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빈민촌의 여름과 겨울은 혹독하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지 않은 곳 어디 있겠냐마는 노년기에 접어든 주민들이 견뎌내기에는 구룡마을의 여건이 만만치 않다. 이웃끼리 모여 사니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삶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더위와 매서운 추위 앞에서는 역시 이사 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머뭇거린다. 

지난겨울 구룡마을은 유난히 힘들었다. 예년보다 날이 추웠고 눈도 많이 내렸다. 특히 올해 1월에는 서울 기준 아침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지기도 했으며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상회하는 기록적인 한파가 이어졌다. 수차례 내리던 폭설도 주민들의 생활을 더욱 고되게 만들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구룡마을 거리의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골목길과 나뭇가지 위에 내려않은 눈도, 슬레이트 지붕 위에 맺힌 이슬도 얼음이 돼 층층이 쌓여간다. 겨울이 되면 지붕 처마를 비롯한 마을 곳곳에 고드름이 가득 열린다. 

주민들은 매년 반복되는 수도시설 동파가 겨울철 가장 힘든 일이라고 증언했다. 마을 생성 초기에는 지하수를 물탱크에 받아 식수를 해결했다. 무허가 주택 특성상 철거를 기본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수돗물 공급을 계획하기 어려웠다. 

실제 과거 서울시 급수현황 통계를 살펴보면 1996년 기준 관내에서 미급수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강남구였다. 당시 강남구 급수 대상인구 중 7500명이 상수도가 설치되지 않은 곳에 거주했는데, 이 시기 구룡마을에는 2000가구 이상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돼 미급수 주민 대다수가 이 마을 주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구룡마을에도 강남구청의 요구로 1997년부터 상수도 공급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하에 수도관 매립이 어려운 대다수의 지역은 집집마다 지붕 위로 물이 지나가는 관을 이었다. 수도관이 땅이나 건물에 묻혀 있지 않으니 당연히 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식수가 얼어붙으면 샤워는 고사하고 따뜻한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어려운 일이 된다. 

겨울철 동파만큼 무서운 건 화마(火魔)다. 날씨가 추워지면 주민들은 전기장판과 연탄불로 생명의 열을 유지한다. 열악한 전기시설은 합선이나 누전 등으로 이어져 화재의 위험을 높인다. 타고 남은 연탄의 재, 부탄가스, 전기 온수히터 등의 사용량 증가도 불이 나는 요인이 된다. 

때문에 구룡마을 곳곳에는 “문어발식 콘센트 사용을 삼가달라”, “가스불을 사용하실 때는 자리를 비우지 마세요” 등의 내용이 적힌 현수막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거주민들의 연령이 높아질수록 화기나 온열도구를 사용하면서 깜빡하는 경우가 많아 크고 작은 화재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단 불이 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구룡마을의 집들은 목재 가공품인 판자로 지어졌으며 지붕 위에는 추위를 막기 위한 천이 덮여 있다. 집안의 가재도구도 옷이나 이불 같은 가연성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마을 전체가 미로 같은 좁은 골목으로 이뤄져 있어 소방장비나 인력 투입에도 한계가 있다. 또 마른 낙엽이 수북이 쌓인 늦가을부터 초봄 사이에 불이 난다면 인근 구룡산이나 대모산으로 번질 위험도 높다. 골목 곳곳에 소화기가 배치돼 있긴 하지만 연로한 주민들이 화재발생시 신속히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가 남아 있다.

구룡마을 언덕 어귀에 사는 한 주민은 “서울 전농동에서 살다가 구룡마을 물이 좋아 이 동네로 오게 됐다. 당시에 여기 집이 싸서 하나 장만을 했다”라며 “근데 허구한 날 불이 나니까 무서워서 살 수가 없었다. 자다가도 불이 나면 뛰쳐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신발을 신고 잠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구룡마을에서는 지난 2014년 주민 1명이 사망하고 63가구가 소실되는 큰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소방당국은 소방헬기 5대, 소방차 50여대, 소방대원 167명을 투입했지만 진입로가 좁아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사고로 주민 139명이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을 해야 했고 70대 주민 1명이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질식사했다. 

