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OLDs)> 기억해야 할 여덟 번째 소식, ‘코로나19 백신 피해자’

- 부작용 국가가 책임 지겠다는 말, 그리고 3년의 시간
- 깜깜이 심의 과정·기계적 판단에 피해자들은 ‘분통’
- 전문가 “인과성 기준, 엄격한 판단 나올 수밖에 없어”
- 사법부 “2년도 안 된 백신, 전문가도 쉽게 단정 못해”

“지금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언론은 ‘뉴스news’가 아니라 ‘올드스olds’에 있어요. 얼마만큼 희석되지 않고 시간을 견디는, 한 노동자가 죽은 사건을 10년 이상 들여다보는 언론이 필요한 거예요. 세월호 참사를 20년, 30년 취재하는 언론이 필요해요. 그런데 조회 수에 의존하는 언론이 그게 가능할까요? (중략) 2000~3000년 전에도 가능했고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얘기해야 돼요. 이제는 뉴스의 시대가 아니라 올드스의 시대니까요.” - 도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中 

올드스(OLDs)는 ‘오래된’이라는 뜻의 ‘Old’와 ‘소식’이라는 뜻의 ‘News’라는 뜻을 담아 만든 단어입니다. 오랫동안 기억해야 하고 반복되지 말아야 할 사건을 재조명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속보 경쟁에서 벗어나 ‘그때’와 ‘지금’을 짚어봅니다. 신문 헤드라인에서 지금은 한 모퉁이로 자리는 옮겼지만 마음 한 가운데 남아야만 하는 뉴스를 찾아 소개하겠습니다. 

광화문 청계광장에 설치된 코로나19 백신 피해 사망자 분향소. [사진제공=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광화문 청계광장에 설치된 코로나19 백신 피해 사망자 분향소. [사진제공=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 이례적인 속도였다. 2021년 2월 26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국내에서 첫 시행된 이후 접종률(1차+2차)은 10월 23일, 8개월 만에 70%대를 돌파했다. 우리보다 접종이 빨랐던 미국과 영국, 독일 등보다 앞선 수치였다.

그리고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질병관리청(질병청)에 따르면 지난달 9월 24일까지 누적 집계된 코로나19 예방 접종 후 이상사례 신고 건수는 48만3621건(사망 2040건).

모든 백신이 그렇듯 코로나19 백신 또한 이상반응 현상이 나타났다. 더군다나 코로나19 백신은 임상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고 급하게 개발된 터라 시민들 사이에 우려는 더 컸다.   

그럼에도 접종률은 다락같이 뛰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미접종보다 이득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견해, 지속된 거리두기로 인한 피로감, 정부의 방역패스 정책 등이 접종률을 높일 수 있었던 이유였다.

특히 정부의 지속적인 설득은 부작용 우려에도 접종률을 높일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당시 정부가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노력한 장면 몇 개를 돌이켜 보자.

“모든 백신은 부작용이 일부 있다. 아주 가벼운 통증으로 그치는 경우부터 시작해서 보다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에 한국 정부가 전적으로 부작용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된다. 그 부작용에 대해서 정부로부터 보호받지 않고 개인이, 말하자면 피해를 그냥 일방적으로 입게 되는 일이 있지는 않을까 이런 염려는 전혀 하시지 않아도 된다” - 2021년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발언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이상 반응은 0.1% 정도이고, 발열·근육통 증상이 대부분이니 접종에 참여해달라" - 2021년 5월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

 

대다수 시민들은 소매를 걷어 올렸고 정부 말대로 백신은 과연 안전했다. 다만, ‘어떤 이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엔데믹, 누군가에겐 끝나지 않은 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래 약 2년 8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이 선언됐고, 코로나19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일은 전보다 훨씬 적어졌다.

백신 피해자들과 그의 가족들은 어떤 시간 보냈을까. 흔히 말하는 이 ‘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왔을까.

지난달 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이하 코백회)의 집회가 열렸다. 이날로 66회차 집회, 아직 피해자 가족들은 백신 피해자에 대한 국가 책임을 외치고 있었다.

