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반지하 전수조사→표본조사 전환 논란
시는 못한 전수조사...성동구 5279호 조사 마쳐
오세훈 “구청장들과 반지하 전수조사 논의 시작”
시민단체 “다방면 조사해 실질적 안전 마련해야 ”

지난해 8월 16일 재난불평등추모행동 회원들이&nbsp;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불평등이 재난이다' 폭우참사 희생 취약계층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지난해 8월 16일 재난불평등추모행동 회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불평등이 재난이다' 폭우참사 희생 취약계층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의지가 앞섰다” 지난해 10월 오세훈 시장이 국정감사에서 전수조사의 현실적 어려움을 시인하며 뱉은 말이다. 지난 여름 기록적 폭우로 침수 피해가 더욱 컸던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를 공언한 서울시. 20년 내 차례로 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 발표했지만, 이후 예산 등의 이유로 표본조사로 전환해 논란이 불거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동구가 주거안전 TF를 꾸리고 지역 내 반지하 5279호에 대한 실태조사 끝마쳤다. 지난해 9월 1일 성동구 정원오 구청장 지시로 전수조사에 착수해 3개월 여 만에 마무리 지은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성동구가 관내 반지하 주택의 전수조사를 마무리한 사례를 들어 다른 지자체로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을 내비치고 있다.

일가족 3명이 참변을 당한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폭우가 앗아간 생명…신림동 일가족 참변

지난해까지 영등포구에 위치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김형서(가명·29세)씨는 은행 빚으로 보증금을 마련해 반지하 생활을 청산했다. 폭우로 인한 참사가 발생하자 침수 피해는 더 이상 남 일이 아니라는 걱정이 들어서다. 결국 김씨는 결국 빚을 내 지상 원룸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김씨는 “지방에서 취업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지만, 턱 없이 비싼 보증금과 월세로 인해 반지하에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며 “조금 불편해도 참으면서 살 만했는데, 지난해 폭우 참사로 인해 이사를 진행했다. 지금은 은행 빚으로 보증금을 충당하고 지상 원룸에서 거주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중부지방에 8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곳곳에서 13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서울 관악구에서는 침수로 인해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 신림동 한 반지하 주택에서 거주하던 40대 여성과 여동생 A씨, A씨의 10대 딸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이들 중 한 명은 발달 장애가 있던 것으로 알려져 그들의 열악한 상황을 더욱 짐작게 했다.

지난해 8월 16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국민 주거안전 실현방안’에 따르면 지하층 주택에 약 32만70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반지하에 사는 가구 수는 61.4%로 서울 시민 약 20만 가구가 몰려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침수 사태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자 반지하 등 재해 취약주택 문제가 불거졌다.

이에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을 순차적으로 없앤다는 해결 방안을 내놨지만, 실현 가능성과 이주대책 등 현실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또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반지하 전수조사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을 인정하면서 당초 계획이 아닌, 1100 가구 표본조사로 계획을 수정하자 비판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성동구가 관내 모든 반지하 주택 5279호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는 모습. [사진제공=성동구청]
성동구가 관내 모든 반지하 주택 5279호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는 모습. [사진제공=성동구청]

현실적인 어려움?…성동구는 해낸 전수조사

“도시의 가장 낮은 곳이 삶의 질 척도. 반지하, 옥탑, 고시원에 대한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 성동구의 최저 주거기준선을 높여 주거복지 대표 도시 성동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정원오 성동구청장.

서울시가 현실적 문제를 들어 전수조사에 대한 어려움을 표한 반면, 성동구는 구내에 위치한 반지하 5279호 전수조사를 마쳐 ‘성동형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한다.

지난해 9월 주거안전 TF를 꾸린 성동구는 관내 반지하 5279호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기존 행정 데이터를 바탕으로 14명의 건축사가 모든 반지하 주택을 직접 방문해 현장 지형 및 도면을 살폈다.

성동구는 비(非)주거나 철거된 1456호를 제외한 3823호에 대한 등급판정을 내렸다. 주택별로 안전과 건강 분야를 반영한 A+등급에서 D등급까지 종합등급 분류와 함께 방지시설의 필요성과 위치를 조사해 우선 지원 대상과 규모를 산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수판 또는 하수역류방지장치 712건 △개폐식 방범창 955건 △침수경보기 12건 △환기팬 471건 등이 반지하 주택 1453호에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는 반지하 주택에 침수 피해 예방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체 반지하 주택의 주거 수준을 한 단계 더 향상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어 앞으로 4년간 반지하 주택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실시할 방침이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다음 달 10일까지 반지하 주택 소유자 및 세입자에게 신청을 받아 장마철이 오기 전 6월 전까지 필요 시설 설치를 완료하기 위해 17개 동 주민센터는 물론 통장 등 지역사회가 신청 지원 및 추가사업 대상 발굴에 나선다”며 “침수가 발생한 주택 위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닌,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를 통해 미리 침수 피해 예방시설을 지원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0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16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 참석해 2023년도 주요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부랴부랴’ 서울시…“반지하 전수조사 논의 시작”

전수조사를 유보해 두고 표본 조사를 실시하기로 한 서울시는 결국 서울시내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를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성동구가 지역 내 반지하 조사를 마치면서 표본조사에 대한 지적이 발생하면서다.

지난 22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의회 본회의 시정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소라 시의원의 반지하 전수조사 관련 질의에 “성동구가 다 했다고 하니 서울의 전 구청장들과 논의를 시작했다”며 “심층적으로 어떻게 복지 지원을 할지 주거 공간에 초점을 맞춰 방법을 강구 중”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은 “성동구가 전수조사를 했는데 왜 서울시는 안 했냐고 하는데 시는 성동구처럼 건축사가 하드웨어만 조사하는 게 아니라 복지상담사를 파견해 거주자들의 상태를 심층 상담하는 형태여서 전 지역을 동시에 조사하기는 물리적으로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거 상향을 꼭 필요로 하는, 거동이 불편한 분들 위주로 조사했다. 계속 조사해 지원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첨언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의 전수조사를 환영하는 한편, 결국 전수조사 실시 계획 당시 서울시의 의지가 부족해 진행이 미뤄진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서울세입자협회 윤성노 주거상담팀장은 “폭우 피해 당시에는 서울시에서 무엇이든 할 것처럼 하다가 무산이 됐다. 당시 시의 의지가 없었다고 본다”며 “성동구의 전수조사 마무리로 인해 여론에 밀리니까 부랴부랴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의 이번 전수조사는 반지하 거주민들의 거주상태나 경제적인 여건, 주거 여건 등 다방면에서 모두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즉, 실질적인 주거 안전까지 마련해야 한다”며 “서울시가 늦게나마 다시 전수조사를 실시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빈곤사회연대 관계자는 “성동구는 폭우 참사 직후인 9월부터 12월까지 관내 반지하 주택 5279가구 중 비주거 주택 등을 제외한 3823가구의 전수조사를 완료한 다음 지원이 필요한 1453가구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동구가 건축사회에 현장 조사를 의뢰해 가구별 주거 상태에 대한 조사항목과 기준을 마련해 체계적인 조사를 실시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 할 수 있다”며 “국토부나 서울시가 뒷짐진 사이에 성동구가 앞장 선 셈”이라고 호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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