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영의 더 리뷰(The Re:view)] 세상에서 가장 소름 돋는 고백, “난 당신의 No.1”...연극 ‘미저리’
[최윤영의 더 리뷰(The Re:view)] 세상에서 가장 소름 돋는 고백, “난 당신의 No.1”...연극 ‘미저리’
  • 최윤영 공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24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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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이토록 섬뜩하게 들렸던 적이 있었던가.

2018년 초연 당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스펜스 스릴러 연극 ‘미저리(Misery)’가 한여름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줄 준비를 단단히 하고 돌아왔다.  

집착이 심한 사람을 일컬을 때 고유명사처럼 쓰이기도 하는 단어 ‘미저리’는 작품에 등장하는 소설 속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본래 사전적 의미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뜻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스티븐 킹의 동명 원작소설(1987년 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1991년 영화로 먼저 제작되며 세계적인 화제작으로 커다란 인기를 끌기도 했다. 눈 쌓인 깊은 산 속, 단발머리를 한 중년 여인이 한껏 치켜뜬 눈으로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은 줄곧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미저리’를 떠올릴 때 푸르스름한 포스터 속 캐시 베이츠의 ‘애니’ 이미지와 동시에 연극을 통해 만난 ‘애니’를 자연스럽게 같이 떠올릴 것 같다. 그만큼 이번 ‘미저리’는 새롭고, 아주 강력하며, 도전적이다.  

‘미저리’는 초연부터 함께 한 연기파 배우 김상중, 길해연, 고인배와 더불어 안재욱, 김성령, 손정은이 처음 합류하며 더욱 많은 관심을 모았다. 지난 21일 공연 무대에 올랐던 김상중은 눈보라가 심하던 어느 날 불의의 차 사고로 큰 부상을 입은 채 외딴집에 구조되어 악몽과도 같은 보살핌을 받게 되는 소설 <미저리> 작가, ‘폴 셸던’ 역을 맡아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 가는 공포심에 텅 비어버린 눈빛은 절망의 끝에 선 참담한 심정을 그대로 담아냈고 이따금 내지르는 비명은 관객들의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특유의 매력적인 중저음은 약간의 위트와 로맨스, 그리고 스릴러를 넘나드는 장면 전환에서 인물의 섬세한 심리 변화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면서도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폴 셸던의 ‘No.1’ 팬을 자처하며 그의 매일을 끔찍한 공포로 몰아넣는 전직 간호사 ‘애니 윌크스’ 역 길해연의 연기도 가히 ‘No.1’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최고였다. 해맑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웃다가도 한순간에 이성을 잃고 마는 모습은 너무나 생생해서 순간 연기가 아닌 실재의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앞선 영화 속 ‘애니’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고 대사의 분량이 상당한 데다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원작의 인물을 새로운 에너지의 ‘애니’로 재창조해내며 관객들을 압도하는 데 성공했다.

또, 보안관 버스터 역의 고인배는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린 유명작가의 행방을 찾기 위해 끝까지 추적하는 모습을 보이며 극에 긴장감을 더한다. 그의 등장은 짧지만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입체적인 공간 구성 역시 돋보인다. 황인뢰 연출의 세련된 디테일은 회전 무대의 활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연극은 특히 ‘문’의 활용에 집중하는데,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절실한 탈출구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세상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며 집착과 감시의 수단으로 작동하기도 하는 이 장치는 순간순간 아찔한 쾌감과 극한의 공포를 선사한다.

하지만 무대 전환 장면에서 반복되는 암전은 후반부로 갈수록 한껏 고조됐던 긴장감을 다소 느슨하게 만든다. 또한 영화와는 다른 몇몇 장면들이 일부 관객에게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미저리’는 말 그대로 수작(秀作)이라는 점이다. 명품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세심한 연출의 힘 덕분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토록 모두 함께 잘 만든 스릴러 연극은 생각만큼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연극 ‘미저리’가 가진 특별함이다.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사랑해서 그랬어요.”

가질 수 없다면 상대를 망가트려서라도 소유하길 바라는 엇나간 욕망은 결국 파멸로 치닫기 마련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늘 곁에 두고 싶고, 사랑하기 때문에 온전히 소유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완벽하게 내 것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때때로 잊고 만다는 데서부터 문제는 늘 시작된다. 우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먼저 깨닫는 것이 사랑을 앞세운 악몽으로부터 피해갈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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