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굳게 닫힌 문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시각이 아닌 청각에 모든 신경이 쏠린다. 도시가 내뱉는 시끄러운 소리에 압도된다. 그러자 ‘쿵’, ‘쿵’, ‘쿵’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빵!’.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목덜미까지 퍼지는 경적 소리. 이 소리 하나에 굳게 먹었던 마음이 무너진다. 잔잔했던 어둠 속 그의 세상은 다시금 혼돈에 빠진다. 시각장애인이다.

단단한 보도블록이 그들에겐 얇디얇은 살얼음판이다. 그들의 세상은 생각보다 아슬아슬했고, 또 위태로웠다. 그들이 내딛는 한 걸음은 늘 신중했다. 또 조심스러웠다. 이런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가느다란 지팡이와 노란색 점자블록이다. 이는 그들의 눈(目)이다. 캄캄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눈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누군가 그들의 눈 위에 더러운 발을 올린 체 서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눈을 무자비하게 짓이긴다. 이기심이다. 안하무인 이기심 옆에 멀뚱히 서 있는 문구. ‘이곳은 시각장애 학생들의 보행로입니다. 유도 블록 위에는 주차를 금지해 주시길 바랍니다.’ 주차를 금해달라는 호소를 외면한 체 버젓이 차량을 세우는 행위는 명백한 무관심이다.

이 무관심이 시각장애 학생들에겐 얼마나 큰 해악인지 느끼고 싶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점자블록을 따라 걸어봤다. 체 몇 걸음 떼지도 못했다. 점자블록 위에 차량이 주차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거대한 이기심과 부딪히고 만다. 짙은 어둠 속에서 말이다. 이는 기자가 취재차 방문한 시각장애인 학교에서 목격한 광경이다. 방학 기간이지만, 이곳에선 학생들을 위해 오후 2시까지 수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끔찍한 일이 자행됐다.

바야흐로 무관심의 시대.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곳에서 동일한 시간을 살아가는 시각장애인들은 이런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시각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통계자료로써 명명백백하게 나올 뿐만 아니라, 불편을 호소하는 이야기들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지난 2020년 한국장애인인개발원이 조사한 ‘유형별 등록장애인 수’에 따르면 전체 등록장애인 263만3026명 중 시각장애인은 25만2324명(9.6%)를 차지한다. 시각중복장애인을 고려했을 때 그 수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5월 24일부터 10월 22일까지 약 5개월간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주관으로 진행된 전국 지자체 업무청사 287개소의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실태조사에서는 지방자치단체 청사 10곳 중 6곳이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이 없거나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10곳 중 6곳, 약 61.2%에 달하는 수치다.

시각장애인들은 국민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청사에 방문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전국 지자체에 부리나케 시정명령을 담긴 공문을 보냄과 동시에 하반기 이행 결과에 대한 현장점검 실시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의 불편을 충분히 해소 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일상 속 고스란히 녹아든 불편함은 청사를 방문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방역패스가 도입되자 시각장애인들은 평범한 일상조차 불편해졌다. 

사실, 정부가 손 놓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방역패스 이용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해 ‘예방접종 스티커’를 발급받도록 안내했다. 물론 이 스티커를 발급 받기 위해선 부랴부랴 읍·면·동 주민센터를 방문해야만 한다.

고생 끝에 스티커를 받아도 실용성은 미지수다. 대부분 시설에 QR체크인이 의무화되면서 매장들은 예방접종 스티커를 활용하지 않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방역패스를 설계할 때 조금이라도 장애인들의 입장을 고려했다면 이런 시행착오는 없었을 것이다. 이 또한 무관심이다.

반복된 무관심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불편함은 고스란히 시각 장애인의 몫이다. 마치 아무렇지 않은 습관처럼 여겨지는 무관심은 그들을 계속해서 괴롭힌다. 그들의 불편함을 감히 안아주기에 우리 사회의 그릇은 터무니없이 작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얼마나 무관심 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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