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view] 기대 이상의 감동, 신화는 계속 된다…뮤지컬 ‘지킬앤하이드’
[The Re:view] 기대 이상의 감동, 신화는 계속 된다…뮤지컬 ‘지킬앤하이드’
  • 최윤영 공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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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방.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강한 확신에 차 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외롭고 두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어렵게 뗀 발걸음을 옮긴다. 모두가 숨죽이는 순간, 동시에 익숙한 멜로디가 관객들의 마음속으로 깊숙이 파고든다.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이다. 

2004년 국내 초연 이래로 9번째 시즌을 맞아 지난 2018년 11월 13일에 개막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전석 매진의 신화라 일컬어질 만큼 관객들로부터 끊임없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단편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인간의 이중인격에 대해 다룬 스릴러물로, 누적 공연 횟수 1100회, 누적 관객 수 120만 명, 매 공연 매 회 차 유료 관객 점유율 95%라는 압도적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 뮤지컬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정작 본고장인 브로드웨이에서는 흥행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지킬앤하이드>가 유독 한국에서 이렇게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우리 정서에 가깝게 편곡한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 혼의 서정적이면서도 극적인 멜로디, 중독성 강한 리듬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도 역시 역대 지킬로 활약한 배우들의 공이 컸다. 특히 이번 시즌 공연에서는 그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지킬 캐스팅과 함께 각 배역별로 새롭게 등장하는 배우들이 많아 뮤지컬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오랜만에 지킬/하이드 역으로 다시 돌아오는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와 더불어 상대역인 엠마 역에 이정화, 민경아, 그리고 루시 역에 윤공주, 아이비, 해나의 첫 캐스팅은 작품에 색다른 활력을 불어 넣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선사했다. 또, 배우들의 의상이나 무대장치가 이전 시즌에 비해 훨씬 화려하고 정교해졌다는 점도 빼 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다.  커다란 거울과 색색이 반짝이는 플라스크로 가득 채워진 지킬의 실험실은 뮤지컬 전용극장인 샤롯데씨어터의 공간적 특성을 매우 잘 살려낸 느낌이다. 

‘지킬 장인’ 조승우가 연기하는 지킬은 더욱 섬세해졌다. 모든 세포가 깨어나 연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표정 뿐 만 아니라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에도 풍부한 감정이 담겼다. 커튼콜에서 시원하게 날려주는 특유의 어퍼컷은 왜 그가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지킬로 뜨거운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지 재확인시켜주는 기분마저 들게 했다. 이번에 지킬 역을 다시 맡게 되면서 그는 ‘90%의 두려움과 10%의 설렘을 가지고 보물찾기를 하듯 새로운 감정들을 찾으며 연기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완벽의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는 모습에 작품에 대한 배우의 고민과 각별한 애정이 느껴진다. 

‘명품 보이스’ 홍광호의 지킬은 좀 더 여리고 결이 부드러운 느낌이어서 하이드로 변신했을 때의 변화 폭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진다. 아찔한 손끝과 광폭한 울부짖음은 마치 짐승과도 같고, 공간을 장악하는 성량은 말 그대로 지붕을 뚫을 듯하다. 7년 만에 지킬로 돌아온 그여서, 많은 팬들이 첫 캐스팅 공지 때부터 예매를 서둘렀는데 아쉽게도 예정된 3월 10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 지킬 캐스트 멤버 중 가장 먼저 하차한다. 

하지만 또 다른 느낌의 완숙미 넘치는 열연으로 이미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박은태와, 시즌 중반 새롭게 지킬 역으로 합류하는 민우혁, 전동석의 연기 역시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만큼 관객들의 아쉬움을 충분히 덜어낼 수 있을 듯하다.

이번 시즌을 통해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엠마와 루시 캐스트도 신선했다. 민경아가 연기하는 엠마는 가녀리지만 굳은 믿음을 갖고 마지막까지 지킬을 지켜내는 역할에 잘 어울렸으며, 거친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또 다른 모습으로 사랑을 지키고자 애쓰는 루시 역의 윤공주 역시 심금을 울리는 표현력을 보여줬다. 이 외에도 각 배우들의 조합에 따라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관람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지킬앤하이드>의 흥행 요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킬링 넘버인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곡 외에도 숨겨진 보물 같은 넘버가 많은 공연이 바로 <지킬앤하이드>다. 하이드의 등장과 함께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얼라이브(Alive)’와 극 후반부에 이르러 지킬과 하이드의 극명한 대립을 보여주는 넘버 ‘대결(Confrontation)’은 이 공연의 백미다. 초 단위로 달라지는 순간적 캐릭터 전환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보여주는 선과 악의 처절한 몸부림은 관객들의 시선을 한시도 떼 놓을 수 없게 한다. 또, 아름답던 시절을 추억하며 부르는 엠마의 ‘한 때는 꿈에(Once Upon A Dream)’와 루시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담아 노래하는 ‘시작해 새 인생(A New Life)’ 역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수동적이고 주변적인 캐릭터에 그치고 마는 두 여주인공의 모습은 요즘 우리 사회 전반에 흐르는 의식 변화의 분위기와 사뭇 다른 모습이어서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긴다. 원작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엠마와 루시는 각각 선과 악의 비극적 대립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도구이자 지킬의 심리적 변화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며 지고지순한 성녀와 관능적인 창녀라는 이분법적 대비로 그려낸, 진부한 프레임에 갇혀 있다. 또한, 관람 등급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일부 선정적인 내용이 담겨있다는 점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최윤영 (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지킬이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시작한 도전의 끝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우리는 이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은 매력적이다. 어쩌면 정의롭고 용감한 지킬의 모습 뿐 만 아니라, 내면 깊숙한 어딘가에 감춰둔 본능과 금지된 욕망을 가감 없이 분출하며 위선자들에게 응징을 가하는 하이드의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자신의 모습을 잠시나마 투영해 볼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선과 악의 경계, 그 누구도 구분 짓지 못할 진역에서 과연 누가 그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심판할 수 있을 것인가. 판단은 각자에게 달렸다.

일상에 지친 당신, 자유를 갈망하는가. 

폭발적인 에너지와 두 볼이 달아오를 듯한 열기, 끊임없이 두근대는 심장을 느껴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지킬과 하이드가 건네는 손짓에 응답해보자. 매혹적이면서도 아찔한 이 경험은 분명 당신의 매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