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다국적 글로벌 기업들은 브랜드 이미지 및 가치 유지를 위해 사활을 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에만 들어오면 브랜드 이미지에 별다른 신경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기 일쑤다. 특히나 소비자들에게 사과 및 보상을 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져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평정심을 갖고 묵묵부답 태도를 보이거나 자국 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쥐꼬리만한 피해 보상만 할 뿐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이러한 태도는 왜 생기게 된 것일까?

독일을 대표하는 고급차 브랜드 BMW의 화차(火車) 사태를 보면 알 것도 같다.

BMW는 고급차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지난 2018년부터 최근까지 주행 또는 주차된 차에서 불길이 휩싸이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이에 이른바 불자동차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고 일부 지하 주차장에서는 화재를 이유로 BMW 차량의 주차를 거부하면서 BMW 위상과 이미지에도 큰 상처가 생겼다.

문제는 이 사태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10월까지 수입차 화재사건 350건 중 183건이 BMW 차량의 화재사고다.

잇따른 리콜에도 화재가 계속 발생, 차주들의 속앓이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BMW 차량 화재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보고서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지난 2018년 8월에서 12월까지 약 4개월간 진행된 ‘BMW 차량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 보고서에는 화재발생 원인을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 쿨러의 열용량 부족’으로 지목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EGR 쿨러의 반복적인 열 충격에 의한 균열부위를 통해 누수가 발생한 주변으로 급격히 배기가스 물질이 퇴적돼 고온의 EGR 공급 시 발화원이 될 수 있고 EGR 쿨러에서 발생된 불티는 흡기계통으로 유입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즉 EGR은 과다하게 사용하는데, EGR 쿨러는 상대적으로 열용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림대학교 김필수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지난 13일 BMW 차량결함을 부품교환으로 해결하려는 리콜제도의 문제 제기 기자회견에서 EGR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날 “엔진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이에 들어가는 냉각수 일부를 EGR로 보내야 하는데 BMW의 경우, EGR로 보내는 냉각수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평균 자동차 쿨러에 들어가는 절반 정도밖에 냉각수가 들어가지 않으니 EGR 쿨러를 계속 변경해도 냉각수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냉각수가 끓는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엔진과 EGR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면서 “소프트웨어를 변경해야 하는데 미세먼지의 원인이 되는 배기가스량을 변경하게 된다면 배기가스에 대한 환경법 위반이니 차량 판매가 불가능해진다. 리콜 등의 방법으로는 원인제거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단순 부품 결함이 아닌 설계 오류이기 때문에 리콜조치 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시민단체는 BMW 차량 화재 원인을 ‘설계 오류’라고 지적하고 나서고 있지만 BMW 측은 꿈쩍도 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BMW코리아는 “재판 중이니 별도의 입장을 말할 수 없다”는 답변만 내놓았다.

BMW가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를 관리해야하는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이 사태에 대해 뒷짐지고 방관하는 듯 안일한 대처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지난 2018년 당시 리콜을 통해 근본적 해결이 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부품을 교체하는 리콜을 모두 승인해줬다.

당시 국토부 김경욱 교통물류실장은 BMW 화재사고에 대한 브리핑을 통해 “보일링 현상이 가장 심각한 부분인데, 이 보일링 현상은 신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며 “그래서 저희는 완전하게 모든 위협이 제거됐다고 볼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리콜이 해결책이 아님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6차례 리콜을 승인한 것이다.

가장 기막힌 것은 이번에 공개된 민관합동조사단 보고서도 국토부가 ‘민감한 기술적 내용들이 많고, 또 국토부가 BMW 한국법인을 형사고발하고 검찰에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해서 유출할 수 없다’며 비공개하면서 3년여 만인 지난 14일에서야 공개 된 것이다. 이로 인해 BMW 차량 화재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집단소송을 제기한 소비자들이 지난한 법정싸움을 벌이게 됐다.

이에 따라 국토부가 BMW를 봐주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국토부가 처음부터 일부 영업비밀이 포함된 부분을 삭제(REDACT)하거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한 공개본을 만들어서라도 공개했다면, BMW는 여러 번에 걸친 임시방편적 리콜 조치로 위기를 모면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BMW와 국토부의 유착 혹은 봐주기 행태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토부의 BMW 봐주기, 유착 의혹은 결국 국토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리콜 조치 이후에도 BMW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음에도 리콜 조치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소비자들의 안전 보호를 방관한 것 뿐 아니라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들의 원활한 재판 진행도 막게 된 셈이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하지만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방기하기 때문에 한국 소비자들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의 고가 수입차를 구입하고도 업체에게 이런 ‘무시’, ‘갑질’을 당하는 것 아닐까.

국가는 소비자를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그런 의지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소비자 권익 보호보다 기업 보호에 익숙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닌지 정부 스스로 성찰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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