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시멘트 집단 운송거부에 업무개시명령 발동
508개 현장, 레미콘 타설 멈춰…건설발 위기 경고
“업무개시명령, 위헌적이며 ILO협약 위반” 반발도

29일 경기도 의왕시의 한 시멘트 출고장에 시멘트를 운송하는 차량인 벌크트레일러(BCT)가 멈춰서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29일 경기도 의왕시의 한 시멘트 출고장에 시멘트를 운송하는 차량인 벌크트레일러(BCT)가 멈춰서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정부가 시멘트 분야 집단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전국에 수많은 건설현장이 시멘트 운송과 레미콘 생산에 차질을 빚으며 공사중단이 우려되자 강경조치에 나선 것이다.

29일 정부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시멘트업계의 집단운송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시멘트, 철강 등 물류가 중단돼 전국의 건설과 생산 현장이 멈췄다”라며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국민의 삶과 국가 경제를 볼모삼는 것은 어떠한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업무개시명령은 지난 2004년 제도가 도입된 이후 최초로 적용된다. 화물자동차법 제14조에 따르면 ‘운송사업자 또는 운수종사자의 정당한 사유 없는 집단운송 거부로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될 경우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업무개시명령을 송달받은 운송사업자 및 운수종사자는 다음날 24시까지 집단운송거부를 철회하고 운송업무에 복귀해야 한다.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이행하지 않으면 운행정지·자격정지 등 행정처분 및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지난 24일부터 시작한 화물연대 파업으로 건설현장 피해가 우려되자 우선 시멘트 분야부터 공급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해 내려진 조치다. 국토교통부는 같은날 “운송거부자들이 운송업무에 조속히 복귀하도록 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며 이들의 현업 복귀를 촉구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29일 10시 기준 화물연대 조합원의 35%에 달하는 7700여명이 18개 지역 175개소에서 집회 및 대기하고 있으며 충북 단양·제천지역 시멘트 공장은 BCT(벌크트레일러) 출하가 중단됐다. 시멘트 출고량은 평시 대비 약 90~95% 가량 감소했으며 전국 912개 건설현장 중 508곳의 레미콘 타설 작업이 멈춘 상황이다.

레미콘 타설 중단이 건설공사 중단으로 이어지면 공기 지연, 지체상금 부담 등 피해가 누적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건설원가, 금융비용 증가로 번져 건설산업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다음달 분양이 예고된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현장은 앞서 25일부터 레미콘 타설 작업이 중단돼 공사중단 위기를 맞고 있다. 둔춘주공 재건축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레미콘 타설 작업이 중단돼 골조공사 외에 전기공사와 설비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아직 입주시기가 늦어진다고 보긴 어렵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공기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한국시멘트협회, 한국레미콘공업협회,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 등 5개 단체는 28일 공동성명을 통해 “엄중한 경제 위기 상황에 화물연대가 지난 6월에 이어 또 집단 운송거부에 돌입해 국내 모든 건설현장이 셧다운 위기에 처했다”라며 업무개시명령을 촉구한 바 있다. 이들 5개 단체는 “화물연대의 비노조원 차량 운송 방해나 물류기지 출입구 봉쇄 등 불법 행위는 정부의 강력한 단속과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더불어민주당은 28일 이경 상근부대변인 논평을 통해 “정부는 화물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라며 노사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노동자로 간주해 강제로 일하도록 업무개시명령을 하겠다고 한다”라며 “정부의 법과 원칙은 편의대로 처벌하기 위한 도구인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민변 노동위원회 등 노동법률단체도 28일 “우리 법체계의 명확한 정신은 강제노역과 강제근로를 금지하는 것”이라며 업무개시명령이 위헌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부는 화물노동자가 개인사업자, 자영업자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라며 “개인사업자, 자영업자에게 자기 의사에 반하는 업무 수행을 공권력으로 강제하겠다는 것은 기본권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토부와 화물연대는 지난 28일에 이어 오는 30일 세종시 세종정부청사에서 만나 대화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29일 “(업무개시명령은) 지난 4월부터 발표돼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 ILO협약 29호, 87호 위반”이라며 “이제라도 진정성 있는 자세로 대화와 교섭에 나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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