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치 경험 지방정부 이식 시험대 올라
재개발 재건축 천명 위해 취임식도 길에서
차없는 거리 ‘연세로’, 취임 즉시 원상복귀
자율 출퇴근제 도입해 공직사회 혁신할 것

이성헌 서대문구청장 ⓒ투데이신문
이성헌 서대문구청장 ⓒ투데이신문

역대 두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 전, <투데이신문>은 현역 구청장이 출마할 수 없는 서울 지역 3선 연임 제한 선거구에 출사표를 던진 유력 후보들을 만나 [격전지 인터뷰]를 진행했다.

치열한 접전 끝에 희비가 갈렸고, 각 지역 신임 구청장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공약 이행을 위해 당선 즉시 인수위원회를 꾸리며 업무 파악에 돌입했다.

무주공산(無主空山)에 깃발을 꽂은 ‘초선 단체장’들은 어떤 각오로 구정에 임할까. 그동안 밝혀온 구정 운영 청사진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고, 향후 4년 동안 펼치고자하는 행정집행 철학은 무엇일까.

당선자들을 만났다.

◆‘원팀’ 협치로 구정 드라이브...중앙정치 경험 지방정부 이식 숙제

【투데이신문 윤철순 기자】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재선 국회의원 출신과 다선 경력의 기초의원 출신 ‘풀뿌리 정치인’이 격돌한 서대문구청장 선거는 ‘인물론’을 앞세운 재선 국회의원 출신 ‘선배’의 승리로 끝났다.

전체 유권자 27만1718명 중 14만6967명이 참여해 54.08%의 투표율을 보인 서대문은 이성헌(63) 국민의힘 후보가 52.64%(7만7365표)를 기록하며 46.09%(6만7750표)를 얻는데 그친 박운기(55)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9615표(6.55%) 차이로 따돌리며 완승했다.

지역 정가에선 ‘체급’을 하향조정해 출마한 이 당선자가 ‘험지’에서 큰 격차로 이길 수 있었던 배경을 대선 승리에 기반한 대세와 더불어 ‘26년 간 당협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다져 놓은 조직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인물론을 앞세우며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 민심을 되돌리는데 성공한 이 당선자가, ‘공천 논란’ 불식과 더불어 중앙정치 경험을 지방정부에 어떻게 이식시키며 서대문 변화를 이끌어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특히 이 당선자가 “대통령과 서울시장, 구청장이 원팀을 이뤄 협치를 이끌어내야 서대문 발전이 가능하다”며 지지를 호소했던 만큼, 임기 초반 어떤 협치를 통해 구정 드라이브를 걸지 주목된다.

지난 10일 인수위를 띄우며 현안 파악에 들어간 이 당선자는 취임식도 구정 운영 수단으로 기획할 정도로 정무감각이 남다르다. 이 당선자는 다음달 1일 열리는 취임식을 관내 재개발재건축의 시급성으로 상징되는 유진상가와 인왕시장 사이 길 위에서 갖는다.

이 당선자는 또 취임 즉시 현재 ‘차 없는 거리’로 지정돼 운영 중인 연세로(연세대학교 삼거리에서 신촌로타리까지 연결되는 도로)를 차량이 통행할 수 있도록 복원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 ⓒ투데이신문
이성헌 서대문구청장 ⓒ투데이신문

◆주민 의견 적극 수렴하는 구정 운영 펼 것

-‘험지’에서 당선됐다. 소감이 어떤가.

“제가 이번 선거에서 북가좌동을 뺀 나머지 13개 지역에서 전부 이겼는데, 선거 전에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는 대부분 초박빙이었다. 서대문 지역은 우리 당(국민의힘) 입장에선 험지다. 그렇지만, 사실 진다는 생각은 안 했었다. 그래도 개표 상황을 지켜볼 땐 손에 땀이 났다. 많은 분들이 ‘가슴 졸이며 밤새 (개표상황을) 지켜봤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10년 만에 공직에 복귀했는데, 각오가 새로울 것 같다.

