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한민국 유일무이한 팝 아티스트 낸시랭(Nancy Lang)

어깨 위 동반자 ‘코코샤넬’과 함께한 세월도 어연 20년
방송은 ‘세컨드 잡(Second Job)’…작품 활동 쉰 적 없어
아트테이너의 유명세는 양날의 검…올바르게 활용해야
세계적 아티스트 양성 위해선 “국가의 선택과 집중 필요”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작품들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팝아티스트 낸시랭이 작품들 사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하얗디 하얀 캔버스 위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롭다. 첫눈이 소복이 쌓인 것만 같은 그곳엔 어떠한 핍박도, 한계도 없다. 적막한 백지(白紙)위에 그의 손길이 닿으면 파란 새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이윽고 무수한 생명이 살아 숨 쉰다. 마치 따사로운 봄을 맞이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숱한 비난과 논란에도 ‘팝 아티스트’ 낸시랭이 지닌 영감의 샘은 마를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방송에서 비춰지는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이미지는 그저 껍데기일 뿐. 케케묵은 껍데기 속에 잘 여물어진 그의 영혼은 작품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영혼이 듬뿍 담긴 작품들은 ‘방송인’ 낸시랭이 아닌, ‘팝아티스트’ 낸시랭으로서 오롯이 그를 바라 볼 수 있는 좋은 매개체다.

그의 시그니처 작품인 <터부 요기니(Taboo Yogini)>시리즈부터 화려한 꽃과 메카닉 이미지의 <스칼렛 판타지(Scarlet Fantasy)>, 그리고 낸시랭의 고양이로 알려진 ‘코코 사넬’을 3년간 기획한 끝에 탄생한 <버블코코(Bubble Coco)> 시리즈까지. 그의 작품에는 특유의 건강한 에너지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그 누구보다 예술에 ‘진심’인 팝아티스트 낸시랭의 작업실을 찾아 그가 추구하는 가치와 작품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낸시랭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낸시랭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Q. 요즘 근황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그냥 계속 작업실에서 그림만 그리고 작품 만들고 있어요. 개인전이 올해 3개가 잡혀 있어서 정신없이 바쁘죠. 작년 10월 개인전에서 작품 25개가 팔리는 등 성과와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올해 개인전 작품 생산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Q. 낸시랭 작가의 시그니처 고양이 ‘코코샤넬’을 팝아트로 캐릭터화한 ‘버블 코코’ 작품에 대해 간략히 설명 부탁드린다.

팝아트 고양이. 행복의 아이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와 함께 동고동락해온 ‘코코샤넬’을 버블 코코. 즉, 팝아트 고양이로 승화시킨 거죠. 영생의 존재이자 시공간을 넘나들며 뭐든지 될 수 있는 그런 존재예요.

코코샤넬이 어찌 보면 ‘낸시랭’보다 더 유명할 수 있어요. 유명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코코샤넬과 사진 찍고 싶어 할 만큼 인기 있죠. 이 친구(코코샤넬)가 저랑 함께한지도 벌써 20년 정도 됐어요.

사실, 코코샤넬과의 첫 만남에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겨져 있어요. 제가 외동딸이라 항상 반려견들과 집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고양이를 너무 키우고 싶었어요. 근데 어머니의 반대로 키우질 못했죠. 물론 반대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암투병 중이셨어요. 고양이가 요물이라는 안 좋은 인식도 있었고, 털도 강아지보다 더 많이 빠지고 하니까 반대를 하셨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를 입양해 왔지만 다음 날 바로 집에서 쫓겨나 고양이를 기르지 못하게 됐어요. 

그래서 결국 고양이는 키우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러고 시간이 흘러 일본에 제 작품 전시차 방문했을 때, 도쿄 한 수제 인형 가게에서 이 고양이 인형 ‘코코샤넬’을 만나게 됐어요. 삼색 들고양이, 일명 종자가 없는 고양이가 계속 저한테 텔레파시를 보내는 느낌을 받았죠. 그렇게 당시 10만원이라는 큰 거금을 주고 함께하게 됐습니다.

