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투데이신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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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사회부】 2021년의 노동·경영계는 ‘추운 겨울’과도 같았다. 지난해에 이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사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사회는 빠르게 달려갔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들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단계적 일상 회복’이 찾아오며 희망이 보이다가도 급격히 늘어가는 변이 바이러스에 기업부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또다시 목을 졸라맸고, 여전히 하늘길과 교문은 열리지 못했다. 쓰디쓴 현실은 노동자들에게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관리가 미흡한 안전 사각지대에서는 여전히 슬픔이 자리했고 친절하지 못한 법 조항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보다 나아질 미래를 위해 우리는 올 한 해를 기억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에 본보는 올해 노동계의 상처를 보듬고 새로운 ‘내일’을 함께 걸어가기 위해 <2021 투데이신문 노동 10picks>를 기획했다. 

 

1339 콜센터에서 직원이 온라인 예방접종 예약을 접수 받고 있다. ⓒ뉴시스
1339 콜센터에서 직원이 온라인 예방접종 예약을 접수 받고 있다. ⓒ뉴시스

유명무실 감정노동자 보호법

올해 감정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정부가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콜센터 상담사 절반은 갑질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느꼈다. 특히 콜센터 상담사들은 고객의 ‘갑질’과 더불어 회사의 부당대우로 인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가 지난 11월 발표됐다. 해당 설문조사에 따르면 상담사의 67.1%가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 후에도 갑질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답했다. 회사가 상담사를 보호하고 있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 비율도 60.9%에 육박했다. 고객 응대 근로자가 폭언 등 괴롭힘을 당하면 사업주가 예방조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감정노동자 보호법 시행 후 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상담사 10명 중 6명 이상이 감정노동자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콜센터 상담사가 겪는 부당한 경험은 △상담 중 이석 금지와 점심시간 외 휴게시간 미 부여가 39.7%로 가장 높았다. 이어 △점심시간 제한 34.2% △연차휴가 강요 33.5% △연차휴가 거부 32.3% △화장실 사용 제한 17.8% 순이었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원들이 여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산재 사망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원들이 여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산재 사망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실습 현장서 생을 마감한 열아홉 청춘 

현장실습 고교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또 다시 발생했다. 전남교육청 등에 따르면 지난 10월 전남 여수시 웅천동 요트 선착장에서 잠수작업을 하던 A군이 물에 빠져 숨졌다. A군은 해양레저업체가 소유한 7t급 요트 바닥에 붙은 해조류 등을 제거하는 작업에 투입됐다. 하지만 그의 ‘현장실습 계획서’에는 요트에 탑승한 관광객 안내 등의 업무를 배운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실습 계획과 무관한 일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A군은 사망에 이르게 됐다. A군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일각에서는 현장실습 고교생에 대한 안전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현장실습 고교생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관련법 개정과 더불어 안전 교육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일자리위원회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일자리위원회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여전히 갈 길 먼 ‘플랫폼종사자보호법’ 

정부는 코로나19와 급변하는 디지털 산업으로 인해 급속도로 늘어난 플랫폼 종사자를 보호할 수 있는 ‘플랫폼 4법’에 대한 입법을 올해 마무리 짓기로 했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이 추정한 플랫폼 종사자 규모는 179만명이다. 또한 플랫폼 노동 분야는 오프라인 기준 배달 및 운송 비중이 67.8%에 달했다. 아울러 청소·수리·돌봄 노동 등 우리 생활 곳곳에서 이뤄지는 플랫폼 노동을 미뤄봤을 때, ‘플랫폼 4법’ 법안 발의가 다소 늦게 시작됐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플랫폼 4법은 지난 3월 국회에 발의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플랫폼종사자보호법)을 비롯해 직업안정법·고용정책기본법·근로자복지기본법 개정안 등이다. 특히 플랫폼종사자보호법은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정의부터 플랫폼 기업과 종사자의 계약, 기업의 책임, 분쟁 해결 등을 규율해 사실상 플랫폼 노동의 기초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정작 플랫폼 노동자들은 플랫폼종사자법이 이름에 걸맞지 않게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에서 원직복직을 위한 오체투지 행진을 하는 모습 ⓒ뉴시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에서 원직복직을 위한 오체투지 행진을 하는 모습. ⓒ뉴시스

