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확산에도 ‘오프라인’ 패 꺼낸 더현대서울
명품 3대장 ‘에루샤’ 없이도 연 8000억원 매출
매장 과감히 줄이고 녹지 공간으로 친근감 조성
전통 비즈니스공식 대신 MZ세대 취향 타깃 주효

격변,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면 무섭게 트렌드가 바뀌는 세상이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화로 인해 오프라인 공간을 찾는 소비자들은 무섭게 줄었다. 기존 상권도 얼어붙어 ‘리테일 아포칼립스(retail apocalypse, 소매의 종말)’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 같은 전통 공간에 대한 위기의식 가운데 지난 2021년 등장한 ‘더현대서울’은 이례적인 성과를 냈다. 개장 첫 주말 100만명이 다녀가는가 하면 일매출 102억원을 넘기면서 현대백화점그룹 창립 이후 단일 매장의 하루 최고 매출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에 본지는 팬데믹과 불리한 입지 속에서도 놀라운 모객 효과를 낸 더현대서울만의 공간성과 특징을 통해 유통의 미래 방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더현대서울 전경[사진제공=현대백화점그룹]
더현대서울 전경[사진제공=현대백화점그룹]

【투데이신문 김효인 조유빈 기자】 공간과 소비에 대한 욕망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이 따라오듯, 기존 유통 분야의 과제는 모객, 즉 고객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 옛날 장터에서는 엿장수가 춤을 추며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깃발을 휘두르고 풍악이 울리던 광대들의 목적도 단 하나, 돈을 들고 몰려드는 손님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취급하는 물건이 달라져도 공간 산업이라는 큰 틀만은 유지해 왔던 유통업계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변화를 맞았다.

감염병을 막기 위한 강력한 거리두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역설적이게도 강남·대학가 등 외부 인구 유입이 많은 기존 번화 상권이었다. 서울시가 지난해 1009개 골목상권의 코로나19 전후 매출을 살펴본 결과 도심에 가까운 외식업의 매출 감소폭이 65.3%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 지난해 문을 연 더현대서울은 개장 첫 주말 100만명이라는 엄청난 인파를 모으고 연 8000억원의 매출을 내는 등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팬데믹 거리두기 가운데 ‘백화점의 무덤’이라는 여의도라는 입지에서, 명품 삼대장으로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브랜드도 없이 불리함을 극복한 더현대서울의 비밀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왼쪽부터 롯데백화점 본점, 롯데백화점 강남점, 현대백화점 무역점 [사진제공=각사]
왼쪽부터 롯데백화점 본점, 롯데백화점 강남점, 현대백화점 무역점 [사진제공=각사]

소비 문화의 꽃 백화점‘환상의 공간’에 찾아온 위기 

생존을 위한 혁신의 몸부림은 업계와 분야를 막론한다. 유통업계 또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를 모색해 왔다.

다른 산업에 비해 소비자와의 직접 대면이 활발한 유통 산업을 논하면서 소비와 문화의 중심인 백화점을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최초의 백화점은 프랑스 파리에서 1887년 문을 연 봉 마르셰 백화점이다. 잡화상 아리스티드 부시코는 넓은 통로에 자연광이 쏟아지는 등 첨단 공법을 동원해 ‘환상의 공간’을 구현했다.

한국 백화점의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일본 백화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의 첫 백화점은 1904년 미츠코시였고, 한국에서는 그로부터 27년 후인 1931년 미츠코시백화점 경성점이 국내 최초 백화점 타이틀을 달았다. 이어 1932년 화신백화점과 1954년 미도파백화점 등이 개점했다. 

백화점의 역사는 중산층의 고급 취향을 공략하며 더욱 무르익어 갔다. 화려한 조명과 반짝거리는 상품들, 코끝을 스치는 향기와 쾌적한 온도 등 백화점은 환상과 선망의 요소로 소비자를 꾸준히 유혹해 왔다.

이후 1970~1980년대까지 경제개발로 사회기반 시설이 구축되면서 현대적 유통산업의 기반을 갖추게 됐다.

그렇게 기존 재래시장과 소매점, 백화점으로 양극화됐던 1990년대, 유통업계에는 전혀 새로운 유통형태가 출현하게 된다. 승용차의 보급으로 거주지역과 상업지역이 분리되면서 신도시가 발생하고 대형마트가 들어선 것이다. 1993년 문을 연 최초 할인점인 이마트 창동점도 이때 등장했다.

왼쪽부터 이마트창동점 광고, 롯데마트 전경 [사진제공=이마트, 뉴시스]
왼쪽부터 이마트창동점 광고, 롯데마트 전경 [사진제공=이마트, 뉴시스]

이로부터 3년이 지난 1996년에도 유통업계의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국내 최초의 인터넷 쇼핑몰인 롯데 인터넷백화점(롯데닷컴의 전신)의 탄생이다.

