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전장연 ‘제6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전날 서울 시청역 인근서 노숙집회 후 집회 진행
“이동권·지역사회서 함께 살아갈 권리 보장해야”
활동가 약 200명 참석…경찰 등이 현장 에워싸
열차 지연·연행은 없어…탑승 제지로 충돌하기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27일 오전 8시 서울 1호선 시청역 5-4 승강장에서 ‘제6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 중인 가운데, 그 주변을 경찰, 취재진 등이 둘러싸고 있다.&nbsp;ⓒ투데이신문<br>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27일 오전 8시 서울 1호선 시청역 5-4 승강장에서 ‘제6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 중인 가운데, 그 주변을 경찰, 취재진 등이 둘러싸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출근시간대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서 1시간 40여분 동안 지하철 탑승 시위 펼쳤다. 수많은 사람으로 뒤엉킨 현장 곳곳에서 전장연 관계자들과 경찰, 서울교통공사 측이 충돌하기도 했다. 다만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없었고, 열차 지연도 발생하지 않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27일 오전 8시 서울 1호선 시청역 5-4 승강장에서 ‘제6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진행했다. 이들의 출근길 열차 탑승 시위는 지난달 29일 이후 26일 만이다.

이날 현장에는 휠체어 장애인 30명을 비롯한 활동가 200여명이 모였고, 이를 두고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불법 시위로 판단해 다수의 기동대를 배치했다. 이들은 주황색 피켓을 전투복처럼 입은 뒤 윤석열 대통령과 서울시 오세훈 시장을 규탄하는 손 피켓을 들고 “장애인도 권리가 있다”라고 목놓아 소리쳤다.

전장연은 “오는 4월 10일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선거 운동이 시작되고 있지만 여전히 UN(국제연합) 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돼 있는 장애인권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려오고 있지 않다”며 “출근길 집회는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 같은 거주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이번 총선을 통해 정치가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시민불복종행동”이라고 했다.

특히 이들은 오 시장이 △권리중심일자리 최중증장애인노동자 400명 해고 △UN 장애인권리협약에서 명시한 탈시설 권리 부정 △장애인인권영화제 폐지 등으로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 권리조차 빼앗고, 전장연에 대한 탄압을 이어가며 활동가들을 강제로 퇴거시키는 것에 이어 강제 연행까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7일 오전 8시 서울 1호선 시청역 5-4 승강장에서 진행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제6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에서 참여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27일 오전 8시 서울 1호선 시청역 5-4 승강장에서 진행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제6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에서 참여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경찰·공사가 겹겹이 에워쌓은 시위 공간

선전전 시작 15분 전, 시청역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건 수많은 인파였다. 집회가 예정된 5-4 승강장에는 사람으로 가득 찬 큰 원이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 직원들과 경찰들이 선전전 참가자들이 집결한 공간을 두세 겹으로 단단히 에워싸고 있었다. 이로 인해 약 열차 탑승구 4개를 차지한 공간은 집회 참가자, 경찰, 공사 직원, 취재진, 일반시민들이 잔뜩 뒤엉키게 됐다.

심지어 집회 인근에는 시민들의 통행을 안내하는 인원까지 배치돼 있었다. 결국 인파 주변은 딱 성인 남성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비좁은 통로만 남게 됐다.

지하철 탑승 시위에 참여하러 온 사람은 물론 취재진도 집회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한 됐다. 인파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려 해도, 단단히 막힌 사람 장벽은 물론 경찰 방패로 집회 공간을 둘러싼 탓에 접근조차 어려웠다. 비장애인 활동가들은 휠체어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틈으로 발을 욱여넣으며 겨우 자신의 공간을 지켰다.

휠체어 탄 참가자들은 움직이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이들이 이날 끊임없이 외친 ‘장애인도 이동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가 너무나도 쉽게 무력화됐다.

