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테오 지음│388쪽│152*215mm│㈜모인그룹·도서출판 열아홉│2만9000원

ⓒ ㈜모인그룹·도서출판 열아홉

 

발 없는 새가 있다.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잠이 든다. 평생에 딱 한 번 땅에 착륙하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다.’

새와 비행이라는 은유는 ‘아비’라는 장르가 그의 이야기에 내포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을 연상시키는 발 없는 새의 우화는 아비의 묘비명과 맞아떨어집니다. 나레이션 직후 장국영이 ‘마리나 엘리나’의 노래에 맞추어 추는 차차차는 당대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p.73

【투데이신문 김지현 기자】 왕가위 작품을 이해하는 최고의 비평서로 꼽히는 ‘Auteur of Time(2015)’가 17년 만에 국내에서 <왕가위의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전 세계 영화팬들과 비평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 온, 홍콩 대표 영화감독 왕가위의 작품 세계 30주년을 기념한 특별판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의 독특한 미장센과 스토리텔링을 1990년대 홍콩이라는 시대적 맥락에 비춰 해석하고 있다. 영화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2046> 등 그의 작품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후의 홍콩을 영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여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은 그동안 왕가위 감독이 대체로 비주얼 스타일리스트로 간주되고, 홍콩 영화들이 종종 육체적인 액션들로 상징된다는 한계 때문에 그가 문학적 소양을 갖춘 감독이라는 점이 간과된 부분에도 주목한다.

왕가위 영화들의 계보는 현지와 외국의 문학작품에 근간을 둔, 영화와 문학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그가 마누엘 푸익, 훌리오 코르타사르, 무라카미 하루키, 김용, 류이창과 같은 작가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 지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 저자는 내레이션을 통해 각 인물을 내러티브의 당사자로 만들고, 스토리가 아닌 캐릭터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서사 스타일은 단편소설의 패턴을 따른 그만의 방식이라고 분석한다. 책은 인물의 개성과 고독을 폭넓은 문학적 시선으로 그려내는 그의 세계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왕가위 감독은 한국 독자들에게 “저에게 한국의 모든 것은 강렬하고 선명하다. 오랫동안 제게 보내준 지지와 선의 그리고 깊은 우정에 감사드린다. 제 영화로 여러분과 깊은 인연을 맺었고, 특히 이번 30주년을 기념해서 나온 <왕가위의 시간>이라는 책을 통해서 더 가까워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