인터파크와 롯데닷컴이 그해 6월 1일 같은 날에 문을 열며 ‘전자상거래’ 시장을 개척한 이후 신세계닷컴과 예스24, 옥션 등이 줄줄이 뒤를 이으며 낯선 온라인 시장 성장의 바탕을 마련했다.

2000년대 들어서서는 홈쇼핑 등 새로운 유통채널의 시도가 이어졌으며, 최근에는 단순 온라인 쇼핑을 넘어선 모바일, 글로벌 직구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최초 인터넷 쇼핑몰 등장으로부터 25년이 흐른 지난해, 상황은 거꾸로 반전돼 오프라인 유통의 심각한 위기가 도래하게 된다.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으로 대면 유통이 직격타를 맞은 것이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잦은 휴점과 집객 감소를 겪은 백화점 시장은 2018년 30조원 규모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0년에는 27조원대로 추락했다.

주요 백화점 3사(신세계·롯데·현대)의 2017년 대비 2020년 매출액 또한 신세계 10.3%, 롯데백화점 17.1%, 현대백화점 5.1% 등으로 줄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11월 한산한 서울 명동거리의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대면 유통의 종말? 취향 저격으로 웃은 더현대서울

이처럼 오프라인 매장은 뚝 끊겨버린 매출에 신음하게 됐다. 반면 비대면 시장의 가속화로 인해 쿠팡을 필두로 한 플랫폼 신흥강자들은 천문학적인 매출을 냈다. 

실제로 온라인 강자 쿠팡은 지난해 매출 22조원을 달성하며 2010년 창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 대비 2021년의 쿠팡의 총거래액 성장률은 72%로, SSG닷컴(22%), 롯데온(12%) 등의 총거래액 성장률을 크게 웃돈다. 

또 다른 강자인 네이버 또한 지난해 6월부터 브랜드스토어와 쇼핑라이브 등을 공식 출범하며 매출 성장세를 이어나가고 있다. 네이버의 지난해 커머스부문 4분기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27.9% 늘어난 4052억원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전한 온라인 채널은 극강의 편리함과 저렴한 가격이라는 강점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누구와도 마주할 필요 없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효율성은 새로운 트렌드를 구축하기 충분했다.

비대면 유통의 대세는 비단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세계적 추세로 다가왔다.

미국 언론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유통이 공룡처럼 멸종할지 모른다는 ‘리테일 아포칼립스’라는 용어가 등장하는가 하면 ‘브릭 앤 모르타르(brick and mortar, 벽돌과 회반죽으로 실제 공간을 의미한다)’로 표상되는 전통적 상업공간 비즈니스의 위기가 도래했다. 이와 함께 온라인 쇼핑을 의미하는 ‘클릭 앤 모르타르(Click and Mortar)’라는 신조어가 나오면서 기존 단어와 대구를 이루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더현대서울은 기존 백화점 공식을 완전히 탈피해 공간의 경험성을 강조하며 성공 사례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더현대서울은 개점 1년 만에 누적 매출액 8005억원을 달성했다. 이는 당초 목표 매출액(6300억원)의 27.0%를 초과 달성한 수치이자 국내 백화점 개점 첫 해 매출 신기록이기도 하다. 

더현대서울은 지난해 백화점 매출 순위 16위까지 올랐으며, 내년 매출은 1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더현대서울은 ‘백화점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여의도에 터를 잡고 상권과는 무관하게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실재하는 공간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더현대서울이 자리잡은 여의도는 오피스 지구이기에 주간 인구와 야간 인구의 차이가 굉장히 커 백화점이 들어서기에 좋은 상권이 아니었다.

백화점 성공 공식으로 통하는 해외 3대 명품 브랜드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매장 유치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기존 백화점을 답습하는 대신, 자체 콘텐츠로 승부를 본다는 전략이었다.

물고기를 잡겠다고 바다에 전부 그물을 던질 수는 없다. 더현대서울은 ‘취향 쪼개기’로 고객의 숨은 욕망을 자극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페르소나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가면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페르소나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가면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이와 관련해 주목할 점은 인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취향’의 개념이다.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는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제창한 ‘페르소나’ 개념을 통해 ‘유연한 자아(flexible self)의 시대가 열렸다고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들이 쓰는 가면이자 고유의 정체성으로 치환되는 ‘페르소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상황에 따라 1000개의 페르소나를 적절히 바꿔가며 살아간다. 

해당 개념이 현 시대에선 SNS 등 다양한 경로로 자기를 표현하는 문화로 거듭나면서 이에 사람들은 취향으로 정체성, 즉 페르소나를 표현하게 된다는 것이 김 교수의 해석이다.

실제 김 교수가 집필한 <더현대서울 인사이트>에 따르면 더현대서울은 백화점 개점 계획단계에서 ‘고객 페르소나’를 몇 가지 유형으로 규정했다. 

