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산업연구원 강두용 선임연구위원
금융위기 이후 세계 교역 증가율 둔화
내수 활성화가 경제 성장 이끄는 동력
1인당 소득 증가율 높이는 문제가 관건
가계부채, 주택경기 연착륙 유도가 중요
노인 빈곤, 청년 문제만큼 중요한 문제

대한민국은 급격한 출산율 저하와 기대수명 연장으로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실제 지난 2021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래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인구절벽을 확인했다. 본격적인 인구감소는 수요 감소와 물가하락으로 이어져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고 기업의 생산성 저하로 경제성장률에 대한 하락 압력을 가중시킨다. 이미 IMF(국제통화기금)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진 일본보다 낮은 1.7%를 전망했다. 디플레이션 공포는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보다 경제시스템에 치명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온 만큼 <투데이신문>은 향후 인구감소에 따른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을 짚어보고 전문가를 통한 대응 방안 논의까지 확장해보고자 한다.

산업연구원 강두용 선임연구위원 ⓒ투데이신문
산업연구원 강두용 선임연구위원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불가사의한 승리는 있어도 불가사의한 패배는 없다” <갑자야화>로 유명한 마쓰라 세이잔의 말이다. 인구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사회구조 변화는 이제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는 시장 축소, 소비침체 그리고 저성장 문제로 이어진다. 인구감소 문제는 경제정책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문제를 바로 인식한다면 연착륙을 위한 대책을 고안해볼 수는 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 강두용 선임연구위원을 만나 인구감소에 따른 장기불황 가능성을 진단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해 봤다. 

강 선임연구위원은 이미 10년 전 인구감소에 따른 경제성장률 둔화가 진행돼 2020년대에 1%대로 낮아질 것을 전망한 바 있으며, 특히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가계부채 조정이 동시에 진행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또한 수출주도 경제 성장에서 내수 활성화를 통한 성장을 강조했다.

- 선진국을 중심으로 인구감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일본과 인구·경제 구조가 비슷한 우리나라는 여전히 일본형 불황의 그늘에 있는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회복되면서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해 디플레이션 문제가 관심에서 멀어진 상태이긴 한데 2010년대부터 코로나 전까지 일본이 디플레이션을 겪었고 다른 선진국도 그럴 가능성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이슈가 됐었다. 

우리나라의 인구 추이는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보통은 10년에서 20년 정도 시차를 두고 따라간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더 단축되고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일본보다 낮은 세계 최저다. 그리고 경제학적으로 당연히 경제성장률과 인구 증가율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어떤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즉, 경제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전체 경제의 규모가 커지는 부분도 있지만 경제 성장의 최종적인 관심은 ‘1인당 소득성장률’이다. 꼭 인구가 감소한다고 해서 1인당 소득 증가율이 낮아질 이유는 반드시 없다. 

왼쪽 일본 1인당 GDP 오른쪽 연간 일본 GDP 성장률 [사진출처=TRADINGECONOMICS, WORLD BANK]
왼쪽 일본 1인당 GDP 오른쪽 연간 일본 GDP 성장률 [사진출처=TRADINGECONOMICS, WORLD BANK]

그리고 일본도 보면 90년대 자산 버블붕괴를 계기로 경제가 굉장히 오래 침체됐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인구감소와 낮은 경제성장률이 진행돼왔다. 그러나 1인당 소득 증가율이나 노동자 1인당 GDP 증가율 등 생산성 증가율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지 않았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꼭 일본의 장기 침체라고 하는 것이 알려진 것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다. 

-경제 성장의 핵심인 생산연령인구 감소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지금 우리도 이미 생산연령인구는 감소세에 들어섰지만 일본과는 약간 차이가 존재한다. 일본은 90년대에 버블붕괴라는 엄청난 충격을 겪으면서 장기 침체 디플레이션이 진행됐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가계부채 문제가 트리거다. 따라서 가계부채 문제만 잘 관리된다면 일본과 같이 꼭 동일한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생산연령인구 감소가 진행되면서 시장의 역동성도 점점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시장의 역동성이 위축된다면 기업의 경영악화가 예상되는데.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일본만큼 위축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그런 부분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과거 IT분야 쪽에서 정상급 기업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세계적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소니, 히타치 같은 기업들은 이제 2류 기업이 돼버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의 반도체를 비롯해 LG, SK등 배터리 분야 세계 정상급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조선산업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에서 일본의 산업 후퇴만큼 빠르게 위축되는 추세는 보이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당연히 인구감소가 향후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경제 상황이 지금과 같이 지속되기 어려우나 어떤 형태로든 감소세를 최소화하는 정책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정책들을 논의해 볼 수 있나.

인구감소는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추세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관련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대부분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프랑스 정도가 이제 출산율이 올라갔다고 하는데 외국인 노동력을 수입하는 방법이 단기적으로는 제일 효과적이라고 본다. 외국인 노동력을 유치하는 게 전 세계적인 측면에서 고르게 잘 살 수 있는 상생의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그런 방법을 상정해 볼 수도 있고 좀 더 많은 외국인 노동력 수용을 통해 생산연령인구 감소를 상쇄해 볼 수 있겠다.

