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연재를 시작하며

모든 것은 P의 한마디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사장님을 좋아한대.”

뭐, 그럴 수도 있다. 아름다운 30대 후반의 이혼녀가 자기가 다니는 직장의 상사를 짝사랑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유부남인데도 말이다. 뭐 그 정도까지는 가끔 봐왔던 스토리가 아닌가. 그러나 그녀의 사장님은 자신을 그 회사에 취직 시켜 준 사촌 언니의 남편이었다. 사촌 형부라...

P는 원치도 않는 비밀을 알게 되었고 또 그걸 지켜야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 외쳐버린 거였다. 나는 P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의 조언을 했다. 대화에 동참한 나머지 멤버 P1 또한 거들었다. 그러다 주제는 자연스럽게 온갖 종류의 연애 얘기로 흘러갔다.

사랑은, 연애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달콤한 주제다. 내 직업인 성우의 세계에서는 밥줄과도 직결되어있다. 로맨스가 없는 극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넌 연애도 한 번 못 해봤니?”

“시집가서 애 한 번 낳고 그걸 키워봐야 인생도 알고 목청도 트이지.”

전속 성우 시절, 선배들의 충고를 귀 아프게 들으며 온갖 촉각을 곤두세우고 연구하고 골몰했던 주제 ‘연애’에 대한 나의 25년 내공이 그 자리에서 방언처럼 터져 나왔다.

“와아~, 언니, 연애에 대해서 글을 한 번 써 봐요.”

P가 말했다.

“그래, 그래, 한 번 써봐.”

P1도 말했다.

여기서 이 P1의 존재가 중요하다. 그녀는 다름 아닌 <투데이신문> 발행인 박애경 여사.

결국 나는



이란 얘기다.

하지만 나는 연재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낙하산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게 될까 두렵지 않았다. 적어도 사랑에 대해서만큼은 할 이야기가 많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내 얘기가 다 떨어지면 최측근들의 경험을 알파벳 이니셜을 빌어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게다. 내 주변은 더 이상 연애를 꿈꿀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이가 대부분이지만 연식이 오래인 만큼 무궁무진한 경험담들을 가지고 있다. 또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이 나이에도 싱글인 벗들이 제법 존재한다. 나이 어린 친구들도 가만있지 않을 테고... 내 이야기 속으로 송환할 측근들이 꽤 있단 말이다. 경계성 인격 장애자 S는 아마도 가장 자주 등장하겠지.

각설,

‘40대 아줌마가 쓰는 사랑이야기라니...(만으로 48, 세는 나이는 50이다!) 웩 구역질난다.’고 하지 마시라. 젊은이라면 분명 얻어갈 것이 있을 것이고, 나의 동년배나 선배님들이라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해드릴 게 분명하다. 운이 좋다면 당신의 사랑을 살짝 도울지도 모르고 말이다.

클린콘텐츠 매체인 <투데이신문>에 누가 되지 않도록, 비록 아프더라도 맑고 아름답고 희망적인 사랑 이야기들로 꾸며볼 욕심이다.

 

▲ ⓒ게티이미지뱅크

<제1화> 그를 만나고 말테다!

까짓 삐삐쯤 맘만 먹으면 마련할 수 있었다. 천문학적인 가격을 자랑하던 벽돌 핸드폰과는 달리 작고 가볍고 합리적인 가격의 물건이었으니까. 문제는 내가 속한 집단이었다. 당시의 KBS 성우 극회실은 선후배간 군기만 놓고 보면 아나운서실, 개그맨실 쯤은 우스운 곳이었다. 그러니 아직 삐삐가 없는 선배들이 그득한 상황에서 막내 전속 기수가 허리춤에 삐삐를 찬다는 것은 ‘제 남은 인생 좀 팍팍 짓밟아주세요’라고 만방에 애걸하는 자해 행위와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왕의 남자> 시대의 광대 공길이나 오늘 날 연예기획사의 연습생들이나- 예인(藝人) 집단의 신입은 단 한 가지 공통된 지침을 하달 받는다.

‘절대 튀지 말라’

타고난 피가 일반인과 달라 그런 집단에 들어온 이들에게 ‘절대 튀지 말라’니! 어쨌든 나는 튀어서는 안 되었고 하물며 입사 직후부터 연애질이나 한다는 손가락질만은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 만나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선 연락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쩌나 어쩌나...

그러다 도서관을 생각해 냈다. KBS 본관 1층의 자그마한, 그러나 깊은 우물 속처럼 고요하고 고요하고 고요하고 또 으슥했던 도서관. 다행이 그는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우리는 절대, 아무도 빌려보지 않을 것 같은 두터운 책을 한 권 정해 번갈아가며 쪽지를 끼워 넣었다.

“본 로 5~4 11:25 지하?”

‘11시 25분, 로비에서 가까운 본관 5층과 4층 사이 계단에서 우연인 척 만나 함께 지하 1층에 있는 구내식당에 가면 어때?’라는 뜻이다. 만약 사정이 있어 그 시간에 갈 수 없다면 또 다시 쪽지로 답을 해야만 했다.

그 때 그와 나눈 쪽지는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 두 사람의 손 때로 차츰 길들여져 갔던,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그 두터운 책의 묵지근한 느낌, 약속된 페이지를 찾아 책장을 넘길 때 고요한 도서관에 주책없이 울려 퍼지던 내 심장의 쿵쿵 소리만이 아련하다.

어쩌면 세월이라는 편집의 달인이 조바심 내며 안달하던 기억은 지워버리고 달달했던 기억만 남겨둔 지도 모르지만 아무렴 어떤가. 25년이 흐른 지금,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 때 나는 무지하게 행복했다고. 상대가 누구였건 사랑에 막 빠져든 순간만큼 행복한 때는 없다. 그러니 그들이 준 아픔조차도 감사해야하며, 혹여 내가 준 상처가 있다 해도 그 또한 용서 받아 마땅하다고 여긴다.

지난 20~30년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하고 편리해졌다. 심지어 스마트폰이라는 요물은 우리들 몸의 일부처럼 되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승리자 스마트폰도 가질 수 없는 능력이 하나 있다. 기다림, 느림, 그런 시간들이 만들어 내는 설렘의 축복.

▲ ⓒ게티이미지뱅크

만약 가상현실 덕분에 원하는 곳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나는 25년 전 그날의 KBS 본관 5층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고 싶다.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마치 다른 차원으로 빠져들 듯 그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 갈 테다. 문이 닫힌다. 한 층 한 층 불이 켜졌다 꺼지고 사람들은 무심히 숫자판만 노려보며 탔다간 내린다. 그렇게 영원처럼 긴 시간을 버텨 드디어 1층에 다다르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나는 도서관문을 향해 자석처럼 빨려 들어간다. 동시에 그런 내가 부끄러워져 어떻게든 발걸음을 늦춰보려 애쓰지만 어느새 나는 도서관 문의 손잡이를 돌리고 있다.

총 소요 시간은 1분 30초쯤?

나는 그 구간을 무한 반복한다.

( PS. 도서관 안까지는 왜 안 들어 가냐고? 나이 든 내 심장이 그 쿵쾅거림을 견디지 못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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