코로나19피해자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지난달 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nbsp;ⓒ투데이신문
코로나19피해자가족협의회 회원들이 지난달 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날 만난 코백회 김두경 회장은 “3년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입증 책임은 피해자가 지고 있다. 정치인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피해자들이 요구한 특별법도 국회에 발의만 돼 있지 진전이 없다.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다”고 했다.

현재 코백회 회원은 약 850명. 시간이 흐르면서 회원들 대부분은 원동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코백회 김두경 회장은 “명료한 경우가 아니라면, 피해보상 심의가 1~2년 이상 걸리는데, 자포자기한 사람들도 많고 변한 게 크게 없으니 현재는 다들 많이 지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김 회장은 “우리도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에 팔걷고 나선 사람인데 소관 부처인 질병청에선 단 한 명도 분향소에 찾아오지도 않았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정부 책임론을 강조한 건 전임 대통령만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1호 공약으로 백신 피해의 국가 책임제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은 크게 나아진 것 없다는 반응이다. 후유증으로 인한 병원비, 사망한 가족의 빈자리도 힘들지만, 피해자 가족들이 가장 분노한 부분은 “정부의 태도와 이해할 수 없는 심의 그리고 그 과정”이었다.

알 수 없는 죽음과 ‘깜깜이 결정’

“한 마디로 당신 딸은 운이 없었다” 

지난달 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만난 이남훈씨가 딸 고(故)이유빈 양의 소송 자문을 구하는 길에 한 의료법 전문 변호사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2021년 7월 26일 제주교육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유빈양(당시 만 22세)은 교사임용 시험을 얼마 앞두고 코로나19 백신(모더나)을 접종받았다. 임용시험은 10월이었으나 컨디션 저하를 우려해 유빈양은 잔여백신을 신청해 접종받았다.

그리고 나흘 후인 30일 밤 22시40분경 평소처럼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던 유빈양은 “숨이 차고 어지럽다”는 말과 함께 아버지 이남훈씨 앞에서 쓰러졌다. 입에서는 피가 나왔고 의식도 불안정했다. 뇌와 폐혈관에 혈전이 생긴 것이었다.

당시 제주도 역학조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안성배 조사관은 혈전증과 백신과의 인과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질병청에 검사를 요청했다. 질병청은 이를 거부했다. 모더나 백신의 경우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혈전증 검사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후 안 조사관이 유빈씨가 뇌나 폐혈관 혈전증을 일으킬 만한 위험인자에 노출된 적이 없다는 점, 접종으로 인한 혈전증이 주로 젊은 여성층에서 발병한다는 점을 들며 두 차례 더 검사를 요청했으나 질병청은 거부했다.

접종 백신이 ‘모더나’라는 이유를 제외하면 당시 혈소판 수치 등 유빈양 몸의 각종 지표는 모두 혈전증 검사 기준에 부합한 상태였다. 세 번의 검사 기회를 날리고 유빈양은 그해 8월 7일 접종 13일 만에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고(故)이유빈양 병원 소견서. [사진제공=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이남훈]
고(故)이유빈양 병원 소견서. [사진제공=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이남훈]

어처구니없는 일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유빈양의 죽음이 백신과 연관 없다는 예방접종피해보상 전문위원회(이하 위원회)의 결정이었다. 당시 위원회는 유빈양이 루프스 자가면역질환인 항인지질증후군으로 사망했다고 추정하며 백신과 이상반응의 인과성을 입증할 자료가 충분치 않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아버지인 이남훈씨는 이런 결정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1차 피 검사에서는 루프스 의심 항목 6가지 수치 모두 극히 낮게 나왔다. 딸이 숨진 이후 실시한 2차 검사에서는 5가지가 음성으로 나왔고 한 가지만 기준치보다 높게 나왔는데, 이것 하나 가지고 항인질증후군으로 추정한다는 판단을 했다”며 “유빈이는 감기로 병원 간 적은 있어도 혈액 관련 검사도 받은 적 없는 건강한 아이였다”라고 말했다.

