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SG네트워크‧고철 연구소 김경식 대표
투자자 기준 맞춰 평가 점수만 높이려는 것 문제
전기 판매시장 개방해야 스마트 그리드 구축 가능
탄소중립 위해 재생에너지 가격 경쟁력 확보해야
정치논리에서 벗어난 에너지 독립규제기관 필요

ESG네트워크‧고철 연구소 김경식 대표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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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기후문제는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위기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은 지난 2015년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지구 평균 온도의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올해 5월 유엔(UN)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2027년 안에 66%의 확률로 지구의 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구의 온도가 1.5도 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문가들은 3억5000만명의 도시인구가 물 부족을 겪게 되고 해수면 상승으로 다양한 생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식물의 8%, 곤충의 6%, 척추동물의 4%가 서식지를 잃고 해양에서는 산호초의 최대 90%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맞이하게 될 경제‧사회적 피해 역시 극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단순히 듣기 좋은 말들만 모아 놓은 구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나온 전략이다. 금융투자자들은 기후위기로 경제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탄소중립 추진 여부를 기준으로 투자 대상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있어야 기업도 있다는 기본적인 원리를 위해서라도 ‘착한 기업’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국에서 ESG는 아직 보여주기식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SG 중 사회적 가치와 거버넌스(지배구조) 부문에서는 부족함이 많음에도 금융투자자들이 주도하는 기준에만 맞춰 좋은 평가 점수를 받는 데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진정한 ESG의 구현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한 탄소중립의 구현이 중요한데 정책적으로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투데이신문>은 신간 ‘착한 자본의 탄생’의 저자 김경식 대표를 만나 착한 기업에 대한 의미와 탄소중립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ESG네트워크‧고철 연구소 김경식 대표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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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는 자본주의의 자기 진화 과정”

Q. 2020년 현대제철 기획실장 자리를 내려놓고 연구공간 고철(高哲·古鐵) 연구소를 만들었다. 어떤 공간인가.

회사 재직 시절 제 업무는 기획과 홍보, 대관이었다. 정부, 국회, 시민단체, 언론들을 두루 만났다 보니 그런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서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 넓혀나가고 퇴직 이후에도 그런 활동을 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ESG 컨설팅도 병행하고 있는데 제가 주로 하는 것은 재생에너지, RE100과 관련한 분야다. 기업들의 자문도 하고 보고서도 만들고 있다. 

Q. 최근 출간한 ‘착한 자본의 탄생’을 집필한 계기가 있는지. 

회사에 있을 때 탄소배출권 문제라든지 탄소중립, 중대재해 등 여러 가지 이슈가 많았다. 각 사안을 단순히 현상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하다보니 다양한 책과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이후 칼럼을 쓰게 됐는데 그런 글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책이 만들어 졌다. 

Q. ESG가 주요 문제로 대두된 사회적 배경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ESG는 자본주의의 자기 진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1970년대 밀턴 프리드먼의 주주 중심주의에 대한 우려는 이미 존재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인데 국내에는 사회공헌으로 많이 강조가 됐고 봉사나 기부활동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주주 자본주의가 가속화 되면서 2007년~2008년 금융위기가 시작됐고 직접적인 기업활동과 연관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자는 취지의 CSV(공유가치 창출)가 등장했다.

그럼에도 금융위기로 인한 양극화 현상이 계속됐고 특히 금융자본가들이 기후문제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당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금융자본가들에게 스스로 변화의 대안을 내놓으라고 했는데 ESG는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유럽 같은 선진사회는 지배구조 부문은 이미 상당히 앞서 있었지만 환경문제만큼은 금융자본이 봐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기후위기, 식량문제 등의 리스크에 대처하지 못하면 앞으로 힘들 수 있다는 공감대가 생겨나면서 ESG가 등장했다.   