낸시랭의 고양이라면 굉장히 혁신적이어야 한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애칭인 ‘코코샤넬’이라고 이름을 지었죠. 그 이후 해외 전시, 국내 전시, 하물며 방송까지 어디든 다 데리고 다녔습니다. 소설 《어린 왕자》 속에 나오는 장미 같은 존재가 바로 이 코코샤넬이죠.

이렇게 저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온 이 친구를 3년 동안 스케치하고 기획해서 만든 게 바로 팝아트 고양이 버블 코코예요.

버블코코 제작을 위한 고뇌의 흔적들 ⓒ투데이신문
버블코코 제작을 위한 고뇌의 흔적들 ⓒ투데이신문

Q. ‘버블 코코’ 작품을 제작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엄청 많았죠. ‘버블 코코’는 새로운 도전 그 자체였어요. 제가 처음 해보는 3D 영상 작업, 아트토이, 작은 조각 작품 등 새롭게 시도한 장르가 총 네 가지였어요. 해보지 않은 장르다 보니 우여곡절도 많았고 중간에 실패한 적도 많았죠. 제 뜻대로 작품이 나오지도 않았어요. 오랜 시간 실패를 거쳐 만들어진 게 ‘버블 코코’입니다.

제가 전반적인 아트 디렉팅을 맡고 있지만 저의 손이 돼 줄 파트너가 필요했어요. 작가의 생각과 스케치, 이미지 순서를 모두 구현해 줄 기술자 말이죠. 내가 직접 해도 마음에 안들 경우가 있는데, 타인의 손을 거치면 더욱 그렇습니다. 소통이라는 것도 쉽지가 않아요. 뭐든 같이 작업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는 작가가 원하는 바대로 거의 90% 이상 구현됐고, 작품이 잘 나와서 기뻤어요. 결국은 해피 엔딩이죠. 이런 과정들은 비단 저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분들이 경험할 거예요. 이번 작업을 통해 느낀 건 분야를 막론하고 첫 도전은 모두 힘들다는 점입니다.

Q. 버블 코코는 양쪽 눈과 코가 각각 (+), (△), (,) 문양을 하고 있는데 이에 담긴 메시지는.

현대 미술사 안에 고양이 이미지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기존 고양이 캐릭터라고 하면 눈이 동그랗고 귀엽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하죠. 버블 코코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이건 USB를 꽂는 단자를 의미해요. 통상적으로는 (-) 모양이지만, 이렇게 (+) 모양의 USB 단자를 작품 속에서 창조해 낸 거죠. 버블 코코가 (+) USB 단자에 선을 꽂게 되면 이전 지구와 이 우주 전 세상이 리셋됩니다. 마치 노아의 방주 같이 모든 것이 싹 쓸려가고 새롭게 다시 시작되는 거죠.

그리고 옆에 삼각형 모양은 LOVE에요. 제가 전에 5M 넘는 조형물 작업을 했었는데, 삼각형들이 모여서 하나의 큰 하트가 되는 작품이죠. 이게 예일대 교수의 사랑의 삼각형 이론이라는 논문이 있는데 거기서 영감을 받아 그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삼각형의 눈은 한마디로 사랑이에요. (+)와 삼각형, 왼쪽 오른쪽의 눈은 사실 굉장히 대립적인 구조죠. 왜냐하면 USB 단자를 통해 세상이 리셋되면 우리 모두는 다 죽는 겁니다. 세상이 모두 쓸려나가고 새로 리셋되는 거니까요. 종말이라고 해석하면 될 것 같습니다. 굉장히 무서운 거죠. (+)는 이런 종말에 대한 일종의 경고입니다. 그렇다면, 두 눈 중에 하나는 왜 삼각형인가에 대한 호기심이 들 거예요.

