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경쟁력 위해 GA설립…설계사 이동에 잡음
보험설계사지부 “일방적인 회사 갑질, 끝까지 투쟁”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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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이세미 기자】 저금리·저성장 기조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는 보헙업계에 사측과 설계사간의 때 아닌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이번 갈등의 주 쟁점은 보험사들의 잇따른 보험상품의 제조·판매분리(이하 제판분리)와 법인보험대리점(GA) 설립에 관한 것으로, 설계사들이 이에 대해 강경 대응을 예고함에 따라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 지부는 지난 6일 성명서를 내고 보험사들의 일방적 자회사형 GA설립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보험설계사 지부는 성명서를 통해 보험사는 보험상품 개발만 담당하고, 판매는 GA가 전담하는 이른 바 ‘제판 분리’가 이뤄질 경우 보험설계사들의 구조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고용불안과 노동조건을 악화 시키는 제판분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험업계 제판분리 릴레이 배경…보험설계사 수수료 ‘1200%룰’

제판분리의 가장 큰 시발점은 올해부터 보험 판매 수수료를 제한하는 이른바 ‘1200%룰’이 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보험사 소속 전속설계사의 첫 해 모집수수료는 1400~1500%를 웃돌았다. GA소속 설계사의 경우 1400~1700% 수준까지 모집수수료를 받아 왔다. 그 결과 설계사들이 더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는 회사나 GA로 옮기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고, 이같은 수수료 체계로 인해 ‘먹튀’, ‘고아계약’을 부추긴다는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었다. 

이에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과도한 수수료 지급으로 인한 사업비 초과 집행을 억제하고 불완전판매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험업법을 개편해 올해부터 시행토록 했다.

금융위가 내놓은 1200%룰은 예를 들어 보험설계사가 고객에게 월납보험료 10만원의 보험상품을 판매했다면 그 해 설계사가 받는 모집수수료가 120만원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다만 보험사가 자회사형 GA를 설립해 전속설계사를 해당 GA로 이관하면 1200%룰을 적용받지 않게 된다. 금융위가 1200%룰을 어긴 GA에 대해서도 집중 검사대상 기관으로 선정하겠다고 밝혔으나 아직까지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보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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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입장에서는 GA의 영향력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자회사형 GA를 설립해 전속설계사들을 이동시켜 경쟁력을 키우는 나름의 돌파구를 찾은 셈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처음 미래에셋생명과 한화생명이 제판분리를 결정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현대해상도 자회사형 GA설립을 추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어 농협생명과 하나손해보험, 푸르덴셜생명 등 보험사들이 제판분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열심히 일해도 찬밥? 불안한 보험설계사들

보험설계사들은 보험업계의 이같은 새로운 시도를 곧 ‘대규모 구조조정’이라고 인식했다.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 지부는 성명서를 통해 보험회사 수익의 대다수는 보험설계사들의 보험계약에 따라 이뤄지지만 일방적인 제판분리로 설계사들을 자회사형 GA로 강제 이동시키는 등 이들을 지원하는 내근 직원들도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험설계사 지부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전속 설계사들을 GA로 귀속시키면 고실적 보험설계사들만 살아남게 되는 것”이라며 “특수고용노동자인 보험설계사들은 회사로부터 수많은 부당행위, 부당해촉 등의 피해를 당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회사 관리자들의 일방적 갑질 때문에 쫒겨나는 등 보험설계사지부로 접수되는 대부분의 피해가 GA에서 발생하고 있다”라며 “이처럼 제판분리에 따른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설계사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음에도 회사는 일방적인 추진만을 강요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실제 제판분리를 시행하는 보험사들의 노사갈등은 점차 심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미래에셋생명은 노조는 비상대책위를 결성하고 투쟁에 나섰으며, 한화생명 노조또한 지난달 30일 파업결의대회를 열고 31일과 1월 4일에 연가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도 보험사의 일방적 구조조정 시도와 그로 인한 고용불안 야기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보험설계사들의 고용안정과 생존권 보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보험업계에선 제판분리는 보험사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금융 선진국의 사례를 볼 때 제판분리는 업계 전반으로 확산 될 것으로 보여진다”라며 “이러한 흐름속에서 보험업계는 차별화된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해 고객 가치를 어떻게 제고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전략 수립이 중요한 시기다”라고 말했다.

보험연구원, 제판분리 확대…금융당국이 세심한 관리해야 

보험업계의 제판분리가 뜨거운 감자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제도 보완 및 금융당국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험연구원 김동겸 연구위원은 전날 ‘보험산업 제판분리 논의 배경과 향후 과제’ 보고서를 발표하고, 제판분리 적용 시 보험회사 및 GA 보험 설계사에게 고용보험료 부담 전가, 해촉 강요 등 부당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금융당국의 세심한 관리를 당부했다.

아울러 제판분리로 인한 불완전판매 등을 대비해 금융당국이 판매자책임 문제와 영업행위 규제 등 실효성 있는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다만, 제판분리는 전속설계사의 반복적인 이탈로 기존의 영업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보험업계의 상황에서 영업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제조와 판매기능 분화가 가속화될 경우, 상품과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므로 이에 대비한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라며 “소비자들에게 상품특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판매자 교육을 강화하거나 별도 자격요건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제판분리 확산 시 보험대리점(GA)시장의 경쟁 심화가 예상되는 등 불완전판매에 대한 배상책임능력 확보가 우선이라고 진단했다. 

김 연구위원은 “보험상품 제조자와 판매자 간 이해 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불완전판매 책임문제를 명확히 해야 하고 상품비교 설명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부적합한 상품 권유가 발생하지 않도록 규율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설계사에 대한 고용보험 도입,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사유 제한, 모집수수료체계 개편 등으로 전속모집조직이 분리된다면 제판분리의 안정화가 저해될 수 있다고 진단하며 이에 대한 감독당국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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