“2012년에 18대 국회 임기가 끝났으니, 딱 10년 만이다. 당선 후 많은 주민들을 만났는데, ‘그동안 고생 많았다. 참 잘했다. 수고했다’고 말씀들을 해주셨다. 어떤 분들은 눈물까지 보이며 격려해주셨다. 이런 모습에 코끝이 시려졌다. 그러나 어깨도 무거워졌다. 10년 만에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한다는 책임감이 강하게 일었다. 마지막 공직이라 생각하고 서대문 발전에 제 모든 걸 쏟아 붓겠다는 각오로 임할 생각이다.”

-승리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서대문 발전과 변화에 대한 구민 욕구가 강하게 작용한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주민들이 인접 구에 비해 서대문이 크게 낙후됐다 생각하는데, 지난 12년 동안 이런 상황이 심화되면서 지역 발전 열망은 더 높아졌다. 이런 생각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표출된 것이라고 본다. 또 인물 경쟁에서 앞섰다는 평가를 해주신 것 같다. 특히, 대통령과 서울시장 구청장이 ‘원팀’이 돼 움직이면 서대문 발전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나갈 수 있을 것이란 호소가 적중했다는 생각이다.”

-구정 운영 방향은 어떻게 잡고 있나.

“가장 중요한 건 주민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겠다는 거다. 이걸 기본으로 크게 네 가지 구정 운영 방향을 세웠다. 먼저, 재개발재건축 문제는 서울시와 함께 신속하고 깔끔하게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또 서부선경전철이나 강북횡단선, 공항철도, 경의선지하화 등 교통 체계 부분을 획기적으로 보강하고, 아홉 개 대학이 있는 교육도시 특성을 살려 ‘신(新) 대학로’를 조성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행정서비스 차원을 넘어서는 복지체계를 구축할 생각이다.”

-주민 의견 수렴 방안을 어떤 식으로 한다는 건가.

“현재 구정 운영을 위한 비대면 화상회의를 실·국장 위주로 하고 있는데, 앞으론 팀장급까지 확대할 생각이다. 이런 게 잘 되면 일선 동장과 직원은 물론, 500여 통반장들과의 회의도 상시로 열수 있다. 이를 통해 주민 의견을 수렴해보려 한다. 특정 몇몇이 주도해왔던 구정 운영 방식을 다수 주민들이 참여하는 열린 행정으로 바꿔보겠다는 생각이다. 직원들의 근무평가 방식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민간 기업을 벤치마킹해서 변화를 줄 생각이다.”

-재개발·재건축은 풀어야할 문제가 상당할 것 같다.

“서대문 지역 재개발재건축이 60건 정도였었는데, 박원순 시장이 들어서고 문석진 구청장이 구정을 이끈 12년 동안 스물다섯 건이 해지됐다. 현재 우리 지역 재개발재건축 관련 실무 책임자들의 역량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외부 평가가 있다. 사실 많이 놀랐는데, 다른 구에 비해 잘못된 부분이 상당한 것 같다.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법 개정도 필요한데, 제가 국회의원 8년 하면서 많은 법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 또 인적 네트워크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경험들을 잘 살려서 서울시와 공조해 신속하게 풀어나갈 생각이다.”

지난 18일 저녁 신촌 연세로에서 열린 프랑스 거리음악축제에서 시민들이 프랑스 아트마켓을 둘러보고 있다. 서대문구가 주최하고 주한프랑스대사관이 후원하는 이 행사는 3년 만에 재개돼 이틀 간 진행됐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18일 저녁 신촌 연세로에서 열린 프랑스 거리음악축제에서 시민들이 프랑스 아트마켓을 둘러보고 있다. 서대문구가 주최하고 주한프랑스대사관이 후원하는 이 행사는 3년 만에 재개돼 이틀 간 진행됐다. [사진제공=뉴시스]

◆가진 역량 전부 동원해 지역 발전 성과 내겠다

-새로운 복지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건 무슨 얘긴가.

