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룩스빛 시각장애인 무용단 김자형 단장 & 단원
‘흰 지팡이의 꿈: “끝…시작을 부르다2”’ 오는 14일 공연
국내최초 서울맹학교 초등생·시각장애인 무용단 합동공연
편견 허물고 시각장애인·비장애인 함께 어울리는 무대

룩스빛 시각장애인 무용단이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연습실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룩스빛 시각장애인 무용단이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연습실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Cause we don't need permission to dance(우리가 춤추는 데 허락은 필요 없으니까) - BTS의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가사 중

최근 BTS의 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퍼미션 투 댄스는 ‘춤추다’라는 뜻의 국제수어를 안무에 사용해 장애인들도 함께 음악을 느끼고 춤을 출 수 있으며, 춤을 추는 데 한계는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

이 같은 메시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편견에 맞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LUX-빛 시각장애인 무용단(이하 룩스빛)’이다.

오는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흰 지팡이의 꿈: “끝…시작을 부르다2”>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하는 룩스빛의 단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무용에 대한 열정과 열의로 가득했다.

룩스빛 시각장애인 무용단 이추옥 단원과 이주아 헬퍼가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룩스빛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룩스빛 시각장애인 무용단 이추옥 단원(앞)과 이주아 헬퍼가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룩스빛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절망에서 새로운 시작으로

룩스빛의 이번 공연은 지난해 초연된 작품을 업그레이드한 무대다. 그리고 이는 제목 뒤에 붙은 숫자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끝…시작을 부르다’는 지난해 초연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시즌입니다. 룩스빛의 작품은 세 번째 시즌으로 마치는데, 한 작품의 세 시즌으로 나눈 이유가 있어요. 시각장애인 무용수들이 초연할 때 예를 들어 네 발 정도 전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 연습량이 많아질수록 시즌 2에는 여덟 발을 전진할 수 있고, 시즌 3에서는 마지막 완성 단계로 무용수들이 표현하려는 느낌을 모두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한 작품을 업그레이드해요. 그래서 작품마다 제목 뒤에 숫자가 붙어요. 이걸 감안해서 룩스빛의 특징을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김자형 단장

룩스빛 김자형 단장은 공연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등 여러 상황으로 인해 절망을 겪는 이들에게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점’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상황에 마주하며 ‘정말 끝이다’, ‘절망적이야’, ‘죽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누구나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마음을 조금만 다시 한 번 다잡으면 ‘끝이 있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어느 순간 느끼게 됐어요. 그걸 작품화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특히 코로나19 상황으로 절망에 빠진 분들의 말을 더 많이 듣게 되는데, ‘그 끝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관객들께 전하고 싶었어요.”
-김자형 단장

서울맹학교 초등학생들이 서울 동작구 룩스빛 시각장애인 무용단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 룩스빛 시각장애인무용단 유튜브 영상 캡처
서울맹학교 초등학생들이 서울 동작구 룩스빛 시각장애인 무용단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 룩스빛 시각장애인무용단 유튜브 영상 캡처>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공연 될 것

이번 공연은 예술인들에게는 ‘꿈의 무대’ 가운데 하나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하는 것은 비장애인 무용수와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 무용수에게도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룩스빛 단원들도 어느 정도 무대를 경험하다보니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게 꿈이야’라는 이야기를 종종 했어요. 그래서 ‘지난해에는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만 진행했으니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해보자’는 생각에 지난 2월 대관을 하게 됐어요.”
-김자형 단장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하게 됐지만, 올해에도 코로나19는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객석에 비해 적은 관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어쩔 수 없이 무관중 온라인 공연으로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이번에 공연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는 방역수칙을 지키면 600석 중 60%인 400석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는 거리두기를 충분히 해서 150분을 모시려고 해요. 안전한 공연이 될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홍보하고 있어요.”
-김자형 단장

이번 공연은 국내 최초로 이뤄지는 초등학생 시각장애인과 성인 시각장애인 무용단의 합동 공연이다. 중도실명인(질병, 사고 등으로 시각장애를 갖게 된 사람)과는 달리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인 초등학생들에게 동작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중도실명인들은 시각적 경험이 있어서 ‘새처럼 날아봐요’라고 하면 표현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 함께 공연하는 초등학생들은 선천적 시각장애인이라서 시각적 경험이 없어요. 그래서 ‘새처럼 난다’는 걸 설명하는데 두 달이 걸렸어요. 더디 나가더라도 새가 날아간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3단계 학습법을 통해서 연습을 했고, 이번 공연에서 학생들이 그 날갯짓을 보여줄 거예요.”
-김자형 단장

이번 공연에서는 성인 시각장애인 무용수들이 초등학생 시각장애인 무용수를 케어한다. ‘장애인은 도움을 받는 존재’라는 편견을 넘어 누구나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무대인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로도 행복하더라고요. 연습하면서 마음이 맑아지고, 즐거운 포크댄스를 하는 느낌이에요. 아이들하고 같이 하면서 ‘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통해이 아이들이 작은 꿈이라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멈추지 않고 작은 오솔길이라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봤어요.”
-권기혜 수석무용수

룩스빛 시각장애인 무용단 이주아 헬퍼가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룩스빛 연습실에서 이설아 단원에게 동작을 설명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룩스빛 시각장애인 무용단 이주아 헬퍼(왼쪽)가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룩스빛 연습실에서 이설아 단원에게 동작을 설명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무용하는 모든 순간이 즐거워

룩스빛의 공연은 시각장애인 무용수와 비장애인 무용수가 함께 무대를 꾸민다. 이 가운데 비장애인 무용수들은 ‘헬퍼’의 역할을 한다. 이들은 동작을 연습하고 동선을 맞추며 같이 작품을 완성한다. 헬퍼 가운데 이주아 헬퍼 외 2명은 무용전공자로, 현재 명지대학교 통합치료대학원 생활체육교육학과 석사 및 박사 과정의 대학원생들이다.