이 화재는 서울시와 강남구의 개발 방식을 두고 이어진 대립을 종식시킬 만큼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기도 했다. 당시 시와 구는 구룡마을 개발 부지를 환지 혼용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 100% 수용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를 두고 갈등을 이어왔다. 환지방식이란 토지주에게 보상금 대신 개발구역 내 조성된 땅을 주는 보상법을 말하고, 수용방식은 보상을 통해 토지를 모두 취득한 후 개발을 진행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시는 일부 환지를 통해 토지주와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구는 공영개발 취지에 어긋나는 판단이라며 반대해왔다. 이 같은 갈등은 당시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수년간 이어져 왔지만 마을에서 잇달아 화재가 발생하면서 시가 구에 양보, 100% 수용 및 사용 방식으로의 합의가 이뤄졌다.  

이밖에 몇몇 주민들은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혹서기가 찾아오면 무엇보다 화장실 냄새를 견디는 일이 가장 곤욕스럽다는 토로가 이어졌다. 구룡마을에는 하수 시설이 부족하고 개별 집들이 좁아 대부분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 이 화장실들은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다. 

화장실은 나무판자로 벽을 세우고 경첩으로 문을 달아 만들었다. 저녁에도 이용할 수 있게 전선을 끌어다가 나무 외벽에 등을 하나씩 달았다. 내부까지 밝히기엔 부족하지만 가로등조차 없는 마을에서는 그나마 발 디딜 곳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문에는 얼마간 틈을 내서 환기를 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그 냄새가 고스란히 골목과 가정집으로 전달된다. 

여름이 되면 재래식 화장실에는 온갖 벌레가 득실대기 시작한다. 이 벌레들은 가정 내 식재료들이나 음용수를 오염시켜 집단 질병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주민들에 따르면 수년 전에는 지역 보건소 등에서 거의 매주 찾아와 화장실 주변 소독을 하고 갔는데 최근에는 왜인지 보기 어려워 졌다고 말했다. 강남구청에 이 같은 민원을 질의하자 “방역 관련해 보건소에 요청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여름철 물난리도 피할 수 없는 재해 중 하나다. 구룡마을 곳곳에는 산으로부터 이어진 실개천이 흐르는데 어떤 집들은 개울 바로 위에 지어져 마치 수상가옥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배수로 정비나 제방시설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매년 장마철이 되면 물이 범람해 가옥을 침범한다는 것이다. 

구룡마을은 지역 대부분이 산지에 둘러싸여 음지의 성격을 띠고 있어 습도가 높다. 일부 주민들은 집안 내부에 습기가 많이 차 여름에도 연탄을 때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더욱이 장마가 찾아오면 물먹은 판자들과 천으로 뒤덮여 눅눅한 생활을 피하기 어렵다. 

마을에서 가장 큰 개울 위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한 주민은 “집 아래 개천이 범람해서 물난리가 많이 난다, 배수로 정비가 잘 안 돼 있으니 비가 많이 오면 집안 바닥에 물이 가득찬다”고 토로했다. 다른 주민도 “비가 많이 오면 어마어마하다. 집 앞에 배를 띄워도 될 정도로 마을에 물이 흐른다”고 말했다. 

구룡마을의 개발은 수년째 답보상태다. 몇몇 주민들은 수중에 돈이 있어도 조만간 모두 허물어 버릴까봐 수리조차 못하고 있는 처지다. 공공기관에서는 수리 도중 판자집의 면적 등이 확장될 것을 우려해 허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살아가는 동안 사람답게 살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주민들은 정체된 개발일정과 되돌아오지 않는 관공서의 응답에 지친 모습이었다. 

구룡마을자치회의 한 주민은 “많은 요구를 해봤다. 여름 혹서기에 주민들 쉴 수 있는 쉼터 하나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공공 수세식 화장실도 안 된다고 한다”라며 “하다못해 가로등 설치도 지주 동의 때문에 안 된다고 한다. 저희도 많이 시도를 해보고 부딪쳐 보고 했는데 이제는 포기한 상황이다. 차라리 빨리 개발이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