Q. 한국의 ESG는 환경 부문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는데.

금융자본이 환경 부문에 대한 평가를 주도하고 기준 등급에 들어가는 기업에만 투자를 하겠다 하니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ESG를 평가할 때 환경 부문에 배점을 많이 주고 있다. 이로 인해 환경 부문에서만 평가를 잘 받아 종합점수를 높이려는 문제가 생긴다. 한국의 경우 유럽 국가들에 비해 사회적 가치와 거버넌스가 매우 취약한데 이게 상대적으로 묻혔다. 주주중심 자본주의에서 한 사회의 가치사슬에 묶인 많은 사람들이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이해관계자 중심 자본주의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거버넌스 부문이 중요하다. 환경 문제를 정말로 잘 해결하기 위해서도 거버넌스가 중요하다. 

ESG네트워크‧고철 연구소 김경식 대표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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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전환 위해 한전 독점 해결해야

Q. 철강산업에 오랫동안 몸담으면서 한국전력 등 에너지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지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기를 가장 많이 쓰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대제철이 전기를 제일 많이 썼다. 고체를 녹이는 데는 전기 에너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이 전기요금을 많이 내다보니 전력산업구조, 전력시장, 전기요금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다가 유럽 민간단체에서 RE100이나 탄소중립 이야기가 나오면서 재생에너지, 저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이 절대적으로 중요해져 관련한 고민을 이어왔다. 

Q.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한전으로 대표되는 에너지 독점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정부는 20여년전부터 재생에너지 강국이 되겠다고 밝혀왔다. 그 일환으로 2010년에는 스마트 그리드*를 2030년까지 전국에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잘 되지 않았다. 서울, 광주, 제주 모두 아직까지 시범사업만 하고 있다. 스마트 그리드 구축이 잘 안 되는 이유는 한전이 전기 판매시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을 독점하고 있으니 ESS(에너지저장장치)와 AMI(스마트 검침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직접 진행해야 하는데 한전에 돈이 없다.

스마트 그리드가 가능하려면 전기 소매 판매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한전의 민영화와는 다른 얘기다. 시장을 개방하면 좋은 배터리와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사람이 시장에 들어와 활성화될 수 있다. 지난 5월 여야 합의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이 통과 됐는데, 특별법이 1년 뒤 시행되고 이걸 어떻게 잘 운영하느냐에 따라 분산 지역 안에서 민간 기업의 에너지 직거래가 일어나는 등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낮에는 전기가 부족하고 밤에는 전기가 남아도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전기 및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 전력망을 지능화·고도화하는 것. 태양광, 풍력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의 경우 간헐성과 변동성을 한계로 갖고 있는데 에너지 저장(ESS)과 계측(AMI) 기술을 기반으로한 스마트 그리드를 통해 효율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  

Q. 에너지 시장이 개방됐을 때 소비자들이 갖는 가격상승에 대한 불안감도 있을 것 같다. 

미국의 경우 판매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지역의 에너지 가격은 상당히 적게 상승하거나 오히려 낮아졌다. OECD 국가 중에 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있는 나라도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밖에 없다. 시장이 개방되면 소비자는 한전의 시스템을 쓸 것인지, 새로운 사업자의 시스템을 쓸 것인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금융이나 택배의 경우처럼, 국영 우체국을 운영하면서도 민간과의 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늘리고 가격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 

Q. 기후위기에 대한 학자들의 우려는 심각한 수준이다. 탄소중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나. 

독일 같은 경우 석탄이나 가스에너지보다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훨씬 더 싸다. 영국도 미국도 마찬가지다. 그리드 패리티*가 중요한데 그 시점을 넘어서면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경쟁력을 갖게 된다. 앞서 언급한 국가들은 이미 그렇게 됐고 향후 수소 경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아직 이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아직은 화석에너지가 가격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낮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해상풍력으로는 정부도 많은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단가를 낮추려고 노력하면 탄소중립이 불가능한일은 아니다. 해상풍력 특별법에 대한 여야 합의안도 거의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가 화석에너지의 발전단가와 동일해지는 시점. 

