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황희두 이사
합숙하는 것이 좋아 프로게이머를 선택했던 청년
은퇴 후 좌절, 채현국 선생 통해 새로운 삶 눈 떠
기성 정치의 편견 속에서 정치활동 한계 느끼기도
자기객관화 없이는 기성 정치 답습할 수밖에 없어
“다양한 인재들과 느슨한 연대 구축이 제 역할”

노무현재단 황희두 이사 ⓒ투데이신문
노무현재단 황희두 이사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혹자는 청년 정치가 끝났다고 말한다. 주요 정당 젊은 리더들의 과거 이력이 논란이 되고, 청년 정치인들이 기성 정치의 관습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온 푸념 혹은 진심일 테다. 최근 불거진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기 의혹은 이 같은 비판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그러나 알려진 몇 명의 과오를 두고 청년 정치 움직임 자체가 끝났다 단정 짓는 것은 지나치게 미시적인 판단이다. 청년이라는 단어는 정치권에 등장한 특정인들에게만 한정된 자격이 아니다. 사회의 변화를 좇는 정치 행위도 여의도 근처를 부유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전유물이 아니다. 미디어가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도, 여의도 바깥에서도 청년 정치는 존재한다. 

오히려 청년을 선거철에만 이용하고 방치한 것은 기성 정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의견과 입장을 관철시킬 만큼 충분히 세력화 하지 못한 것은 청년 정치인들의 책임이겠지만, 기성 정치가 선거철 표심을 위해 청년들에게 허울 뿐인 칼자루를 쥐어주고 젊음이라는 이미지를 소비하도록 했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다. 

청년 정치가 필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새로움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청년들 역시 한국이라는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중요한 계층이기에 그들을 위한 정치가 요구된다. 청년 정치만이 아니다. 우리 시대를 구성하는 가치와 의견이 점점 더 세분화되고 있는 만큼 각각의 입장을 대변할 정치가 필요하다. 몇몇 거대한 이념 아래 정치적 세력이 결집하는 방식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반영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재단 황희두 이사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자기인식은 인상적이다. 그는 거대 담론과 기성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정치권에 뛰어든 이유라고 말한다. 선출직에 나서는 것보다는 다양한 의제를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발굴하고 그런 인재들의 ‘느슨한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스스로 규정한 정치적 목표라는 것이다. <투데이신문>은 황 이사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청년 정치의 의미와 기성 정치와의 차별점, 그리고 선출직 바깥에서 꿈꾸는 새로운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서 말할레오를 진행하고 있는 황희두 이사. [사진출처=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튜브 캡처]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서 말할레오를 진행하고 있는 황희두 이사. [사진출처=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튜브 캡처]

프로게이머에서 노무현재단 이사로

Q. 노무현재단의 이사직을 맡고 있다. 언제부터 참여했으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2021년 8월에 합류했다. 제가 기억하기로 최민희 전 의원과 유시민 작가가 재단이 좀 더 젊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부에 추천했다고 들었다. 저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조롱이나 특정 커뮤니티의 밈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런 심각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 현재는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서 말할레오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재단 활동을 홍보하면서 지역에 계신 당원분들, 후원자분들과 접점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청년과 청소년, 그리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어 하는 시민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Q. 정치활동을 하기까지의 이력이 독특하다. 첫 직업은 프로게이머였는데. 

예전에 드라마 ‘논스톱’을 정말 좋아해서 합숙이라는 걸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 무렵 마침 ‘리얼스토리 프로게이머’란 예능을 보게 됐는데 게임도 하면서 돈도 벌고 합숙도 가능한 직업이었다. 제가 원하던 것들이 맞아 떨어져 당시에는 스타크래프트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프로게이머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게임을 잘 했던 편은 아니라 친구들이 놀리기도 했다. 그런 시선들에 오기가 생겨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프로가 되고 나서는 하루에 거의 18시간, 많을 때는 20시간까지도 연습했다. 그게 보통 프로게이머의 생활이긴 한데 저는 좀 뺀질댔던 경우라 뒤늦게 후회를 좀 했다. 

Q.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나.

은퇴 이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한동안 우울증을 겪었다. 제가 게임을 잘하고 좋아해서 시작한 게 아니고 다른 목적으로 접근했다보니 어느 순간 흥미가 크게 떨어졌다. 연예인 같은 형들과 합숙하는 즐거움은 3일도 안 갔고 현실은 중고등학생이 중간고사를 매일 보는 기분이었다. 계속 성적을 매기면서 상위 소수만 대중이 아는 게이머가 되고 다른 선수들 연습만 도와주다 보니 동기부여도 안 됐다.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다 은퇴를 했다. 이후 스타크래프트2와 롤이 나오면서 잘나가는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다. 내가 만약 게임을 더 열심히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츠 정신이 부족했다는 후회를 하면서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최선을 다했다면 적어도 내가 어느 정도 역량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는데 그게 가장 후회됐다. 

