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동생 전략’, 결국 한계 드러내”
“대학 서열 없애는 입법 고민 중”
“‘열정적인 모습, 응원하는 분들 늘어”
“주민 삶 팍팍…새바람 불러일으키겠다”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 지역위원장. ©투데이신문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 지역위원장.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윤철순 기자】 22대 총선(2024년 4윌 10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공천 전쟁’ 신호탄이 될 예비후보 등록일이 12월 12일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본격적인 선거전은 이미 시작된 셈이나 마찬가지다.

정치권은 일찌감치 총선 모드로 전환됐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원외위원장은 ‘표밭’ 관리에 여념이 없고, 비례 의원들 역시 ‘빈틈’을 파고들며 재선 고지를 향한 거점 확보에 사력을 쏟는다.

현역 의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의 보좌진들을 지역으로 내려 보내 유권자와의 접촉면을 늘린다. ‘프리미엄’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의원실은 현재 개점휴업 상태다.

면책특권(免責特權)에 ‘불체포 특혜’까지 부여되는 국민의 대의기관. 명실상부한 권력의 시작이자 정점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 누가 뭐래도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정치의 꽃이자 상징이 아닐 수 없다.

4년마다 교체되는 이 자리를 놓고 사생결단의 대 혈전이 시작됐다.

지난 총선 당시 5% 내에서 당락이 갈린 지역구 승부처는 약 40여 곳. 전체 의석(253)의 15%가량이다. 적지 않은 박빙 지역은 직전 선거 때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여야 공수가 바뀌었다는 점 정도다.

수성(守成)이냐, 탈환(奪還)이냐. 지난 총선 ‘석패자’들을 만나본다.

21대 총선을 사흘 앞둔 지난 2020년 4월 12일 더불어민주당 동구미추홀구을 남영희 후보가 인천 주안역인근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21대 총선을 사흘 앞둔 지난 2020년 4월 12일 더불어민주당 동구미추홀구을 남영희 후보가 인천 주안역인근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인천 동구·미추홀을 지난 총선 ‘전국 최소 득표 차’


[인천 동구·미추홀을] 피 말리는 접전이 밤새 이어졌다. 날을 넘기고도 한참 지나서야 나온 최종 결과는 171표(0.15%) 차 낙선. ‘21대 총선 최소 득표 차 패배’였다. 정치에 발들인지 18년 만에 도전한 첫 선거는 그렇게 끝났다.

지난 2019년 5월. ‘더불어민주당 여성 정치신예 남영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나’로 부른다는 소문이 난 ‘원조 친박 윤상현’을 잡겠다며 단기필마로 인천(동구·미추홀을)에 내려갔다.

2020년 4·15 총선 1년을 앞두고 출마를 고심하던 남영희(51) 당시 문재인 청와대 행정관은 “인천의 고인 물, ‘원조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입후보 결심 하루 만에 이삿짐을 꾸렸다.

이것저것 잴 필요가 없었다. 성격상 우물쭈물하는 체질도 아니었지만 ‘낡은 세력을 몰아내야한다’는 명분도 있었고, 그 지역에서 대학(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운항과)을 나온 연고(緣故) 또한 최종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며 ‘윤상현의 아성’을 무너뜨리고자 했지만, 끝내 벽을 넘지 못했다. 당시 3선 현역이었던 ‘무소속’ 윤상현과 전 인천시장 안상수의 출마로 보수가 분열하는 구도였음에도 민심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윤상현이라는 사람을 당시엔 전혀 몰랐다. 지역에 인사를 다닐 때마다 윤상현만 얘기하는데, ‘늪’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놓는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동구·미추홀을 위원장을 서울 여의도 투데이신문사에서 만났다.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 지역위원장. ©투데이신문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 지역위원장. ©투데이신문

‘구태 정치’에 제발로 ‘노사모’ 찾아가


“이건 아니지.”