아시아나케이오, ‘복직 후 퇴사’ 요구 논란 

코로나19로 올해 항공업계는 경영상 직격탄을 맞았다. 항공업계에서는 정리해고가 줄줄이 이어졌고 관련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출근길에 올랐다. 그러나 얇디얇은 살얼음판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무게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아시아나케이오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순환 무급휴직을 시행했다. 이후 3월, 노동법을 토대로 70%의 휴업수당 지급을 노사의 논의를 통해 결정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고 희망퇴직 시행을 공고했다. 아시아나케이오는 4월 무기한 무급휴직 동의 서명을 하지 않은 이들의 정리해고 예고를 통보했다.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은 그렇게 코로나 1호 정리해고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결국 회사와 국가 모두에서부터 보호받지 못한 정리해고자들은 지난해 5월부터 천막농성을 벌이며 거리에서 복직을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부당해고 노동자들은 500일이 넘는 투쟁 기간 동안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서울행정법원 등 세 곳은 총 세 번의 부당해고 및 원직복직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여전히 원직에 복직하지 못한 채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고용허가제헌법소원추진모임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선고에 따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고용허가제헌법소원추진모임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선고에 따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착취·무권리고용허가제의 어두운 그림자 

지난해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전 자유를 제재하는 고용허가제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된 가운데 지난 8월 고용허가제 폐지를 촉구하는 시민사회 목소리가 날로 커졌다. 뜨거웠던 여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이주노조,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이주노동자 증언대회’를 열고 착취와 무권리의 고용허가제를 고발했다. 지난 2003년 8월 제정된 고용허가제는 당초 인력공급이 어려운 제조업이나 3D업종 부문의 사업체에 해외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도입됐다. ‘내외국인간 차별을 금지하고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한다는 기존 취지와는 달리 ‘사업장 변경 제한’과 ‘성실근로자 재입국 제도’ 등을 통한 강제노동을 의무화, ‘정주화를 막기 위한 체류 기간 제한’과 더불어 ‘숙식비 강제 징수 지침‘, ‘외국인력 배정 점수제’ 등 조항으로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 바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공공의료 및 보건의료인력 총파업 

올해에도 코로나19가 좀처럼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의료진이 공공의료 및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124개 지부(136개 의료기관)는 지난 8월 노동위원회에 동시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노조는 부족한 인력과 폭증하는 업무량,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의료 인력의 소진·탈진·이탈이 속출하는 가운데 실질적인 인력확충 및 처우개선은 오리무중에 빠진 상황을 더 이상 두고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했다. 이들은 정부에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전국 중진료권마다 1개씩 공공의료 확충 △코로나19 치료병원 생명안전수당 제도화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 △의사인력 확충 및 공공의대 설립 △5대 불법의료 근절 등 8가지 핵심 요구안을 제시했다. 마지막 협상인 9월 2일 정부는 노조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신속히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파업 5시간을 앞둔 상황에서 극적 합의를 이뤄내게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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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비 440원 인상, 2022년 최저임금 ‘9160원’ 

내년 최저임금 시간급이 9160원으로 확정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 2022년도 적용될 최저임금을 시간급 9160원으로 고시했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보다 440원(5.05%) 인상된 금액이다. 이를 월급으로 환산(유급 주휴 포함, 월 209시간 기준)하면 191만4440원이며, 업종별 구분 없이 전 사업장에 동일한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정부는 내년도 최저임금의 현장 안착을 위해 적극적인 홍보·안내와 함게 사업장에 대한 교육·컨설팅 및 노무관리 지도 등을 실시해 최저임금 준수율을 높여나갈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안경덕 장관은 “경제회복 기대와 코로나19 영향 지속 등 복합적인 상황에서 최저임금위가 최선을 다해 대내외 경제여건과 고용상황, 저임금근로자 및 영세소상공인의 어려운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 점을 존중한다”면서 “정부는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갈등을 넘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과 포용적 회복 계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청소노동자들이 치뤘던 필기 시험과 메시지 내용 일부.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상사 갑질이 부른 청소노동자 사망 

