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단계 하향 시 비대면 진료 근거 사라져 입법 공백
보건복지부 “시범 사업으로 재진 환자는 가능케 할 것”
산업계 “국민 누구나 초진부터 이용할 수 있어야”...反
의료계 “환자 본인 확인도 못하는 초진은 위험해”...贊
환자연합 “세부 논의 미루고 법적 근거 마련 우선해야”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소아·응급·비대면 진료 관련 당정협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달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소아·응급·비대면 진료 관련 당정협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단계 하향 조치를 앞두고 비대면 진료 유지 여부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이를 둔 입장차가 선명한 상황이다.

4일(현지시각) 세계보건기구(WHO)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해제 조치에 따라 우리 방역당국도 이르면 이번 주 중 코로나19 위기단계를 하향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국내에서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가 사라진다는 점에 있다. 비대면 진료는 당초 불법이나, 감염병 예방법에 따라 위기 단계가 ‘심각’인 경우에 한해 허용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비대면 진료는 감염병 예방법 ‘심각’단계에서 의료기관 이용에 따른 감염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초진과 재진 여부를 막론하고 전면 허용되고 있다.

구실 잃은 비대면 진료...정부, “시범 사업 내놓겠다”

비대면 진료는 스마트폰과 같은 IT 기기를 이용해 원격으로 의사의 진료를 받는 서비스를 말한다. 닥터나우, 나만의닥터 등 30여개 업체에서 병·의원과 연계해 운영 중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2월 24일부터 올해 1월 말까지 3년여간 매년 증가해 총 1379만명이 병·의원 2만5697곳에서 3661만건의 비대면 진료를 받아왔다. 

하지만 위기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되면 비대면 진료는 법적 근거를 잃게 된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이미 자리 잡은 비대면 진료 사업의 입법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범 사업’ 형태를 도입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재진 환자 위주로 시행하는 것을 기본으로 세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대면 진료는 환자의 접수와 의사의 전화 상담으로 진행되는데, 이것만으로는 종합적인 진찰이 어려운 만큼 첫 진료는 의사 대면 하에 이뤄지는 것이 안전하다는 판단이다. 조만간 시범 사업의 범위와 방식을 전문가 자문 등의 논의를 거쳐 확정한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사진제공=뉴시스]<br>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영등포구 스위치22에서 보편적 의료체계를 촉구하는 성명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산업계 “사업 확장 위해 비대면 초진도 포함해야”

이에 대해 산업계는 비대면 진료에 초진도 포함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협의회)는 “국민 누구나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닥터나우 장지호 대외총괄 이사는 “3년 동안 3600만건 이상의 비대면 진료가 진행됐는데 오진이 발견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비대면 진료는) 중환자들이 쓰는 서비스가 아니라서 위험도가 낮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진료를 신청했는데 환자의 질환이 중증으로 보이면 대면 진료를 요청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또 다른 협의회 관계자는 “시범 사업 전환이 코앞에 있는데도 아직 정부에서 이렇다 할 지침을 주지 않고 있다”며 “재진 환자 위주로 시범 사업을 시행할 경우 기존 시스템을 개편해야 하기 때문에 (서비스 운용에) 혼선이 생길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재진 환자 중심 비대면 진료는 시대를 역행하는 규제”라며 “청년 스타트업이 대다수인 산업계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울 중구 보아스 이비인후과병원 오재국 원장이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비대면 진료를 하고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 중구 보아스 이비인후과병원 오재국 원장이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비대면 진료를 하고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의료계 “재진은 허용, 오진 위험 있는 초진은 반대”

보건복지부가 비대면 진료의 가닥을 ‘재진 위주’로 잡아가는 가운데 의료계는 반대 입장을 공고히 다지는 분위기다. 

대한의사협회(의협)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에서는 대부분 전화 진료라는 제한적인 수단이 사용됐는데, 이는 환자 본인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오진의 위험성이 가장 높다”고 주장했다. 또한 “초진을 비대면으로 진료하는 경우 대면 표준 진료와 비교할 때 동등한 수준의 효과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비대면 진료는 반드시 대면 진료의 보조적 방식으로 취급돼야 한다”면서 “환자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비대면 진료 초진 불가, 재진 환자 위주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비대면 진료와 관련한 5개의 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재진의 경우에 한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여야 의원 4명의 의료법 개정안과 초진까지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의 법안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국회는 비대면 진료 대상에서의 초진 포함 여부 등의 논의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 이후로 미루고 지금은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법적 근거를 신설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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