6년간 다니던 항공사 승무원 생활을 결혼과 함께 정리한 후 육아에 전념하던 ‘두 아이 엄마 남영희’는, 16대 대선이 있었던 2002년 당시 언론을 통해 접한 ‘노무현 후보 흔들기’에 분노감이 차올랐다.

국민경선을 통해 바람(盧風·노풍)을 일으키며 선출된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이유를 들며 교체를 요구하는 후보 흔들기 세력의 ‘반칙과 비상식’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시민사회 비판이 거세지며 재야 등 당 외부의 ‘후보 지키기’ 움직임이 본격화될 무렵, 정치 칼럼 절필(絶筆)을 선언한 유시민 당시 시사평론가는 “중계석을 박차고 나와 운동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선 직전 ‘개혁국민정당’ 깃발을 올렸다.

‘육아 맘 남영희’는 그길로 개혁당을 찾아가 당원으로, 노사모 회원으로 활동하며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열정을 쏟았다. 그렇게 시작된 정치활동은 18년 후 자신이 나온 대학 연고지 지역 국회의원 도전으로 이어졌다.

현재 민주당 당원 존(ZONE) 소통관장과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을 맡아 왕성한 방송활동을 펼치고 있는 남 위원장은 “내년 총선에서 남영희가 승리하면 민주당은 170석 이상 확보하게 될 것”이라 장담했다.

그런 그에게 ‘왜, 노무현 후보 흔들기에 분노했는지’를 물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교조 활동하던) 학교 선생님들이 ‘5·18 민주항쟁’에 대한 얘길 많이 들려줬었는데, 그때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됐다. 그런 인식이 자리 잡고 있던 그해 ‘6월 항쟁’ 당시, 부산 서면 한복판에서 최루탄 가스를 몸으로 체감하며 사회저항운동에 눈을 떴다. 그런 바탕이 기저에 깔려 있는 상태에서 말도 안 되는 구태 정치를 보니 자동반응이 일었던 것 같다.”

지난 2019년 9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센터 기공식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19년 9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센터 기공식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노무현·유시민 당선에 일조...운동권에 이질감


-왜 개혁당이었나.

“당시 유시민 대표가 당 의사결정에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겠다면서 기존 정당들과 다른 ‘당원이 진짜 주인이 되는 인터넷 정당’을 만들겠다고 해서 고민할 것 없이 제 발로 찾아갔다.”

-거기서 어떤 활동을 했나.

“주로 인터넷을 통한 홍보활동을 했다. 글도 쓰고 오프라인 모임도 갖고. 당시 경기도 고양시에 살고 있었는데, 노사모 활동 겸 개혁당원 겸해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 정말 신나게 선거운동을 했다.”

-‘내 손으로 대통령을 당선시켰다’는 뿌듯함이 컸을 것 같다.

“그전까지 크고 작은 선거에 투표해왔지만, 그때처럼 ‘정치 효능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정치라는 게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시기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풀뿌리 시민들이 뜻을 모아 ‘우리의 대통령’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다들 엄청 났다.”

-이후 정치활동을 본격화한 건가.

“아니다. 대선 이듬해(2003년) 상반기에 고양시 덕양 갑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있었는데, 당시 유시민 대표가 개혁국민정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 선거를 도왔고 유 후보가 당선된 이후 정치를 떠났다. 이후 그해 결혼 전까지 다니던 항공사에 경력직으로 다시 입사했다.”

-갑자기 왜?

“대통령,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신나게 뛰었는데 막상 당선 후엔 선거 당시 보지 못했던 분들이 나타나더니 자기들끼리 NL이 어떻고 PD가 어쩌고 그런 얘길 죽 늘어놓더라. ‘운동권들’이었다. 학생운동 하던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오다보니, 이질감이 들고 뭔가 벽 같은 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나왔다. 부담도 됐었지만 내가 할 역할은 다 했다는, 그런 생각도 들고 해서...”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파), PD(People's Democracy Revolution·민중민주파)는 1980년대 중반 태동한 대한민국 ‘운동권’의 양대 정파를 의미하는 용어다. 당시 NL은 ‘계급’을 핵심 문제로 규정하며 노동운동과 연계해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PD와 달리 ‘북한과 협력해 통일로 나아가자’고 주장했다. 현재 NL계는 진보당에서, PD계는 정의당, 노동·시민단체 등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 지역위원장. ©투데이신문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 지역위원장. ©투데이신문

“선거 지원 요청에 다시...새로운 결심”


-그런데 어떻게 정치권에 다시 가게 된 건가.