Q. 게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한데 직접 겪은 사례가 있는지. 

일반 시민들 중 게임을 싫어하는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정치권 안에서 저를 응원한다는 분들 중에서도 “게임을 했던 사람이 뭘 안다고 저럴까”라는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도 여전히 게임에 대한 편견이 다른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경우를 본다. 일례로 같은 당의 어떤 분은 “나는 내 자녀가 유튜브 보고 게임하는 게 너무 싫다”는 말을 면전에서 해, 오히려 옆에 있던 분이 민망해한 경우도 있었다. 그때 이게 현실이구나라는 벽을 느꼈다. 

노무현재단 황희두 이사 ⓒ투데이신문
노무현재단 황희두 이사 ⓒ투데이신문

온라인 혐오 이해하려면 사람의 이중성 살펴야

Q. 지금은 온라인 문화의 정화를 위해 활동하지만 과거에는 스스로 ‘키보드 워리어’였다고 언급했다.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중고등학교에는 서열 같은 게 있었다. 힘이 센 친구가 반의 헤게모니를 쥐는 소위 일진이라는 것도 존재했다. 저는 친구들 사이에 게임한다고 알려지기도 했고 또 갑자기 이사하게 되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현실에서는 점점 더 초라해지고 자존감이 낮아졌다. 사람들 눈도 못 마주치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어디선가 감정을 풀어내야 했는데 그곳이 온라인이었다. 익명 뒤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거기서는 내 키가 몇인지, 어떤 성격인지, 힘이 센지 약한지를 모르니까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다. 어느 순간 키보드 배틀에 진심이 됐던 기억이 난다. 

Q. 온라인의 차별이나 혐오를 이해하려면 사람의 이중성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흔히 온라인에서 극단적인 차별이나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실제 주변에는 별로 없고, 그런 의견에 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정치권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온라인에서처럼 배설 수준에 가까운 말을 오프라인 주변 사람들에게 하겠나. 온라인 뒤에 자신을 숨기고 오프라인과 다르게 행동하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단순히 내 주위에 없다고 신경 쓸 필요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건 안 된다. 온라인이 보다 중요해졌고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사회로 진출한 오늘날을 정확히 들여다보려면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특히 정치인들은 명심해야 한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Q. 악플과 혐오는 다양한 계층을 편 가르기 한다.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과거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수치심을 느끼고 행동에 부끄러움도 느끼는 듯 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 혹은 약자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특정 커뮤니티를 통해 그런 혐오가 확산되고 그 씨앗이 자라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은 없다. 정답이 있는데 아직 못 찾았다거나 정치인들이 게을러서 문제가 계속되는 것이 아니다. 입법을 통해 단숨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지워야 한다. 법이 만들어지면 그 법을 우회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나온다. 또 온라인 공간에 대한 규제는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모호한 지점이 발생하게 된다. 그 자체가 하나의 빈틈이 된다. 그 빈틈을 무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게 혐오를 조장하는 사람들의 특기기도 하다. 때문에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배설에 가까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부끄럽도록 만드는 문화적 인지를 사회적으로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Q. 온라인 청정화 프로젝트 ‘유스타즈’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모 유튜버와 소통하면서 인플루언서의 사회적 책임 문제에 많이 공감했다. 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처럼 인플루언서도 공동체 사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구독이 쌓여 영향력을 갖고 이를 통해 돈과 명예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꼭 정치적인 책임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기부를 하든 더 좋은 사회를 위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저는 정치색이 너무 묻어 있으니 비정치권에서 활동해온 친구와 함께 같은 뜻을 가진 새로운 유튜버도 양성하고 인플루언서의 사회적 책임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유스타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유스타즈 활동을 통해 건강한 온라인 생태계를 만들고 독립운동가들도 찾고 특히 학폭을 당한 피해 학생들, 법과 제도가 담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있는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노무현재단 황희두 이사 ⓒ투데이신문
노무현재단 황희두 이사 ⓒ투데이신문

세상을 못바꾼다면, 기득권의 눈엣가시라도 되기로 

Q.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가의 삶을 살게 된, 변화의 계기가 있나. 

프로게이머 은퇴 이후 공부를 하기 위해 들어갔던 템플턴 대학교에서 가짜 학위 사건*을 마주하게 됐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최소한의 미안함도 보이지 않는 학장의 모습에 소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을 기다리며 돈과 시간의 소모가 컸고 남은 건 주위 학생들의 비방뿐이었다. 답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인생 경험이라 여기고 소송을 그만두려 했는데 그때 담당 판사의 행동이 제 생각을 바꾸게 했다. 그날 판사는 높은 곳에 앉아 서류를 귀찮은 듯이 넘기며 제 나이를 거론하더니 여기서 이럴 바에 스펙이나 쌓으라고 말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더 멋있는 사람인데. 그 순간 판사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고 끝까지 싸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학장, 총장 모두 감옥에 가게 됐고 당시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사람들이 순응하며 사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해 보이겠지만,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세상을 뒤엎는 건 못해도 눈엣가시라도 돼보자고 생각했다. 

