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로 정교해진 왜곡과 날조
워싱턴 폭발 가짜 사진, 뉴욕증시 휘청
가짜뉴스 온상으로 지목된 ‘유튜브’
설문참여 75.9% “정치에 부정적 영향”
확증편향 강화, 양극화 덫에 걸린 한국

교만한 자의 영혼이 속죄하는 곳. 귀스타브 도레(1832~1883). 지옥을 지나 연옥에 들어선 단테가 교만을 상징하는 인물과 사건들의 조각상을 바라보는 모습.
교만한 자의 영혼이 속죄하는 곳. 귀스타브 도레(1832~1883). 지옥을 지나 연옥에 들어선 단테가 교만을 상징하는 인물과 사건들의 조각상을 바라보는 모습.

【투데이신문 박주환 변동휘 정인지 기자】 연옥을 걷던 단테는 무거운 짐을 지고 허리를 굽힌 채 걷고 있는 자들을 본다. 이들은 모두 교만의 죄를 저지를 사람들로서, 신은 물론 타인과의 관계에서 겸손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능력과 지식을 자만해 벌을 받고 있다. 교만의 연옥에서 무엇보다 단테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루시페르, 니므롯, 사울, 트로이 등 13명의 인물과 사건들이 그려진 조각이다. 

이 중 니므롯은 바벨탑을 세워 올린 바벨론의 왕이다. 하늘 끝에 오르고자 했던 바벨탑은 오늘날까지도 신의 권위에 도전한 오만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신의 명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죽음을 맞이했으며 트로이는 전쟁의 막바지에서 오만에 사로잡혀 멸망의 길을 걷는다. 

루시페르는 악마의 왕으로 알려진 루시퍼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신을 넘어서려 한 죄로 악마 집단의 가장 꼭대기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다. 단테는 루시페르를 교만의 상징으로 설명하지만, 동시에 지옥의 가장 심층부인 배신의 지옥에 얼어붙은 채 앉아 있다고 묘사하기도 한다. 교만은 천사조차 피할 수 없으며 또한 다른 죄의 근원이기도 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단테가 살던 시대는 신의 말씀이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교만에 대한 정의도 이를 기반으로 내려졌다. 700여년이 지난 현재, 한국의 무종교 비율은 51%(한국리서치 ‘2022년 종교인구 현황’)에 이른다. 신의 말씀이 사라진 자리는 새로운 과학이론이나 사회적으로 합의한 법과 제도, 진실을 표방한 언론의 뉴스 등이 메우고 있다. 

하지만 신의 시대나 세속의 시대를 막론하고 교만은 나만 옳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특히 강력한 권위자가 사라진 현대에는 사실과 의견이 서로 각축하며 진실의 자리를 두고 경합한다. 여기에는 합리와 근거라는 규칙이 작용하는데, 내가 옳다는 주장만을 관철시키기 위해 왜곡과 날조와 선동이 일상화될 때 우리가 기반으로 삼은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왜곡과 날조와 선동은 더욱 정교해졌다. IT 기술과 함께 이른바 가짜뉴스라는 개념과 사례가 확산되면서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신념을 더 중요시하는 탈진실 역시 더욱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옳고 그름보다는 각자의 입장과 신념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가짜뉴스를 단순한 허위사실 유포쯤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가 전하는 이야기만 옳다’는 교만 아래 생산되고 소비되는 가짜뉴스는 이성과 합리의 시대가 쌓아 올린 근간을 흔들고 있다. 누가 가짜뉴스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 하고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 하는가. 그 사람과 집단이 우리시대의 트로이의 목마다. 그 목마 안에 우리 사회를 무너뜨릴 불신과 서로를 향한 악의 모두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가짜뉴스 생성 홈페이지를 통해 제작한 워싱턴DC 폭발 사고 뉴스 화면 [사진출처=가짜뉴스 생성기 홈페이지 캡처]
가짜뉴스 생성 홈페이지를 통해 제작한 워싱턴DC 폭발 사고 뉴스 화면 [사진출처=가짜뉴스 생성기 홈페이지 캡처]