“앞으로의 복지는 행정서비스를 넘어 주민 삶 전체를 케어(care)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현재 구 예산의 51%가 복지에 투입되고 있다. 서대문 거주 65세 이상 인구가 5만 명이 넘는데, 이 중 60%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다. 수급자는 지금도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정부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데, 이런 분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어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확대하고, 건강을 비롯한 생활 전반에 대해 서비스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부분에 구정 운영 중점을 둘 생각이다.”

-전체 예산의 절반이 복지비용인데, 추가 예산이 필요할 것 같다.

“서대문구 1년 예산이 7000억 가량 된다. 그런데, 실제 사업에 쓸 수 있는 비용은 700억이 채 안 된다. 1/10도 안 된다는 얘기다. 예산 절반이 복지에 들어가고, 구청 공무원 인건비와 관공서 유지비 등을 빼면 월 60억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여러 사업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 중앙정부에서 추가 예산을 많이 끌어와야 한다. 시장도 우리 당에서 나왔고, 시의회도 과반 이상 확보됐기 때문에 서울시 관련 예산 확보는 유리한 상황이다. 이밖에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어떤 분들은 공모사업 예산을 따내자며 특별 TF팀을 꾸려보자는데, 이런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인사(人事) 원칙도 중요한데, 어떤 기준을 세우고 있나.

“현재 인수위가 가동 중인데, 업무보고를 통해 기존의 근무평가제가 공정하지 않거나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확인해봐야겠지만, 구청장과의 친소관계가 인사에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내용들이 있어서 철저히 따져볼 생각이다. 인사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공무원 사기도 떨어진다. 요즘 민간 기업들은 9to6(9시 출근, 6시 퇴근) 방식을 고집하지 않는다. 자율 출퇴근제를 도입하면서도 주어진 과업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한다. 공직사회에도 이런 유연성이 필요하다. 취임하면 시범적으로 2개 국 정도에 자율 출퇴근제를 실험 도입해볼 생각이다.”

-취임 첫 행정업무로 생각하고 있는 건 뭔가.

“현재 연세대(학교) 앞에서부터 신촌로타리까지 연결되는 도로(연세로)를 ‘차 없는 거리’로 운영하고 있는데,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차량통행을 막고 있다. 평일에도 노선버스만 다닐 수 있다. ‘대체 도로’도 만들지 않고 운영 중이다. 이걸 취임하자마자 원상회복시킬 생각이다. 신촌 지역 상권 활성화가 시급한데, 차 없는 거리 정책으로 상권이 살아났다고 보는 상인은 거의 없다. 상인회도 장사 안 하는 사람들이 대표 행실을 하는 가짜 상인회다. 이걸 되돌려서 교통흐름을 원활하게 해야 상권이 활성화된다.”

-취임일이 며칠 안 남았다.

“7월 1일 취임식을 유진상가와 인왕시장 사이 길 위에서 가질 예정이다. 이 일대가 지역 내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인데, 개발이 시급하다. 개발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여기서 취임식을 갖기로 했다. 여긴 원래 순조롭게 개발이 진행되던 곳인데, 박원순 시장이 주민 50%가 반대하면 사업을 취소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드는 바람에 취소됐다. 서울시와 협조해서 시급하게 개발될 수 있도록 추진할 것이다.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생각이다.”

-구민께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이번 선거 결과는 ‘서대문 발전을 위해 확실한 성과를 보이라’는 주민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 붓겠다는 각오로 구정에 임하겠다. 주어진 4년의 임기 동안 공약을 전부 완성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분명한 한계가 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느냐가 아닌가 생각한다. 앞서 얘기한 네 가지 큰 틀의 구정 운영 방향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가진 모든 걸 동원하겠다. 지켜봐주시기 바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