사랑에 대한 기념은 모두 다르지만, 뭐든지 다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이런 말이 있잖아요. 이런 게 인간 세상에선 참 힘들죠. 현대 사회에는 꼭 이성적인 사랑이 아닌, 인류애적인 사랑이 필요합니다. 최근 내가 더 잘 나가기 위해 남을 해하고, 상대방에게 상처 주고, 또 누군가를 살해하고 이런 모습들이 너무 많이 보여요.

우리는 인류애가 필요합니다. 삼각형의 눈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한다면 인간뿐만 아니라 이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그래서 버블 코코가 바로 행복의 아이콘이라는 것이죠. 버블 코코 작품은 그냥 어디서 갑자기 단순한 기획 하에 트렌드에 맞춰 나온 작품이 아닙니다. (+) 눈과 삼각형 눈도 그저 비주얼적으로 어울려서 그런 게 아니라 개념적인 메타포가 담겨 있는 거예요. 한 마디로 작가의 의도가 온전히 담겨있는 거죠.

(,)로 표현한 코는 그렇다면 무엇을 의미할까요. 말 그대로 쉼표입니다. 바로 쉼이죠.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고 있어요. 가족, 일, 꿈, 결혼, 친구 등 신경 쓸 것이 너무 많고 또 바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조금 쉬어 갈 필요가 있어요. 어찌 보면 저에게 하고 싶은 말 일 수도 있겠네요.

육체의 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쉼도 필요합니다. 요즘 다들 너무 바쁘게 사니까 쉴 틈이 없죠. 왜 우리가 바쁘게 살까요. 행복하기 위해서 바쁘게 사는 건데, 그게 오히려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쉼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버블 코코 코는 쉼표(,) 모양으로 그렸어요.

자신의 작품 버블코코 옆에서 미소를 지어보이는 낸시랭ⓒ투데이신문<br>
자신의 작품 버블코코 옆에서 미소를 지어보이는 낸시랭ⓒ투데이신문

Q. 사전적 의미의 팝 아트가 아닌, 낸시랭이 생각하는 팝 아트는 어떤 예술인가.

간단합니다. 파퓰러 아트(Popular Art)의 준 말이 팝아트예요. 가장 많이 알려지고 유명한 장르라고 해야 하나. 인지도 높은 장르죠. 사전적 의미로는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예술이에요. 사전적 의미가 팝아트 자체입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죠. ‘함께’ 말이죠.

중세 시대를 예로 들자면, 당시 왕은 재능 있는 여러 장르의 예술을 옆에 두고 즐겼어요. 건축, 미술, 음악 등이 있죠. 당시에는 예술이 모든 대중에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앤디 워홀이라는 작가가 팝 아트를 통해 옛날부터 상류층들이 공유하고 수집하던 미술의 경계를 허물었어요.

대중들도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그 진입장벽을 허물어 준거죠. 일반 대중들이 봐도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또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은 어찌 보면 그들만의 리그예요. 그들끼리 향유하는 것이죠. 그러나 팝아트는 우리에게 익숙했던 이미지에 새로운 개념을 넣어서 이야기해주니 대중들이 관심 갖기가 쉬운 겁니다. 이미 대중들의 눈에 익은 어떤 이미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켰으니 말이죠.

Q. 2021 한류문화대상 시상식에서 팝아티스트상을 수상했다. 낸시랭에 이 상이 의미하는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냥 감사하죠. 상이라는 것은 어느 분야가 됐던, 그 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 그만큼 두각을 냈고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끼쳤기에 주는 것이잖아요. 그렇기에 명예롭고 감사하죠. 앞으로 더 열심히, 또 잘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상을 많이 받다 보면 또 여기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상을 많이 받는 건 기쁜 일이지만, 이 상을 경계할 필요도 있어요. 너무 상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는 것이죠. 어떤 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이들을 굉장히 도태될 수 있도록 만드는 무서운 부분 중 하나가 상인 것 같아요.