“복직을 했는데, 아이들을 돌보며 살림까지 봐주시던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비행기에서 내려오게 됐다. 당시, 그걸 알고 노사모·개혁당 때 인연을 맺었던 여러 ‘동료’들이 여기저기서 선거운동 좀 도와 달라고 연락이 왔다.”

-대인 관계 ‘능력’이 남다른 것 같다.

“제가 한 친화력 한다. 하하하.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 당시엔 정말 순수한 열정으로 미친 듯이 활동했다. 사람들도 좋았고. 그런 모습을 좋게 본 분들이 주변에 많았던 것 같다. 그런 거 보면 운이 좋은 사람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그때 새로운 결심을 한 게 있는데, ‘정치를 계속할 거면 제대로 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학원 들어가 정치학 공부도 했다.”

이후 남 위원장은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를 취득하는 등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준비했다. 딱히 목표를 설정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기점으로 그는 ‘청와대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노 대통령 떠나셨을 때 체중이 10kg이나 빠질 정도로 충격이 컸었다”는 남 위원장은 “내 손으로 정권 교체를 이뤄 청와대 가서 일 해봐야겠다는 목표를 그때 세웠다”고 밝혔다.

그렇게 현실정치에 발을 들인 그는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 경기시민캠프 조직팀장과 이후 창당된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부대변인, 2017년 ‘탄핵 대선’ 문재인 캠프 선대위 부대변인 등을 거쳐 청와대로 들어갔다.

-‘전국 최소 득표 차’로 패했었는데, 지역 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나.

“요즘 제가 지역을 다니면서 주민들에게 ‘청소기도 10년 이상 사용하면 바꿔야한다’고 말씀드린다. 동구·미추홀 국회의원도 16년 써봤으니 이젠 ‘싱싱한 신제품 남영희도 한 번 이용해보시라’고. 하하. 그러면 지역 어르신들이 ‘새 바람 한 번 일으켜보라’며 맞장구를 쳐주신다. 그럴 땐 정말 힘이 솟는다.”

그의 훤칠함과 호방함 넘치는 기백(氣魄)에서 흡인력(吸引力)이 느껴졌다. 빡빡한 일정으로 틈내기 쉽지 않았음에도 피곤해보이거나 힘든 기색이 전혀 없었다. 질문에 막힘이 없었고 답변은 시원시원했다.

“초중고 때 키도 크고 목소리도 커 간부 활동을 많이 했다”는 그는 "이모가 ‘너는 키도 크고 하니, 스튜어디스를 할 수 있는 항공운항과를 가보라’고 알려줬다”고 털어놨다. 당혹스러울 만큼 솔직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이들은 그를 ‘호전적 파이터’로 쉽게 규정한다. 이에 대해 남 위원장은 “여린 면이 많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감성적 성격을 가진 평범한 여성”이라고 너스레를 놓는다.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 지역위원장. ©투데이신문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 지역위원장. ©투데이신문

“남영희 한테도 마이크 줘라”에 울컥


-방송 출연이 잦아 지역 활동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을 잘 할애해서 병행하기 때문에 큰 문제없다. 지난 총선 때 최소 득표 차로 떨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인지도는 오히려 올라갔다. 하하. 지역민 대부분이 알아봐주시고 방송에도 나오고하니까 이젠 다들 가깝게 대해주신다.”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저희 지역에 100여개 경로당이 있는데, 몇 달 계획 세워서 어르신들을 전부 찾아가 뵈었다. 그런데, 대부분 저를 알아봐주셔서 상당히 놀랐다. 불편하신 부분은 없는지 여쭙고 해결할 수 있는 건 처리해드리고 있다.”

