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30년 이상 대를 이어 장인정신을 지키는 상점들이 밀집한 곳이 있다. 경기 김포시 북변동의 ‘백년의 거리’다.‘백년의 거리’는 1000년이 넘은 향교, 124년 된 교회, 118년 된 초등학교, 108년 된 성당 그리고 100년 넘게 이어져 온 민속 5일장 등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문화유산이 반경 500m안에 모여 있어 붙은 이름이다.이 곳에는 29년째 영업 중인 오달통 분식, 39년째 영업 중인 ‘박천순대국’, 어머니와 딸이 대를 이어 함께 운영하고 있는 ‘영미용실’, 50년째 칼로 도장을 파는
백운산장, 90년 넘게 북한산서 희로애락산악인들에게 고향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기부채납 약정 종료로 국가시설 귀속 위기 놓여산장지기 “죽는 날까지 산장 지킬 수만 있다면”【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파란 하늘 아래 굽이굽이 펼쳐진 바위가 절경을 이루는 북한산. 가을을 맞아 붉은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이 어우러진 알록달록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북한산에는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북한산의 정기를 온몸으로 흠씬 느끼며 정상을 향해 걷다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잠시 숨 돌릴 장소가 떠오르기 마련. 이때 산 좀 타봤다는 등산객이라면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이미 수년 전에 폐장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한 놀이공원에 최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희한한(수정할 것)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곳은 바로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폐 놀이공원 ‘용마랜드’다. 여기저기 부서지고 녹이 슬어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놀이기구들 뿐인 용마랜드에는 일 평균 40~50명의 방문객들이 찾아오고 있다.대체 사람들이 문 닫은 놀이공원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3일 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용마랜드로 향했다.조용한 주택가 지나 푸른 나무들이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세월호가 침몰한 사고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 팽목항. 미수습자 9명을 기다리는 가족들은 지난 3년간 진도군 측이 제공해준 이동식 주택 10개동에서 생활하며 밤마다 바다를 향해 통곡했다. 때문에 이곳은 ‘통곡의 항구’, ‘기다림의 항구’이라 불려왔다.팽목방파제에도 수많은 노란 리본과 플래카드, 조형물들이 설치됐다. 조그마한 컨테이너에는 분향소도 마련됐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팽목의 날카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각자 세월호를 기억했다.그리고 지난달 31일 세월호가 목포로 떠났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머물
【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망원동 주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진관이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건물 밖에 사진들을 잔뜩 늘어놓은 채 시민들의 눈길을 제대로 끄는 사진관. 이 자리에서만 22년째, 그리고 망원동에서만 40년째 자리를 지켜온 ‘행운의 스튜디오’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수북한 턱수염을 자랑하던 이곳 사진사 김선수(68)씨는 ‘털보 아저씨’라 불리며 동네 터줏대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그런데 돌연 사진관 쇼윈도에 3월 30일까지만 영업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붙었다. 최근 SNS 등을 통해 망원동에 외지인들의 방문이 늘
1980년대 최고 전성기 누렸던 집창촌 ‘청량리 588’성매매방지특별법 이후 쇠퇴…현재 4개 업소 남아2021년까지 랜드마크타워·주상복합건물 건설 예정오는 3월 강제철거 시작…4월까지 이주 완료 계획【투데이신문 최소미 기자】 맑고 서늘한 바람이 분다는 뜻에서 이름 붙여진 청량리(淸凉里). 그러나 여기에 ‘588’이라는 숫자가 붙으면 소위 ‘환락’의 대명사가 된다. 국내에서 가장 큰 집창촌, ‘청량리 588’이다.이미 20여년 전부터 재개발 및 철거 논의가 오가고 무산되길 반복해왔던 이곳이지만 이제는 본격적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인천에는 수많은 사진가들이 카메라에 담고 싶어 욕심내는 숨은 명소가 있다. 목재공장 굴뚝과 바다 뒤로 떨어지는 낙조가 아름다운 ‘북성포구’다.1호선 서쪽 끝 인천역에서 15분 남짓 걷다보면 바람을 타고 점점 짙어지는 비릿한 바다냄새가 북성포구에 다다랐음을 알려준다. 북성포구를 끼고 왼쪽에는 목재공장이, 오른쪽에는 제분공장이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 공장을 따라 입구에서부터 약 200m 쯤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북성포구의 모습이 나타난다. 기자가 도착했을 때는 물이 모두 빠져나가 갯골이 깊게 파인
