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칼럼니스트▷성우, 방송 MC, 수필가▷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내가 대학시절 좋아했던 고시가(古詩歌)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정서(鄭敍)가 지은 고려가요 ‘정과정곡’의 한 구절로 ‘님이시여, 제발 마음을 돌리시어 나를 다시 사랑해주십시오’라는 뜻이다.

마음속으로 이런 외침을 품어본 일 없이 십대와 이십대를 보내기는 힘들다.

슬픈 것은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 미더운 연인 사이에는 애초에 이런 울부짖음이 필요치 않다. 아무리 외쳐보아야 그는, 그녀는 이미 당신을 떠났다.

이 시를 쓴 시인의 님은 사랑하는 이가 아니라 임금님이었다고 하는데... 임금님의 마음은... 글쎄... 연인보다는 돌이키기가 쉽지 않을까?

그런데 확실히 되돌릴 수 있는 님이 있다. 연인도 아니고 임금님도 아니지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의 님.

바로 자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어릴 때 우리 어머니는 <청개구리>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내가 하도 말을 듣지 않아서 그 얘기 속 교훈이 도움이 될까, 하여 들려주었노라고 훗날 고백하신 바 있고.

40년 후, 나도 내 아들에게 <청개구리>를 읽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아들은 나 정도의 반항아가 아니었다. 뭐랄까... 전문가 절반은 자폐스펙트럼이라고 했고, 어른들은 그저 늦되는 아이라고 했던... 약간의 특별함이 추가된, 그래서 스스로도 사는 것이 좀 힘들었을 꼬마. 그 애는 6살 때까지 ‘사랑해요’ 같은 쉬운 말도 하지 못했고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제 뜻에 맞지 않으면 길 가다 땅바닥에서도 뒤로 나자빠져 울어댔고, 나는 아이가 왜 그러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어 식은땀을 흘리곤 했다. 그러다보니 종종 악을 쓰며 아이를 혼내게 되었고 아이는 그 고함소리가 싫어 더 비뚤어진 행동을 했다.

악순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유레카의 순간이 찾아왔다.

우리 애 6살 무렵, 집에 가끔 놀러오던 친구가 하나 있었다. 우리 애보다 한 살 어리지만 발육상태가 골고루 좋아서 몸집도 사회성도 말하는 능력도 우리 아이보다 훨씬 뛰어난 그 애는 인물까지 좋아서 그 애 엄마는 늘 꿀이 뚝뚝 흐르는 눈으로 자기 아들을 바라보곤 했다. 아들과 함께라면 언제나 웃는 낯이 되는 그녀를 보며 속으로 참 부러웠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행복한 아이 엄마가 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꼬마의 네 살 터울 누나는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녀야할 지경으로 학교생활이며 엄마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같은 부모, 같은 환경에서 자라는 두 아이가 왜 그렇게 다른 걸까?

그러다 깨달았다. 그 엄마가 딸아이와 함께 있거나 딸아이에 대해 얘기할 때의 표정. 그 속에 답이 있다는 것을. 딸과 관련된 모든 순간, 그녀는 몹시 지치고 짜증난 표정을 지었다.

거울을 보듯, 나는 내가 늘 그런 표정으로 아들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시작은 아이가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악순환을 끊어내는 건 어른인 내 몫.

나는 유레카를 외치며 그날부터 연기 실습에 들어갔다. 늘 웃으며 아이를 보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억지로 웃었다. 혼자 놀고 있는 아이를, 언젠간 날 봐주겠지... 끈기를 가지고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도람 드르샤 어미를 괴오쇼셔...

딱 1주일 만에 우리 아들은 변했다.

더는 뒤로 나뒹굴지 않았다.

자연스레 안기고 조금씩 눈도 맞추기 시작했다.

물론 그 하나의 사건으로 우리 아들이 생래적으로 지니고 나온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선순환이 시작된 것만은 분명했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아이를 볼 때만은 웃으려고 노력했다.

여전히 남들보다 목청이 높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아이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저 그뿐, 모든 게 정상이라는, 아니 어떤 점에선 아주 우수한 아동이라는 담임선생님 말씀을 전해들은 게 얼마 전이다.

이미 떠난 님의 마음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러나 어차피 사랑하게 되어 있는 운명의 굴레에 갇힌 관계라면, (예컨대 부모와 자녀, 부부라든가 형제, 배우자 집안의 식구들, 직장 동료...)

그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바꾸도록 하자.

마음으로 아니 되면 억지로 연기하면 된다.

마음속에 진정한 선한 의지가 있다면, 나의 뇌도 타인의 마음도 모두 속일 수 있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다.

웃으면 행복해진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