서울대학교에서 근무하던 청소노동자 B씨가 지난 6월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노조에서는 고강도 노동과 스트레스, 이 과정에서 자행된 갑질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주범이라고 지목했다.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이하 노조)에 따르면 B씨가 근무했던 925동 여학생 기숙사는 건물이 크며 학생 수가 많기 때문에 다른 동에 비해 일이 많은 편이었다. 특히 코로나19로 쓰레기가 많이 늘었고, B씨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기숙사 건물에서 매일 100L 쓰레기봉투 6~7개와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를 직접 들고 날라야 했다. 그런데 지난 5월 새로 부임한 안전관리 팀장은 근무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강도 높은 근무를 지시했다. 팀장은 청소노동자 회의를 만들어 필기구를 지참하지 않으면 감점하겠다고 협박했고, 업무에 불필요한 문제를 출제해 시험을 치르게 했다. 시험 후 채점해 점수를 공개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모욕감을 안기고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B씨가 숨진 지 40일 만에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그의 유족과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하고 직장 내 괴롭힘 방지교육을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종로3가에서 열린 중대재해 근절 대책과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전국노동자대회’ ⓒ뉴시스
종로3가에서 열린 중대재해 근절 대책과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전국노동자대회’ ⓒ뉴시스

“집단 감염 우려돼 VS 시위 자유 보장” 민주노총 집회 논란 

민주노총 등 3개 단체는 지난 7월 3일 서울 여의도 등 도심권에서 9명씩 모이는 집회를 열겠다며 231건을 신고했다. 인원을 9명으로 제한한 것은 당시 서울시에서 10인 이상 집회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해 지난 6월 말부터 집회 전까지 다섯 차례 걸쳐 집회 신고에 대해 금지 통보를 내렸고, 경찰도 인원을 제한하는 서울시 고시를 토대로 금지 통고를 결정했다. 하지만 끝내 집회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민주노총이 종로3가에서 중대재해 근절 대책과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전국노동자대회’가 마치고 열흘이 지났을 무렵 참석자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며 다시금 문제가 불거졌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지표환자(집단감염 내 첫 확진자)가 확진판정을 받았다. 이후 동료들을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한 결과 지난 7월 17일 2명의 추가 확진자가 확인됐다. 다행히도 이들 3명 외에 추가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추정 감염경로는 노동자 대회가 아닌 이후 7월 7일 방문한 음식점에서 전파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그동안 민주노총 죽이기에 열 올린 정치권과 언론은 뱉고 쓴 글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며 “정부 또한 지난 과정을 반성하기 위해 복기하고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규탄했다.

 

경기 평택시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청년 노동자 故 이선호 씨 시민사회장에서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경기 평택시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청년 노동자 故 이선호 씨 시민사회장에서 발인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300kg 철판에 깔려 무너진 스물셋 대학생의 꿈 

평택항에서는 지난 4월 컨테이너 작업을 하던 대학생 고(故) 이선호(23)군이 300kg 지지대에 깔려 사망했다. 이씨는 컨테이너 업무가 처음이었지만 회사로부터 별도의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채 투입됐고, 사고를 방지해 줄 어떤 관리자조차 없는 상황에서 변을 당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사고는 못다 핀 20대 청년의 인생과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집어 삼켰다. 고 이선호군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기업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인력을 감원해서 위험한 일은 비정규직에게 맡기고 있다“며 “죽음을 양산하는 현재의 시스템을 막아야 한다. 노동안전에 더 많은 비용을 쓰도록 해야 하고 노동자들이 천천히 일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되풀이되자 노동계는 이를 막기위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입법을 촉구해왔다. 그리고 오랜 진통 끝에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중대재해법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그러나 중대재해법은 반복되는 위법 사례, 애매한 사업장 적용 기준, 정책의 실효성 등으로 인해 노동계와 경영계는 끊임없이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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