이후 이씨는 한 대학병원으로부터 유빈씨가 혈전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럼에도 질병청은 세계보건기구(WHO)에 해당 이상반응이 백신 후유증으로 등록돼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다른 의사들은 인과성 배제할 수 없다고 하는데, 왜 위원회는 그렇게 판단하는지, 또 WHO 기준을 내세울 거면 국내 다른 전문가 의견은 무시해도 되는지 이런 판단들이 납득이 안 된다. 이유를 알고 싶어도 회의 기록(위원 간 오고간 대화)이나 자료(판정의 근거 자료) 등을 공개하지 않는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와 관련해 질병청은 “회의 기록은 심의 과정에서 위원회의 자유로운 논의를 저해하지 않도록 각 위원의 개별 발언은 공개하지 않는다”며 현재까지 비공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수로 공개된 전문가 기록

그런데 이 회의 자료가 세상 밖으로 나온 사례가 존재한다. 고(故) 김준우(사망 당시 18세)군의 어머니인 강일영씨였다. 그런데 그는 “순전히 운이 좋아서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강씨는 “제가 회의기록을 받고나서 코백회 다른 회원도 질병청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그런데 거부됐다. 이유를 물으니 질병청 ‘당시 직원이 실수로 공개한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씨가 정보공개 청구로 받은 회의 자료는 1·2차 심의 각각 7장, 21장 분량이다. 그런데 위원회가 피해자들에게 공개하는 결과 보고서는 통상 한 장 분량에 불과하다. 강씨가 받은 자료에는 역학조사관 경과보고, MRI 및 CT 등 검사 결과, 위원회가 판단에 참고한 논문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는 반면, 한 장짜리 보고서에는 피해 경과, 의무기록, 자문단 검토 결과 등이 간략하게 보고돼 있다.

강씨는 “위원회가 어떤 자료를 검토하고 참고해서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 그나마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어이없는 일은 또 있었다. 지난 9월 12일 강씨는 교육부로부터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내용에는 ‘귀하는 교육부 백신접종 이상반응 건강회복 지원 사업 대상자’라고 적혀 있었다. 2021년 10월 25일 사망한 아들 준우군의 건강을 회복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강씨는 “피해자 가족을 두 번이나 죽이는 일”이라고 분노했다.

강일영씨가 교육부로부터 받은 문자. [사진제공=코백회 강일영 강원지부장 ]
강일영씨가 교육부로부터 받은 문자. [사진제공=코백회 강일영 강원지부장 ]

피해자들을 울린 건 비단 질병청 뿐만이 아니었다. 김수경씨는 지난 2021년 10월 16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고 ‘독성 간염’으로 사망한 남편의 유족급여 신청을 위해 이듬해 6월 근로복지공단(광산지사)에 지급 신청서를 냈지만 지급할 수 없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본보가 김씨로부터 제공받은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 재결서를 확인해본 결과, 근로복지공단은 세 가지 이유를 들며 지급을 거부했다. ‘백신 접종을 강제 받지 않았으며, 부검 결과상 독성 간염을 유발한 원인을 밝히기 어렵고, 질병청에서도 백신과의 연관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남편이 백신 접종을 강제받지 않았다는 주장에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남편은 지방 공기업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당시 직장에선 ‘백신 접종을 받은 직원 명단’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었고, 공기업에 재직했다는 점과 당시 직장 분위기를 고려하면 남편은 접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했다. 당시 직장에서는 전 직원 접종 목표를 80% 이상으로 세우고, 미접종자 명단을 관리했다고도 한다.

알 수 없는 심의기준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올해 8월 기준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보상 누적 신청 건수는 9만6485건으로 이 중 9만229건이 심의됐다. 심의 건 가운데 보상받은 건수는 2만4318건(26.9%)이다. 반대로 보면 약 73%(7만2167건)의 심의가 기각된 셈이다. 기각 심의 가운데 대부분(70.9%,6만4047건)은 보상이나 지원금이 없는 평가 기준 4-2나 5에 해당한다.

