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건축왕’ 소유 집중된 인천시 미추홀구, 세입자는 한숨만
“임대인, 건실한 사업가”라며 미보험 유도하고 ‘바지 임대인’ 내세워
“보증금 더 올리고 대출 받으면 보험 가입돼” 피해자 회유 정황도
관리 안 되는 건물서 사는 피해자들 “수리비도 세입자에 떠넘겨”
“전세피해지원센터, 나보다 더 모른다” 근본적인 지원대책 시급해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에 전세사기 피해 구제방안을 촉구하는 작은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투데이신문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에 전세사기 피해 구제방안을 촉구하는 작은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투데이신문

전국 곳곳에서 전세사기 사건이 드러나는 가운데, 인천지역에서는 최근 ‘건축왕’이라 불리던 남모씨가 구속됐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20일 사기와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남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주택을 매입 혹은 직접 신축하며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 2700채의 주택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남씨는 바지 임대업자, 공인중개사 등과 짜고 조직적인 전세사기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구속영장에 남씨 등이 아파트, 빌라 등 공동주택 163채의 전세보증금 126억원을 세입자들에게 받아 가로챘다고 명시했으나 전체 피해 규모는 이를 크게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가 집중된 인천 미추홀구 지역은 세입자들이 직접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자체적으로 현황을 집계 중이다. 미추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는 이 지역에서만 2020세대가 경매에 넘어갈 것으로 보이며 총 피해액은 1458억원 정도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세입자들의 최우선 목표는 전세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는 것이지만 해결방법은 요원한 상태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현재 이들 세입자들은 제때 관리도 안 되는 건물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갈피도 잡지 못한 채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는 인천 미추홀구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보다 근본적인 피해지원대책을 세워야하는 이유다.

 【투데이신문 홍기원 기자】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로터리 일대는 1~2동 규모의 소형 아파트 및 빌라가 곳곳에 지어져 있다. 인중로 대로변에서 어느 골목으로 접어들어도 빼곡하게 들어선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 등 다세대주택을 찾을 수 있다.

취재에 응한 세입자들에 따르면 이 지역의 상당수 다세대주택은 남씨와 관련된 건물이다. 남씨는 건설업체, 바지 임대인, 중개업자 등과 결탁해 10여년 전부터 주택 보유를 확대해 왔다고 한다.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바지 임대인과 계약을 맺었다.

몇몇 건물에는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들이 제작한 작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 플래카드에는 ‘임대차보증금 반환의무 불이행으로 분쟁 중인 건물이다’, ‘당신의 보증금은 안전한가’라고 적혀 있다. 대책위가 배포한 구제방안 촉구 플래카드도 붙어있다.

대책위는 지난 20일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조직적 전세사기에 대한 전모를 밝히고 엄중 처벌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범인 남씨 등이 피해세입자들을 대상으로 회유와 협박을 일삼고 있으며 추가로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한다고도 주장했다.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들은 현재의 전세제도가 조직적 사기에 너무 쉽게 노출되며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도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한 세입자는 “이렇게 허술하니 사기꾼이 더 나오는구나 느꼈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에 지쳐가는데 정부의 책임감 있는 구제 대응은 이들에게 더디기만 하다.

“당신의 보증금은 안전하십니까?” ⓒ투데이신문
“당신의 보증금은 안전하십니까?” ⓒ투데이신문

“전세사기, 또 다른 본질은 국민세금 갈취”

A(40)씨는 2018년 3월 현재 거주하는 신축인 ㄱ아파트로 이사왔다. 2차례 전세 계약을 연장하는 동안은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전세보증금 보험은 들지 못했다. 그는 “중개사에게 ‘근저당이 많은데 위험하지 않냐. 보험은 들 수 있냐’고 물었더니 ‘집주인이 자금 조달력이 있으니 그럴 필요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A씨가 이상함을 알아챈 시기는 지난해 1월 즈음이다. 같은 아파트에서 경매에 넘어간 세대가 나온 것이다. 미심쩍었지만 중개사가 “임대인이 건실한 사업자로 10년 가까이 문제 없었다. 경매 넘어간 세대도 해결 중이다”라고 말해 지난해 4월 2차 계약을 맺었다. 

중개사의 말과 달리 그해 5월 추가로 경매로 넘어간 세대가 나왔다. 중개사는 연락이 끊겼고 그때야 입주민들이 모여 사태의 윤곽을 알게 됐다. 해당 아파트 모든 세대가 한 임대인과 계약했으며 모든 세대가 근저당이 설정됐다는 사실도 이때야 알았다고 한다.

A씨는 2차 계약 시 기간을 1년으로 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통해 오는 4월 입주가 예정됐기 때문이다. 전세보증금은 8800만원인데 이 중에서 6000만원을 대출 받았다. 입주시 잔금도 치러야 하는데 대출도 해결해야 했다. 시간도 돈도 부족했다.

