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올해 초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자신의 남편이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호소의 글이었다. 아내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기업이라면서도 피해자에 대해선 특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부에 알리는 행동 때문에 남편이 또 다른 피해를 입게 될까봐 메일을 보내는 것도 수십 번 망설였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가장이기에 오늘도 버티고 출근했습니다. 매일 밤 잠 이루지 못하고 억울한 상황과 폭언‧갑질에 오열 합니다”라며 “출근 시키는 것이 지옥입니다. 온전하게 집에 와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업무에 시달리느라 바쁜 남편이라는 걸 알지만 메시지 읽기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라고 토로했다. 

아내가 바란 것은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환기였다. 구체적 사례를 드러내 공론화 했다간 2차 가해, 보복, 소송 등으로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것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한국사회가 직장내 괴롭힘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동료들도 방관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간절히 전했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지 4년이 훌쩍 지났지만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이 더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 현황(2022년 기준)’을 살펴봐도, 관련 신고 접수는 2020년 5823건에서 2021년 7774건, 2022년 7814건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른 검찰 송치 건수도 같은 기간 70건에서 148건, 173건으로 증가했다.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22.5%가 ‘직장 내 괴롭힘 및 직장 내 인간관계’를 2023년 한 해 가장 힘들었던 일로 꼽았다. 또 별도의 설문조사에서는 ‘일터에서 맞았다’는 증언이 65건에 달하기도 했으며 직장갑질119 이메일 상담 중 세상을 등지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언급한 사례도 53건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내 괴롭힘 문제가 실제 죽음으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만 해도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제조업체와 인천 지역 장애인활동지원기관,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에서 직장내 괴롭힘 의혹에 따른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선택이 잇달아 발생했다. 

과거 몇 차례 관련 사례를 취재하며 생각했던 점은, 직장내 괴롭힘이 단순한 폭언과 갑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길을 걷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욕을 먹었다고 절망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직장내 괴롭힘은 문제를 직면해도 벗어날 수 없다고 느낄 때, 또 조직으로부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느낄 때 강렬한 무력감으로 다가온다. 

임금 노동자에게 직장은 인생의 최소 1/3이라는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곳이다. n번째 직업이 자연스러운 디지털 노마드 시대라지만, 직장은 여전히 개인의 삶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그런 곳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이란 피해자를 극단적으로 소외시키고 그의 인생 1/3을 통째로 부정하는 행위가 된다. 그 가운데 피해자의 가족들도 함께 고통을 느끼며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개별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해도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습을 목격한다. 수년전 취재했던 피해자도 지난해 나눈 통화에서 여전히 법적 다툼을 이어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 4년 전 도입됐지만 무엇이 바뀌었는지 체감하기 어렵다.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 전반의 직장 문화 개선이 정답일 수밖에 없어보인다. 지속적인 언론의 문제제기와 정부‧대중의 관심이 중요한 이유다. 부디 올 한 해는 직장내 괴롭힘이 누군가의 죽음으로써 사회적 의제가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