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다양한 콘텐츠 시대로, 시청자들은 골라보는 재미를 한층 더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신선한 아이템으로 이목을 끄는 경우도 많았다. 동성 간의 사랑을 다룬 BL 시리즈가 크게 흥행했고, 퀴어 연애 예능도 연일 화제였다. 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올해 최고의 드라마로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올해는 소수자들이 대중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경우가 많았다. <투데이신문>은 앞으로도 대중문화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기를 바라며 한 해를 빛낸 캐릭터를 선정해보려 한다.

'우리들의 블루스' 영희(정은혜), 별이(이소별) 스틸컷 (사진=tvn 제공)
'우리들의 블루스' 영희(정은혜), 별이(이소별) 스틸컷 (사진=tvn 제공)

‘우리들의 블루스’ 농인 별이(이소별)와 다운증후군 영희(정은혜)

‘우리들의 블루스’는 14명의 주인공이 엮여 있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세상 사람들의 달고도 쓴 인생을 응원하는 드라마로 소개됐다. 방영되기 전부터 초호화 캐스팅으로 쟁점이 되었던 작품이었기에 이미 많은 시청자를 사로잡은 상태에서 장애인 별이와 영희의 등장은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특히 이들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청각장애,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실제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듣지 못하는 별이가 상대방의 입 모양의 더 집중하는 모습, 외적인 차이로 주변인들의 당황스러움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영희의 모습 등 장애인 배우가 연기하는 장애인은 어색함 없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들은 자기 삶을 연기했기에 더 완벽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 실제 장애인의 등장은 이슈가 되기에 충분했지만, 드라마 속 그들의 등장은 방송계의 변화뿐만 아니라 시청자의 편견까지 바로 잡았다. 그간 돌봄의 대상으로 장애인을 그렸다면 해당 작품에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위로하거나 응원하는 평범한 동네 주민으로 그려졌다. 앞으로도 장애와 비장애를 구별짓는 것에서 벗어나 함께 만드는 시리즈물의 성장을 기대해본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순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영우(박은빈), 김정훈(문상훈), 김화영(하영), 신혜영(오혜수) 스틸컷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순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영우(박은빈), 김정훈(문상훈), 김화영(하영), 신혜영(오혜수) 스틸컷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랑스러운 우 to the 영 to the 우(박은빈)

목숨을 걸고 돈을 사수하려는 이야기, 좀비로 변한 사람들이 서로 물고 뜯는 이야기 등 근래 국내 시리즈물의 소재들은 다소 강렬하면서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그사이 힐링 드라마로 자리 잡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등장했다.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우영우는 장애가 있는 사회적 약자이지만, 시청자들이 보기에 우영우의 장애가 최악의 결점이 아닌 것 같기에 선과 악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런 관점에서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극 안에서는 우영우뿐만 아니라 친형의 살해 용의자로 체포되는 자폐인 김정훈(문상훈),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연인관계로 법정까지 가게 되는 자폐인 신혜영(오혜수), 부모님의 울타리에 벗어나 자신의 선택을 따르는 성소수자 김화영(하영) 등 소수자들을 연민의 눈빛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그들이 처한 상황을 마주하며 옳고 그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특히 이 시리즈는 장애인을 보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낯선 장애인이 아닌 사랑스러운 인물로, 캐릭터가 아닌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고, 주변 장애인을 ‘우영우’로 인식하게 됐다. 더 다양한 우영우가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장애인이 각각 특징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징크스의 연인' 장영우(장윤서) 스틸컷
'징크스의 연인' 장영우(장윤서) 스틸컷

‘징크스의 연인’ 서동시장에서 함께 사는 주민 장영우(장윤서)

드라마 ‘징크스의 연인’은 미래를 보는 행운의 여신 이슬비(서현)와 불운만 끌고 다니는 공수광(나인우)의 이야기로, 사실 발달장애를 가진 영우의 역할은 크지 않다. 동네에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하는 서동시장에서 함께 살아가는 한 명의 주민으로 비춰질 뿐이다. 극 중 영우는 어떠한 미션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속 상처가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위로하거나 응원하는 동네 주민의 역할만 있을 뿐이다. 이 부분이 이 시리즈의 가장 특별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징크스의 연인’에서는 국민 탑게이라고 불리는 홍석천이 배우로 등장하여 열연을 펼친다. 성소수자의 역할이 부각되진 않지만, 여성복만 취급하는 옷 가게 총각으로 서동시장의 연예인이라 불리며 통통 튀는 감초 역할을 선보인다. 이처럼 서동시장에는 장애인과 성소수자를 그저 마을의 일원으로 등장시키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나타낸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소수자들을 드라마에 등장시키며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은 점이 이 드라마에 큰 장점이자 특징이다. 앞으로 만들어지는 시리즈물도 다양성을 존중하며, 소수자와 동행하는 작품이 많이 제작되길 바란다.

