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아는 화단에서 유일무이하게 ‘거짓말’ 작업을 공개적으로 하는 교양있는 박사 출신의 여류작가다.

그는 역사적인 동화 속 캐릭터 판화를 통해 오랫동안 열성 팬을 거느리며 대중들을 유혹해 왔다. 재미있는 점은 대중들이 그의 거짓말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거짓말 그림’ 속 매력에서는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상습적인 거짓말에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라는 꼭두각시 인형 피노키오의 이야기가 주요 무기로 쓰인다. 이 ‘거짓말’ 이야기는 아주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다.

1881년 이탈리아는 통일 전쟁을 치르고 수도 이전의 후유증으로 많은 시대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도덕성을 일깨우고 새로운 가르침을 줄 수 있는 희망의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카를로 콜로디는 어린이 신문에 <피노키오> 동화 이야기를 연재했다. 그가 쉰일곱에 <피노키오>를 펴냈으니 그 모험담이 세상에 나온지도 무려 140년이 지난 셈이다.

그는 쾌락을 좇는 바람에 고난과 역경에 처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몸이 사람으로 변해 인간 소년으로 거듭나는 해피엔딩을 그린 <피노키오> 이야기를 발표했다.

거짓말하지 말고 착하게 살라는, 어떻게 보면 뻔한 스토리에 독자들은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열광했다.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2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됐다고 하니, 그 인기는 지금까지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이다.

다만 작가는 동화 <피노키오>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는 점에서 참 유감스럽고 애석한 일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작가가 생전에 “어른들을 즐겁게 해주기는 너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피노키오는 전 세계 어른들에게 뜨겁게 사랑받는 스토리와 캐릭터로 채워졌고 심지어 강릉 하슬라 아트월드에는 피노키오 박물관이 세워졌을 정도가 됐다. 당연히 그곳에는 민경아의 작품 또한 수두룩하다.

미술계의 거짓말쟁이, 피노키오의 딸로 소문난 민경아는 ‘자라나는 코’ 이미지로 작업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녀는 <Pinocchio> 시리즈를 통해 동‧서양의 명화에 코가 길어지는 ‘거짓말’을 그림마다 덧입혔다.

초기 작업의 궤적을 살펴보면 2011년 전시에서는 ‘명화와 성경의 만남’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동‧서양의 고전 이야기를 담아냈다. 예를 들면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를 조선 시대의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을 조합시키는가 하면, 창세기의 이야기와 미켈란젤로의 작품 <노아의 홍수>를 겸재의 <금상산 전도>와 결합시키는 등 과감한 상상력을 합체화했다. 이를테면 종교와 예술을 형상화한 화면에 아우르는 솜씨와 기법을 수행한 것이다.

그는 세계적인 화가 고흐나 고갱, 또 피카소, 리히텐슈타인 등과 같은 저명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며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발상으로 독특한 거짓말 세계를 더욱 진짜처럼 그려냈다.

이 시기에 가장 흥미로운 작품들이 바로 2010년도의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뒤러 자화상>, <프리다 칼로 자화상> 등이다. 이 작품들이 바로 거짓말을 하면 코가 커진다는 피노키오 시리즈에 환상적으로 접목된 것이다.

이후 2017년 개인전에서는 닭의 몸체에 코가 긴 사람의 얼굴을, 달팽이 몸체에 피노키오의 코, 자신의 얼굴을 합성하는 등 새로운 생명의 아이콘을 만들었고, 진실과 거짓의 야누스적인 두 얼굴을 리얼하게 차용하면서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거짓말로 참말 알아듣기>가 작가의 원칙적이고 본질적인 속셈이었던 것이다.

2019년 작품전에서 선보인 피노키오 랩소디란 주제로 한 <버선코피노키오 하회탈>은 한국적 이미지의 피노키오를 만들어 중의적인 개념에서 탈로 숨겨진 진실을 익살스럽게 드러내는 화법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기법은 화단에서도 신선했고 이미지의 차용, 독특한 패러디로도 크게 시선을 끌었다.

2020년에는 불특정한 여인의 뒷모습을 피노키오로 빗댄 정교하고 섬세한 기술로 페르소나를 피노키오 코로 표현하는 등 자기 삶의 본질에 감정을 솔직하게 이입시키는 패턴으로 자신의 화법을 정착화시키면서 예술성을 드높였다.

여전히 그녀는 줄거리를 바벨탑이나 도시의 풍경들과 결합, 조합시키며 이미지를 빌리면서 시대성과 정체성을 포괄하는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페르메르의 진주 귀걸이 소녀까지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명화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하회탈 등 동‧서양, 과거와 현재, 종교와 예술을 교차하는 스타일로 주인공의 코를 부각해 연출 미를 성공시켰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그 누구의 코도 키울 수 있으며, 그 누구든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미다스의 손(Midas touch)’을 가지고 있는 보기 드문, 빛나는 작가이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은 디즈니 영화처럼 친근하고, 새로운 만화처럼 신선하고 정겹다. 그리고 전편에 다가오는 사려 깊은 현실을 바라보는 통찰력으로 눈을 떼지 못하고 머물게 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욱 컬러에 입체적인 형식으로 판화 형식을 넘어서는 리얼리티와 깊이, 3차원의 완벽함으로 평면 작품이 갖는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민경아 작가의 이 작품 모두가 ‘리노 컷’이라는 판화 작업이라는 것도 눈길을 끈다. 리노컷 판화는 19세기 중반에 발명된 목판화와 목각의 중간에 해당하는 부조 판화기법으로 두꺼운 리놀륨 판을 조각도와 끌로 깎아 내는 힘든 공정 작업이다.

일찍이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가 간결한 인물 작업으로 감칠맛 나는 작품을 만들어 크게 인기를 모으기도 했던 리노컷 판화는 작품 전편에서 보이듯이 점‧선‧면의 조화를 탁월하게 나타낸다.

이뿐만 아니라 흑백의 대비와 조화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리노 컷이다. 그러나 작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독창적인 오려내기 테크닉과 조립 기법으로 입체작품을 완성했다.

특히 전혀 상관이 없는 이미지들을 화면 속에 끌어들이면서 그것들이 충돌하여 빚어내는 낯선 감성으로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곧 충돌의 미학에서 엉뚱하게 이미지들이 결합하는 상상력을 작품 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올해 개최되는 개인전에서는 우리가 리노컷 판화의 흑백작품에서 벗어나 화려한 색에 빠진 피노키오 캔버스 작업들을 볼 수 있어 충분한 볼거리가 기대된다.

특별히 처음 선보이는 입체의 책거리 작품에서는 고풍스러운 책거리를 해학적으로 풀어내면서 작가 상징의 양파 머리와 피노키오들이 콜라주와 함께 구성돼 장르 해체와 확장이라는 부분에서도 기대할만하다.

어쩌면 이번 피노키오 전시는 피노키오 작업을 차원 높게 승화시키면서 판화를 넘어 혁신적인 색채와 콜라주와 입체적인 표현 매체로 버전을 업그레이드한 셈이다.

민경아 작가는 세련된 거짓의 상징으로 피노키오의 코를 통해 동‧서양을 넘나들며, 피노키오의 코만큼 솔직한 코가 없다고 우리들을 유혹한다.

다만 민경아 작가가 전하고자 한 마지막 진실은 우리가 거짓말을 하더라도 코가 커지거나 길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