가 이토록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비하인드 등을 모두 책에 담았다. 그를 그저 성공한 대중작가로만 보지 말고 한 인간로서의 하루키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다.

작가를 알아야 작품을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책의 앞부분에는 하루키의 생애를, 2부에는 대표 작품들의 줄거리를 담았다. 내 연구를 덧붙이지 않고 그저 하루키와 그의 작품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책을 통해 작가에 대한 흥미가 생긴다면 책을 사서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린다. 마지막으로 하루키라는 인물이 여러분의 인생에도 많은 영감을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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