현재 정체됐음에도 ‘내가 왕년엔 말이야’ 라며 합리화하는 것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죠. 새롭게,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것이 미술인데 상을 쓰다듬으며 안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상 받는 건 좋고 또 받고 싶습니다.(웃음)

1999년 제작한 낸시랭의 작품 . 뒷면에는 제작일자가 적혀있다. ⓒ투데이신문<br>
1999년 제작한 낸시랭의 작품 . 뒷면에는 제작일자가 적혀있다. ⓒ투데이신문

Q,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학사, 석사 졸업 이후 개인전을 이어올 만큼 그 누구보다 ‘그림’과 ‘예술’에 진심이다. 이를 몰라주는 대중들에게 아쉬운 점은 없는가.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요즘은 변호사, 의사, 셰프, 패션 디자이너 등 세컨드 잡(Second Job)으로 방송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지만, 제가 활동하던 20년 전에만 해도 이런 분들이 적었죠. 특히 팝아트를 하시는 분들은 여전히 저 밖에 없어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해외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대한민국에만 저 밖에 없어요.

물론 팝아트를 하는 작가분들은 많은데 방송에 나와 팝아트를 병행하는 작가는 20년 내내 저 밖에 없어요. 그래서 더욱이 어쩔 수 없는 것이죠. 여기에 대해 푸념을 하든 억울하다고 하든 의미 없는 것 같아서 하지 않아요.

물론 섭섭함도 존재하죠. 제 나이 또래 작가들보다 전시 경력도 많고, 기업과 아트 콜라보를 하는 등 많은 작품 활동을 해왔어요. 방송활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미술을 등한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낸시랭의 이런 부분을 몰라주니 속상하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작가는 작품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또다시 작품으로 승부를 봐야죠.

Q. 그간 미술계 보다 방송계, 연예계 인사로 주목받아 왔다. 예술 활동을 함에 있어서 예술 작품이 아닌 그 외의 ‘유명세’가 작가로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가. 

장단점이 있죠. 양날의 검이에요. 앞서 말했듯, 수많은 전시경력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이미지는 방송이 훨씬 적나라하고 자극적이죠. 방송에서 비치는 모습만 보고 작품은 안 하고 연예인이 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으로 비친 것 같아요. 오해를 받기 쉬운 거죠.

다만, 인지도 부분에서는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낸시랭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이제 저는 작품만 잘하면 되는 거죠. 이 유명세가 양날의 검이라서 잘 사용해야 해요.

Q. 아트테이너들의 작품 가치가 기성 작가와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는 평론가, 갤러리스트들에 달렸어요. 다만 연예인 뿐만 아니라 그 외의 분야, 예를 들면 과학자나 정치인, 사업가 등이 미술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응원하는 입장입니다. 꼭 미술을 전공해야만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올인’이죠. 즉, 작품 활동에 몰두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단순히 취미 활동으로 예술을 할 것인지, 아니면 정말 프로페셔널하게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지 확실하게 정립해야 합니다. 그 이후에 아티스트로서 작품으로 승부 보면 돼요.

아티스트에겐 결국 개인전을 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전을 통해 아티스트 스스로 평가의 도마 위에 올라서는 것이죠. 그저 조그마한 작품 몇 개 전시해놓고 개인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 최소 열개의 작품 이상으로 구성된 개인전을 이어오면서 최소한 10년을 활동한다면 미술계도 그 아티스트를 인정 안 할 수가 없겠죠.

팝아티스트 낸시랭 ⓒ투데이신문
팝아티스트 낸시랭 ⓒ투데이신문

Q. 아트테이너들의 작품이 유독 고가에 팔리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인지도죠. 스마트폰의 등장 전후로 세상이 많이 달라졌어요. 결국, 작품성과는 또 별개로 인지도가 더 높기 때문에 고가에 팔리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연예인의 작품을 갖고 싶으면 결국 돈 주고 사게 됩니다. 그 연예인의 작품을 돈을 지불하고 컬렉팅하는 것이죠. 전 세계 미술시장에서 가장 갑은 바로 컬렉터에요. 실질적인 수요층이기 때문이죠.