Q. 에너지 독립규제기관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언급했다. 역할은 무엇이며 왜 도입이 필요한가. 

우리나라의 문제는 에너지 문제가 계속 정치논리에 휘둘려 정부의 정책의 간섭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문재인 정부 때는 탈원전이 쟁점이었고 지금 정부에서는 원자력의 부활과 태양광 비리가 문제되고 있다. 전기위원회가 산업부 산하에 있으니 정권 편향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이걸 독립 시켜서 자체 예산과 인력을 갖고 전력 시장을 장기적으로 내다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에너지 독립규제기관이다.

쉽게 말해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의 역할과 비슷하다. 금리를 결정할 때 정부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한국은행이 독립적으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력에 대한 장기전략, 수요에 의해 공급이 이뤄지는 시장 형성 그리고 그 안에서 가격은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것들을 독립된 위원회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SG네트워크‧고철 연구소 김경식 대표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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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욕망’ 탐욕으로 흐르지 않도록 제어해야

Q. 자본주의가 진화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정착이 됐다. 간단히 말하면 노동자와 자본가 계급의 분화가 이뤄지고 이윤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산주의가 나왔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억제시키면서 무너졌다.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식 사회주의도 나왔고 CSR, CSV, ESG도 탄생했다. 자본은 가만히 있으면 도태된다. 계속 움직여 불어나야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기업은 매우 훌륭한 제도이지만 운용하는 주체가 탐욕으로 빠지지 않게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계속 사회진화에 맞춰서 자기 발전을 해나가야 한다. 

Q. ESG가 기업의 욕망을 제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탐욕과 욕망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욕망은 의욕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 다만 욕망이 탐욕으로 빠지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양극화가 심해진 것은 자본이 탐욕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미국 월가에 대한 갈등도 금융위기로 인한 양극화가 원인이었다. ESG는 사회적 문제라든지 거버넌스 부문에서 탐욕을 제어하고 이해관계자들과 상생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책에서 말한 착한 자본은 내 가치사슬상의 이해관계자와 공생하는 자본을 말한다. 나쁜 자본은 가치사슬상의 이익을 기업의 오너가 개인적으로 착복하는 것이다. 착한 자본의 탄생을 위해서는 정부, 기업, 시민단체, 언론이 긴장된 균형관계를 가져가는 것도 중요하다. 

Q. 착한 자본으로 파타고니아 사례를 언급했다. 제2, 3의 파타고니아도 실현 가능할지. 

파타고니아는 분명 좋은 사례다. 선행을 많이 하는 가운데 회사가 성장했고 안에서 분배도 잘 이뤄지고 사회공헌도 많이 하고 있다. 파타고니아는 이해관계자와 더불어 가는 것을 실천하고 있고 그런 점은 다른 기업들도 배워야 하는 부분이다. 다만 파타고니아는 기업 가치가 4조원에 이르는데도 상장을 하지 않았다. 상장을 하지 않으면 자본의 유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모든 기업이 그렇게 갈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나 GE 정도로 회사가 커지면 자기자본만으로는 운영할 수가 없다. 자본이 활발하게 움직여야 전체적인 부가 커지고 문명의 질도 높일 수 있다. 그 안에서 양극화와 편중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Q. 착한 자본의 탄생을 위해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ESG 워싱을 제대로 경고해야 한다. 그린 워싱 문제들을 발굴하고 취재해서 비판해야 한다. 기업이 탐욕으로 빠지지 않고 이해관계자와 상생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계속 지적해줘야 한다. 프랑스 작가 필리프 아기옹의 저서 ‘창조적 파괴의 힘’이라는 책에서도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 단체의 균형을 얘기하는데 내 생각과 같다. 기업에 대한 비판과 긴장적 균형관계를 가져가기 위해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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