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이영민 편집인<br>
△ 투데이신문 이영민 편집인

지난 6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개최된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찰리 멍거 부회장이 주주들과의 질의응답 세션을 진행하고 있었다. 질문자로 나선 13세 소녀가 당찬 질문을 던졌다. 6년째 주주총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힌 이 소녀는 현재 미국의 국가부채가 31조 달러, GDP의 125%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높은 부채 비율에도 연준이 인플레이션과 싸운다는 명분하에 수조 달러를 찍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등 세계 주요 경제국들도 달러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래에 미국 달러가 더 이상 기축통화가 아닌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경우 버크셔는 이러한 가능성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버핏 회장은 이 소녀를 향해 웃으면서 여기 올라와서 질문에 답해달라고 부탁해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짐짓 당황한 눈치였다. 버핏 회장의 답변은 이랬다. 달러는 기축통화이고 다른 어떤 통화도 기축통화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 그러면서도 통화량 증가에 대해서는 “돈을 계속 찍어내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다.

과연 버핏 회장이 단언한 것처럼 달러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내려놓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 달러화 이전에 영국의 파운드화, 네덜란드의 길더화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누렸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축통화의 지위는 주요 경쟁국과의 경제·군사적 우위에서 뒤쳐질 경우 상실된다.

어제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부채 한도 상향 협상에 최종 합의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미국 주식시장이 이에 화답하며 급등세를 보였고, 국내 시장 역시 영향을 받는 듯하다. 협상 타결로 당장 세계 금융시장에는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부채가 급증하고 무제한 달러찍기가 계속된다면 달러화도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파운드화나 길더화처럼 말이다.

화폐 공급량의 증감이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르네상스시대부터 현재까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이다. 화폐 공급량이 급격하게 증가하면 인플레이션(화폐가치의 하락)이라는 부작용도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08년 미국 주택부문의 부실 문제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에 2020년 코로나 팬데믹까지, 기축통화인 달러는 단시간에 급격한 통화팽창을 겪었다. 자본주의는 부채를 기반으로 성장한다지만 감당할 수 없는 부채는 신용의 하락을 가져오고 궁극엔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킬 수밖에 없다. 그동안 기축통화의 지위를 누렸던 통화들이 여지없이 이러한 사이클을 통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앞으로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견고히 유지될 수 있을까. 올해 4월 29일자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The power and the limits of the American dollar'라는 기사를 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지정학적 불안정성, 러시아에 부과한 제재 등의 영향으로 달러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페트로 달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세계 무역대금 결제에 위안화 사용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달러를 거래 매개로 사용하는 지역과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영원할 것만 같던 달러 헤게모니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에서 질문을 던진 13세 소녀와 같은 의문을 우리도 품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유지될지, 중국이라는 신흥 강자가 그 패권에 도전장을 던지고 결국 새로운 패권국으로 등극할 가능성은 없는지. 정부는 최근 대미 올인 외교를 위태롭게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을 따가운 질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준비는 늘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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