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취임 41일 만에 세월호 참사···황망했다
유가족과 함께 부대끼며 눈물···진정성 통해
어려운 문제나 애경사 등 여전히 관계 유지
도민들의 경남도지사 출마 요청 거절 못 해
‘경남발전 315비전’, 500만 경남시대 열 것

[윤철순의 낭중지추-囊中之錐]는 풀이 그대로 ‘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면 삐져나올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자하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주머니 속 송곳은 반드시 주머니를 뚫고 나옵니다. ‘송곳’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투데이신문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투데이신문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전남 진도 인근 해상에서 승객 476명을 태운 7천 톤급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대한민국의 안전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컨트롤타워 부재로 초기대응에 실패한 정부는 만 하루가 지나서야 사고대책본부를 꾸렸지만, 골든타임은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취임 41일 만에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을 맡게 된 그는 전 국민이 지켜보던 진도 팽목항에서 “너 때문에 우리 애가 죽었다”는 실종자 가족들의 절규에 고개를 떨구며 그들의 불신과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폭풍 같은 분노는 멱살잡이와 물세례로 이어졌고, 감금 아닌 감금엔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다. 참모들이 “이러다 봉변당하니까 좀 피해 있으라”고 권했지만, 그는 “(내가) 피하면 가족들의 분노가 갈 데가 없다. 욕하면 욕하는 대로 멱살 잡히면 잡히는 대로 사고를 수습하겠다”며 실종자 수습작업이 종료되는 날까지 팽목항을 지켰다.

면전에서 ‘장관자리에서 쫓아내라’는 대통령을 향한 유가족들의 격앙된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며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울었다. 아버지의 초췌한 모습을 TV로 보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딸의 소식을 접하고도 현장을 지켰고, 아내가 옷가지를 들고 진도로 왔을 때도 만나지 않고 직원을 보내 짐을 받았다.

그의 진정성을 느낀 유가족들은 사고 두 달 이후 있었던 개각에서 그의 장관직 유임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들은 “이 장관은 끝까지 팽목항에 남아 우리 얘기를 들어줬다”고 했다. 유임 후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 관련 회의에 출석했던 그는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생존하신 분들과 피해자 가족들의 몸과 마음이 조속히 쾌유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발언하다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동네북’ 신세에서 유가족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던 건 ‘공감’이었다. 공감은 ‘동정’과 다르다. 상대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감정이입이 가능해야 생기는 현상이다. 진정성은 공감할 수 없으면 동의 될 수 없는 감정이다. 한 자원봉사자는 당시 “항의와 분노를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곁을 떠나지 않으니까 가족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사고 한 달여가 지났을 저녁 무렵 실종자 가족들을 상대로 수색 현황 브리핑을 했을 땐 한 실종자 가족이 “장관님이 바지선에 가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번에 장관님이 바지선에 갔다 오니 시신이 발견됐다. 또 가면 이번에도 시신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이튿날 실종자 가족 20여명과 사고 해역 바지선을 찾았다.

그의 진정성에 진보진영 인사들도 반응했다.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는 SNS에 “이런 사람이라면 (장관) 유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정치적 입장 차이는 있지만, 그의 낮은 자세와 묵묵한 모습은 배우고 싶다”고 평가했다. 표창원 전 교수도 “사고 방지 못한 책임과 초기 대응 잘못은 씻을 수 없지만 끝까지 팽목항에 남아 실종자 가족과 함께한 노력에는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투데이신문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투데이신문

◇ 지금도 유가족들과 유대관계 잇고 있어

‘세월호’를 빼고는 논할 수 없는 사람. 바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장관이다. 언론은 그에게 ‘팽목항 지킴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물론, 당시 ‘수염 팔아 정치한다’는 등의 비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유대관계를 잇고 있다. 어려운 문제를 호소해오는 가족이 있으면 해결책을 마련해주고 결혼하는 가족이 있으면 축하해주는 등 애경사를 챙기기도 한다.