그 일부를 살펴보면 ▲‘페르소나A’의 선호 브랜드는 프라다, 검은색과 스키니룩을 좋아함·차보다 바이크를 타는 게 더 멋지다고 생각함 ▲‘페르소나B’는 보테가 베네타 브랜드를 선호함·매사에 진지하고 예민하며 향수에 집착하고 자아가 뚜렷함·가성비보다 브랜드 스토리를 더 중시함 ▲‘페르소나C’의 선호 브랜드는 펜디·도시남성으로 분류됨·확신에 찬 눈빛을 가졌으며 모험을 좋아함 등 꽤나 구체적으로 파고들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개방감을 강조하고 자연친화적인 요소로 채운 더현대서울 사운즈포레스트 전경 [사진제공=현대백화점그룹]
개방감을 강조하고 자연친화적인 요소로 채운 더현대서울 사운즈포레스트 전경 [사진제공=현대백화점그룹]

특별한 고객경험만이 살 길…오프라인 리테일 이정표 제시

이처럼 더현대서울이 특정 브랜드까지 짚으며 고객 자아에 대해 연구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결국 익숙하고 틀에 박힌 일률적인 공간이 아닌, 고객 개개인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반영한 유니크한 공간과 언어를 제시한다는 뜻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연령 타깃은 확실한 취향과 구매력을 가진 MZ세대로 정조준됐다. 기존까지 백화점은 4050, 또는 5060 등 기성세대를 노린 전통적인 비즈니스를 추구해 왔지만 이를 탈피한 파격 행보에 나선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더현대서울은 ‘럭셔리’로 대표됐던 백화점의 틀을 깼다. ‘멀티 페르소나’ 시대에서의 럭셔리는 극강의 고급스러움과 비싼 명품 브랜드가 아니라 ‘확고한 취향’이라는 계산이었다.

취향 쪼개기를 위해 가장 먼저 내린 결단은 새롭고 희귀한 브랜드로 백화점을 채우는 일이었다. 현대백화점 김형종 사장은 더현대서울 상품기획팀에 ‘본인을 비롯한 임원급 인사들에게 생소한 브랜드로 백화점을 채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더현대서울은 르메르, 메종마르지엘라, 메종키츠네 등 젊은 세대 ‘신명품’ 브랜드로 채워졌다. 매장 간 경계를 허물어 다양한 취향의 공용공간을 제시하는 한편, 오직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브랜드를 확보함으로써 대체 불가능한 공간을 완성했다.

무인매장 ‘언커먼스토어’ 전경 [사진제공=더현대서울]
무인매장 ‘언커먼스토어’ 전경 [사진제공=더현대서울]

이어 MZ세대 전용 공간을 마련했다. 백화점 업계에서 유일하게 운영 중인 무인매장 ‘언커먼 스토어’도 MZ세대에 맞춘 공간이다. 패션잡화·생활용품·식음료·굿즈 등 200여개 상품을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인 언커먼 스토어의 전체 방문객 중 85%는 30대 이하다.

자연 친화적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리테일 테라피’ 트렌드를 내세운 사운드 포레스트를 조성하고, 복도 너비를 넓혀 개방감을 주는 동시에 유리 천장으로 자연 채광을 받도록 설계했다. 

더현대서울은 백화점의 공식이라 불리던 기존 업계의 불문율도 타파했다. ‘창문과 시계는 없애라’는 마케팅 공식 대신 영업 면적(8만9100㎡)의 절반을 실내 조경과 고객 휴식 공간으로 꾸며 체류 시간을 늘렸다. 결국 ‘백화점답기’를 포기하고 고정관념을 깬 실험으로서 오프라인 리테일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 또한 새로운 유통 환경의 돌파구는 결국 특별한 고객 경험이라고 강조한다.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서용구 교수는 “코로나19는 새로운 소비혁명, 즉 ‘뉴커머스’를 불러왔다. 이는 온·오프라인 쇼핑에 유통·물류·IT가 융합한 커머스다”라며 “최근 라이브커머스와 풀필먼트 서비스, 라스트마일 혁명 등 다양한 요소가 등장하는 가운데 주목할 점은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유토피아적 쇼핑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고객 맞춤 큐레이션 등 특별한 소비자 구매 경험에 대한 개발은 기업과 마케터들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며 “그중 1980~2009년 사이에 출생한 ‘MZ세대’가 새로운 소비권력으로 주목받으면서, 이들의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이 새로운 표준으로 등장하고 있다. 결국 마케팅의 패러다임이 MZ 소비자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정연승 한국유통학회장은 “최근 문을 여는 백화점은 전통적인 형태의 백화점의 틀을 깨고 다양한 콘텐츠와 휴식 공간을 갖췄다”며 “이는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향후 백화점은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공간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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