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구니오(岸田國士)지음 | 110쪽 |128×188 | 지만지드라마 | 1만2800원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간된 일본 근대 연극의 아버지 ‘기시다 구니오’ 희곡집 ⓒ지만지드라마<br>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간된 일본 근대 연극의 아버지 ‘기시다 구니오’ 희곡집 ⓒ지만지드라마

남편 : 난 당신이랑 이러고 있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어. 이건 진심이야. 하지만 당신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아. 이것도 진심이야.

아내 : 어느 쪽이 진심이라는 거야?

남편 : 둘 다 진심이야. (사이) 그러니까 난,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사이) 당신이 이렇게 내 옆에서 조용히 뜨개질을 한다? 당신은 과연 그걸로 만족하는 걸까? 그럴 리 없지. 내가 집에 없을 때 당신은 어딘가 방구석에서, 딸랑 혼자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겠지? 난 밖에 있고, 당신의 쓸쓸한 모습을 몇 번이고 머릿속에 그려 본다. 100엔이 안 되는 돈을 매달 어떻게 잘 써 볼까, 그런 거밖에 관심 없는 우리 생활이 정말로 싫어진 건 아닌가. 이제 와서 이런 말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마음에 포기하고 있는지도 몰라. 하지만 당신은 절대 꿈이 없는 여자는 아니잖아. 난 지금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게 알고 싶어. 이런 생활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이겠지. 아닌가? 아니면 그래도, 당신이 결혼 전에 가졌던 꿈을 다시 한번 그려 보고 있는 건가?

-23-24, 종이풍선〉 중에서

【투데이신문 김지현 기자】 일본 근대 연극의 창시자로 불리는 ‘기시다 구니오(岸田國士)’의 대표작 두 편이 국내에 첫 소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1925년과 1926에 각각 발표된 〈종이풍선〉과 〈옥상 정원〉으로 희곡·연극 전문출판브랜드인 <지만지드라마>(대표 박영률)가 발간했다. 

이들 작품은 가부키와 신파가 주를 이룬 1920년대 일본 연극계에 인간 심리와 생활을 다룬 최초의 희곡으로 일본 근대 연극의 시작을 알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부부의 일상을 담은 작품들로 100년 전 희곡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현대적이다. 극적 사건이나 갈등이 두드러지지 않고 평범한 대화만으로 극을 구성했다. 이른바 스케치풍 연극으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식으로, 당시 일본 연극계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줬다.

〈종이풍선〉은 결혼 1년차를 맞은 한 부부의 일요일 오후 풍경을 담았으며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은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옥상 정원〉은 성공한 사업가와 실패한 예술가인 두 친구와 그 부인들이 고급 백화점 옥상 정원에서 만나 나누는 대화가 주요 내용으로, 대낮 번화가에서 실업 청년이 아버지와 형을 원망하며 9층 옥상에서 뛰어내린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이를 통해 일본의 사회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낸다.

그동안 〈물고기의 축제〉, 〈허물〉 등 일본 최고의 연극상으로 권위를 가진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 수상작들이 국내에 여러 편 소개된 적은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기시다 구니오의 작품은 한일 연극 교류 20년 만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부에 이동형 연극단 운영을 제안하고 위원회를 꾸려 이동극단을 이끌었던 전력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시다 구니오는 권선징악을 주요 주제로 삼은 전통극에서 탈피, 일본식 희곡 작법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이를 성공적으로 무대화한 최초의 극작가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두 작품은 ‘연극UNIT 世輪프로듀스’의 제작으로 6월 27일부터 7월 2일까지 극장 동국(대학로 소재)에서 70분짜리 옴니버스 연극으로 총 8회에 걸쳐 공연될 예정이다.

출판사 관계자는 “작품이 첫 선을 보인 100년 전과 지금의 일본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했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과 일상생활은 지금의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비슷하다는 점에 새삼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