다만, 연예인이 평생 스타일 수는 없습니다. 제 아무리 시대를 주름잡았던 연예인이더라도 그 위치에 꾸준히 있을 수 없어요. 따라서 자기가 갖고 있는 인기나 인지도가 미술 활동을 함에 있어서 도움이 되기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작품을 더 열심히 하면 됩니다. 결론은 아티스트로서 작품으로 승부 봐야 한다는 것이죠.

어떤 이의 인기는 5년이 갈 수도, 또 10년이 갈 수도 있어요. 일반 작가들한테는 없는 무기임에는 틀림없죠. 다만, 이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해요. 무명작가들과 연예인들의 출발선이 동일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게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어렵죠. 그들이 갖고 있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요. 굳이 안 쓸 이유가 없죠.

그렇지만, 이 무기에 온전히 의지하는 탓에 작품이 별로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그럼 아티스트로서의 수명은 끝입니다.

Q. 한 평론가는 아트테이너에 대해 ‘실력이 있고 없고를 논하기 전에 비평 단계를 거치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비평 단계가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가.

예술은 공무원 시험이 아닙니다. 아티스트로서 기본적인 소양이 있나 없나 확인하는 게 바로 비평 단계죠. 예를 들어 수학에서 산수가 안되는데 그 이후 응용이 어떻게 됩니까. 비슷한 이치죠. 기본적인 선 긋기, 구도 잡기 등이 돼있지 않은데 어떻게 좋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네가 미술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니까 인정하지 않겠다’ 라는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작가가 작품을 탄생시키는 데 있어 이 선이 왜 나왔으며, 이 구도를 왜 잡았는지, 그 결과로 이 이미지가 왜 나왔는지 디테일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과정들을 꾸준히 이어온 작가들을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성장 과정을 훑는 것이죠.

이 세상엔 많은 작가들이 있어요. 그들 전부를 인구조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비평의 단계까지 닿기 위해선 꾸준히 몇 년이 걸리던 작품 활동을 이어오는 것이 중요해요. 결국은 마라톤이죠.

<strong>버블코코 시리즈 앞에서 미소를 보이고 있는 팝아티스트 낸시랭 ⓒ투데이신문</strong>
버블코코 시리즈 앞에서 미소를 보이고 있는 팝아티스트 낸시랭 ⓒ투데이신문

Q. 접근성이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예술. 예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예술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부여된 고난의 길이에요. 아티스트는 바로 선택받은 자들이죠. 선택받은 자라고 하면 되게 특별하고 있어 보일 수 있어요. 정작 그 내면을 살펴보면 스스로 힘듦을 자처하며 고난의 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항상 무엇인가를 창조해야 하고 그것을 새로운 작품으로서 보여줘야 하죠.

그러나 이 행위 자체가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장르가 또 예술이니 아름답지 않습니까. 어떤 형태로든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나 말, 또 행동 자체가 영향력을 끼치기도 해요.

즉,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해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이들이 바로 아티스트에요. 단순히 꽃이 아름답다 이런 아름다움이 아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아름다움이죠.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이렇습니다. 아름다운 고난의 길.

