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 [사진제공=뉴시스]
영화 ‘아가씨’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조유빈 기자】 “현대에 와서 아저씨들이 앞장서 오염시킨 그 명사에 본래의 아름다움을 돌려주리라” - 아가씨 각본 中 박찬욱 감독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아가씨’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온라인 커뮤니티 ‘인스티즈’에는 ‘아가씨라고 말했다가 우리 아빠 욕먹음’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게재됐다.

해당 게시글에 따르면 사연자는 가족끼리 고깃집에 방문했고 주문을 하기 위해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알바생에게 ‘아가씨 주문 좀 받아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에 알바생은 기분 나쁜 티를 내면서 그렇게 부르지 말라며 사연자 가족에게 쓴소리를 한 것이다.

사연자는 게시글을 통해 ‘아가씨’라고 하는 것이 왜 기분 나쁜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표했고, ‘아가씨’는 본래 높임말이라고 주장했다.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쏟아냈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기분 나쁠 만한 단어였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나쁜 의미로 부른 것도 아닌데 유별나다”, “알바생이 예민하게 반응한 것 같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투데이신문>은 해당 논란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고 있는 만큼 ‘아가씨’가 여성 비하의 뜻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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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단어가 된 ‘아가씨’…변질된 이유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아가씨’의 의미는 아래와 같다. 시집갈 나이의 여자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손아래 시누이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 미혼의 양반집 딸을 높여 이르거나 부르던 말.

‘아가씨’라는 단어 자체에는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높여 부르는 뜻이 포함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가씨’의 어원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딸을 가리키던 말인 ‘아기씨’였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단어의 형태가 바뀌고 의미 또한 변하게 됐다.

그렇다면 현대로 오면서 ‘아가씨’라는 호칭은 왜 변질된 것일까. 언어에는 사전적 정의 외에도 여러 사회적‧상황적 맥락을 품고 있다. 본래 말의 어원이나 뜻이 부정적이지 않아도 사회에 따라 의미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최근에는 ‘아가씨’라는 단어에서 존대의 의미가 배제됐고, ‘술집 아가씨’ 등 사회적으로 폄하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호칭으로 주로 쓰이게 됐다. 이로 인해 ‘아가씨’라는 단어에는 희롱하는 숨은 의미가 정착되면서 불편한 시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마누라’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마누라는 자신의 아내를 허물없이 혹은 낮춰서 부를 때 주로 쓰인다. 사전에서도 중년이 넘은 아내를 허물없이‧속되게 이르는 말로 명시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마누라의 어원은 ‘상전’의 의미로 쓰였던 ‘마노라’였다고 분석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박창원 교수는 “‘아가씨’라는 단어 또한 사회에 따라 변화됐고 기존의 의미가 퇴색된 것”이라며 “옛날에는 좋은 뜻이었다 하더라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불편한 단어가 될 수 있다. 이는 ‘아가씨’뿐만 아니라 다른 단어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다만 유독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를 소비했던 방식이 흔적으로서 남겨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여성이 받아온 차별을 그림으로 풀어낸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기울어진 미술관> 등의 저서를 집필한 이유리 작가는 “‘아가씨’라는 용어를 한국 사회가 소비했던 방식이 흔적을 남긴 것이라고 봐도 된다. ‘아가씨’라는 단어가 어떻게 소비됐는지를 현재 젊은 여성들이 감지해낸 것”이라며 “언어라는 것이 사전적으로만 쓰여지지는 않기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도 “언어에 대한 문제는 옳고 그름으로 판별할 수 없이 복합적이고 맥락적”이라며 “하지만 ‘아가씨’라는 단어에는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용어로 쓰였던 역사가 있고, 아직 그렇게 쓰고 있는 사람도 있는 만큼 존칭이나 존경을 담았던 단어가 아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가씨’에는 하대‧무시‧성적 대상화 등의 의미가 섞이게 됐고, 그렇지 않더라도 ‘어린 여성’으로 취급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아가씨’ 대신 ‘저기요’ 적용…다른 호칭들도 문제?

그렇다면 요즘 젊은이의 대명사인 ‘MZ세대’들은 해당 호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실제 ‘아가씨’에 대한 인식은 MZ세대 사이에서도 상황, 어감, 주체 등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모(29‧여성)씨는 “‘아가씨’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며 “상황에 따라 충분히 부를 수 있는 호칭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서모(27‧남성)씨는 “굳이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만한 호칭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아가씨’ 말고 ‘저기요’라고 부르면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모(28‧여성)씨의 경우 “일상에서는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은 괜찮지만, 업무 때 손님이 그렇게 부르면 불쾌하다”며 “어르신들은 이해할 수 있지만 중년 남성(여성)의 경우에는 몰상식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MZ세대 사이에서도 꼭 ‘아가씨’라는 단어에 대해서만 불편함을 느끼는 건 아니다.

지난 12일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은 MZ세대 알바생 1652명을 대상으로 호칭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가장 싫은 호칭으로 ‘야, 어이’가 67.1%의 응답률로 1위를 차지했고, 다음으로 ▲아줌마(9.0%) ▲아가씨(6.2%) ▲아저씨(5.2%) ▲자기야(3.5%) 등이 뒤를 이었다.

가장 듣고 싶은 호칭으로는 ‘저기요, 여기요’(36.3%), ‘사장님’(22.3%), ‘선생님’(11.7%) 순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아가씨’에 대한 호칭뿐만 아니라 ‘야’, ‘어이’, ‘아줌마’, ‘아저씨’ 등에 대한 호칭에서도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이 확인됐다.

국립국어원이 지난 2020년 발간한 책자 ‘우리가 뭐라고 부를까요?’에서는 ‘젊은이’, ‘총각’, ‘아가씨’ 등의 단어 사용이 나이, 혹은 권력 등과 같은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드러내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와 함께 서비스 기관의 직원을 부르는 말로는 ‘여기요’, ‘저기요’ 등이 보편적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국어 생활에서 생기는 궁금한 점을 답변해주는 국립국어원 ‘온라인가나다’에는 해당 단어들로 종업원을 부르는 것이 부적절한지 묻는 상담 글이 올라왔다. 이에 온라인가나다에서는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로 다른 표현을 쓰기를 권한다”고 답변했다.

결론적으로 ‘아가씨’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은 개인‧상황‧어감 등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젊은 여성에 대한 비하표현이라고만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미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호칭이 권장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논제는 판단 유보로 결정을 내린다.

본래 좋은 의미였던 단어‧언어가 시대에 걸쳐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가씨’ 또한 그 과도기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김미현 연구원은 “‘아가씨’는 사전적 의미로는 전혀 부정적인 의미가 없다. 따라서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로 부르는 것이 아니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며 “그러나 호칭이라는 것 자체가 직접 부르고 불리는 사람들의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부분인 만큼 단언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언어는 계속 바뀌어 간다. ‘아가씨’라는 단어 또한 수십 년 후에 부정적인 인식이 더 강해진다면 그렇게 정착될 수 있다”며 ”현재는 과도기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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