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구룡마을 6지구에는 작은 공부방이 하나 있다. 이름은 ‘구룡 바오로 공부방’,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에서 20여년 가까이 운영해온 곳이다. 공부방은 외부의 차가운 시선과 편견 속에서 마을 아이들에게 안식처로 존재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지친 마음을 위로 받으며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해왔다.

공부방은 지난 2002년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의 모니카 수녀가 마을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놀이방으로 시작했지만, 방과 후 마땅히 갈 곳이 없던 아이들이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모두가 찾아올 수 있는 공부방으로 변화했다.  

지금은 같은 수녀회 소속 루치아 수녀가 공부방을 지키고 있다. 그는 수녀회의 구룡마을 분원이 설립될 초기부터 마을에 살기 시작했고, 잠시 다른 소임을 맡기 위해 떠났다가 지난 2012년 돌아와 지금껏 아이들과 주민의 삶을 더불어 살피고 있다.   

구룡마을에 주민들이 넘쳐나던 시기에는 아이들 역시 많았다. 주민들에 의하면 1990년대 초반 무렵 거주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아이들의 유입도 증가했다. 비슷한 시기인 1994년 월간 <말>의 르포 보도에서는 여느 시골처럼 구룡마을을 활보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해맑은 풍경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마을의 공부방 역시 한 때는 30명의 아이들이 머물 만큼 북적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난해 고등학생 2명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4명의 아이들만 남아 있다. 마을의 아이들이 줄어든 이유는 개발 정책으로 주민들이 선 이주에 나선 탓도 있지만, 마을이 형성된 지 수십년이 지나면서 대부분 성인으로 성장해 떠났기 때문이다. 

구룡마을의 아이들은 마을 바깥사람들이 갖는 편견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했다. 다수의 주민들은 자녀들이 인근 학부모들로부터 “구룡마을의 아이들과는 놀지 말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왔다고 토로했다. 

마을 초입에 거주하는 주민은 “자녀들은 이제 다 커서 밖으로 나갔다. 예전에는 특히 외부 시선이 아주 안 좋았다. 저기 학교가 앞에 있는데 구룡마을 애들이랑 놀지 말라고 직접 얘기하고 그랬다”라며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왜 이런 애들이랑 친구를 하냐며 대놓고 뭐라 하기도 했다. 애들이 집에 와서 그런 말을 할 때면 마음이 찢어졌다”고 말했다.    

이밖에 구룡마을의 몇몇 아이들은 살아가는 곳이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 하교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또 더러는 누군가의 괴롭힘 때문에 교복이 찢어진 상태로 돌아올 때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학급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즐거워야할 나이에 받았던 차가운 시선은 부모와 아이들 모두에게 상처가 됐다. 

이제는 마을에 거주하는 아이들도 얼마 없지만, 낙후된 지역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다. 마을 바깥에서 만난 한 상인은 구룡마을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학교에서 사고를 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대부분 구룡마을이나 인근의 달터마을 같은 판자촌의 아이들이었다는 의견을 공공연히 내놓기도 했다. 

몰아치는 외부의 부정적 시선에 아이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루치아 수녀 역시 아이들을 처음 봤을 때 굉장히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주변의 편견과 교우관계에서 느끼는 좌절감은 아이들을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당시 아이들은 학교생활이 어떠냐고 묻는 질문에 “그냥 멍 때리고 있다”는 대답을 들려줬다고 했다. 

때문에 공부방의 수녀들은 무엇보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공부에 흥미를 잃은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고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한 번 들었던 문제였다는 것만 되새길 수 있도록 격려했다. 

특히 아이들이 학교를 통해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가르치고자 했다. 인성과 사회생활, 관계 맺기 교육에 초점을 맞췄고 예술의 전당, 문화회관 방문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확산되기 전만 해도 아이들에게 클래식 공연을 들려주고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법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도록 교육했다. 

이 같은 노력과 함께 마을의 아이들도 조금씩 변해갔다. 학교생활에 대한 적응력도 높아졌고 교우관계도 원만해졌다. 난독증세까지 보였던 몇몇 아이들은 상담과 놀이, 캠프 등의 활동을 거쳐 3~4시간 씩 책을 읽는 학생으로 달라졌다. 

아이들이 공부방에서 얻은 것은 단순한 학업 성취에 머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공부방을 거쳐 간 수녀들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 봐주면서 사회의 편견에 좌절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왔다. 그들이 보낸 신뢰와 지지는 마을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토대가 됐다.

루치아 수녀는 “공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봐 주는 것이 중요했다”라며 “엄마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하고 엄마가 웃어야 자녀도 웃는다는 생각 아래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상담 이후 서서히 나아지는 모습을 볼 때면 보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과 서로 배려하며 신뢰를 쌓았다. 공부방은 항상 열려 있었고 아이들은 스스로 찾아왔다”라며 “사회의 시선이 그렇기(부정적이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이들 스스로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저희들의 역할이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