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이영민 편집인

최근 민생경제 회복을 전제로 한 정부의 노골적인 시장개입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금융과 통신, 부동산, 식품업계 등 전방위적 시장압박이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반면, 서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공부문 서비스에 대해선 강화된 효율성 잣대를 들이대, 공공성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예대마진으로 사상 최대 수익을 거뒀다며 은행권에 금리인하를 압박하고, 고가 요금제를 부추긴다며 통신사들을 악마화한다. 이뿐인가. 가격 하락기 역전세 현상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완화를 검토하는 등 부동산 투기에는 면죄부를 주려한다. 우리나라 경제의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기재부 장관은 라면업계를 콕 찍어 직접적인 가격인하를 주문했다. 모두 시장경제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수 있는 반(反) 시장행위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이 같은 정부의 시장개입은 엄중한 상황에 놓인 민생을 챙긴다는 의미에서 수긍이 가는 면이 없지는 않다. 더욱이 체제의 선명성이 희석된 현대 사회에서 공산주의 계획경제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어렵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두 체제 모두 대다수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며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민간 영역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과도한 정부의 개입은 경쟁체제 하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적정 가격을 찾아가는 시장경제의 매커니즘을 뿌리째 흔들어 심각한 왜곡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이후 줄곧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가치인 ‘자유·시장’의 이념에도 역행하는 것이어서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피폐해진 민생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민간 영역에 앞서, 공공부문의 역할 확대가 우선돼야 한다. 한전과 LH, HUG 등 대국민 서비스 기관을 통한 경제안정화 노력이 선행됐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기재부가 공개한 2022년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정부의 경제안정화 의지에 의구심을 갖기 충분하다. 새 정부의 정책방향은 효율성과 공공성간 균형 있는 평가가 중점 사항이라며, 재무성과 비중을 두 배로 확대했다. 이제는 공공기관도 민간처럼 전 국민을 상대로 이윤 극대화에 나서라는 주문인 것인가.

국가경제의 근간은 기업이다. 민간은 민간의 영역에서 공공은 공공부문에서 그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정부는 위기가 찾아올수록 기업이 정상적인 투자와 생산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민간의 소비가 살아날 수 있도록 경제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는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적극적이고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겠지만, 독립경영에 침해 소지가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일체의 행위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라면 업계에 이어 제과·제빵 업계도 가격인하 움직임에 동참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장관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 초고속으로 업계가 반응하고 있는 현실이 과연 바람직할까. 대놓고 말은 못해도 고육지책으로 나온 억지춘향식 임기응변에 불과할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만경영’ 운운하며 공공부문은 우선 때리고 보자는 식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객반위주(客反爲主)의 비아냥이 뻔한 효율성 강화로 예견되는 건 공적영역의 사기저하에 따른 대국민 서비스 질의 심각한 훼손이다. 정부는 시장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적 시각으로 접근해 실물경제를 교란시키고, 시장참여자들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누를 범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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