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5년 만에 처음으로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피고가 원고에게 각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배춘희 할머니 등은 지난 2013년 8월, 일제강점기 당시 폭력 또는 거짓말로 위안부를 차출한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각각 위자료 1억원씩을 요구하는 조정 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헤이그송달협약 13조에 근거해 위안부 피해자 소송이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로 볼 수 있다며 소장 접수에 응하지 않았다. ‘주권면제(국가면제)’ 원칙에 따라 주권 국가는 타국 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는 게 일본 정부의 주장이다.
해당 사건은 2016년 1월 28일 정식 재판에 회부됐으며, 법원은 공시송달을 활용해 직권으로 일본 정부에 소장을 보냈다.
이날 재판부는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원고들의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고려해 원고 측 청구를 모두 인용했다.
재판부는 “타국을 피고로 하는 소송에서 재판권 행사가 가능할지, 국제 관습법인 국가주권면제가 해당 사건에서도 해당되기 때문에 우리 법원이 피고를 상대로 한 재판권 행사 가능 여부가 문제됐다”며 “피고에 의해 계획·조직적이며, 광범위하게 행해진 반인도적 행위로 국제 강행규정을 위반해 국가면제 적용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의 불법행위가 인정되며, 원고들은 심각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려왔다”며 “(고통에 대해) 원고들이 배상을 받지 못한 사정을 토대로 원고들이 청구한 각 1억원 이상의 위자료 지급이 타당하다”고 이같이 선고했다.
더불어 청구 소송권 소멸에 대해서는 “해당 사건에서 피고가 직접적으로 제기하진 않았지만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보더라도 이 사건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됐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변호를 맡은 김강원 변호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그간 당했던 것에 대한 최초의 판결에 정말 감개무량하다”며 “(한일 관계의) 큰 파장이 예상된다. 문명국가가 이렇게 반윤리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를 행했다는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사단법인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이 판결이 중대한 인권침해는 주권면제론을 제한해 온 최근 여러 국가의 판결의 추세에 따른 것으로 보고 환영하는 바”라며 “이러한 정당한 판결에 일본 정부는 더 이상의 다툼을 즉각적으로 멈추고 피해자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고인 일본 정부는 재판 결과에 대해 “국제법 위반”이라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내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 대변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이 국제법 위반 시정을 위한 적절한 조치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본 정부는 국제법상 주권면제 원칙에 의거해 한국의 재판권에 대한 복종은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할 계획은 없다”고 부연했다.
일본 언론에서는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는다면 이번 판결은 1심에서 확정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한국 내 일본 정부의 자산이 매각될 수 있다고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 법원에서 맡고 있는 일본 정부 상대 위안부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가운데 가장 먼저 진행된 것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대리 중인 또 다른 위안부 소송은 오는 13일 1심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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