■ ‘사실’을 믿을 수 없는 디지털 시대

산업시대 이후부터 불과 10여년전까지 사진과 영상, 녹음 등은 시간을 기록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믿어졌다. 그 증거를 바탕으로 우리는 보다 사실에 기반한 역사를 축적할 수 있었고 진실에 가까운 합의를 이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IT 기술과 인공지능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 실제 지난 5월 22일(현지시간) 오전 8시 42분 ‘@CBKNews121’이라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미국 워싱턴DC 인근 국방부 청사에서 대형 폭발이 발생했다는 사진이 처음 게재됐다. 해당 사진은 인공지능이 생성한 가짜 이미지였지만 몇몇 계정을 통해 확산되면서 한 때 뉴욕증시가 하락하기도 했다. 

사진이 거짓이라는 것은 펜타곤을 담당하는 소방서가 같은 날 오전 10시 27분경 “폭발 사건은 없다”고 발표하면서 공식화됐다. 소동은 일단락됐지만 진위가 확인되기까지 약 2시간가량, 글로벌 정세는 가짜 사진 한 장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현지 언론들은 이 사건을 AI 가짜뉴스가 시장을 움직인 첫 번째 사례라고 논평했다. 

가짜뉴스 제작은 점점 쉬워지고 있다. 딥페이크라는 기술을 활용해 동영상이나 사진에 얼굴을 합성하는 것 역시 일반인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 실제 구글플레이 등 앱마켓에는 ‘Reface’, ‘Mivo’ 등 다양한 관련 앱들이 올라와 있다. 이 앱들은 기본 숏츠 영상을 제공하고 여기에 원하는 사진을 합성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데 그 수준이 매우 정교하다. 

여기에 생성형 AI를 활용한 이미지 제작이나 동영상 제작 툴도 나오기 시작해 이미 유튜브에는 실사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 콘텐츠 제작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AI를 활용해 제2의 워싱턴DC 폭발 영상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밖에 네아 포(Nea Paw)라는 이름의 한 개발자는 오픈AI 기반 기술을 활용, AI 허위 정보 기계(Disinformation Machine)를 만들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직 해당 프로그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관점과 스타일의 기사를 생산하고 오디오 클립과 기자 프로필, 댓글 등의 생성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뉴스 제목을 포함한 속보 이미지를 생성하는 사이트가 놀이문화처럼 운영되고 있다. 이용자는 해당 사이트에서 제목, 뉴스 앞머리, 이미지만 선택하면 쉽게 기사 섬네일과 링크를 만들 수 있다. 생성된 기사 링크는 네이버뉴스, 다음뉴스와 유사한 주소를 갖고 있어 외형만으로는 가짜뉴스라는 것을 알기 어렵다. 

해당 사이트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1000명을 유입시키면 문화상품권 5만원을 제공한다며 이용자들을 유인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하루에 150개 이상의 가짜뉴스 타이틀이 생성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가짜뉴스의 제목은 장난스럽고 개인적인 내용들이 다수이지만 정치인 또는 유명인의 사망이나 전쟁, 산불 등 다양한 이슈들이 다뤄지고 있다. 

■ 산 사람 죽이는 유튜브, 받아쓰는 언론

유통경로가 많아졌다는 것도 가짜뉴스 확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기성 언론을 통한 오보나 이른바 지라시라고 불리는 사설 정보지들이 가짜뉴스가 소비되는 주 경로였지만 현재는 유튜브, SNS, 커뮤니티 등 다양한 방식이 활용된다.  

실제 〈투데이신문〉이 두잇서베이와 20대 이상 성인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가짜뉴스에 대한 경험 및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61.9%는 ‘선거를 앞두고 유포되는 가짜뉴스를 접해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또 이들은 유튜브(31.9%)에서 가장 많은 가짜뉴스를 접했다고 답변했으며 기성언론(25.7%), 인터넷 커뮤니티(18.1%), SNS(15.1%), 정치권(7.4%), 메신저서비스(1.6%) 순으로 많았다고 응답했다. 