앞서 인터뷰 했던 피해자 사례 모두 담당 의사나 전문가들로부터 ‘백신과 사망 원인 간의 인과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소견을 받았지만 보상 기준에서 제외된 이들이다.

특히, 이남훈씨의 경우 유빈양의 보상심의 재심 과정에서 여러 학회로부터 ‘백신에 의한 사망 배제할 수 없다’거나 ‘의견 없음’이라는 자문을 받아냈다. 통상 ‘의견 없음’은 근거자료가 불충분하다는 뜻으로 이는 곧 백신으로 인한 사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에 확고한 판단이 어렵다는 의미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질병청은 명확히 인과성이 없다거나, 예방접종과의 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7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코백회 김두경 회장의 자녀 김지용(29)씨의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규탄 기자회견’ 현장.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으로 길랭바레 증후군 진단을 받은 지용씨가 갑자기 찾아온 통증으로 괴로워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nbsp;
지난달 7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코백회 김두경 회장의 자녀 김지용(29)씨의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규탄 기자회견’ 현장.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으로 길랭바레 증후군 진단을 받은 지용씨가 갑자기 찾아온 통증으로 괴로워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애초부터 잘못 끼운 단추”

이유가 무엇일까. 근본적 원인으로 인과성 평가기준을 정하는 단계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 있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임상심사위원을 지낸 강윤희 박사는 “질병청이 평가기준을 변경한 부분”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질병청은 백신 이상반응에 대한 인과성 평가 기준을 정리해 놓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 관리지침’ 1-2판을 2021년 6월14일 개정해 내놨다.

인과성 평가기준이란 위원회가 피해보상 결정을 내리는 데 활용하는 기준으로 총 5단계로 구성돼 있다. ①인과성 명백 ②인과성에 개연성 있음 ③인과성에 가능성 있음 ④인과성이 인정되기 어려움(다시 2개 항목으로 나뉨) ⑤명확히 인과성 없음 등이다. ①~③과 ⑤는 인과관계를 명확히 가를 수 있지만, ④번 항목은 인과관계를 명확히 따질 수 없다는 기준이다.

강 박사가 지적하는 부분은 평가기준 ④번이다. 개정 전 1판에서 제시하고 있던 ④번 기준은 ‘백신보다는 다른 이유에 의한 가능성이 더 높은 경우’였다.

이후 개정된 1-2판에서는 ‘백신과 이상반응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지 않거나(④-1) 백신보다는 다른 이유에 의한 가능성이 더 높은 경우(④-2)’로 분리됐다. 정리하면, ‘자료 불충분’에 대한 내용이 추가된 것이다.

강 박사는 “자료가 불충분할 경우, 조금이라도 의심이 되면 인과성이 있는 방향으로 추론하고 자료를 더 살펴보는 게 그동안 세계에서도 써왔던 합리적 방식인데 우리나라는 거꾸로였다”고 비판했다.

변경 전 기준으로는 ②번이③번에 해당할 수 있는 사례들이 -1 또는 -2로 빠지게될 여지가 생겼다는 것이 강 박사의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수 있는 문턱만 높아지게 된 셈이다.

질병청이 코로나19 백신과 이상반응의 평가 기준을 명시해 놓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 관리지침’. 사진 상단에는 2021년 2월26일 나온 초판의 내용, 그 아래는 4개월 뒤 수정된 2-1판 내용. [자료=질병관리청]
질병청이 코로나19 백신과 이상반응의 평가 기준을 명시해 놓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 관리지침’. 사진 상단에는 2021년 2월26일 나온 초판의 내용, 그 아래는 4개월 뒤 수정된 2-1판 내용. [자료=질병관리청]

위원회가 사용하는 평가기준이 ‘낡은 기준’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금 사용하는 인과성 판단 기준은 이미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폐기한 기준”이라며 합리적 기준이 아니라고 말했다.

