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이영민 편집인<br>
△ 투데이신문 이영민 편집인

최근 조사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결과, 부정평가가 60%를 넘어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와 노동시간 유연화 문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배경에 있을 것이다. 특히, 대일 외교와 관련해선 윤 대통령의 판단이 국내외 정치 지형도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엄습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미국을 향한 구애의 결과물은 내년 총선의 뚜껑을 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확산을 통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중국에 심고자 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이었다. 그러나 2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중국은 공산당 독재의 틀을 벗어버리지 못했고, 미국을 능가할 정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가 자본주의를 완성시켰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지적하듯 경제적 갈등의 종착역은 군사적 충돌일 수밖에 없다. 이제 미국과 중국의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구상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할은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필수적이다.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국내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으로 뻔히 예상하면서도 윤 정부가 일본에 손을 내민 것은 미국과의 군사·경제적 동맹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상황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들어 도발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북한의 안보 위협 문제는 이러한 판단에 힘을 실었을 것이다.

목표와 방향 설정에 있어 정부의 판단이 잘못됐다 속단할 수는 없다. 국제 외교와 정치는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무쌍한 양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한 후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과정인 세세한 계획을 마련하는데 있어서는 아쉬움이 크다. 미국의 필요에 의해 인도·태평양 전략에 동참하면서 실익을 챙기지 못했다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수지 적자규모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중국을 버리고 선택한 미국과의 밀착 외교가 국익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냉철한 손익계산서가 마련돼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작년 우리나라의 대 중국 교역규모는 3100억 달러인데, 이는 미국과 일본의 총합보다 많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박진 장관이 말했던 ‘나머지 반 컵’을 어떻게 채워 나가느냐는 당장 내년 총선은 물론이고, 현 정부의 성패를 결정짓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이 한 달 후 미국을 다녀온 후 비판 일색의 국내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은 중국의 팽창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던 ‘미국 우선주의’에 맞서 양보와 타협의 ‘반 컵’을 반드시 이끌어 내야 한다. 부정적 여론이 큰 강제징용 피해자 해법과 관련한 대일 외교에 있어서도 돌파구를 마련해 와야 한다.

역대 어느 정권도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마치 한번 빨려 들어가면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할 개미지옥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자존감이 걸려 있는 문제를 잘못 건드리면 자칫 정권 몰락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야심차게 의욕적으로 활시위를 당겼다. 이제 미국이든 일본을 통해서든 나머지 반 컵을 모양새 좋게 채워야 한다.

명분이 그럴싸하더라도 실리가 없다면 외교는 무용지물이다. 과거 일본이 플라자합의와 미일 반도체협정을 통해 ‘잃어버린 30년’이란 통절한 외교실패를 겪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 재편과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신질서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무조건적 편승은 일본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중국과 북한이라는 적절한 지렛대가 있다. 패권국들의 그늘 아래서 적절히 실리를 챙기는 똑똑한 외교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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