Q. 그간 방송 활동에서 보여진 이미지 탓에 아티스트로서의 모습이 많이 비치지 않는 듯하다. 방송 활동을 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는가.

전혀 없어요. 미국에 앤디 워홀이 있다면 한국에는 낸시랭이 있는 것이죠. 당시 앤디 워홀도 영화도 만들면서 방송도 하고 그 외에도 별의별 걸 다했어요. 굉장히 앞서 나갔던 아티스트죠. 그 당시에는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습니다. 앤디 워홀이라는 인물이 그동안 봐왔던 아티스트상에서 정말 벗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이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로 미술계 신에서 팝아티스트로서 방송에 나온 인물은 저 밖에 없습니다. 후회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점이죠. 새로운 선구, 선구자적인 측면의 아티스트라고 생각해요. 물론 당시에는 저도 돌팔매질을 당하고 작가로 인정받지 못했어요. 당시 그런 핍박에 서러워했다면 지금의 팝아티스트 낸시랭은 없었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세계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오랜 작품 활동을 통해 부와 명성을 얻는다면 지금의 서울을 마치 뉴욕과 런던 같이 현대 미술의 메카로 만들어서 국가에 이바지하고 싶었죠. 이를 20년간 끊임없이 외쳤었는데, 항상 방송이나 기사에는 앞 내용이 편집돼 부와 명성까지만 나왔습니다. 근데 뭐 상관없어요.

나의 모든 말이 어떻게 편집되든, 궁극적인 저의 꿈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고 앞으로도 변함없어요. 방송에 어떻게 비치든 예술과 아트를 대하는 저의 진정성은 달라지지 않아요. 저는 예술을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방송에 많이 나와서 작품 활동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낸시랭 자체가 작품 활동을 멈춘 적이 단 한 번도 없기에 당당한 것이죠.

한 사람을 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 드는 돈이 100억원 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낸시랭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거에요. 즉, 고유명사가 된 것이죠. 이게 긍정적 영향도, 부정적인 영향도 있지만 우선 저는 100억원의 가치를 안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작품으로 승부할 생각이에요.

작품 활동 틈틈히 메모해 놓은 메모장&nbsp;ⓒ투데이신문
작품 활동 틈틈히 메모해 놓은 메모장 ⓒ투데이신문

Q. 예술가로서 작품 활동을 위해선 금전적인 여유가 뒷받침돼야 할 수밖에 없는가.

그렇죠. 전 세계 모든 아티스트가 그래요. 이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배고픈 예술가, 가난한 예술가라는 이미지는 20년 전에도 그렇고 아직도 제자리걸음이죠.

Q. 예술인 복지법이 만들어지고 복지재단도 설립됐다지만 예술가들의 빈궁한 처지가 개선됐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해도 여전히 가난한 이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예술가를 돕는 정부 정책이나 복지재단도 존재하지만, 지원을 받을 예술가를 과연 어떤 잣대로 판가름 하나요. 정부 지원금이 과연 정녕 필요한 사람들에게 온전히 가고 있는게 맞는지 라는 의문이 들어요. 그리고 지원받을 사람들을 판단하는 그 직분을 받은 사람이 과연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고요.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과연 평가하는 위치에 있는지, 아니면 주먹구구 식으로 자기랑 친분이 있는 사람을 앉혀 놓은 건지, 그저 공무원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건지, 이 제도의 효율성을 저는 모르겠어요.

사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가난한 예술가를 도울 마음이 있으면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죠. 누구는 선별되고 누구는 안 되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요. 이게 어려운 부분이죠. 국제적인 아트스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요.

이번 재난지원금처럼 무작정 지원금을 쏟는 게 아니라, 유망한 작가들을 우선적으로 선별한 뒤 그들의 등급을 상·중·하로 나눠서 향후 5년에서 10년 동안 그 작가를 온전히 지원해 줄 필요가 있어요. 한 해에 1억씩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게끔 말이죠.

다만, 중간중간 여러 가지 평가 요소는 넣어야합니다. 큰 금액 지원이 정기적으로 들어오면 작품 활동을 안 할 수도 있기에 해마다 개인전을 열고 몇 작품 이상 출품한다든지, 특정 규모나 사이즈의 작품을 매년 선보여야 한다는 등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조건을 정해줘야 한다는 거죠.

