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영의 더 리뷰(The Re:view)] 같은 이니셜(M.A), 완전히 다른 삶...화려함 뒤에 감춰진 찬란한 슬픔의 노래
[최윤영의 더 리뷰(The Re:view)] 같은 이니셜(M.A), 완전히 다른 삶...화려함 뒤에 감춰진 찬란한 슬픔의 노래
  • 최윤영 공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0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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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성난 군중의 함성 속에 형장의 이슬로 쓸쓸히 사라졌던 역사 속 한 여인을 기억하는가.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5년 만에 재연으로 돌아왔다. 지난 2014년 한국 초연과 비교했을 때 음악과 의상, 무대 구성, 연출 등 모든 부분에서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다. 물론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스태프와 최정상 배우들의 조합, 작품의 남다른 규모만큼은 여전하다. 

작품은 1784년, 화려하게 반짝였던 프랑스 궁전의 한때로 관객들을 이끈다. 그곳에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기다리고 있다. 정략결혼으로 루이 16세의 왕비가 되기 위해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오게 된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는 맑고 쾌활한 성격을 지녔지만, 늘 궁중 생활을 한 탓에 세상 물정에 어둡다. 최신 유행을 따라 온몸을 휘감은 왕비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궁궐 밖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연인 페르젠의 끊임없는 경고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동화 같은 세상이 계속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재정 악화와 왕비를 겨냥한 음모는 굶주린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피고 만다. 이미 성난 군중의 눈에 왕비는 그저 단죄해야 할 증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혁명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거세지고, 마리는 결국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총 180분의 공연 시간 동안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1785)’, ‘바렌 도주 사건(1791)’, ‘단두대 처형(1793)’ 등 익숙하면서도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또,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일화 가운데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빵이 없다면 케이크를 먹으렴.”과 같은 이야기나, 공교롭게도 루이 16세가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하게 될 도구인 단두대(기요틴)의 개발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일화도 함께 다룬다. 관극 전 프랑스 혁명 전후를 둘러싼 역사에 대해 먼저 알아둔다면 작품에 대한 이해와 재미를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국내 초연에서 같은 역할로 먼저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했던 김소현과 새롭게 캐스팅된 김소향이 타이틀 롤인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를 맡았다. 그중에서도 김소향의 마리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화려함만을 추구하는 철없고 여린 여인의 이미지보다 점차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인물의 내면에 좀 더 주목하려 한 느낌이었다. 전작에서 상당히 진취적이고 강인한 역할을 많이 해왔기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옷을 입은 모습이 낯설진 않을까 싶었지만, 김소향의 마리는 정말 완벽했다. 모두 우러러보던 높은 곳의 왕비가 가장 낮은 곳까지 추락하는 과정을 그리는 동안 김소향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무대 위에 쏟아내며 감정의 깊이를 더했다. 비록 외로웠던 마리의 마음이 페르젠을 향해 있었을지라도 그녀가 마지막 순간까지 루이 16세에 대한 예우를 다하는 모습은, 한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과 왕비로서 갖춰야 할 위엄을 모두 훌륭하게 표현한 김소향 덕분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극 후반부 혁명군에게 아들 루이 샤를르를 빼앗기며 내지른 처절한 절규는 마리의 밝고 아름다웠던 초반 모습과 완전히 대비되며 관객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감정이 들게 만든다. 이렇게 김소향이 그린 마리는 냉정한 역사의 심판대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한 편의 예술작품 속 주인공으로서 사랑받고, 위로받기 충분했다. 

혁명의 선봉자, 마그리드 아르노(Margrid Arnaud)역의 김연지 역시 배역에 완전히 녹아든 모습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마그리드 아르노는 실존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와 달리 작품을 위해 탄생된 허구의 인물이다. 마리와 같은 이니셜을 가졌지만(M.A) 그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간다. 일찍이 교육을 받아 사회 부조리에 대해 강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으나 거리에서 구걸하며 겨우 생활을 이어가야만 했던 마그리드이기에, 처음에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보였던 마리와 날 선 대립각을 이룬다. 하지만 혁명이 점차 무르익게 되는 과정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고, 결국 마리의 인생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마리의 죽음을 바라보며 과연 진실과 정의의 참된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괴로움을 겪게 되는 역할이다. 이번 작품이 뮤지컬 첫 데뷔작이기도 한 김연지는 입체적 면모를 가진 배역의 감정선에 충실하게 몸을 맡긴다. 힘이 넘치는 발성은 흔들림 없이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고음에서 더욱 빛났다. 여러 장면 가운데 혁명군의 선두에서 시민들을 이끄는 모습은 김연지의 매력을 더욱 잘 살아나게 하는 명장면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통해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선 황민현의 눈부신 활약도 눈에 띈다. 황민현은 마리를 향해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악셀 폰 페르젠 백작 역을 맡아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흔히 아이돌 출신 배우에게 쏟아지는 우려의 시선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안정된 호흡과 연기, 특유의 맑은 미성으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며 작품에 빛을 더했다. 귀족이자 군인인 페르젠에게 어울리도록 자세나 걸음걸이와 같은 부분까지 더 신경 쓰려고 노력했다는 그의 의도대로, 절도 있는 움직임과 위엄있는 자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제 막 맺힌 꽃봉오리를 닮은 황민현은 점차 경험이 더해질수록 더 화려한 꽃을 피우리라 기대되는 배우다. 

