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공탁 불수리에 정부 ‘곤혹’
법원, 피해자 반대 의사 받아들여
시민단체 반발…졸속이라는 비난도
외교부 “유감…이의절차 돌입할 것”

일본 사민당 오츠바키 류코 참의원이 지난 6일 오후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집을 찾아 양 할머니의 자서전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일본 사화민주당 오츠바키 류코 참의원이 지난 6일 오후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집을 찾아 양 할머니의 자서전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법원들이 잇따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 배상금 공탁 절차에 대해서 불수리 결정을 내리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승복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7일 법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접수된 강제동원 생존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공탁신청 10건 중 8건이 불수리 결정을 받았으며 1건은 서류미비로 반려, 1건은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중 확인된 공탁신청건은 광주지법 2건, 전주지법 3건, 수원지법 2건, 수원지법 안산지원 1건, 수원지법 평택지원 2건이다. 공탁은 일정한 법률적 효과를 위해 법원에 금전 등을 맡기는 제도를 의미한다. 공탁 절차는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할 시 다른 상속인에게 권리가 넘어가기 때문에 전체 공탁 건수는 지금보다 더 증가할 수 있다.

앞서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으로 제3자 변제안을 제시했다. 제 3자 변제안은 지난 2018년 10~11월 대법원 확정 판결을 통해 일본 피고기업들(일본제철·미쓰비시(三菱) 중공업)에 승소한 원고 총 15명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지원재단)이 마련한 돈으로 대신 배상금 등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현재까지 생존 피해자 1명을 포함한 11명은 정부 해법을 수용해 배상금을 수령받았지만, 다른 생존 피해자 2명을 포함한 유족 등 원고 4명은 끝내 해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이들의 판결금과 지연 이자를 법원에 공탁하는 절차를 돌입했지만,  이를 법원이 연이어 재동을 걸면서 해당 현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려던 정부는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물론  졸속 처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법원의 잇단 불수리

지난 4일 광주지법을 시작으로 수원지법, 전주지법, 수원지법 평택지원 등 정부의 공탁 신청을 접수한 지방법원들이 잇따라 불수리 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날 생존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에 대한 배상금 공탁 신청을 받은 광주지법 공탁관은 양 할머니의 거부 의사가 분명하다며 공탁 신청을 수리하지 않았다. 이 할아버지에 대한 공탁은 불수리 결정을 받지는 않았지만, 서류 미비로 접수가 반려됐다.

전주지법도 같은 날 고(故) 박해옥 할머니의 정부의 배상금 공탁에 대해 불수리를 결정했다. 전주지법은 “지원재단이 제출한 공탁 신청 서류에 이미 고인이 된 박 할머니가 피공탁인으로 기재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할머니의 자녀와 고 정창희 할아버지의 배우자 거주지 관할법원인 수원지법도 지난 5일 정부의 공탁 신청에 대해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수원지법은 “제3자 변제에 대한 피공탁자의 명백한 반대 의사표시가 확인돼 제3자 변제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지난 6일에는 수원지법 평택지원이 정 할아버지의 유족 2명에 대한 공탁 신청을 불수리했다.

이들 법원은 불수리 사유로 모두 피해자 측이 제3자인 지원재단에 의한 변제에 반대하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혔다는 점을 꼽았다. 근거로는 당사자가 불허 의사를 표시할 경우, 제3자가 변제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 민법 제469조 등을 내밀었다. 

이에 따라 정 할아버지 자녀 1명이 피공탁자로 접수돼 있는 안산지원도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금 공탁에 대해 불수리 결정을 내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회원들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지급 예정 배상금 공탁 결정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회원들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지급 예정 배상금 공탁 결정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시민단체 항의 목소리도

시민단체는 정부의 해법이 피해자들의 인권을 짓밟으며 강제동원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것이라며 날선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정의와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지난 4일 외교부 앞에서 ‘공탁 절차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는 ‘제3자 변제’로 일본에 면죄부를 주고, 일본 대신 한국 기업의 돈으로 배상금도 아닌 판결금을 지급해 일제 강제동원 문제를 봉합하고자 했다”며 “그렇지만 피해자 및 유족 4명이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자 ‘돈 있으니 찾아가라’며 공탁 절차를 개시한 것인데 이는 치졸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공탁은 무효다. 우리 민법에 의하면 변제할 자격이 없는 자는 법원에 공탁을 할 수도 없다”며 “더군다나 일본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피해자들에 대한 채무를 인정한 적이 없고, 사죄 한 마디 한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진정한 사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공동행동의 주장이다.

이들은 제3자 해법을 규탄하며 정부에 △대일 굴욕외교 중단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공탁 절차 즉각 철회 등을 요구했다.

외교부 “이의 절차 착수할 것”

정부는 법원이 공탁 신청을 잇달아 불수리한 것에 관해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현재 정부는 법원의 결정에 이의를 신청하는 등 대응에 착수했다. 하지만 피해자 양 할머니에 대한 공탁 신청을 불수리했던 광주지법이 정부의 이의 신청마저 수용하지 않아, 이미 해당 건은 민사 재판부로 넘어간 상태다.

외교부 임수석 대변인은 지난 6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공탁법상 공탁관의 처분에 불복하는 경우에 관할 지법을 통해 이의신청을 한다”며 “그럼에도 공탁관이 수용하지 않으면 재판을 통한 불복 절차가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지법의 경우 공탁관의 불수리 결정에 대해 재단 측은 즉시 이의신청을 했으나 이를 공탁관이 불수용해 이미 (해당 건은) 광주지법에 사건이 배당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원지법의 경우 공탁관의 불수리 결정이 법리상 승복하기 어려워 지원재단 측은 즉시 이의 절차에 착수해 올바른 판단을 구하고, 피해자의 원활한 피해 회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가 법원에 신청한 전체 공탁신청 건수와 관련해서는 “공탁 절차가 진행 중인 현 단계에서는 답변드리기 어렵다”며 “정리된 뒤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처럼 외교부는 공탁신청이 적법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민법 481조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변제로 채권자의 권리를 대신 행사할 수 있다’와 민법 487조 ‘채권자가 변제를 받지 않거나 받을 수 없는 때는 변제자가 공탁해 채무를 면할 수 있다’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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