그는 해수부장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5선 고지에 오르며 국회부의장까지 역임했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선 공천에서 배제되는 불운을 겪었다. 당 공천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이의를 제기하며 무소속 출마도 고려했지만, 결국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겠다며 경남지역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아 20대 총선을 지휘했다.

지난 총선을 끝으로 정계를 떠날 것 같았던 그가 “경남도민의 개인소득을 전국 3위로 끌어올리고, 인구 500만 경남시대를 열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경남지사에 출마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돌아보면 지칠 법도 할 텐데, 넘치는 열정이 예사롭지 않다.

현재 당내 국책자문위원장과 국민의힘 외곽조직인 ‘자유와공정’ 포럼 공동대표도 맡아 대선을 측면 지원하고 있는 그는 지난 2000년 경남 창원(을)에서 16대 총선에 출마하며 국회에 입성했다. “6선 (의원이) 되면 국회의장을 해보고 싶었다”는 그는 “총선 때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아 경남 전역을 돌아보니 (경남)지사를 맡아달라는 도민들의 요구가 빗발쳤다”며 의욕을 드러냈다.

해수부장관이 아니었다면 그는 어쩌면 그의 ‘꿈’처럼 지금쯤 국회의장직을 수행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6일 이 전 장관을 서울 여의도 투데이신문사에서 만났다.

- 내년이면 벌써 8주기입니다. 요즘도 가끔 팽목항을 찾으시는지요.

“연말이나 매년 사고 주기 즈음해서 조용히 한 번씩 다녀옵니다. 내려가면 희생자 분향소를 꼭 들러서 미수습자 가족들도 만나고요.”

그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팽목항’이라는 단어만 던졌을 뿐인데. 숙연해지는 그의 모습에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그의 뇌리 속 의식의 일단이 보였다. ‘공감능력’에서 비롯되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 장관 취임 41일 만에 참사가 발생했는데, 처음 소식 접하고 어떠셨나요?

“그야말로 황망했죠. 그날 광화문정부청사에서 아침 8시부터 경제장관회의가 있었어요. 회의 마치고 나왔는데 세종시에 있는 해수부 장관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렇게 사고를 처음 인지하게 됐던 겁니다.”

- 곧바로 진도 현장으로 가셨나요?

“아닙니다. 처음엔 사고 상황이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됐어요. 그래서 일단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곧바로 인천에 있는 해양경찰청본부 상황실로 갔죠. 거기서 현장을 연결해 봤더니 상황이 너무 악화돼 있는 겁니다. 해서 즉시 김포공항으로 가서 해경 비행기를 타고 바로 사고현장으로 달려갔지요. 그날 이후 수습종료 때까지 현장에 있게 된 겁니다.”

- 업무파악조차도 부족한 시간이었을 텐데 혼란이 컸겠어요.

“그랬죠. 그러나 국정의 일부분을 책임져야하는 각료로서 ‘죄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책임지는 차원에서 물러나는 게 맞지만, 사고 수습이 먼저였기 때문에 범정부수습본부장 역할을 맡아 마지막까지 수습하고 사임했습니다.”

- 간혹 ‘억울하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현장에서 유가족들을 마주하면 그런 생각이 들 수가 없어요. 멱살을 잡혔을 때는 ‘유족들의 분노는 당연하다’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고요. 나였어도 그랬을 테니까. 해수부 등 현장의 공무원들에게도 ‘유가족 분들이 어떤 요구를 하든 들어줄 수 있는 건 뭐든 들어줘야한다’ 얘기했고요.”

지난 2014년 7월 1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인사말 도중 세월호 참사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에 대해 언급하다 슬픔에 잠겨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4년 7월 1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인사말 도중 세월호 참사 유가족 및 실종자 가족들에 대해 언급하다 슬픔에 잠겨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 ‘운명’ 같은 생각도 들 것 같고...

“그런 생각도 들긴 하죠...”

할 말은 많아 보였지만 아끼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 전 장관의 입각은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기본적으로 그는 법조인이다. 지역구가 바닷가(경남 창원마산합포구)라는 연관성 말고는 해양수산 분야에 대한 전문성도 사실 없다. 당시 그는 법무장관 하마평에도 오르내렸었다. ‘해수부장관직과 관련 없는 인사가 아니냐’는 지적은 그래서 나왔다.

