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설치 두고 학생-학교 갈등
비대위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필요해”
학교 본부 “아직은 시기 상조…사회적 합의 있어야”
세계로 퍼지는 ‘모두의 화장실’, 한국선 어찌 될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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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성공회대학교가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이른바 ‘모두의 화장실’ 설립을 두고 학교 본부와 총학생회가 다시 한번 맞붙었다.

지난 2017년 당시 성공회대학교 총학생회 ‘바다’는 출마 당시 성별 구분 없이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공약을 내세웠다. 이는 학내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누구나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도라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남녀공용화장실과 다를 바 없고 불법촬영 등 범죄가 우려된다는 부정적 시각도 존재했다.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바다는 당선 이후 성 중립 화장실에서 더 나아가 나이·성 정체성·성별·장애유무 등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차별이나 배제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로 목표를 확대했다. 장애인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 키 작은 사람도 사용할 수 있는 높낮이가 다른 세면대 등 모두를 포용하는 시설이 갖춰진 화장실을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건물인 새천년관 1층에 설치하고자 했다. 

바다는 TF를 구성해 학교 본부와 지속적인 논의를 거쳐 계획을 구체화했다. 하지만 TF 구성원들은 이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비난과 혐오에 시달렸고 결국 모두의 화장실 설립은 무산됐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지금, 성공회대는 다시 한번 모두의 화장실 설립을 두고 뜨거운 논쟁을 펼치고 있다. 지난 5월 4일 출범한 제36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활동이 개시된 이후 토론회와 인터뷰, 화장실 답사 등을 통해 학내 구성원들에게 모두의 화장실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고 같은 달 17일 성공회대 학생 자치 기구 중앙운영위원회는 모두의 화장실 설치 안건을 가결했고, 24일 임시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는 예산안 심의가 통과됐다.

이를 토대로 비대위는 지난 9월 14일 열린 학내 각 부처 및 학생사회 대표자들이 모여 당면한 인권현안을 논의하는 회의기구 ‘인권개선협의회’(이하 인개협)에서 학교 본부에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강력히 촉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날 인개협에는 이렇다 할 결정권이 없는 관계자만 참석했다. 또 이후 24일 열린 인개협에도 총장, 부총장과 같은 주요 결정권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학교 본부는 인개협을 통해 모두의 화장실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민감한 사안으로, 현재로서는 시기상조라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상 비대위의 요구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비대위는 모두의 화장실은 학내 구성원이 필요한 화장실을 만드는 간단하고 당연한 과제이며, 지금까지 없었던 소수자를 위한 화장실을 설치하는 데 투표나 사회적 합의는 필요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어느 때보다 큰 요즘, 특히나 자칭 인권과 평화의 대학에서 소수자를 차별하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포용적인 교회를 자처해 온 성공회교회와 재단이 소외된 구성원들의 요구에 침묵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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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제36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비대위는 28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앞 인도상에서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망설이는 성공회대와 재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비대위는 이날 “화장실은 소수자에겐 차별, 혐오를 온몸으로 느끼는 공간으로 기존의 화장실은 성별이 구분돼 있고 비장애인, 성인 중심으로 구성됐다. 사회는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배제돼야 했다”며 “과거의 흑인이 그랬듯, 과거의 여성이 그랬듯, 여전히 화장실을 갈 수 없어 사회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있다. 화장실을 가지 못하면 사회생활, 문화생활, 일터에서 모두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2017년과 2018년에도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혐오와 학교의 외면에 결국 이행하지 못한 역사가 있다. 3년이 지난 2021년,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다시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하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며 “학교 본부는 시기상조라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오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화장실을 가는데 사회적 합의, 설득, 타인의 동의가 필요 없지만, 누군가는 그것들이 있어야만 화장실을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명백한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시기상조가 아니라 너무 늦었다. 4개월의 설득과정이 있었지만 학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강력한 액션을 보여 학교가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요구를 외칠 것”이라며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는 타이틀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성공회대를 규탄하며 모두의 화장실 직접행동을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박한희 변호사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 누구도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장애, 신체조건 등에 관계없이 화장실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원칙을 지키고자 고안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인간의 성별을 두 가지로 획일적으로 나누고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이 사회에 맞서 화장실이 인권을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한 기획이다.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다원성을 익히는 대학이야말로 이러한 모두의 화장실이 반드시 필요한 곳이다”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향후 ‘모두의 화장실 설치 직접행동’ 출범을 선포하고, 학내외 목소리를 한데 모아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성사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비대위 문봄 인권국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기자회견 이후에 학교 본부로부터 전달된 내용은 아직까지 없다”며“우리는 (모두의 화장실 설치를 위해) 현재 매일 아침마다 본부 앞에서 1인 시위를, 점심시간에는 1인 발언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활동들을 앞으로도 지속할 예정이다. 더불어 내일부터는 일부 대면개강을 시행되는데, 학우들을 대상으로 부스처럼 참여 가능한 사업을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모두의 화장실이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사실 이미 여러 국가에서는 이미 정착·확산되고 있다.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일본에서는 배리어프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장애의 유무나 장애의 종류에 상관없이 어디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데 이를 성별로 확장했다. 성별도 누군가에겐 배리어라고 보는 것”이라며 “장애, 성별, 나이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모든 화장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배리어프리의 개념을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이나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PEOPLE)라는 뜻의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개념으로 많이 접근하는데, 화장실에도 많이 적용되고 있다” 며 “미국의 대학들은 접근성이 가장 좋은 건물 1층마다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하는 문화가 퍼져있다. 유럽에서도 공공시설이나 이 밖에 일반 상가에서도 모두의 화장실이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모두의 화장실은 이제 세계적인 추세라고도 볼 수 있다. 소수자 인권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 성공회대학이 모두의 화장실 보편화에 발판이 돼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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