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서울퀴어축제...광장 불허로 을지로서 개최
최고기온 34도 폭염의 날씨에도...“더워도 어쩌겠냐”
반대 집회 있었지만 경찰 안전 펜스로 각 동선 분리
“지옥에 떨어져라”...“오늘 날씨가 이미 불지옥” 응수
조직위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세상은 반드시 올 것”

지난 1일 오후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사장 입구에 무지개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1일 오후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사장 입구에 무지개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폭염주의보가 내린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가 열렸다. 8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광장 잔디가 아닌 을지로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열렸지만 지표면의 반사열은 축제를 더 뜨겁게 했다. 

퀴어축제는 지난 1일 오후 을지로 일대에서 개최됐다. 부스 행사는 오후 2시, 퍼레이드는 오후 4시 30분부터 진행돼 주최 측 추산 5만여명이 참여했다.

2015년부터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행사지만 이번에는 서울시가 퀴어축제와 같은 날 접수한 기독교 단체 행사에 서울광장을 내주며 을지로에서 열렸다.

이날 최고기온 34도를 기록한 폭염의 날씨도 이들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행사장에는 성소수자 단체는 물론 이들과 연대하는 단체 부스 58개가 차려졌다.

부스에는 무지개 문양 굿즈와 즉석사진기가 마련돼 곳곳에서 ‘인증샷’을 찍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줄이었다. 생면부지의 초면도 서로의 어깨를 맞댔다. 행사를 위해 전주에서 올라왔다는 A씨는 “부모님도 모르게 왔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가족보다 남이 더 편하다”면서 “(평소에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지 않느냐. 다시 본 것처럼 반갑다”고 웃었다.

이어 “더워도 어쩌겠냐”면서 “그래도 우리가 주인공인 날”이라며 바지를 걷어 무지개 양말을 보여줬다.

올해 처음 퀴어축제에 참가했다는 B씨도 “이렇게 더울 줄은 몰랐다”면서도 “부스에서 행사에 참여하면 얼음물이나 음료수를 나눠준다”며 기자에게도 얼른 가보라고 재촉했다.

행진 틈에서 본 퀴어축제 반대 집회의 모습. ‘동성애 죄악을 회개하라, 예수 구원!’의 문구가 적혀 있다. ⓒ투데이신문
행진 틈에서 본 퀴어축제 반대 집회의 모습. ‘동성애 죄악을 회개하라, 예수 구원!’의 문구가 적혀 있다. ⓒ투데이신문

동성애 죄악 없는 나라 vs 동성애 제약 없는 나라

퀴어축제와 함께 ‘퀴어축제 반대 집회’도 열렸다. 경찰이 안전 펜스를 따로 세우고 축제 참가자와 반대 집회 참가자의 동선을 나누는 역할을 수행했다.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반대 집회)’가 서울시의회 앞에서 ‘2023 통합국민대회 거룩한방파제(방파제)’를 열어 특별 기도회와 퍼레이드를 열었지만 동선 상 충돌이나 마찰은 빚어지지 않았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행진 대열을 따르던 경찰 관계자는 “현장 관리를 위해 50여개 기동대를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펜스는 방음벽이 아니기에 서로의 목소리가 섞이는 일은 불가피했다. 퍼레이드가 이어지는 내내 인도와 가장자리에서 반대하는 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1인 피켓이나 스피커를 이용해 “동성애는 물러가라”며 항의 집회를 벌였다. “음란마귀 떠나가라”, “동성애 죄악 없는 나라” 등의 구호도 외쳤다. 이에 축제 참여자들은 “동성애 제약 없는 나라”,  “Have a nice gay!”라며 응수하거나 오히려 그들이 입을 뗄 때마다 더 큰 소리를 내 분위기를 유지했다.

특히 “지옥에 떨어져라”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행진하고 있던 C씨는 “오늘 날씨가 이미 불지옥인데 뭐 어떻겠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C씨의 일행도 “신은 편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옥에서 만나면 된다”고 C씨의 표정을 살폈다.

이에 “죄악을 멈춰라”를 연신 외치던 1인 반대 시위 참가자 D씨는 “이 땅에 동성애는 없어야 한다”면서도 “항의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왔는데 오히려 웃는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고 말했다.

중앙 왼쪽부터 킴, 백팩 커플. 이날 퍼레이드에서 “저희 결혼했습니다”를 외쳤다. ⓒ투데이신문
중앙 왼쪽부터 킴, 백팩 커플. 이날 퍼레이드에서 “저희 결혼했습니다”를 외쳤다. ⓒ투데이신문

“모두가 결혼할 수 있기를”...“그냥 결혼이야”

동성애 커플들도 시내 한복판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10년차 게이 커플로 유튜브 ‘망원댁TV’를 운영하고 있는 킴, 백팩 커플은 이날 행진에서 부케를 들고 “저희 결혼했습니다”를 외쳤다.

이들의 결혼 행진을 따른 100여명의 하객들은 혼인평등제도가 한국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냥 결혼이야”, “Just Marriage”를 목청껏 외치며 호위했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는 “동성 커플의 결혼이 이성 커플의 결혼과 다를 것이 없다는 의미와 함께 ‘Just’의 ‘공정한’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한국의 불평등한 혼인제도를 꼬집고 모두에게 공정한 결혼이 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퍼레이드가 끝난 뒤 공연 무대에 오른 퀴어축제 양선우 조직위원장은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여는 게 너무 힘들었다”면서 “서울광장은 아니지만 이 거리에 집회 신고를 하기 위해서 3개 경찰서에 64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자리를 지켜줬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의 키워드는 ‘피어나라 퀴어나라’”라며 “소수자·약자를 위한 세상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퍼레이드를 지켜보던 시민 E씨도 “(퀴어축제 여부를) 모르고 약속에 가던 길이었는데 보다가 (약속에) 늦을 지경”이라면서 “하긴 무지개는 자연 현상 아니겠냐”고 어깨를 올렸다.

행사장 출구로 나가는데 낭랑한 목소리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내년에 또 만나요”라 말하는 자원활동가 카멜린(가명)씨였다. 퀴어 지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카멜린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결혼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다 같이 똑같은 삶을 살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난 1일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두 여성이 행사 부스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1일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두 여성이 행사 부스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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