가짜뉴스를 접하는 경로는 연령대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20대는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31%)에서 가장 많이 접했다고 말했으며 30대도 SNS(21%)를 두 번째 많은 경로로 꼽았다. 하지만 40대와 50대 이상 SNS를 유통 경로로 답변한 비율은 각각 8.8%, 9.2%로 상대적으로 크게 낮았다. 

또 20대의 경우 유튜브에서 가짜뉴스를 접했다고 답변한 비율은 19%로, 전체 응답 대비 12.9%p 낮았다. 유튜브의 경우 30대 이상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는데 30대 32.1%, 40대 33.1%, 50대 이상 36.2%로 나이가 많을수록 높았다. 

이밖에 메신저서비스를 통한 가짜뉴스 경험은 20대의 경우 0%였던 반면 30·40·50대 이상에서 각각 1.2%, 2.8%, 1.5%로 나타났다. 큰 폭은 아니지만 전혀 없다는 답변과 약간은 있다고 답변한 부분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설문 참여자들의 응답처럼 유튜브는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1인 미디어의 확산으로 다양한 정보가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유통된다는 점은 디지털 기술의 긍정적인 면으로 평가되지만 그 이면에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양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실례들로 나타나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 사망했다거나 서로 관계없는 사람들 사이의 염문설, 정치인 치매설, 유명인 구속 등의 콘텐츠들이 가감 없이 업로드되고 있다. 최근에는 배우 김영옥의 사망설이 유튜브를 뒤덮으면서 해당 영상을 접한 한 연예인이 실제인 줄 알고 오열했다는 글이 SNS를 통해 올라오기도 했다. 

커뮤니티 역시 가짜뉴스가 확산되는 주요 경로로 지목되고 있다. 커뮤니티는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회문제 인식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가짜뉴스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칼부림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던 지난 8월경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포천 종합버스터미널 흉기난동’, ‘대구 PC방 칼부림’ 등의 글이 빠르게 확산됐으나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대구경찰청은 공식 입장을 통해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전파되고 있는 대구 PC방 칼부림 관련 게시글은 사실과 다름을 알려드린다”라며 “부정확한 사실을 유포해 시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법률상 처벌받을 수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불명확한 정보가 유통되는 커뮤니티의 게시글을 사실관계 확인 없이 받아쓰는 기성언론 역시 가짜뉴스 유통 채널로 지목된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키워드를 포함한 기사 수를 살펴본 결과 지난 2010년과 2011년은 각각 3089건, 6993건으로 1만건 아래 수준이었지만 2012년 들어 2만4627건으로 늘어났으며 2013년에는 4만1508건까지 치솟았다. 최근 3년 역시 2021년 2만4535건, 2022년 2만1982건, 2023년 2만4462건으로 2만 건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 현실 정치 위협하는 가짜뉴스

가짜뉴스 생산은 경제적 이익이나 정치적 목적과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는 문제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일례로 영국 언론 ‘가디언’은 가짜뉴스라는 말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할 무렵인 2016년경, 마케도니아에 영어로 제작된 웹사이트들이 만들어졌고 이들이 미국 대선과 관련한 가짜뉴스를 페이스북 등을 통해 유포했다고 보도했다. 

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마케도니아의 소도시 벨레즈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가짜뉴스 영어 웹사이트 100여개가 만들어졌다. 제작 참여자들은 대부분 10~20대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은 SNS에 가짜뉴스를 배포하고 사람들의 접속을 유도해 현지 직장인 연봉의 10배 이상 되는 구글 광고 수익을 올렸다. 

미국 현지에서는 마케도니아에서 생산된 가짜뉴스가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주요 기성 매체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가운데 트럼프와 공화당에 유리한 가짜뉴스들이 수백만건 가까이 재공유되면서 대선 결과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투데이신문〉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기성언론에 대해 불신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가짜뉴스가 향후 국내 선거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 설문 참여자들은 ‘가짜뉴스가 내년 총선 결과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과반이 넘는 58%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세부적으로는 ‘매우 그렇다’ 14.7%, ‘그렇다’ 43.3%, ‘보통이다’ 33%로 답변했으며 ‘아니다’와 ‘전혀 아니다’는 각각 6.4%, 2.6% 수준에 그쳤다.  