왕위 찬탈을 위해 음모를 꾸미고, 뒤에서 시민들을 조종하는 오를레앙 공작 역의 민영기는 권력에 대한 야망으로 가득 찬 인물을 잘 표현했다. 묵직하면서도 풍부한 음성은 캐릭터가 가진 힘의 강도를 체감할 수 있게 했으며, 때로는 교묘하게 군중들을 선동하는 모습에서 위기감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우유부단함과 강건함을 오가는 루이 16세 역 이한밀도 깊은 고뇌를 담아낸 연기와 울림 있는 노래로 무한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토록 뛰어난 배우들의 역량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데는 공들인 연출과 음악이 큰 역할을 차지한다. 360도로 회전하는 대형 턴테이블 위에 펼쳐진 장면들은 평면 형태의 무대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며 보는 즐거움을 높였다. 동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자연스레 연기자의 감정마저 닮게 된다. 또 무대조명을 활용해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의상과 실감 나는 소품도 보는 재미를 더하는 요소다.  
 
잘 짜여진 감정의 조각들은 김문정 음악감독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아름다우면서도 비극적인 선율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많은 넘버들 가운데 특히 마리의 대표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최고의 여자’, 페르젠과 마리가 함께 부른 ‘내가 숨 쉴 곳’, ‘나의 눈물’, 마그리드의 분노가 담긴 ‘더는 참지 않아’, 오를레앙 공작의 ‘난 최고니까’, 혁명 세력으로 분한 배우들과 앙상블의 ‘운명의 수레바퀴’, ‘정의란 무엇인가’는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스토리라인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인 만큼 집중해서 들어보기를 권한다. 각각의 장면들이 그림처럼 선명하게 아로새겨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최근 역사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과거 마리에 대한 이미지나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대부분 부정되고 있다. 군중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혁명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날조됐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비어버린 국고를 채우기 위한 방도로 내부 개혁을 추진했다 귀족들의 반발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설도 있고, 당시 귀족들의 씀씀이와 비교했을 때 오히려 훨씬 더 검소한 편이었다고도 전해진다. 뮤지컬은 이와 같은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새롭게 재해석된 주인공들은 그 누구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다. 허영과 사치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마리도 바뀌어버린 시대가 원치 않았던 역사의 희생양이자 도덕적 승리자로 그려졌다. 그러다 보니 역사적 객관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작품이 주인공 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싼 오해를 해소하고, 추악한 소문으로부터 해방시킬 면죄부를 주는 것에 다소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무지가 무죄의 이유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용서해야만 한다.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한 작품이기에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저 밝고 천진하기만 했던 여인이 한 나라의 왕비이자 자녀들의 어머니로서 성숙해가는 과정을 모두 함께 지켜봤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장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작품의 말미에서 밝혀지는 두 ‘M.A’의 관계다. 창조적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임을 감안한다 해도 마리와 마그리드를 굳이 혈연으로 묶었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초연에서도 지적됐던 작위적 관계 설정은 오히려 깊은 감동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리를 공격하기 위해 쓰이는 몇몇 단어의 잦은 사용도 편하지만은 않다. 거센소리의 활용으로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치달아 있음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이겠지만, 계속된 반복은 이미 마리의 감정에 동화된 관객들에게 혁명의 가치를 급격하게 저하시키고 만다. 또한 톡톡한 감초 역할로 무거운 극에 잠시나마 웃음을 더해 줬던 헤어드레서 레오나르가 의상실에 찾아온 마그리드에게 “더럽게 생겼구나!”라고 언급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몇몇 관객들은 의도한 대로 웃음을 터트렸지만, 일반적인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타인의 외모 비하나 여성을 대상으로 한 표현들은 특히 요즘 같은 시기라면 더더욱 주의 깊게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제 관객이 달라졌다. 물론 당시 시대적 배경이나 인물의 신분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이 공연되는 시점은 바로 지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기란 쉽지 않다. 정의와 현실 사이의 괴리, 옳고 그름을 판단할 만한 절대적 잣대를 마련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은 언제나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때로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과 말이 곧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머릿속엔 화려했던 시절의 마리와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마리, 그리고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는 마그리드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가까이 보면 슬프고 너무 아파서 더 뭉클하다. 차가운 바닥에 엎드린 마리를 일으키던 마그리드의 손길도 더없이 쓸쓸하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옳다고 믿으며 걸었던 길의 끝에서 만난 정의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을 때 느끼는 감정을 우리도 겪어 봤기 때문이다. 작품은 비슷한 듯 다르고, 가까운 듯 먼 지점에서 함께 공감하며 서로 위안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관객들에게 치유의 기회를 선사한다.

이제 ‘마리 앙투아네트’가 던진 묵직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우리의 과제로 남았다.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더 슬픈 비극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권력이 또 다른 권력이 되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더는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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