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교육부가 법사위 및 법무부에 제출한 검토의견 일부 ⓒ정의당 장혜영 의원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교육부가 차별금지법에서 ‘학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진 이후 이에 대한 여론이 매우 분분하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성별정체성, 고용형태, 학력 등 23가지의 차별 범위와 관련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인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의무와 책임은 국가에 있고, 그 피해를 빠르고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비사법적 구제를 바탕으로 보호 및 구제를 통해 우리 모두의 사회적 안전망을 단단하게 다짐으로써 우리 모두의 자유를 보호하고, 차별받을 수 있는 모두를 구제하기 위한 법이라는 설명이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을 시작으로 19대 국회까지 7번이나 발의됐으나 모두 무산됐다. 그러다 올해 6월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이 국회 국민동의 청원 10만 명의 동의를 얻었고, 장 의원의 차별금지법과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비슷한 취지의 ‘평등법 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회부돼 현재 계류 중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최근 교육부에서 차별금지법 안에 학력을 포함시킨 데 ‘신중검토’ 의견을 표명하며 논란이다. 

교육부가 법사위 및 법무부에 제출한 검토의견에는 제정안에 포함된 23가지의 차별 범위 중 학력을 제외한 수정안이 담겨 있다.

여기서의 학력은 고졸, 대졸 등 교육 기관의 졸업·이수 여부 또는 특정 교육기관의 졸업·이수를 의미하는 출신 학교까지 모두를 포함한 개념이다.

교육부는 검토 사유에 대해 학력은 성별, 연령, 국적, 장애 등과 같이 통상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게 아닌 개인의 선택, 노력에 따라 성취의 정도가 상당 부분 달라지기 때문에 합리적 차별 요소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 학력을 대신해 개인의 능력을 측정할만한 표준화된 지표 사용이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학력에 의한 차별을 법으로 규정하면 과도한 규제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학력·출신학교 차별 관행 철폐’를 공약으로 앞세웠으며, 당선 이후 100대 국정 과제에도 이 같은 내용을 포함시킨 바 있다. 이러한 문재인 정부에서 학력으로 인한 차별 금지를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은 모순된 행보라는 지적이다.

한편 지난달 24일 열린 대정부 질의에서 이와 관련한 지적에 대해 김부겸 국무총리와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정부 입장을 다시금 확인한 후 정리하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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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위한 학력 차별?

일부 야당과 교육계에서는 ‘학력’ 제외 수정안을 철회하고, 교육부가 학력‧학벌 차별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육부는 합리적 이유 없이 학력을 이유로 고용, 재화 및 시설 이용, 교육 훈련, 행정서비스 이용 등에서 불리하게 대우해도 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교육부에서 낸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는 문재인 정부의 방향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국민 여론과도 배치된다”고 짚었다. 

이어 “경쟁에서 협력으로의 교육 전환을 이루기 위해 가장 깊이 고민하고, 학력 차별 해소에 앞장서야 하는 기관인 교육부가 학력으로 인한 차별은 합리적 차별이라고 빼자는 의견을 제출했다니 부끄럽다”며 “지금이라도 학력 제외 수정안을 철회하고 학력·학벌 차별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당도 “출신학교에 따라 취업과 승진이 결정되고 대학 서열화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소위 명문대학은 일부 특권 학교, 특정 지역, 특정 계층에 몰린지 오래됐다”며 “교육부는 왜곡 또는 착시를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입학, 고용, 승진에서의 학력․학벌차별 관행 철폐’를 공약했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입시 특혜 의혹 이후에는 교육부가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며 “대통령의 공약이나 기존 정책을 고려했을 때 차별금지법에서 학력을 빼자는 교육부 주장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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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가 보는 ‘학력 차별 금지’

현재 가장 학력 차별 중심에 서있는 MZ세대는 학력 차별 금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모 기업 인사팀 사원 박모(29)씨는 학력을 개인의 노력이라고만 단정할 수 없는 시대라며, 교육부의 의견은 매우 단편적이라고 지적했다.

박씨는 “대학 졸업 유무 혹은 고등학교 졸업 유무를 아직까지도 중요하게 보는 한국 사회인데 학력을 차별금지법에서 제외하는 것은 사회 분위기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학력이 개인의 노력이라는 부분 역시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개인의 가정환경이나 경제력에 따라 그 차이가 더 두드러지고 있다. 때문에 개인의 노력이라고 단정 짓고 배제해야 한다는 건 너무 사회의 일부분만 보고 낸 의견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학력이라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뒤따름에도 불구하고, 이를 차별로 정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IT 개발자 황모(28)씨는 “회사든 국가든 발전을 위해서는 역량이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인간의 역량을 평가함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은 첫째는 시험, 둘째는 자격증, 셋째는 학력이라 생각한다”며 “이중 단기로 쌓을 수 있는 역량이 시험이고 중기는 자격증, 장기적이고 가장 힘든 것은 학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학력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을 순 없지만 고학력자라면 역량을 갖추기 위해 장기적으로 투자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으로 학력을 차별이라 정의하는 건 그들에게 매우 부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에서 학력을 배제하는 것은 반대이지만, 학력에 따른 차등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미디어 종사자 유모(29)씨는 “물론 대학에서 배운 학문이 직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개인의 노력은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며 “우리 사회가 고학력을 당연하게 세뇌시켰다. 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게끔 만들어 장장 12년 동안 책상에 앉아 대학만 가지는 일념 하나로 공부하게 만든 학생들의 시간과 노력의 대가를 한 순간에 없애버리는 건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학력을 위해 최소 2년, 길게는 4년 이상씩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이에 따른 비용까지 발생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차별이 아닌 차등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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