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4주 이내 조건 없이 허용·24주 이내 제한적 허용
여성계 “낙태죄 유지와 다름없어…전면 폐지돼야” 주장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지난 9월 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 맞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지난 9월 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 맞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낙태죄 개정 시한이 3달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법무부가 낙태(임신중지) 허용 기간을 명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해 온 여성계는 이 같은 개정안에 반발하고 있다.

법무부는 7일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과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것으로, 헌재는 지난 2019년 4월 11일 형법상 자기낙태죄(제269조 제1항)와 의사의 업무상동의낙태죄(제270조 제1항)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헌법불합치 결정하고 올해 12월 31일을 개정시한으로 정한 바 있다.

헌재의 결정 이후 정부는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법무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 등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낙태죄 개정에 대해 논의해 왔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는 낙태 허용 기간과 사유 등 합법적 허용범위를 삭제해 형법으로 이관하고 세부적인 낙태 시술절차와 사회·심리적 상담 등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형법 개정안은 낙태죄에 대한 처벌조항과 허용요건을 규정해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하고, 기존 모자보건법상 허용사유에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더해 헌법불합치 결정된 낙태죄 조항의 위헌적 상태를 제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한 여성의 임신유지·출산여부에 관한 결정가능기간은 임신 24주 이내로, 이를 임신 14주·24주로 구분해 허용요건에 차등을 뒀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신한 여성의 우생학적·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준강간에 의한 임신 △근친관계 간 임신 △임신한 여성의 건강 위험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형법 개정안은 임신 14주 이내에는 일정한 사유나 상담 등 절차 요건을 두지 않고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임신 24주 이내에는 기존 모자보건법상 사유와 함께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낙태가 가능하도록 했다. 사회적·경제적 이유로 낙태를 하는 경우 상담 및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하는 규정도 마련됐다.

법무부는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실현을 최적화하기 위해 임신 24주 이내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의 경우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상담 및 24시간의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했다”며 “상담 및 숙려기간을 거친 경우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것으로 추정해 입증 관련 논란을 방지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배우자 동의 요건’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이 밖에도 직업 선택의 자유 보장과 ‘낙태에 대한 생각은 신념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헌재의 결정취지를 존중해 의사의 신념에 따라 낙태 요청을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정의당 여성위원회가 지난해 4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심판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의당 여성위원회가 지난해 4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 심판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여성계 설문조사 결과 99%가 ‘낙태죄 처벌 반대’

법무부가 이 같은 내용의 입법예고를 했지만, 이는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7장 완전 삭제를 권고한 법무부 양성평등위원회의 권고에 반하는 것이다.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해 온 여성계는 이 같은 개정안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낙태 허용기간을 두는 것은 낙태죄를 유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난달 29일 논평을 통해 “임신중지 기간 제한은 낙태죄 유지와 다름없다”며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는 것은 여성을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 누구보다도 태어날 아이의 삶까지를 고려해 숙고하는 주체는 여성”이라며 “여성에 대한 불신에 기반한 처벌의 방식이 아니라 신뢰와 존중에 기반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들은 낙태죄 폐지와 대안 입법 방향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을 조사해 지난 9월 발표한 바 있다.

지난 8월 14일부터 9월 1일까지 19일간 7077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온라인 응답 방식을 통해 이뤄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7018명(99.2%)가 낙태죄 처벌을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또 임신주수 계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답한 응답자가 6469명(91.4%)으로 나타났다. 마지막 월경 시작일을 임신 시작일로 추정하는데, 이 같은 방식으로는 여성의 임신주수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뿐더러 월경주기가 불규칙한 경우 임신 사실을 14주 이내에 알아차리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 가 더 이상 범죄가 아닌 토대 위에서 여성이 마땅히 누려야 할 건강권과 의료권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달라”며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했다.

정치권에서도 개정안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지난 6일 브리핑을 통해 “낙태죄는 폐지하지 않고 처벌 기준만을 완화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며 “입법예고를 당장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임신중지를 한 여성과 의사 등을 형사 처벌하는 낙태죄를 삭제하고,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 성과 재생산권 보장을 위한 국가 역할과 책무가 논의돼야 한다”며 “정부는 여성들이 자신의 삶과 건강을 안전하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하며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낙태죄와 관련한 모자보건법·형법 개정안의 입법예고 기간은 오는 11월 16일까지 40일간이다. 이 기간동안 법무부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게 된다.

하지만 낙태의 허용요건만 완화됐을 뿐 헌재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처벌조항은 그대로 유지돼 법안이 최종 공포되기까지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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