또 ‘가짜뉴스가 얼마나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38.5% ‘매우 심각하다’고 답변했으며 43.3%도 ‘심각하다’고 응답, 10명 중 8명은 가짜뉴스가 가진 심각성에 동의를 표했으며 실제 ‘국내 정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를 묻는 물음에도 27.2%가 ‘매우 영향이 있었다’, 48.7%가 ‘영향이 있었다’고 답변했다. 

이밖에도 전체 응답자의 36%는 ‘가짜뉴스가 선거 등 본인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이 있었다’고 대답했으며 ‘가짜뉴스 확산의 원인(중복응답)’으로는 ‘정치 양극화(52.4%)’, ‘상업 목적 여론 악용(49.3%)’, ‘사실 확인의 어려움(41.6%)’, ‘개인의 인지편향(33.5%)’, ‘너무 많은 정보량(32.4%)’ 등이 지목됐다.   

아울러 ‘평소 접하는 뉴스에 대한 신뢰도’는 ‘대부분 믿는다’ 5.5%, ‘약간 믿는다’ 24%, ‘보통이다’ 46.4%, ‘약간 믿지 않는다’ 17.3%, ‘거의 믿지 않는다’ 6.9%로 10명 중 3명 정도만 기성 언론의 뉴스를 믿는다고 대답했다. 또 가짜뉴스에 대한 ‘기성 언론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질문에는 ‘매우 책임이 있다’ 36.1%, ‘책임이 있다’ 42.8%, ‘보통이다’ 16.4%로 나타났으며 ‘책임이 없다’는 3.8%, ‘전혀 책임이 없다’는 0.9%에 불과했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 ‘메아리의 방’에 갇힌 사람들

유권자들의 우려를 반영하듯 총선을 5개월여 앞둔 한국에서는 일찌감치 가짜뉴스를 둘러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가짜뉴스 방송 제보’ 카카오톡 채널을 개설하고 악의적인 의도가 있는 언론 보도를 잡아내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한 공동의 기구가 아닌 개별 채널로 가짜뉴스를 검증하겠다는 것은 스스로를 이른바 ‘메아리의 방’에 가두겠다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 ‘반향실(Echo Chambe)’ 이론이라고도 불리는 메아리의 방 개념은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캐스 선스타인 교수에 의해 처음 언급됐다. 그는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 정치적 양극화를 설명하기 위해 해당 이론을 내놨는데 현재는 정치 유권자나 뉴스 소비자에게로 확장해 인용되고 있다. 

반향실은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고 안에서 메아리처럼 울리는 방을 말한다. 이는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같은 목소리를 반복하면 기존의 신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미 고착화된 관점만 강화할 수 있다는 ‘확증편향’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당초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됐다. 수많은 정보와 뉴스가 쏟아지는 가운데 특정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서 선별해 제공해 준다는 상상은 긍정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에 개인 신념과 반대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미디어 플랫폼 기업들의 알고리즘은 뉴스 소비자를 진정한 의미로 메아리의 방에 갇히게 했다. 신념과 일치하는 영상 몇 개를 소비하면 유사한 영상을 끊임없이 추천하며 그 밖을 벗어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이 같은 메아리의 방은 가짜뉴스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한국컴퓨터교육학회 학술발표논문집에 실린 ‘유튜브 알고리즘과 확증편향(김인식, 김자미)’ 연구에서는 “선동적 성격을 띠던 가짜뉴스들이 OTT 서비스의 비즈니스 모델과 결합하면서 경제적 동기를 발생시켰고 유튜브 내에 ‘개인이 제공하는 뉴스’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라며 “이런 문제의 결합으로 동영상 추천 알고리즘은 특정 정치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 지속해서 해당 정치 성향에 우호적인 가짜뉴스와 자극적인 제목들을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이용자는 확증편향에 빠져 필터 버블 속에 갇히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강명현 교수는 2021년 ‘유튜브는 확증편향을 강화하는가’라는 연구에서 “정치적 신념과 일치하는 콘텐츠를 이용함으로써 기존의 정치적 태도를 강화하는 이른바 확증편향 현상이 발생하는지를 실증적으로 검증한 결과 실제 정치적 신념을 강화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라며 “이러한 확증편향은 정치적 성향이 강할수록 그리고 추천 기능을 활발하게 이용할수록 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정치적 확증편향 현상은 정치적 신념의 정도가 강한 사람이 유튜브의 자동추천 기능을 통해 정치적 채널을 활발하게 이용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정치적 신념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음을 유추케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 결국 개인의 지성과 시민의식