-4년간 지역을 다녔으니, 딸 같다는 생각들을 하실 것 같다.

“최근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노인복지관 행사엘 간적이 있는데, 진행자가 ‘남영희 위원장 참석했다’고 소개만 하니까 어르신들이 ‘남 위원장도 마이크 들고 한 말씀 하도록 해주라’고 해서 울컥했다.  그 동안 설움이 좀 있었는데, 그땐 좀 감동했다. 하하.”

-윤상현 의원에 대한 지역민들 평가는 어떤가.

“사실 지난 총선 출마 결심 후 지역에 내려가 처음 주민들을 만나 뵀을 때 많은 분들이 윤 의원 얘길 하면서 ‘그 사람은 처음 봐도 형님, 동생 한다’고 하더라. 그만큼 ‘스킨십 전략’이 뛰어난 분이다. 유·불리 따지지 않고 명분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내려갔었는데,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하.”

인천 동구·미추홀을 지역에서 무소속으로 (20~21대) 연이어 당선된 윤상현 의원은 지역구 관리 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다. 보기 드문 ‘무소속 재선’ 기록을 보유한 윤 의원의 지난 20대 국회 공약 이행률은 89.6%를 보였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20대 총선 직전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를 욕설로 비난한 ‘녹취록 파동’과 21대 총선 당시 터진 ‘함바왕 유상봉 씨 관련 선거공작 개입 논란’ 사건의 중심인물로 조명받기도 했다.

‘김무성 비난 욕설 녹취록’ 건으로 20대 총선 공천에서 배제되는 등 곤욕을 치른 윤 의원은 지난해 8월 ‘대화 당사자라도 상대방과의 대화를 동의 없이 녹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지난 2020년 3월 4일 오전 윤상현 미래통합당 의원이 인천시 미추홀구 동신메디컬센터에서 21대 총선 동구·미추홀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020년 3월 4일 오전 윤상현 미래통합당 의원이 인천시 미추홀구 동신메디컬센터에서 21대 총선 동구·미추홀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윤상현, 처음 보는 사람도 ‘형님, 동생’”


-‘스킨십 전략’이라면.

“이분이 지역민들 사이에선 ‘개별 민원 해결사’로 통한다. 그런 식으로 지역구 관리를 해오셨다. 반면, 중앙정치 노력은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의정활동 성실도’를 보면, 국회 본회의 출석률이 최하 3위에 들 정도로 형편없는 성적이다. 이러니 지역 발전은 손 놓을 수밖에 없는 거다.”

-지역의 시급한 문제는 뭐라고 보나.

“이게 어르신들 분포가 많은 원도심과 젊은 층이 거주하는 아파트 위주의 신도시, 연령대별 니즈가 전부 다 다르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시급한 건 학교 부족이다.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되면 학교가 빨리 들어서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상당부분 그렇지 못하다. 이걸 해결해야 한다. 또 단지가 크면 원거리 통학 문제도 발생하고 개발에 따른 소음, 분진 등 안전과 관련되는 사안도 산적해 있다. 문화·체육시설 요구도 많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선거가 있는 것 아니겠나.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윤 의원은 지역발전을 위한, 현안을 풀기 위한 비전보다는 ‘형님동생 전략’만 가지고 여태껏 의정활동을 해온 거다. 우리 지역에 인천지방법원이 있는데, 지하철(전철)로 갈 수가 없다. 법원이 있는 곳에 그 흔한 지하철이 없다. 지금까지 수없이 유치 공약을 내걸었지만, 지켜진 적이 없다. 이런 건 국비로 해결해야하기 때문에 전략이 필요하다.”