【투데이신문 정지훈 기자】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112-12. 이곳에 25년째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헌책방이 있다.신촌에서 홍대로 넘어가는 길목, 현관 입구에서부터 수북이 쌓여있는 헌책들과 LP판들이 가던 길을 멈추게 하는 이곳은 ‘공씨책방’이다.책을 무엇보다 아끼고 사랑하던 공진석씨가 1972년 서울 회기동에서 시작한 공씨책방은 1990년 세상을 떠난 공씨를 대신해 1991년부터 처제 최성장 씨와 조카 장화민 대표가 신촌에서 25년째 운영하고 있다. 근처 대형문고들의 매서운 압박에도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이곳 공씨책방이 임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우리 선조들의 건축적 독창성과 인문학적 소양이 고스란히 깃든 공간이 있다. 바로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 소재한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71호 ‘조견당(照見堂)’이다.조견당은 현 주인인 김주태(55)씨의 10대조인 김낙배 선생이 이곳에 터를 잡고 순조 27년인 1827년에 지은 중부지방의 대표적 반가(班家)다. 행랑채와 동별당, 서별당, 바깥 사랑채와 안 사랑채, 안채, 사당 등으로 이뤄졌으며 규모는 120칸에 달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 다사다난 세월 속에 대부분이 소실된 조견당은 안채만이 예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혜화동에서 ‘보성문구사’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어”대한민국 문구점의 오랜 역사가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종로구 혜화동 혜화초등학교 맞은편에 자리한 ‘보성문구사’다. 보성문구사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문구점으로 잘 알려졌다.미아리 영훈중·고등학교 후문에서 처음 문구점을 시작했다는 보성문구사의 터줏대감 이씨(77) 할아버지. 그는 경신중·고등학교, 구 보성중·고등학교(현 종로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앞을 거쳐 현재 혜화초등학교 앞에서만 20년 가까이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다. 문구점계의 살아
【투데이신문 정지훈 기자】인천 부평구 십정동에는 90년대 후반 어디쯤에서 시간이 멈춘듯한 옛 동네가 있다.젊은이들에게는 영화 , 드라마 등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도심 속의 관광지이자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청춘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이곳. 바로 십정동 달동네 ‘열우물 마을’이다.‘열 개의 우물이 있다’라는 의미를 가진 옛 정취 가득한 이 마을은 논란을 빚던 재개발이 최근 결정됐다. 내년부터 이곳은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집들 대신 아파트 5600여 세대가 들어설 예정이다.언제까지고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죽은 시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곳이 있다. 바로 50년 넘게 전통을 유지하는 서울 종로구 예지동 시계골목이다. 이 골목은 80~90년대만 해도 전성기를 누리며 번성했다. 하지만 2006년,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상인의 절반 이상이 터전을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재개발은 무산됐지만 상권은 예전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래도 시계수리 장인의 실력과 다양한 제품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은 꽤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시계는 예지동에서 고칠 수 있다”는 전설은 여전히 유효하다.추억과 전통, 장인이 머무는 골목을 언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43년 동안 서울의 명물로 자리매김한 곳이 있다. 바로 노량진수산시장이다. 1971년 1월에 세워진 노량진수산시장은 하루 평균 이용객이 3만여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국내 최대 규모의 수산물전문 중앙도매시장으로 불린다.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지닌 수산시장이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12년 수협이 시설 노후화에 따른 고비용, 저효율을 이유로 새 건물을 지어 장사할 공간을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수협 측은 현대화사업의 명목으로 시장 옆 사업부지 4만450㎡, 전체면적 11만8346㎡의 지하 2층, 지상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의 옥살이를 뒷바라지하던 가족의 한이 고스란히 담긴 곳. 바로 서울 무악동 옥바라지 여관 골목이다. 긴 세월 꿋꿋하게 버텼던 옥바라지 여관 골목이 곧 사라진다. 바야흐로 1907년, 일제 조선 통감부는 당시 ‘경성 감옥’을 지었다. 경성 감옥은 1923년에 서대문형무소로 이름이 바뀐다.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에서 힘겨운 옥살이를 했다. 이 옥바라지 여관 골목이 생긴 것도 그 무렵부터다. 서대문형무소가 생기면서 옥바라지를 위해 가족들이 몰려들었고 이후 여관 골목이 형성됐다. 서울에 있던
추억이 서린 곳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는 작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에 기자가 역사와 추억이 가득한 공간으로 찾아갑니다. 여러분의 아쉬움을 반영해 셔터를 누르고 자판을 두드리겠습니다. 사라져가는 것, 잊고 지내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 장면’을 뜻하는 ‘Last Scene’ 연재를 시작합니다.【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1990년대부터 명맥을 유지해오던 서울 마포구 아현동 포장마차촌이 3개월여 뒤면 사라진다. 일부 주민의 잇따른 민원으로 마포구청이 자진 퇴거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이곳은 동네 주민의 사랑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