이 과정에서 임대인이 입주민들을 개별적으로 회유하는 시도가 있었다고 A씨는 주장했다. A씨는 “유도하는 방향이 전세보증금을 2억원대로 증액해 안심전세대출을 받으라고 했다. 그러면 증액한 보증금으로 근저당을 없애고 전세보증금 보험을 들면 해결된다는 식이었다”며 “2018년 신축한 건물이라 매매가가 없다. 인근 비슷한 주택을 2억원대에 매입해 감정평가를 높게 받은 뒤 안심전세대출을 신청하면 그 금액에 맞춰 대출이 된다고 설명했다. 증액한 이자는 자신들이 이사비 명목으로 지원한다고 하더라”고 이들의 수법을 밝혔다.

A씨는 “이 방법을 거부하면 새로 세입자를 구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12월에 마지막으로 세입자가 입주했는데 전세보증금이 2억9000만원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보증금이 수천만원대에서 2억원대로 터무니없이 증액됐지만 안심전세대출이 나오고 전세보증금 보험도 가입됐다”면서 “이 사태의 또 다른 본질은 국민세금 갈취”라고 개탄했다. 

A씨는 이같은 유혹이 옳지 않다고 여겨 남는 선택을 했다. 정작 전세사기에 눈감고 회유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은 그에게는 가시밭길이 열렸다. 

A씨는 “만약 일이 잘못돼 4월 입주가 취소되면 계약금 4000만원도 잃게 된다. 다음달까지는 무조건 해결을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저리대출을 지원책으로 내걸었지만 주택을 매입한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전세계약이 만료되며 전세보증금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도 저리대출 지원을 받지 못한다.

A씨가 전세보증금을 온전히 되찾으려면 끝이 보이지 않는 소송을 시작해야 한다. 일단 피해세입자들이 모여 남씨 등을 형사고소한 상태다. 형사소송에서 일정 결과가 나오면 이를 근거로 전세금 반환소송을 건다. 전세금 반환소송에 승소해도 명의만 내건 바지 임대업자는 돈이 없기에 결국 조직적 사기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 주범들에게서 돈을 되찾으려면 현재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라는 설명이다.

전세와 관련한 제도를 허술하게 만들어 대규모 전세사기를 막지 못한 책임과 조직적 사기가 드러났음에도 제때 대처하지 못해 피해를 더 확산시킨 책임은 정부에게 있지 세입자에게 있는 건 아닐 터다. 그러나 피해는 조직적 전세사기에 회유되지 않고 버티는 세입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셈이다.

A씨는 “제3자가 보기엔 계약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니 사인간 민사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실체는 사회적 재난이자 경제적 살인이라고 확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전세제도를 뒷받침하려던 방식은 너무 이상적이었고 이를 악용한 결과가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라는 것이 그의 평이다.

한 전세사기 피해자가 구멍이 크게 뚫린 복도천장을 보여주며 피해 아파트의 관리 부실을 호소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한 전세사기 피해자가 구멍이 크게 뚫린 복도천장을 보여주며 피해 아파트의 관리 부실을 호소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다시는 전세로 못 살 것 같다”

ㄴ아파트 세입자인 B(42)씨는 지난해 7월 직접 경매통지서를 받고서야 전세사기 사건을 알게 됐다. 부동산에 연락해봤더니 “임대인이 힘든 것 같다. 통지서 안내대로 따르라”는 말만 했다고 한다. 전세계약 당시 전세보증금 보험을 묻자 “뭐하러 하느냐”고 일축했던 이 부동산은 그 뒤 문을 닫았다.

B씨는 2019년 9월 입주해 1차례 재계약을 했다. 재계약 기간은 오는 9월 종료된다. 전세보증금은 7500만원. 그는 “부동산에서 계약할 때 이행보증서도 작성했는데 알아보니 아무 의미도 없더라”라며 “전세보증금 규모가 더 낮은 세입자 중에서는 최우선 소액보증금 변제 3400만원만 받아 월세 산 셈치고 포기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무서워서 다시는 전세로 못 살 것 같다”고 탄식했다.

피해 세입자들에게는 이달 발표한 정부대책도 허술한 면이 많아 보였다. B씨는 “이번 대책으로 안심전세앱이 나왔는데 어떤 세입자가 들어가보니 전세사기 당한 그 아파트가 안심으로 나온다더라. 뭘 믿고 전세를 들어가겠냐”라며 “신축은 공시지가도 없다. 이 지역은 주위 모두 남씨 소유나 마찬가지니 그가 시세가 4억원이라면 4억원이고 5억원이라고 하면 5억원이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B씨는 재계약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자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때 부동산을 통해 알아본 집들도 다 남씨 소유였다. 만약 당시에 이사했다면 이사비용은 비용대로 들면서 보증금은 더 내고 최우선변제금도 깎일 뻔 했다”고 말했다. 이 지역을 떠나지 않는 한, 피해자들이 전세사기의 마수에서 벗어났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았다.