전임 장관의 경질은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임식 5일 전에 해임된 전임 장관은 재임 10개월 동안 끊임없는 구설에 시달렸다. 자질 논란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그해 1월 말 터진 여수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 당시의 늑장대응과 실언은 결정타가 됐다. ‘전문성’에 근거한 발탁이었지만, 각종 설화로 ‘박근혜 정부 최초의 해임 각료’라는 불명예를 안고 퇴진했다.

이런 배경 때문이었는지 장관 내정은 생각보다 빨랐다. 전임 장관 이임식 당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보건복지부장관 후임은 내정까지 한 달가량 걸렸다. 감사원장은 두 달이나 끌었었다. 이에 비하면 전광석화였다. 이는 당시 연이은 인사 실책 공격과 당-청 조율의 필요성을 느낀 박근혜 대통령이 ‘친박계’로 분류되던 그를 적임자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그렇게 ‘떼밀리듯’ 장관직을 수행한지 41일 만에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정계에선 간발의 차로 끌려내려 온 전임 장관을 두고 “운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럭키우먼’인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다. 이주영 장관은 그렇게 정치사에 남을 ‘비운의 장관’이 됐다.

◇ “주례는 못서도 축하해주고 조문도 가고..”

- 유가족들과 함께 부대끼다보면 ‘가족’ 같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겠어요.

“물론입니다. 사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보면 누구든 이웃 같고 가족 친척 같은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죠. 밤새워 같이 얘기하고 설득하고 이해하고 그러면서 신뢰도 쌓이고. 대화 중에 유가족들이 ‘누워 계시라’고 말하는 그런 것처럼 진정성을 서로 확인하면 그런 관계가 되는 거죠.”

- ‘정’도 꽤 들었을 테고요.

“네. 개인적 인연도 이어가고 있고요. 자주 (팽목항에) 가고 했는데, 지금은 공식추모행사 등에 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니라서 혼자 조용히 다녀오고 같이 오래계셨던 유가족들과 인연도 이어가고 그렇습니다.”

- 주례도 서보셨을 것 같아요. 당시 학생들도 성인이 됐으니...

“선거법도 있고 해서 주례까진 못하고요. 허허. 가족 중에 어려운 문제가 생겨 물어오면 해결책을 마련해준다든지, 결혼하는 가족이 있으면 축하하러가고 그래요. 조문할 일 생기면 그럴 때 가서 만나고 그러죠.”

- 장관 사임 후에도 열정적인 의정활동을 하셨는데, ‘보통사람이라면 지쳤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실 5선 의원 되고 국회부의장을 하면서 들었던 건, ‘6선이 가능하다면 국회의장은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그런데 지난 총선 때 공천이 안 된 거예요. 무소속 출마도 생각은 했었지만, 선당후사 차원에서 경남도당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아 경남지역 전체를 돌며 총선을 지원했습니다.”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투데이신문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투데이신문

◇ 홍준표 의원 이름, 판표에서 준표로 내가 바꾸라 해

- 법관 생활을 오래 하셨는데, 정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판사를 15년 하다 그만두고 변호사 활동을 했었는데, 1년쯤 지난 1995년에 총선을 앞두고 당시 통합민주당 이기택 대표에게 영입됐습니다. 이듬해 총선 때 창원에서 처음 출마해 낙선했고요.”

- 통합민주당이요? ‘꼬마민주당’ 말씀인가요?

“예. 당시는 소위 ‘3김 시대’라 해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거물의 지역할거가 극심할 때였는데, 이런 망국적인 지역정치를 타파하자고 외쳤던 게 통합민주당이었어요. 제정구, 이철, 노무현, 박계동, 김홍신, 원혜영 같은 개혁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던 정당이었죠. 홍준표 당시 변호사와 의논 끝에 함께 입당하기로 했는데, ‘먼저 가 있으면 사흘 뒤에 오겠다’ 그러더니 신한국당으로 가버리더라고요. 하하. 나중엔 다시 만났죠. 합당하면서.”

