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협 정관변경 직후, 한림건설·요진건설 등 대표 교체
김상수 회장 등 협회 권리 유지하며 중대법 책임 회피
중대법 CEO 책임 강화, 건설사 오너 CEO직 기피 확대

대한건설협회 김상수 회장ⓒ뉴시스
대한건설협회 김상수 회장ⓒ뉴시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건설업계 대표 단체인 대한건설협회 권리 자격 기준이 완화됨 시점과 맞물려 일부 중견 건설사 오너들이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배경을 두고 뒷말이 나오고 있다. 협회 내 권리를 유지하면서도 앞으로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 책임에서는 벗어나겠다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건설협회 김상수 회장이 지난 8월 18일 한림건설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일반 등기이사 직만을 유지했다. 다음날에는 요진건설산업의 최은상 대표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시점은 다소 앞서지만 같은 협회 회원사였던 한신공영의 태기전 부회장이 지난 3월 대표이사를 사임하면서 전재식 부사장을 신규선임하기도 했다.

건설협 정관 개정하자 CEO 줄이탈

김상수 회장은 우리나라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협회의 수장이고 최 대표 또한 협회의 회원이다. 또 각사의 오너 또는 대주주로 대표자리에서 물러나도 실질적인 경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김 회장은 한림건설의 창업자이고 최은상 부회장은 요진그룹 창업주인 최준명 회장의 아들이다. 지난 2004년부터 요진건설산업 대표이사를 맡아왔으며, 2019년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요진그룹 2세 경영인으로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다.

게다가 이 둘은 공교롭게도 협회 회원 자격 기준과 관련된 정관 개정이 이뤄지고 난 뒤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13일 국토교통부는 대한건설협회가 요청한 정관 개정안을 승인했다. 이번 정관 개정의 핵심은 기존 법인 회원의 권리 행사 주체를 ‘대표자’로 했던 것을 ‘대표자 또는 등기이사 중 1인’으로 변경한 것이다.

문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4달 앞두고 이 같은 정관 개정이 이뤄지면서 잡음이 뒤따랐다. 중대재해처벌법 회피를 위해 대표이사직을 내려놓는 건설사 경영자를 위한 ‘맞춤형 정관 개정’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 1명 이상 또는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이상 발생하는 경우 등을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안전 및 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장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사망사고 발생 건수는 요진건설산업 2건, 한림건설 1건이었다.

결국 협회 정관 개정 덕분에 김 회장과 최 전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음에도 협회장 신분과 협회 이사 신분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김 회장의 경우 업계를 대변해 할 장본인이 되레 교묘하게 법망 등을 피해나가는 듯한 행보를 펼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지목된 건설사 측은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 등을 위한 경영상 선택일 뿐 지적은 규제 회피 의혹은 지나친 억측이라는 입장이다.

김 회장의 한림건설 대표 퇴임 또한 고령인데다 협회 운영에 전념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게 협회 측의 설명이다.

협회는 특히 이번 정관 개정이 중대처벌법시행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상공회의소와 같은 다른 유관단체에서도 회원의 권리를 대표자 또는 등기이사로 넓게 적용되고 있어 우리도 대기업 등 회원사의 적극적인 협회 활동 참여를 위해 개정 작업을 한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는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다.

CEO 책임 강화, 오너 기피 분위기 확산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건설현장 산업재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대되면서 CEO들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10대 건설사 원·하청 업체에서 발생한 산재 건수는 2017년 812건에서 지난해 1705건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862건에 이른다.

대표적으로 이달 진행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광주광역시 동구 재개발 공사현장 철거건물 붕괴사고와 관련해 권순호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가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로부터 책임 추궁을 받기도 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 6월 9일 철거건물 붕괴사고가 발생한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의 시공사다. 당시 사고로 인해 9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입은 바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건설협 정관개정과 별개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중견건설사 오너나 2·3세들이 CEO직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대되고 있다. 별도의 전문경영인을 내세우거나 별도로 최고안전책임자(CSO)직을 신설하는 건설사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 건설사를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실제 지난 6월 한국CXO연구소가 ‘2021년 국내 71개 기업집단 총수 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자연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된 국내 60개 그룹 총수가 해당 그룹 계열사에서 ‘대표이사’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인원은 총 23명이다. 나머지 37명(61.7%)은 대표이사 명함을 갖고 있지 않은 셈이다.

당시 한국CXO연구소 오일선 소장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오너 경영자는 대표이사나 사내이사 등을 맡으며 책임 경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내년에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되면 그룹 오너가 계열사 대표이사나 사내이사직을 전문경영인에게 넘기려는 사례도 일부 발생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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