인천에도 전세피해지원센터가 설치됐지만 B씨에게는 딴 세상 얘기다. 저리대출 조건도, 소송 등 법률지원도 중위소득 125%를 넘으면 해당되지 않는다. 그는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확인서를 발급한다는데 이것도 경매낙찰이 돼야 받을 수 있다”라며 “센터에 전화해보면 상황을 나보다 모르더라. 상담을 받아도 도움되는 내용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런 세입자들을 찾는 이들은 정체불명의 ‘컨설팅업체’였다. B씨는 “2억5000만원에 전세를 계약해라. 그러면 등기부등본이 깨끗해지니 전세보증금 보험에 가입된다고 전화가 왔다”라며 “과연 2년 뒤에 어떻게 될지 생각하니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정답이 없다. 가장 빠른 답은 최우선변제금 뿐이다”고 답답해 했다. 

세입자들은 “오늘 세운 계획이 몇 시간 안 가 무너지고 다시 세운 계획은 내일 무너지는” 시기를 그저 견디고 있다. B씨는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안 된다. 알아보고 있다. 문의하고 있다’ 이 세마디다”라며 “경매중지가 절실한데 은행이 돈 받으려 경매를 하는거니 법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만 한다. 결국 손해는 다 세입자가 보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 아파트 세입자들은 전세사기를 당한 고충뿐 아니라 안전 불안에도 시달리고 있다.  그는 “눈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줄줄 샌다. 어떤 세대는 불만 키면 차단기가 내려가 냉장고만 작동시켜 살고 어떤 세대는 물이 역류하거나 내려가질 않는다”라며 “남씨와 관련된 건설사가 시공한 걸로 안다. 부실공사인데 보수도 안 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한 면에는 관리업체가 주차타워 보수공사 비용을 각 세대별로 안분비례한 청구내역이 맥없이 붙어있다. 한 번은 관리업체가 옥상 방수공사를 진행했는데 그 공사비용도 임차인들이 분담해 부담하게 했다. 방수공사를 한 뒤에도 물이 새는 건 여전했다고 한다.

B씨가 거주하는 아파트 최고층인 15층에 가보니 복도 천장이 크게 뚫려 방치돼 있었다. 기본적인 건물관리가 안되는데다 관리업체까지 남씨와 연관이 있다고 의심한 세입자들은 관리비 납부를 거부하고 있다. 그는 “소방벨도 없다. 불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한 채로 버티고 있다”고 사정을 전했다.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로터리 일대에는 전세사기로 피해를 입은 다세대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투데이신문
인천시 미추홀구 숭의로터리 일대에는 전세사기로 피해를 입은 다세대주택들이 밀집해 있다. ⓒ투데이신문

“시간 필요하다는데 우리야말로 시간이 없다”

대책위 김병렬 부위원장은 “대부분 세입자들이 많은 근저당이 있음에도 보증금이 저렴해 들어오게 됐다. 중개사들이 ‘집주인이 여러채를 보유한 사업가여서 안심해도 된다. 전세보증금 보험은 따로 얘기하자’는 식으로 꾀고 이행보증증서 등을 내미니 넘어가게 됐다”라며 “주범들은 최근까지 ‘환매특약을 걸테니 세입자가 집을 사라. 그러면 5년 뒤에 가져가겠다’는 식으로 유인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개인 혼자 눈을 부릅뜬다고 조직적으로 속이려 드는 사기수법을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 부위원장은 “사건이 드러난 뒤 반년 넘게 국토교통부, 국회, 인천시를 쫓아다니고 있지만 대개는 말 뿐이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 피해세입자들이야말로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호소했다. 정부가 회의하는 그 시간에 세입자들이 대책없이 쫓겨나는 게 실상이다.

근본적인 피해지원대책을 세우려면 주범들에 대한 발빠른 구속수사를 통해 명확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건축왕’ 남씨는 지난해 12월 영장실질심사에서 기각돼 풀려났으며 올 2월에야 구속됐다. 이를 두고 법원이 피해변제 보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피의자 손을 들어주며 재산은닉, 증거인멸의 시간을 벌게 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한, 조직적 전세사기에 따른 손해배상도 조속히 이뤄지도록 행정-입법-사법 간 연계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김 부위원장은 주장했다. 국토부는 국토부대로 법원은 법원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제각각 대응해서는 사기꾼들의 판에 국가가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세입자가 거주한 주택에 대한 경매 진행을 막을 수 없다면 정부가 해당 주택을 매입하는 방안의 검토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 부위원장은 “현재 마련했다는 긴급주거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라며 “피해자들이 재기할 동안 살 수 있도록 공공이 나서 매입했으면 한다. 국가에 가장 바라는 점”이라고 호소했다.

실제 국회에는 깡통전세 주택을 공공매입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기도 하다. 전세사기의 심각성이 알려지면서 여야가 앞다퉈 관련법안을 쏟아내듯 발의했지만 이들 법안의 국회 통과가 언제 이뤄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보다 앞서 2021년 무렵 발의됐던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 근거를 담은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과 임대인 세금 미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특별법 개정안은 14일에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국토부에서 추가 피해지원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이 역시 언제 대책이 만들어질지 기약이 없다. 국토부 주택임차인보호과 관계자는 “이달 종합대책이 나온 뒤 바로 대환대출을 추가로 추진하고 있다”라며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피해자들의 의견을 접수하고 있으며 내용을 보고받고 있다.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지원대책에)반영되도록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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