김태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자문 변호사가 지난 4월 29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미추홀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설명회’에서 피해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김태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자문 변호사가 지난 4월 29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미추홀구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 설명회’에서 피해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상민 장관 탄핵안 기각에 절망”


-지역에선 ‘전세사기’ 사건도 크게 발생했었다.

“그 사건 터지고 발만 동동거렸다.”

-무슨 얘긴가.

“이걸 해결하려면 중앙정부와 시, 구청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은 민주당 정권이 아니지 않나. 옆 지역구의 우리 당 허종식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이라 자주 의견을 교환하면서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했는데, 피해자분들이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해냈느냐 하는 부분에선 솔직히 자신이 없다. 제가 비록 원외이긴 하지만, 피해자분들과 여러 번 만나 요구사항을 당에 전달하고 추가 지원 방안도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답답할 때가 많다.”

-구민들 우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지역민들은 사실 언급을 꺼리는 편이다. 좋은 얘기도 아니지만 살기 좋은, 인간미 넘치는 곳인데 새로운 주거단지나 이런 쪽 주민들 입장에선 혹시나 차별받지 않을까, 그런 걱정들을 하신다. 참 마음이 아프다.”

-또 다른 현안은 뭐가 있나.

“대단지 신규 아파트 입주시기와 새학기 시작 날짜가 안 맞으면 전·입학이 안 되는 문제가 있는데, 이것도 해결과제다. 지금 교육부, 교육청을 통해도 해결이 쉽지 않다. 이런 건 입주 증명서만 있어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야말로 탁상행정이 아닐 수 없다. 행정지침만 바꿔도 될 것 같은데, 걸림돌이 많다. 원내 들어간다면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윤석열 정부 1년 국정운영은 어떻게 보나.

“한 마디로 ‘무정부 상태’다. 헌법재판소가 이태원참사와 관련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안을 기각했는데, 절망감이 들었다. 도대체 국가란 게 뭔가. 국민 생명과 안전은 누가 보장하나. 요즘 지역을 다니다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발 빨리 좀 끌어내려 달라’고 한다. 민주당은 뭐하냐면서. 왜, 그렇게 물러터지냐고도 하고.”

-지역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뭐라고 보나.

“일단, 주민들은 당장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신다. 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같은 친일 굴욕외교, 특히 국민과 야당을 대하는 대통령의 거친 모습에 모멸감을 느낀다는 분들이 많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남짓 됐는데, 모든 부분에서 역진하고 있다. 주어진 권한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데 어떤 사안에서도 그런 건 찾아보기 어렵다.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실, 내각, 심지어 지방자치단체장까지.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방송 출연을 많이 하는데, 사안별로 대응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하루가 다르게 대형 사건들이 터지니까. 선거정국도 아닌데 그야말로 이슈가 이슈를 덮고 있다. 정보를 업데이트하기가 너무 힘들다. 청와대 졸속 이전을 시작으로 정권 출범 전부터 지금까지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계속 터지고 있다. 상식적인 시각으론 도저히 해석이 안 된다. 그래서 가끔 냉정을 잃을 때도 있다.”

방송에 몰입하다보면 눈시울이 붉어질 때도 있고 토론이 격해지면 ‘가짜뉴스 선동꾼’으로 몰릴 때도 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남 위원장은 “저의 이런 열정적인 모습을 응원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 지역위원장. ©투데이신문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 지역위원장. ©투데이신문

“대학서열 혁파? ‘선무당’이 사람 잡는 법”


-원내 진출하면 어떤 활동을 하고 싶나.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킬러 문항’과 관련해서 ‘대학 서열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사교육 열기를 누그러뜨리면서 교육의 질을 높이고 싶다. 만약, 국회에 간다면 교육문화위원회를 자원해서 대학서열을 없애는 법을 만들어보고 싶다.”