불특정 다수에게 몇십만 원씩 줄 바에는 경쟁력을 살리기 위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돈이 새는 구멍이 너무 많아요. 정녕 지원금이 예술 활동을 위해 쓰이는지 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팝 아티스트 낸시랭 ⓒ투데이신문
팝 아티스트 낸시랭 ⓒ투데이신문

Q.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대한민국 예술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없다고 봐요. 정부 지원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여전히 가난한 예술가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는데, 일단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쳤으니, ‘예술가 너희들도 더 이상 정부에게 불평·불만하지 마’ 이런 느낌이에요. 지원해줬으니까 이제 알아서 해 이런 느낌이죠.

사실 그간의 지원책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는지 의문이 들어요. 차라리 선택과 집중을 해서, 하다못해 매년 1명의 세계적인 작가를 만든다면 10년 하면 10명이고 20년 하면 20명의 세계적인 작가를 만들 수 있어요. 그렇다면 나름 예술적인 부분에서 국가 경쟁력이 만들어지고, 또 부가수익이 창출이 되니까 선순환이 되는 거죠. 또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다시 예술인 복지를 신경 쓰고 하면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문제는 우리나라 공무원분들이 책임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다는 점이죠. 똑같이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인데 어떤 것 하나 괜히 추진했다가 잘못되면 책임지고 사표 내야 하는 이런 문화가 팽배하죠. 그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메커니즘 때문에 그 누구도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아요. 저라도 싫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구조가 한 번 정착되면 엄청 효율적일 것 같은데 그 과정이 힘들겠죠. 언젠가는 이런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개인사로 인해 작품활동을 지속하는 것도 버거울 듯하다. 그럼에도 예술 활동을 이어올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꿈이죠. 추후에 투자자들과의 지켜야 할 약속들이나 부가적인 것들이 붙었을 뿐, 근본적으로는 꿈이 원동력입니다.

개인사로 인해 수억 원 대의 빚이 생겼어요. 유쾌한 일은 아니죠. 숨기고 숨기다가 결국 모두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 스스로 감당이 안됐고, 모른 척, 아닌 척 숨기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죠. 모든 것을 공개한 뒤 작품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기 시작했어요.

예술 활동은 모든 것이 돈입니다. 월세, 관리비, 재료비, 운송비, 촬영비 등등 돈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다양한 기업의 대표님과 회장님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팝아티스트 낸시랭에게 투자하라는 내용이었죠. 숱한 거절 끝에 한 대표님에게 투자 결정을 받게 됐습니다.

어찌 보면 투자자와의 약속일 수도 있어요. 나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에게 큰돈을 벌어주기 위해선 내 작품이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죠. 그의 투자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팝아티스트 낸시랭의 작업실 중 일부 ⓒ투데이신문
팝아티스트 낸시랭의 작업실 중 일부 ⓒ투데이신문

Q. 먼 훗날, 대중들에게 어떤 ‘낸시랭’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팝 아티스트 낸시랭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구나.’ 이렇게 기억되고 싶습니다. 먼 훗날 이런 평가를 받는다면, 결국 꿈을 이뤄낸 것 아닐까요. 이는 모든 사람들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사람마다 꿈이 모두 다르지만, 그 꿈을 이뤄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것이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Q. 어딘가에서 아티스트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술의 길은 힘들고, 외롭고, 험난해요. 하지만 스스로 정말 아티스트가 되고 싶고, 아트를 하고 싶은 이유가 명확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냥 그 꿈을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 안 힘든 것 아무것도 없어요.

단순히 예술이 힙(Hip)해 보이니까, 요새 인기 있으니까, 단순히 돈이 될 것 같아서 이런 이유라도 상관없어요.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도전 그 자체에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요. 다만, 앞서 나열한 이유들은 스스로를 금방 멈추게 해요. 그렇기에 뚜렷한 이유를 찾는 것을 권해드려요.

사람일은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어른들이 말하지 않나요. 맞는 말입니다. 제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그 계획대로 안 될 확률이 높아요. 그렇기에 일단 하는 게 중요하죠. 몇 년간 부딪히고 배우다 보면 귀인을 만날 수도 있어요. 우리 속담 중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진짜 그래요. 틀린 말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끊임 없이 도전하세요.

관련기사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