'아다마스' 윤진 비서(이시원) 스틸컷
'아다마스' 윤진 비서(이시원) 스틸컷

‘아다마스’ 쟁취하고 움직이는 청각장애인 윤진 비서(이시원)

한국 드라마 안에서 청각 장애인의 등장은 꽤 자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큰 사건에 연루되는 피해자 역할로 설정하거나,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를 하나의 장치로 이용해 소비한다. 하지만 드라마 ‘아다마스’ 속 윤 비서는 장애인이라고 약자 취급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미스테리한 인물, 속내를 알기 어려운 강자로 보인다. 욕망이 있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움직이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 의뢰도 서슴없다. 여성·장애인은 약자로 다뤄질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그 틀을 깨고 그에게 ‘악역’을 부여했다. 장애인도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회를 부여해 시청자도 연민의 눈으로만 그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이 드라마 특징은 극 안에서 많은 사람이 수어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현실에서 수어를 사용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윤 비서와 오랜 기간 동안 관계를 이어온 캐릭터들은 그의 언어를 존중하고, 대화한다. 소통에 있어 불편함을 느끼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지금까지 약자로만 인식했던 장애인의 캐릭터가 이제는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너만의 거리에서, 우리는' 승모(이정준) 스틸컷
'너만의 거리에서, 우리는' 승모(이정준) 스틸컷

‘너만의 거리에서, 우리는’ 스스로 진로를 선택하는 승모(이정준)

드라마 ‘너만의 거리에서, 우리는’은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단막극으로 제작된 드라마다. 누구나 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게, ‘배리어프리 버전’도 따로 제작됐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하는 발달장애 승모와 똑똑한 머리로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박차여라(은서)의 이야기를 담았다. 스토리 전개는 장애인이 겪는 불편함과 난감한 시선 등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로 여기는 세상 속에서 그들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 물론 취지는 좋지만, 달라진 시대에 편협한 시선으로 그들을 본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를 올해 캐릭터로 뽑은 이유는 ‘장애인’이 주인공인 드라마라는 점이다. 올해 대표적으로 ‘우영우’가 있지만, 지난 몇 년간 장애인을 주인공을 한 시리즈물은 손에 꼽는다.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딩동댕 유치원'
'딩동댕 유치원'

‘딩동댕 유치원’ 휠체어를 탄 하늘이

어린이들의 등원·등교 시간을 책임졌던, ‘딩동댕 유치원’에서 새로운 개편이 이뤄졌다. 뿡뿡이, 뚝딱이, 번개맨과 같이 각자 능력을 갖추거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인기를 얻었음에도 올해 등장한 캐릭터들은 ‘다양성’을 추구했다. 특히 눈에 띄는 캐릭터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하늘이다. 신체장애가 있는 하늘이는 농구와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좋아한다. 장애 아동이 우울할 것이라는 편견을 뒤집고, 자신이 무엇을 선호하는지 당당하게 말하는 캐릭터다. 딩동댕 유치원에는 하늘이 말고도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나 피부색이 다른 마리, 문학을 좋아하며 조금은 내성적인 소년 조와, 유치원에 도착하자마자 체육실로 달려가는 소녀 하리, 유기견 출신 댕구가 출연한다. 장애, 다문화, 양성평등을 어린 시절부터 TV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접하며, 교육할 기회를 얻는다. 해외에선 이미 어린이 프로그램에 피부색이 다른 인종의 등장은 당연하며, 장애인의 등장 또한 자연스럽다. 이런 뒤처짐이 있지만, 국내 어린이 대표 교육 채널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어린이들을 등장시키고, 현실에서도 어울려서 지낼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월수금화목토' 우광남(강형석) 스틸컷 (사진=tvn 제공)
'월수금화목토' 우광남(강형석) 스틸컷 (사진=tvn 제공)

‘월수금화목토’ 주인공의 든든한 베스트 프렌드 성소수자 우광남(강형석)