- 홍 의원님과 인연이 깊네요.

“그렇습니다. 1984년에 청주지방법원 형사단독재판장으로 있을 때 홍 의원이 청주지검 초임 공판검사로 있었어요. 그때 인연 이후 정치를 시작하면서 당이 (1997년 신한국당과) 합당(한나라당)된 후 2000년 국회에서 조우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당시 이주영 판사는 홍판표 검사의 이름을 지금의 홍준표로 바꿔준 사람이다. ‘성명학’을 공부 중이었던 그는 “홍검사 이름자 가운데 한자가 ‘판단할 판(判)’인데, 칼도변이 들어간다. 이름 한자에 칼이 들어가는 게 좋지 않고 발음도 어려워 ‘판’을 ‘준’으로 바꾸라고 권했다”고 술회했다.

- 과거 판사시절 맡았던 사건 판결로 인해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었죠?

“맞습니다. 1992년에 있었던 의붓아버지 살인사건인데요. 당시 지방검찰청 소속 공무원이었던 가해자가 의붓딸을 여섯 살 때부터 성폭행을 일삼아 그 딸과 남자친구가 의부(義父)를 살해했어요. 서울고등법원에 있을 때인데, 사건을 맡아 집행유예로 석방시켰었죠. 당시 사회적 파장이 컸는데, 이 사건이 계기가 돼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된 겁니다.”

‘김보은·김진관 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1992년 충북 충주에서 의부에게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하던 여대생 김보은이 남자친구 김진관과 함께 의붓아버지 김영오를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근친 성폭행 문제가 공개적으로 제기되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1993년 제정된 ‘성폭력특별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투데이신문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 ⓒ투데이신문

◇ 총선 지원유세 때 도민들, ‘경남지사 맡아달라’ 이구동성

- 경남지사 출마생각은 언제부터 하셨는지요.

“총선 지원 다니면서 많은 도민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현장을 다녀보니 경남지사는 구속됐고 현안은 산적해 있으니, ‘경남지사를 맡아달라’는 얘길 많이 하더라고요. 지역정가도 그렇고. 정말 많은 도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이었어요. 경남부지사 경험도 있고 국회의원도 다섯 번씩이나 하고 그렇다면서. 그래서 도전하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 지사 도전을 위한 본인만의 ‘비전’은 뭔가요?

“‘경남발전 3·1·5비전’입니다. 경남 발전을 위해서는 비전이 있어야하고, 그 비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어야 되거든요. 아시다시피 경남은 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인 지역이잖아요. ‘3·15마산의거’를 차용한 건데, 3은 경남의 소득수준을 3위 안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비전입니다. 지금은 전국 17개 광역단체 중 12위거든요. 1은 일자리창출을 위해 100억불 이상의 투자유치를 하겠다는 의미이고, 5는 330만 경남 인구를 50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입니다.”

3·15마산의거는 1960년 3월 15일 경남 마산에서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해 일어난 민중시위다. ‘의롭게 거사 했다’는 뜻에서 3·15 의거라고도 부른다. 이 시위는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됐다.

-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일단 해양관광도시를 위해 관광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겁니다. 거제부터 통영, 남해를 아우르는 바다 위 17개 섬들을 전부 다리로 연결하면 160km 한려해상 400리길이 열립니다. 그러면 이게 세계 최고의 명품해상관광도로가 되거든요. 여기에 세계 최고 650미터 급 해양관광타워를 세우고, 그 위에 공연무대를 설치해 지상 최대의 쇼를 올리면 엄청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 그것만으로 ‘3·1·5비전’ 실현이 가능한가요?

“이외에도 많은 구상이 있죠. 스위스 융프라우철도처럼 지리산에 산악열차를 건설한다거나, 탄환열차(시속 1280km)로 불리는 하이퍼루프백트레인(진공튜브 열차) 고속철도를 한일해저터널에 적용하는 사업 구상도 있습니다. 이게 성공하면 장기적으로 태평양 아래로 미국까지 연결하는 사업도 가능하죠. 또 100만평 스마트팜 사업 등을 통해 경남을 남부지역 산업의 메카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를 지사로서 추진하겠다는 겁니다.”