가짜뉴스 확산과 이에 따른 편견의 강화, 정치의 양극화는 큰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지만 우리 사회가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 상황이다. 

실제 정부는 지난 9월 2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운영을 시작했으나 일부 소속 직원들은 언론보도를 심의할 때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고 과거 업무상 구속된 사례 등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된다며 부담을 호소했다. 

이와 관련 방심위는 설명 자료를 통해 “센터 직원들의 고충처리 신고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며 현재 신속심의센터의 신고 접수와 내용 검토 등 통상 업무를 정상적으로 진행 중에 있다”고 해명했지만 정부기관이 주도하는 심의에 대해서는 언론 길들이기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이 방심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출범 이후 열흘간 접수된 신고 123건 중 54건이 JMS 관련 민원인 것으로 나타나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함께 불거졌다. 

학계의 검증에도 제동이 걸렸다. 그동안 4700여개 팩트체크를 진행해 왔던 ‘SNU팩트체크센터’에 대한 네이버의 지원 중단된 것이다. 네이버는 SNU팩트체크센터와의 계약이 종료됐을 뿐, 자체적인 시스템은 계속 운영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그동안 쌓아온 검증 노하우와 학계의 전문성을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비판적 시각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SNU팩트체크센터가 정치적 편향을 보였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센터 는 정치적 이슈 외에도 유명인 발언의 사실관계, 배달앱 팁 권유 불법 여부, 빈대 확산, 전과자 개명 가능 여부 등 사회적으로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검증들로 순기능을 해왔다.  

이처럼 디지털 사회의 고도화와 함께 가짜뉴스 확산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유의미한 대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가짜뉴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사실관계 확인이라는 본래의 목적이 아닌 정쟁의 도구로 악용되면서 본질도 점점 왜곡되고 있다. 

〈투데이신문〉 설문조사에서도 유권자들의 40%는 가짜뉴스를 위한 교차검증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가짜뉴스 문제 해결을 위해 내놓은 방안들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동서대 방송영상학과 이완수 교수는 “확증편향을 갖는 건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먼저 인간은 인지적이고 본성적인 차원에서 자기가 믿고 있는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정보는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두 번째는 정치적 동기 요인으로 볼 수 있는데 논쟁이 있을 때 정치적 신념과 부합하는 메시지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부정적 관점에서 거부하는 성질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옛말에 콩깍지가 씌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 쪽이 마음에 들면 콩을 팥이라고 해도 믿게 된다.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사회문제를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데 한국사회는 너무 정치에 몰입해 있기 때문에 가짜뉴스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라며 “미리 결론을 내지 않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옳은 일인 지를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가짜뉴스에 대해서도 제대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이 우리사회에 얼마나 많은 병폐를 유발하고 사회 공동체에 어떤 피해를 주는지, AI 시대에 얼마나 큰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지속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라며 “정파적인 사람들이 산발적으로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만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입장에 선 사람들을 중심으로 학교와 시민단체에서 지속적인 교육을 이어갈 때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실보다 입장이 중요해진 시대다. 디지털 기술은 없는 사실도 새롭게 만들어 진실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교만을 키우고 있다.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해선 뉴스 소비 주체인 시민들이 스스로 가짜뉴스와 디지털 시대 특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실과 진실에 대한 판단을 다른 사람 혹은 내가 속한 집단에 맡겨서는 확증편향이 만든 메아리 방에 갇힌 채 서로를 향한 불신만 깊어질 수밖에 없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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