-당장 고등학교 서열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학 서열화 구조를 혁파하면 고교서열화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 생각한다. 저출생 문제에서 비롯되는 ‘벚꽃 지는 순서대로 (대학) 문 닫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정도로 심각한 상황에선 법·제도로 바꿀 수밖에 없다고 본다. 누군가는 변화를 시도해야하지 않나. 혹자들은 ‘말도 안 된다’고 하는데, 세상 모든 게 ‘말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만 돌아가는 건 아니다. 열정이 식지 않으면 불가능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법이다. 하하.”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웃음 뒤엔 그를 여기까지 있게 한, 남들보다 반발짝 빠른 판단력과 거침없는 결단력이 뒷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대학 입학은 쉽게 하고 입학 후엔 공부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면 서울대학교 폐지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무모한 도전일 수 있지만, 서울대를 없애고 전국에 한국 1대학, 2대학, 3대학 식으로 분포시켜 내용을 채우면 저출생 문제도 망국적 경쟁으로 도태되는 부작용도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놀랐다. 그의 생각이 아니라 그걸 말로 뱉어내버린다는 사실이. 정치인들은 보통 그런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맞는 얘기라 하더라도 밖으로 드러낼 땐 다들 눙치는 식으로 넘어간다. 이런 식의 발언은 현실 정치인에게 도움이 안 되는 화법이다. 그러나 그는 유·불리를 따지지 않았다.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통쾌했다. 그의 ‘순수한 매력’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윤 대통령이 킬러문항 얘기 꺼냈을 때, 한편으론 잘하는 거란 생각도 들었다. 독재자처럼 휘두르는 저 힘을 순기능으로 녹여낼 수 있다면 엄청난 개혁을 이룰 수 있을 텐데 하는. 그러나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떻게 킬러 문항이 일타강사 세무조사로, 586카르텔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건지 참 대단하다.”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 지역위원장. ©투데이신문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인천 동구·미추홀구 지역위원장. ©투데이신문

“송영길 처제, 전세왕 배후는 ‘악마의 편집’”


-송영길 전 대표 처제라는 ‘소문’ 때문에 곤욕을 치렀었는데.

“송 대표 부인 이름이 ‘남영신’인데, 남영희와 이름이 비슷하니까 일부 보수매체와 극우 유투버들이 생각 없이 갖다 붙여 기사까지 나온 걸로 보인다. 송 대표도 제가 이 지역 선거 나오기 전까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라고 했는데, 그들이 앞뒤 다 잘라서 ‘악마의 편집’을 한 거다.”

-그래서 ‘전세사기꾼 남모씨 배후’라는 얘기까지 돌았다.

“그 거짓말을 윤상현 의원한테 직접 들었다. 윤 의원이 어느 날 ‘송영길이 전세사기 건축왕 남모씨와 연루돼 귀국하면 감옥 갈 것’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나중엔 극우 유튜브 방송에서까지 ‘남영희가 송영길 처제고 두 사람이 건축왕 남씨 뒷배’라고 거짓말을 하는 거였다. 가만 두면 안 되겠다 싶어 ‘방송 안 내리면 고소할 것’이라 경고했더니 즉각 삭제했다. 지금은 그런 얘기 쏙 들어갔다. 참 황당한 해프닝이었다.”

-지역민들께 하실 말씀이 있다면.

“지난 4년간 지역을 돌며 주민들을 뵀는데, 정말 정이 많은 분들이라는 걸 느꼈다. 처음엔 좀 배타적이었는데 이웃으로 인정하신 후엔 가족처럼 챙겨주신다. 우리 지역이 그런 곳이다. 투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이 어떤 영향을 받는다는 걸 지금 모두 체감하고 있다. ‘형님, 동생’ 관계로 투표한 결과가 지금의 윤석열 정권을 만들었고, 주민 삶이 팍팍해졌다는 걸. 반드시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남영희 위원장은.

1971년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부산진여자고등학교를 나와 인하공업전문대학 항공운항과를 졸업했다. 이후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근무하다 ‘사내커플’로 결혼,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다.

2002년 ‘노사모’와 개혁당 당원을 시작으로 처음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방송대를 거쳐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입학,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대선 등 각종 선거에서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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