현재 WHO는 ‘백신 부작용이 맞는다거나 혹은 아니다, 불확실하다’라는 3가지 평가기준을 두고 있다. 김 교수는 “이렇게 변경된 이유는 확실히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거나, 불분명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방접종피해보상 전문위원회가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망자 986명을 대상으로 인과성을 판단한 결과를 김윤 교수가 분석한 결과, 백신과 이상반응 간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인 평가기준 ①, ②, ③번 또는 ⑤번의 경우 22%, 나머지 78%는 근거자료가 불충분한 ④번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백신 부작용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는 22%를 제외하면, 나머지 78%는 잘 모른다는 의미”라며 “전문가들의 기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와 정부의 관료적 태도가 문제를 낳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백신 부작용에 대해 전문가들과 정부가 확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法 “인과성 없다고 단정할 수 없어”

질병청의 이런 보수적 태도는 피해자들과의 소송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8월 기준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보상 행정소송은 총 29건 제기됐다. 이 가운데 5건은 종결됐고 23건은 1심 진행 중이며, 1건은 질병청이 1심 패소 후 항소했다가 취하 절차를 밟았다.

본보는 지난달 19일 피해자 측 소송 대리인을 맡고있는 법무법인 하신의 안나현 변호사로부터 피해자가 질병청으로부터 승소한 판결문 2건을 넘겨받았다.

코로나19 백신 피해자 가족이 정부로부터 승소한 판결문.&nbsp;ⓒ투데이신문
코로나19 백신 피해자 가족이 정부로부터 승소한 판결문. ⓒ투데이신문

판결문에서 사법부는 “사망 원인과 백신 간의 인과성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질병청과 달리 당시 코로나19 백신이 나온 배경과 그 불완전성을 판단에 반영하고 있었다.

두 판결문에는 사법부가 이런 취지의 판단을 내린 공통된 견해가 담겨있다. 판결문에는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백신이 접종 후 어떤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 구체적 피해 발생 확률이 어떤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백신 접종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는 상당한 정도의 증명이 없는 한 사망자와 접종 사이의 역학적 연관성이 없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적혀있다.

또 판결문은 ‘예방접종과 장애 등 사이의 인과관계가 반드시 의학적ㆍ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적 사실관계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는 그 증명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라는 기존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4두274 판결)를 관련 법리로 세우고 있다.

코로나19 피해자 측 변호를 맡고있는 안 변호사는 “물론 케이스마다 법원 판결은 다를 수 있지만, 법원 또한 코로나19 백신이 짧은 기간 안에 개발됐고, (아직 모르는)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판결에 반영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라고 평했다.

안 변호사는 “질병청이 이제라도 솔직하게 백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접종과 피해 발생 사이의 인과성을 인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인과관계 평가 기준에 대한 전문가 지적과 사법부 판단 등에 대해 질병청 입장을 듣고자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질병청 입장을 결국 듣지 못했다. 

코백회 김두경 회장의 자녀 김지용씨의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규탄 기자회견’이 지난달 7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렸다.&nbsp;ⓒ투데이신문
코백회 김두경 회장의 자녀 김지용씨의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규탄 기자회견’이 지난달 7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렸다. ⓒ투데이신문

피해자들의 시간은 흐른다

올해 5월 11일 방역당국은 코로나19 위기 단계를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했다. 언론에서는 3년4개월 만에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엔데믹이 선언된 것이다.

그러나 인터뷰 기간 동안 만난 피해자들은 아직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습이었다.

어떤 이는 기나긴 소송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 김수경씨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생각 중이다. 너무 억울해서 (소송을)해야 할 것같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당정이 발표한 사인불명과 관련한 보상에 대해서도 “최종 판단이 나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어떤 자세를 취할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며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듦을 우려하는 이도 있다. 코백회 김두경 회장은 “시간만 흐르고 있고, 특별법이나 이후 대책들은 제대로 나온 것도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잊혀질 것 같다. 아마 정부가 원하는 게 이런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가족의 죽음을 바로 알고 싶어했다. 지난달 9일 코로나19백신 피해자 집회에서 만난 이남훈씨는 “진실을 원한다”고 했다.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날 1시간40분 동안 진행한 인터뷰 내내 냉철했고 확고했던 그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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