“무대에서는 헬퍼가 튀면 안 되고 모두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하잖아요. 시각장애인 무용수 분들이 동선을 맞추지 못해서 구석에 가 있으면 헬퍼가 돋보이게 될 때도 있어서 그걸 맞춰가는 게 좀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서로 도우면서 작품을 완성해가고, 다채로운 감정을 공유하는 느낌이 들어서 더 큰 감동이 있어요.”
-이주아 헬퍼

“작년에도 공연을 함께 했는데, 공연할 때 시각장애인 무용수 분들이 무대 아래로 떨어지실까 봐 조마조마했었어요. 공연을 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는데, ‘그냥 둬도 다들 잘 하시는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굳이 신경쓰지 않고 ‘들어오세요’, ‘앞으로 조금 더 가세요’ 하면 잘 맞춰서 하시거든요. 함께 한다는 것에 더 집중해야지, 장애인이라고 해서 제가 뭘 더 해야 하는 건 없어요.”
-이세영 헬퍼

시각장애인 무용수와 비장애인 무용수가 함께 선보이는 라인댄스를 감독한 이미경 감독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라인댄스를 할 때 행복을 느껴요. 메인 공연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마지막 무대인 라인댄스에서 만큼은 긴장하기보다 행복하게 손잡고 어울릴 수 있는 순간이 즐거워요.”
-이미경 감독

13년 전 무용을 시작한 시각장애인 이추옥 단원은 최근 복막암 진단을 받아 2차 항암치료를 받은 상황에서도 열심히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용기를 갖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항암치료를 받고 나서 연습을 했는데, 일주일 동안은 힘들더라고요. 그러다가 좀 괜찮아지면서 한 번 결석한 걸 제외하고는 계속 연습을 했어요. 솔직히 힘은 들지만, 용기를 갖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단장님과 단원들이 많이 배려해 주셔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무용이 제 생명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이추옥 단원

단원들은 무용을 하는 모든 순간이 가장 즐거운 기억이라고 했다.

“나이가 있어서 금방 배운 동작도 자꾸 까먹게 되더라고요. 시각장애인 단원들과 서로 도와가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이런 순간들이 행복을 주는 것 같아요.”
-권정순 헬퍼

“단원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가장 즐거워요. 같이 지내는 그 순간들이. 아프고 힘든 중에도 무용실에 왔다 가면 그날은 힘든 줄을 모르는 것 같아요. 마음이 즐거워지고요.”
-이추옥 단원

“무용을 하는 순간은 항상 즐겁고, 연습하고 나서 집에 가서도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즐겁게 지내요.”
-권기혜 수석무용수

“가장 즐거원던 순간을 말한다면, 새로운 동작을 배우고 익힌 다음 이어 나갈 때가 제일 즐거워요.”
-이설아 단원

룩스빛 시각장애인 무용단원들이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룩스빛 연습실에서 무용 연습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룩스빛 시각장애인 무용단원들이 지난 8일 서울 동작구 룩스빛 연습실에서 무용 연습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장애인에 대한 편견 사라지길

단원들은 ‘사각장애인이 무용을 한다’고 하면 “그게 가능하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연습하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용을 못 할 이유가 없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무용을 한다고 했을 때 비장애인 분들은 물론이고 저랑 같은 장애를 가진 분들도 ‘눈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춤을 추느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그래서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래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얼마 안 됐지만 벌써 주변의 반응이 달라지더라고요. 뜻을 굽히지 않은 게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이설아 단원

“처음에는 ‘그게 가능해?’ 하는 반응이 많았어요. 제가 와서 느꼈던 게 뭐냐면, 시각적 경험을 빼고는 경험과 연륜에서는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라는 거예요. 제가 느낀 것들을 사람들에게 얘기했더니 ‘그게 가능해?’라는 질문에서 ‘가능하구나’라는 깨달음으로 변하더라고요.”
-신화정 헬퍼

아직까지 한국은 시각장애인이 춤을 춘다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이 당연한 사회다. 하지만 이 같은 인식은 장애인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만들고, 활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편견이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춤을 추느냐고 묻는 분들에게 룩스빛의 무용 영상을 보여줬더니 ‘불가능한 일이 아니구나’하고 다른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시각장애인 단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연습을 하다보면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기도 해요. 함께 하면서 편견이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됐죠.”
-김미희 헬퍼

장애인은 ‘비정상’이라는 편견을 받으며 살아간다. 룩스빛에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많다.

“비장애인도 언제 어떻게 장애를 갖게 될지 모르잖아요. 예비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사람을 정상, 비정상으로 나누는 이분법이 없어지면 좋겠어요. 그래서 룩스빛 활동을 하면서 편견을 깨는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이현자 헬퍼

춤을 추는데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애인을 향한 시선만이 걸림돌이 될 뿐이다. 룩스빛 단원들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헬퍼들과 함께 자신의 능력 안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는 당연히 있어요. 다만 차별을 두지 않아야 해요. 룩스빛이 슬로건이자 모티브로 제시하는 것은, ‘저희가 도움을 청하면, 그때 따뜻한 손길로 도와주세요’라는 거예요. 장애인은 마냥 도움을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에요. 어설픈 도움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어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나와 다른, 동일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주시길 당부 드리고 싶어요.”
-김자형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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