이에 그들은 목소리를 내는 것을 택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멈춰 마이크를 이용해 정부를 향해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지난 23년 동안 외치고 있다. 저희도 이동하고 싶고, 교육받고 싶다. 지역에서 일하며 함께 살아가고 싶다”며 “이제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어 “오는 4월 10일 총선에서 장애인 권리를 책임질 수 있도록 장애인 권리 보장을 말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해 달라”고 덧붙였다.

27일 오전 8시 서울 1호선 시청역 5-4 승강장에서 진행된 ‘제6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참석해 있다. ⓒ투데이신문
27일 오전 8시 서울 1호선 시청역 5-4 승강장에서 진행된 ‘제6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참석해 있다. ⓒ투데이신문

하지만 공사와 경찰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아 갔다. 그들이 입을 열고 발언할 때마다 더 큰 음량의 공사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공사는 “역 시설 내 폭언 또는 고성방가 소란을 피우는 행위, 철도종사자의 직무상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방해하는 행위, 광고물 배포 행위 등은 철도안전법 제48조, 제49조 및 철도안전법 시행규칙 제85조에서 금지하고 있다”며 “특정 장애인단체는 지금 즉시 시위를 중단하시고 역사 밖으로 퇴거해 주시기 바란다”고 공지했다.

그러면서 “퇴거 불응 시 공사는 부득이하게 열차 탑승을 거부할 수 있으며, 관련 법령에 따라 벌금형 및 과태료 부과 대상임을 알려드린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경고 방송’에 묻혔고, 그 근처를 지나가는 시민들은 결국 전장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됐다. 출근길을 불편하게 하는 고성과 인파에 인상을 찌푸리거나 잔뜩 움츠린 채 역을 빠져나갈 뿐이었다. 

27일 오전 8시 서울 1호선 시청역 5-4 승강장에서 진행된 ‘제6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가 바닥에 누운 채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br>
27일 오전 8시 서울 1호선 시청역 5-4 승강장에서 진행된 ‘제6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가 바닥에 누운 채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퇴거·열차 지연 없었던 ‘100분’ 시위

이날 공사가 시위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박 대표가 휠체어에서 떨어져 약 10여분간 바닥에 누워서 연설하기도, 공사와 경찰이 지하철에 탑승하려는 장애인 활동가들을 막아서면서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전장연 관계자들과 공사 등이 서로 몸싸움을 벌이며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주변으로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현장은 혼란을 빚었다. 전장연은 “폭력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이날 ‘시민 호소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장연은 “장애인 권리를 높일 수 있도록 장애인 권리에 투표해 달라”,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은 장애인도 시민으로서 이동하는 시대로 향한 권리 투쟁이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기 위한 행동이다”, “갈라치기, 혐오 정치 멈춰달라”, “윤석열 대통령, 오세훈 시장을 심판해 달라”고 주장했다.

27일 오전 8시 서울 1호선 시청역 5-4 승강장에서 진행된 ‘제6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가 손 피켓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27일 오전 8시 서울 1호선 시청역 5-4 승강장에서 진행된 ‘제60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가 손 피켓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다만 이날 공사와 경찰은 전장연 측에 수차례 퇴거 요청을 했으나, 실제로 강제 퇴거 조치나 현행범 체포는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열차 지연이나 무정차 통과 조치도 발생하지 않았다. 집회가 진행되는 1시간 40분 동안 지하철은 시간에 맞춰 정상 운행됐고, 승·하차를 위해 잠시 멈춘 사이 열차 안 시민들은 승강장에서 들리는 큰 소리에 이따금씩 현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차한 승객들은 경찰의 엄격한 통제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이후 오전 9시 44분경 박 대표를 비롯한 전장연 활동가들은 자진 해산했다. 이들은 같은 날 오전 11시부터 서울시청 서편에서 ‘2024 총선 장애인권리투표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한편 전장연은 지난 26일 서울시청 동편에서 ‘야간 문화제’를 개최한 뒤 오후 9시경부터 시청역 역사 내에서 노숙 집회를 펼치기도 했다. 당시 이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 서울형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400명 해고 철회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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