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수 작가글 써서 먹고삽니다.와인으로 가산 탕진 중입니다.
▲ 임승수 작가
글 써서 먹고삽니다.
와인으로 가산 탕진 중입니다.

먹거리에 관심이 많다 보니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식재료를 배달 주문할 때 제품 성분이나 가격, 사용 후기 등을 꼼꼼하게 따지는 편이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 입에 들어가 몸의 구성성분이 되는 것들이니 신경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우리 가족이 엥겔지수가 높은 이유도 부부가 모두 작가다 보니 벌이가 다른 맞벌이 집과 비교해 좀 적은 이유도 있지만, 먹는 것에 대해서만은 타협하지 않고 좀 더 나은 식재료를 추구하는 내 소비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까다롭게 선별하다 보니 대기업이 만든 가공식품에는 손이 안 가고, 소규모 기업이나 가족 규모의 소상공인이 정성스럽게 만든 식재료를 구입하게 된다. 품질이나 맛에서 확연히 차이를 느끼기 때문이다.

먹거리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나름의 기준으로 깐깐하게 따져보는 편인데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 대기업 격인 양당의 후보 면면을 살펴보니, 이런 저질 상품을 먹거리로 마트에 내놓는다면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존립 자체가 흔들리지 않을까 싶은 수준이라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보수 성향이 강한 후보는 하루라도 망언을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나 싶을 정도로 상식 이하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극빈자는 자유가 뭔지도 모른다, 몇 년 후에는 구직 앱이 나올 것 같다, 주 120시간 바짝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어야 한다,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안 됐다,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 등 일반인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저열하고 너절한 인식을 한없이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과연 이런 수준의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괜찮겠나 싶을 정도로 우려를 사고 있다. 그나마 정권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부정부패와 비리에 맞짱 뜬 공정의 아이콘 이미지로 버텨왔는데, 아내와 장모 쪽으로 갖가지 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이마저도 퇴색될 대로 퇴색된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개혁 이미지를 표방하는 후보는, 혓바닥으로는 세상 정의로운 척은 다 하면서 정작 군사독재정권의 이인자 노태우 사망 때에는 빛의 속도로 조문하더니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낯뜨거운 사면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 얼마나 한없이 가볍고 얍삽한 행실인가. 산들바람에 날리는 닭털처럼 그때그때 말이 바뀌니 과연 이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 자신이 내세운 ‘억강부약抑强扶弱’을 실천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측근이 연루된 대장동 게이트의 추잡함과 흉악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전혀 몰랐다면 주변 관리에서 역대급 무능을 보여주는 것이고,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라면 더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거대 양당이 이런 꼴사나운 ‘상품’을 가장 중요한 대선 국면에서 내놓았다는 것은, 저들이 얼마나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아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개탄스럽게도 그 저질 상품들이 무려 지지율 1위와 2위를 다투고 있다. 소비자를 우롱하는 수준의 불량품을 내놓으면 그 어떤 거대 기업이라도 존립이 위태로워야 정상일 텐데, 어쩌다가 대선판이 동네 마트 장보기만도 못해졌는지.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격언이 떠올라 그야말로 참담한 심정이다.

소비자가 각성하고 저질 상품을 불매하거나 질 좋은 대체 상품을 선택해야 기업은 긴장하고 스스로 돌아보게 되며, 소비자의 높은 감식안에 맞는 상품을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에서조차 거대 양당의 수준 이하 후보를 선택한다면 누군가 우리를 보고 영락없는 ‘개돼지’라고 조롱하더라도 반박할 수 없지 않을까. 입으로는 서민을 외치지만 뒤로는 재벌, 기득권층과 한통속으로 놀아나는 저 정치 대기업들의 토악질 나는 행태를 언제까지 감내할 것인가.

이제 투표도 쇼핑하듯 하면 어떨까. 대기업 저질 상품은 가차 없이 외면하고 정성과 진심이 담긴 상품이 있다면 중소기업이더라도 과감하게 구매해 보는 것이다. 마트에서 제품 성분, 가격, 상품 후기를 꼼꼼히 살펴보는 수고의 절반만이라도 할애해서 대선 후보의 공약도 살펴보고 삶의 궤적도 톺아보자. 그래서 말만 번지르르한 부류인지 신뢰할 만한 인물인지 가늠해 먹거리 이상으로 신중하게 선택하자.

입에 들어가는 음식 선택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대통령 선거 아니겠는가. 당선 가능성만 따져대며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정치 대기업에 투표한다면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변화가 없다는 것은, 지금까지처럼 기득권층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양극화 사회에서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며 살게 된다는 의미다. 당신은 현상 유지를 원하는가, 변화를 바라는가?

내 한 표를 새로운 변화를 일구어낼 정치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다는 생각으로 투표하면 어떨까. 기업이 투자자의 자금으로 성장하듯 정당은 국민의 투표를 양분으로 자라나니 말이다. 현명한 소비자 이상으로 현명한 투표자가 절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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