대한민국 무역수지 추이 [사진출처=TRADINGECONOMICS, 산업통상자원부]
대한민국 무역수지 추이 [사진출처=TRADINGECONOMICS, 산업통상자원부]

-중국도 인구감소가 본격화됐다. 이에 따른 저성장은 우리나라의 수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데.

영향은 당연히 받을 수 밖에 없다. 수출 부진이라고 하는 현상은 이제 크게 구조적 부분과 사이클적인 부분이 있는데 먼저 사이클적인 부분은 지금 코로나로 인한 세계 경제가 침체로 볼 수 있고 구조적인 부분은 금융위기 이후 세계 교역 증가율이 예전만큼 빠르지 않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말하자면 세계화가 후퇴된 상태다. 특히 선진국 중심으로 세계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으로 지금은 거의 반세계화 쪽으로 가고 있다. 따라서 교역 증가율은 낮아지는 추세에 있으며 우리나라의 수출주도형 성장 시스템으로는 경제 성장을 견인할 수 없다.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수출주도형 경제 성장 시스템은 와해 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수출 증가율이 GDP 증가율보다 낮아 현재는 수출주도 성장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구조는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렇다면 경제 성장을 위한 어떤 대안을 모색할 수 있나.

지금까지는 수출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수출과 내수가 함께 이끌어야 한다. 우리나라 내수시장은 세계에서 10위권 안으로 들어가는 규모다. 따라서 소비 증가가 수출 부진의 완충 역할을 함과 동시에 경제 성장을 이끄는 동력이 돼야 한다. 이 부분은 경제수요 구조를 바꾸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수요 구조 변화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나.

90년대부터 금융위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소비 증가율은 경제성장률 보다 훨씬 낮았다. 매년 약 1%포인트 이상 낮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 이런 게 수출이 둔화되면서 자연스럽게 경제구조가 변해가는 과정이다. 

게다가 사회보장제도의 확충 등에 따라 소비 증가율이 예전보다 높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구축했다. 이런 식으로 경제가 선진화되고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소비가 당연히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동안 수출의 비중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적응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단기적인 과제라고 볼 수 있겠다. 

대한민국 소비자 지출 추이 [사진출처=TRADINGECONOMICS, 한국은행]
대한민국 소비자 지출 추이 [사진출처=TRADINGECONOMICS, 한국은행]

-소비 활성화에 대한 정책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 같다.

소비 증가율이 낮아진다는 것은 경제성장률이 낮아진다는 것과 같은 맥락인데 말하자면 예전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특히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진행된다면 소비의 문제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줄어드는 생산인구가 고령자를 부양해야하기 때문에 연금 문제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제 세대 간 형평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가 핵심이 될 텐데 이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다 같이 처음 겪는 상황이라 쉽지 않다. 프랑스의 경우에서도 보듯 연금연령을 올리자 반대가 심해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먹여 살려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연금 개혁은 필연적인 부분이다. 

또한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사람들의 여가시간을 보장해서 소비 유인을 해야한다. 우리나라는 소득수준으로 보면 OECD 내에서 이제는 거의 정상급에 가깝지만 노동시간은 여전히 두 번째로 높은 나라다. 소비 활성화를 위해서는 사회보장 시스템 강화가 필요하다. 예전보다는 사회보장 시스템 구축이 잘 돼 있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아직 많이 부족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노인빈곤율이 OECD에서 가장 높다. 심지어 2위와의 격차도 크다. 현재 인구 감소 문제를 거론하며 생산연령인구의 감소와 청년 문제를 해결하려는 쪽으로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노인 빈곤은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제다. 앞으로 뒤쳐져선 안 될 시급한 현안이라고 생각한다. 

가계부채 국제 비교 [사진출처=산업연구원]
가계부채 국제 비교 [사진출처=산업연구원]

-가계부채 문제도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최근 전세보증금을 반영한 한국의 가계부채가 OECD 국가 중 GDP대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IMF 집계방식은 좀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세계에서 상위권 수준이다. 가계부채는 주택경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주택경기는 이미 하강 국면에 들어섰고 부채비율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주택가격이 급락할 경우 단기적으로 가장 위험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서는 주택경기의 연착륙 유도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1%대 혹은 1% 이하로도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장기 침체로 가는 구조적 신호라고 보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인구 추세적 감소와 경제성장률에 대해 10년 전에 보고서를 쓴 적이 있다. 그 보고서에 이미 2030년이 되면 경제성장률이 1%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침체는 성장률이 낮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경제가 생산할 수 있는 능력보다 생산수요가 모자라서 못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인구 증가율이 낮아서 성장률이 1%고 1인당 소득 증가율은 여전히 높다면 그건 침체가 아니다. 침체는 실업이 높고 수요가 부족한 상태를 경제학에서는 침체라고 한다. 따라서 노동력이 부족해서 인구가 낮아져서 성장률이 낮은 것은 침체가 아니라 저성장이다. 

경제성장률이 1%대, 설사 0%대로 가더라도 1인당 소득이 예전만큼 증가한다면 그 경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후생 관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시장 자체의 역동성이 줄어 1인당 소득 증가율이 낮아질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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