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보고싶어요”…회장님 건물에 답답한 주민
상업지구 내 주거지역…피해 구제 어려운 상황

왼쪽부터 배 회장 소유 건물(파랑색과 초록색 표기, 노랑색은 공터) 뒤에 위치한 'ㄷ'아파트(빨간색 표기)의 모습, 건물 위치가 표시된 지도 ⓒ투데이신문
왼쪽부터 배 회장 소유 건물(파랑색과 초록색 표기, 노랑색은 공터) 뒤에 위치한 'ㄷ'아파트(빨간색 표기)의 모습, 건물 위치가 표시된 지도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대기업 회장님이 저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코앞에 태산 같은 빌딩을 짓는답니다. 이제는 인간의 기본권인 햇빛 한 조각도 집안에서 누릴 수 없게 됐습니다.”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에 위치한 한 주상복합 아파트 주민들은 최근 속을 태우고 있다. 화장품 브랜드 토니모리의 배해동 회장이 새로 지어 올릴 빌딩이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을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16일 <투데이신문> 취재에 따르면 최근 호계동 ‘ㄷ’ 아파트 주민들은 안양시청에 단지 앞에 새로이 들어설 빌딩의 높은 층고로 인해 기존 아파트의 일조권과 조망권이 상실된다는 민원을 제기했다.

현재 아파트 앞에는 토니모리 배해동 회장이 소유한 7층 건물 두 채, 그리고 그 사이 조그만 빈 부지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배 회장의 건물이 향후 15층 규모로 완공되면 현재 14층 높이의 ‘ㄷ’아파트는 완전히 가려지게 된다.

그간 아파트는 시야가 탁 트인 고층세대는 물론 건물에 가려진 저층 세대조차도 작은 햇빛만은 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현장에 방문해 보니 건물 사이 공터의 작은 틈으로 인해 저층 세대 또한 미약하게나마 햇빛이 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왼쪽부터 아파트 주민들의 공문, 정면에서 바라본 공터의 모습, 측면에서 바라본 건물과 아파트 사이 공간 ⓒ투데이신문 

그러나 주민들은 향후 자신들의 아파트와 건물 부지에 올라갈 새 빌딩과의 사이가 지나치게 좁은 가운데 높은 층고로 빌딩이 건설되면 집안에서 햇빛을 아예 누릴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이 일을 앞장서 맡고 있는 하모(35)씨는 최근 ‘대기업 회장님이 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려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국민청원을 게재했다. 

현재 100여명의 동의를 얻은 해당 청원에서 하씨는 “얼마 전부터 집과 맞닿아있는 바로 앞 빌딩을 소유하고 있던 기업 회장님이 건물 2채를 허물고 15층 이상의 빌딩으로 재건축하려 한다”며 “어린아기에게 햇빛을 빼앗아 정서적, 육체적인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서민의 기본권인 일조권만이라도 보장해 달라”고 주장했다.

일조권이란 햇볕을 쬘 권리로, 헌법 제 31조 ‘누구나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는 규정으로부터 나온다. 일조권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이유는 사람이 태양광선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될 경우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씨는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청원도 올렸지만 어느 곳에서도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하씨는 “시청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 조율을 한다고는 하지만 건물주 쪽에서는 전혀 저희와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며 “이와 관련해 어디서도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고 재건축 허가 전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파트 앞에서 마주친 또다른 거주민 김모씨는 “앞으로 최대 몇 년간은 소음과 분진 때문에 창문을 열지 못하게 되는 것도 그렇지만 아파트보다 훨씬 높은 건물이 들어서면 집안에서는 햇빛 자체를 보지 못하게 될 것 같아 너무 걱정이 크다”며 불안해했다.

다만 이 같은 주민들의 피해 구제 요구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ㄷ’아파트는 상업지구 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축법상 용도 지역은 주거지역과 준주거지역, 상업지역으로 나뉜다. 그 중 상업지역은 목적 자체가 다른 만큼 주거지역만큼 일조권과 조망권 등 편리한 환경을 보장받기 어렵다. 

실제로 인근 부동산 업체에서도 해당 아파트가 상업지역 내 주거시설인 점을 짚어 주민들의 피해 주장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부동산 중개인 A씨는 “앞으로 이 근방에 지하철이 들어서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새롭게 건설되는 건물은 상업 지구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물론 주민이 불편한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애초에 이곳은 상업지구이니만큼 추가 인구 유입 등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막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철거 예정인 배 회장 소유의 건물 1층 상가에 표기된 토니모리 상호 ⓒ투데이신문

다만 주민들은 상업지역 내 주거건물이라 해도 ‘수인한도’를 넘어설 경우 주거민들의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수인한도란 공해나 소음 따위가 발생해 타인에게 생활의 방해와 해를 끼칠 때 피해의 정도에서 서로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말한다. 이를 넘어선 경우 시행사가 건물의 층고나 층수 조절 등을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판례가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민 민원에 대해 안양시청 담당자는 “해당 건물의 층수와 일조권 및 조망권 등에 대해서는 심의 때 주민들의 민원을 전달해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면서도 “다만 절차상 해당 건물이 건축법 등에 위반되는 경우가 아닌 데다, 사유재산권도 걸린 문제이기에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는 상업지구 내 주거지역이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이 같은 갈등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라는 입장이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애초에 상업지역에 주거지역을 만드는 자체가 문제”라며 “최근 주상복합이나 오피스텔이 대거 지어지면서 상업지역에 들어온 주거 건물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직접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일조권이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상업지구의 땅값이 워낙 비싸다 보니 건축하는 입장에선 최대한 용적률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과제다”라며 “서로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만큼, 앞으로도 이 같은 갈등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이런 문제에 대해 새롭게 정책 마련에 대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시행사 입장에서는 건물의 층수를 깎게 되면 그만큼 사업성이 나오지 않고 분양 물량이 줄어 분양가가 오르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본보는 토니모리 측에 주민과의 갈등에 대해 문의했지만 관계자는 “회장님의 사유재산이라 본사 입장에서 답변드리기는 어려움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배 회장은 지난 2015년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에 소재한 상가 빌딩 2채를 연이어 매입했다. 인덕원부터 수원복선 전철 노선에 호계사거리역 건립이 추가 확정되면서 해당 빌딩의 가치는 더욱 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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