*미국 학교로 홍보했던 템플턴 대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정식 학사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현지 교육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비인가 대학이었다. 황 이사는 이에 의구심을 품고 등록금 환불을 요청했으나 오히려 학교측으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다고 판단,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사기 및 고등교육법 위반 혐의로 이 학교 총장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Q. 프로게이머 은퇴 이후 만났다는 채현국 선생과의 일화가 인상적이다. 

2015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당시 아버지가 생전에 서울 종로에서 고기집을 하셨다. 어느날 가게에서 일손을 돕고 있는데 멀리서 키가 작고 지팡이를 짚으며 허름한 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걸어왔다. 그때 아버지가 달려 나가서 굉장히 깎듯이 모시는 모습을 봤다. 사실 당시 저는 돈과 명예와 권력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던 때라 아버지가 왜 저 할아버지에게 달려 나가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분이 채현국 선생이었다. 그분 인생 이야기가 당시 제게는 충격적이었다. 선생은 한때 국내에서 세금 납부 2위를 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갖고 있던 재산을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민주화 운동하던 분들을 도우면서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런 삶도 있구나, 다른 세상도 있구나라는 사실이 제게는 굉장한 충격이어서 아버지께 소개를 부탁했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삶의 가치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Q. 청년문화포럼을 설립하기도 했는데 어떤 취지로 시작하게 됐는지.

2015년 말부터 2016년 초쯤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프로게이머 은퇴 이후 사회공헌활동을 하던 국도형PD가 진행하는 네이버TV 방송에 나갔는데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니 마음이 후련했다. 그러면서 저를 돌아보게 됐고 국 PD와 다른 청년들의 이야기도 들어보자는 의견이 모여 단체를 만들었다. 생각해보니 저는 오히려 입시 교육을 받고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의 삶을 잘 몰랐고 그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 지가 궁금했다. 동시에 저는 아버지의 인맥으로 소송 과정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다른 청년들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우리가 모여 활동하면 저를 도와줬던 어른들이 이 친구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처음에는 작은 모임이었는데 점점 커지면서 구성원이 200여명까지 늘어났다. 

Q. 포럼 운영 당시를 회상하며 ‘미시 파시즘’을 자주 언급했다.

단체가 성장하고 인원이 늘어나니 조직 확장에 대한 분위기가 조성됐고 수직적인 체계들이 많이 도입됐다. 그러다보니 일반 활동가로부터 단체 내부 소통이나 조직문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한창 그런 고민을 하던 때에 다양한 시민단체들도 많이 다니면서 자원봉사도 하고 활동가들과 소통도 했는데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조직 내부적으로는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곳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밖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안에서는 폭력적인, 이 또한 부조리인데 거대한 사회문제에 집중하면서 항상 후순위로 밀렸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우리 단체에서 새로운 실험을 해보자, 누구 돈을 받고 운영하는 것도 아니니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지나치게 이상적라는 말도 들었지만 자유와 수평적 문화, 수직적 문화 사이에서 모순도 느끼고 많은 공부가 됐던 시간이다. 

Q. 청년문화포럼은 이제 운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제가 정치권으로 넘어오고 다른 분에게 맡겼는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비대면으로는 활동이 힘든 조직이다보니 운영이 어려워졌다. 지금은 다른 모임을 하고 있다. 합리적 보수 포지션부터 뜨거운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까지 22명이 모여 다양한 어젠다를 공부하고 토론하고 있다. 우리는 이 모임을 작은 사회라 규정하고 활동하고 있다. 보통 비슷한 성향이나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경우가 많은데 각각의 모임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보니 우리끼리라도 한번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서로 대화가 안 된다고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어떻게 공감을 얻어낼 것인가를 공부하고 있다. 

노무현재단 황희두 이사 ⓒ투데이신문
노무현재단 황희두 이사 ⓒ투데이신문

청년 세대 정서와 언어 체화한 정치인 필요

Q. 21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으로 임명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현실정치를 직접 경험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제가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수단이라고 생각은 했다. 그래도 원했던 게 10이라면 2~3정도는 구현할 수 있을 거라 싶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잘 안 되면서 고민이 많았다. 그렇다고 언론에 비판 의견만 내는 것도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아 현실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3년여간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온라인 대응 심리전에 대한 얘길 강조해왔다. 그러나 벌써 다음 총선이 다가왔음에도 체감할만한 게 없을 정도로 변화가 없다. 거기에는 아까 말씀드렸던 프로게이머에 대한 편견 정서도 작용했다. 혹은 제가 당원들과 자주 소통하는 방향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후원 필요할 때나, 억울한 일이 있을 때만 연락을 받고 있다. 왜 그런지는 알고 있지만 평소에 제 얘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주고 찾아야 하지 않나라는 아쉬움이 있다. 