‘월수금화목토’ 극 중 광남(강형석)은 1화부터 시청자들에게 커밍아웃하면서 등장한다. 딸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난 광남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기에 계약 결혼 사업을 하는 상은(박민영)과 1년의 결혼 후 이혼했다. 광남은 그렇게 상은과 인연이 닿게 되고, 둘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거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광남이 다른 성소수자 캐릭터와 차이가 있다면, ‘알고 보니 성소수자였다’라는 숨김이 없다는 것이다. 분명 사회적으로 겪는 불편함이나 편협한 시선을 다루곤 있지만, ‘성소수자’가 별일이 아니라는 듯 가볍게 넘기는 장면도 구성하면서 그들을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제작자들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밝히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는 많은 성소수자와 공생하고 있다. 그들의 아픔을 좀 더 섬세하게 다뤄지지 않은 부분은 아쉽지만,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준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앞으로 또 다른 광남이 계속 나타나길 바란다.

'슈릅' 계성대군(유선호) 스틸컷
'슈릅' 계성대군(유선호) 스틸컷

‘슈룹’ 시대극 드라마 첫 등장, 성소수자 계성대군(유선호)

퓨전 사극 드라마에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슈룹’의 계성 대군(유선호)은 사고뭉치 세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걱정되지 않는 살가운 아들이지만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선 그가 성소수자로서 겪게 되는 위기보다 그를 받아들이는 주변 인물들의 반응을 쟁점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엄마 화령(김혜수)은 대비(김해숙)가 성소수자인 자신의 아들을 ‘흉측한’, ‘괴물’ 등이라고 칭하자 그가 겪을 아픔을 스스로 생각하며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한다. 화령은 계성 대군이 여장한 모습을 초상화로 담아 간직하게 하고, 외할머니의 유품인 비녀를 선물한다. ‘어떤 모습을 하든 너는 내 자식이다’라며 그를 품는 것이다. 사실 드라마 속 성소수자의 등장이 잦아진 시점에서 계성 대군은 지금까지 나온 캐릭터와 크게 색다른 것이 없다. 하지만 시대극에 등장한 ‘성소수자’는 시청자들에게 그 시절부터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새로운 시선을 심어줬다. 

'살인자의 쇼핑목록' 생선(박지빈) 스틸컷
'살인자의 쇼핑목록' 생선(박지빈) 스틸컷

‘살인자의 쇼핑목록’ 편견의 눈으로 바라봤던 생선(박지빈)

‘살인자의 쇼핑목록’은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극 중 주인공인 안대성(이광수)은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스타킹’을 보고 이를 구매한 이가 범인이라며 추측하게 되고, 최근 스타킹을 구매한 생선(박지빈)을 범인으로 의심한다. 대성은 가발을 쓰고, 화장하는 생선이 변태 취향이 있다고 생각하며, 무작정 생선의 집으로 찾아가 그를 제압한다. 그러나 그는 살인 당한 이경아(권소현)의 절친 사이로 자신을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준 친구의 사망 사건을 파헤치고 있었고, 성전환증이 겪고 있음을 고백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쓰고 있던 색안경에 주목할 수 있다. 그가 성전환증을 고백하기 전까지 주인공의 시점과 동일하게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기 쉽다. 성정체성에 고민하고 아픔이 있던 자를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본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연출방식이 그를 의심하게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생선의 행동을 보고 한 번의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는 캐릭터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생선을 의심한 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로 생선과 함께 범인을 찾는다는 전개가 이어지지만, 일반적인 생각이 성소수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짚어준다. 우리가 쓰고 있는 또 다른 색안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생선과 같은 아픔을 받는 이가 없어야 할 것이다.

'디 엠파이어 : 법의 제국' 한강백(권지우) 스틸컷
'디 엠파이어 : 법의 제국' 한강백(권지우) 스틸컷

‘디 엠파이어 : 법의 제국’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었던 성소수자의 고백  한강백(권지우)

‘디 엠파이어 : 법의 제국’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비밀과 폭로를 파헤치는 드라마로 완벽해 보이는 한 가정의 타락을 담고 있다. 살인, 불륜 등 크고 작은 사건이 많이 등장해 한강백(권지우)의 커밍아웃은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지만, 극 중에서 강백이 성소수자임을 밝히는 과정을 큰 사건으로 연출한다. ‘앞길은 누가 봐도 창창대로일 것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는’이라는 캐릭터의 설명을 통해서도 한강백이 성소수자라는 점이 하나의 핸디캡으로 다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표현되는 성소수자는 어쩌면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을 존중하고, 충분히 납득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변화 중이고, 그들의 고백이 일상적이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고, 자책했던 그들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때가 곧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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