- 그걸 왜 꼭 ‘내가’ 해야만 하는 건가요.

“침체돼 있는 경남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꿈과 비전을 강력하게 추진하려면 힘 있는 지사가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정치적 경험과 경륜, 지식 등으로 무장돼 있다고 자부합니다. 요즘은 행정만 잘한다고 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 건 부지사 등에게 과감하게 위임하고 지사는 투자유치 등을 통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대형 사업을 기획하고 그래야 합니다.”

- 당장의 경남 현안은 뭐라고 보시나요.

“‘항공우주’ 같은 기존의 지역산업들은 그대로 육성시켜가야 하는데, 경남 역점사업인 우주항공 산업을 인천공항공사가 뺏어가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항공기 MRO(Maintenance, Repair, Overhaul), 즉 항공정비 전문 특화사업은 법률적으로 경남 사천으로 지정돼 있는데도 말이죠. 이걸 인천이 가져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현안이라면 현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항공기 MRO는 항공기의 지속적인 감항성 유지를 위해, 정비프로그램에 따라 정비, 수리, 분해, 조립하는 제반 정비사업이다. 지난 2017년 경남 사천시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국내 최초 정부지원 항공MRO 사업자로 선정됐다. 1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관련 산업단지는 8월 말 기준 6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2023년 준공 예정이다.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이 지난 9월 경남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남의힘 정책포럼’출범식에서 초청강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주영 전 국회부의장이 지난 9월 경남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남의힘 정책포럼’출범식에서 초청강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또 다른 현안이 있다면요.

“진해신항 건설이 지금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 중에 있어요. 이 사업도 21개 컨테이너 선석 규모로 진행되는 대형 항만프로젝트입니다. 이것도 부산항만공사가 부산신항과 묶어서 운영하겠다 그러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 왜죠?

“미국 LA 남부에 ‘산페드로항’이 있어요. 이게 본래 있던 항이고, 바로 옆에 신설된 게 롱비치항입니다. 여기도 LA항을 운영하는 항만회사가 같이 운영하려고 했는데, 반대에 부딪혀 별도 운영사가 설립됐어요. 이게 경쟁체제가 되면서 성공한 케이스거든요. 마찬가지로 진해신항 역시 경남항만공사를 따로 세워 운영해야 합니다. 상호 경쟁체제를 통해 상생 발전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면 시너지효과도 생기고 물동량도 더 늘 거고요.”

- 대부분이 국책사업 규모로 보입니다.

“해저터널도 민자 유치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런 대형사업을 추진하려면 경륜과 정치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주영은 해낼 수 있습니다.”

- 가덕도 신공항 문제는 어떤가요.

“가덕 신공항은 법률로 이미 진행하도록 돼 있잖아요. ‘예타’도 면제되고. 근데, 이건 부산시장 보궐선거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한 차원에서 추진된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외국의 전문가들이 진단할 때 제일 낮은 득표를 했던 공항이 갑자기 결정돼 버린 상황이 됐기 때문에 국가정책 결정과정이 대단히 잘못됐다고 봅니다. 여야합의에 따라 법률적으로 결정됐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죠. 포퓰리즘에 의한 결정이라 생각합니다.”

- 지사가 되시면 우선적으로 취할 업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인사 문제입니다. 이건 바로잡아야 합니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임기제 공무원)’들이 너무 많아요. 도지사가 데리고 들어온 사람들이. 숫자가 너무 많은 건 문제거든요. 경남교육감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건 좀 자제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는 도지사와 교육감이 맞춰갈 수 있는 보조 인력은 필요하지만 너무 심하게 하면 안 되죠.”

- 생각하시는 구상이 현실화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시간은 걸리지만 화두는 던져야 합니다. 시간 걱정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지사 임기 내에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시작은 해야 된다는 거죠. 대부분이 대형 프로젝트라 임기 내 전부 실현은 쉽지 않지만, 경남의 미래는 이런 걸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경남의 지도자가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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