Q. 기성 정치인들의 변화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일부는 변화의 의지를 보이지만 옛 영광에 취한 사람들이 정치권에 많다. 프로게이머 시절 ‘옛 영광에 취한 자는 죽은 자다’라는 말을 들었다. 연예인도 정치인도 비슷하다. 최전성기 시절을 곧 나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모습을 부정하면서 소위 꼰대가 된다. 몇선을 했는지, 누구를 모셨는지는 지금과는 상관이 없는데, 과거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청년들의 의견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Q. 청년의 정치 참여는 어떤 측면에서 새로움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일단 구분지어서 봐야한다고 보는 게, 언론에서 자주 쓰이는 청년 정치는 틀 안에 누군가를 끼워 넣는 느낌이다. 그 틀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청년이 희한하게 소비되고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는 청년 정치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다만 정치권에 생물학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그들이 청년 세대의 정서와 언어를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정서와 언어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청년들에게 온라인 문화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나’ 자체다. 여기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온라인 속도전에 대응하려면 젊은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방식대로 거대담론을 찾거나 논평에 치우치는 활동으로는 자신의 색깔을 잃기 쉽다. 

Q. 2000년대 초반 열린우리당 사례도 있고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 자체가 새로운 일은 아니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다고 보는지. 

당시는 이른바 거대악이라고 표현할만한 대상이 비교적 또렷했던 시기다. 사람에 따라 찬반 의견은 나뉘었지만 쟁점이 명확했다. 지금은 사람들을 단순한 범주로 묶을 수가 없다. 최근에도 고등학교 강연을 다녀왔는데 유튜브를 보냐고 물어보니 거의 다 본다고 대답했지만 시청하는 분야가 천차만별이었다. 이제는 수백만명의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가 누군가에게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런 사회 속에서 정치적 메시지가 파고들어가기는 더 어려워진 것 같다. 대중이 분산화 된 가운데 관심사를 최대한 끌어 모아 누구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 보니 같은 청년 정치라도 역할과 포지션이 달라졌다. 

Q. 새로운 청년 정치인도 기성의 관습에 젖어들기 쉽다. 어떻게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먼저 끊임없는 자기 객관화가 필수다. 프로게이머 시절을 생각해보면 프로가 되고 스타 플레이어들과 함께하면서 연습생 시절을 잊고 불과 얼마 전까지 같이 연습했던 친구들을 무시했다. 일부러 건방져지려던 게 아니라 그 생활에 젖어들었다. 그때 생각을 해보면 여의도에 있던 사람들도 왜 변하는지 이해가 된다. 어떤 대표를 모셨고 누가 대통령이 됐고 청와대에 간 사람들을 알고 있으니 내 신분이 상승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자기 객관화가 안되면 주변 인맥을 팔면서 자신의 실력이 커졌다는 착각을 한다. 이게 중독성이 있다. 끊임없는 메타인지를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은 끝없는 토론과 성장을 위한 공부다. 여의도에서도 술자리 몇 번하면 다양한 정보들이 모이면서 그것 역시 자신의 실력이라고 착각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다. 정보들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고 날 포지셔닝 하느냐가 중요하다. 끝으로 같은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느슨한 연대를 통해 세력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저도 당원들과 온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공부모임을 이어가면서 능력 있는 청년들을 찾고 추천도 하고 있다. 

Q. 한 유튜버의 설문조사에서 기대되는 민주당 청년 정치인 1위로 꼽혔다. 그럼에도 선출직에 나설 생각은 없다고 했는데 지금도 여전한가. 

자기 객관화를 말했는데 외부에서 그런 평가들을 받게 되면 많은 경우 “내가 시대를 바꿀 영웅인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일단 저는 그런 것은 거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냉정하게 제게는 그런 실력이 없고 앞으로 그럴만한 능력이 생긴다 하더라도 제가 있어야 할 포지션을 명확히 염두에 두고 있다. 좀 전에 말씀드렸던 온라인 문화 부문에 제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법과 제도만으로는 개선이 어려운 부분도 있고 문화 전쟁이라는 점에서 IT, AI를 활용해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그럼에도 이 중요성이 늘 현실정치에서 후순위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내가 할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또 좋은 청년과 인물이 있으면 계속 대중들과 당원들에게 알리는 역할도 하고 싶다. 그것이 제가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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